[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임기 초 기업 잡도리였나? 이재명 대통령은 산업재해를 ‘살인’에 비유하며 근절을 외쳤다. 산재사고가 발생한 기업은 납작 엎드렸고 다음 타자가 될까 노심초사했다. 이재명정부가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한 지 3개월이 지났다. 과연 건설 현장은 이전보다 안전한 곳으로 바뀌었을까?
비상계엄 사태, 탄핵 정국을 지나 출범한 이재명정부는 민생 안정과 내란 척결을 가장 큰 화두로 제시했다. 계엄령 선포로 정치·경제할 것이 없이 만신창이가 된 사회 상황을 우선 안정시킨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임기 초 이재명 대통령이 가장 드라이브를 건 사안은 따로 있었다. 바로 산업재해다.
대통령까지
지난 7월25일 이 대통령은 SPC삼립 시화공장을 전격 방문했다. 앞서 5월 이 공장의 크림빵 생산라인에서 50대 여성 노동자가 상반신이 기계에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이 대통령은 “새로운 정부는 각종 사유로 너무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꿔보겠다는 생각”이라며 “죽지 않는 사회, 일터가 행복한 사회, 안전한 사회를 우리가 꼭 만들어야 된다”고 말했다.
나흘 뒤인 7월29일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서 발생한 산재 사망사고를 언급하며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사고가 발생하는 건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라며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아닌가”라고 발언 수위를 높였다.
또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에게는 “사람 목숨을 지키는 특공대라고 생각하고 철저하게 단속해야 한다. 직을 걸라”고 주문했다. 김 장관은 “직을 걸겠다”고 답했다.
8월에도 재차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하면서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후진적인 ‘산재 공화국’에서 반드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본격적으로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한 시기다.
이 기간 산재사고가 발생한 현장은 이른바 ‘본보기’가 됐다. 대표이사 등 수뇌부가 대국민 사과를 했고 일부 기업은 윗선이 물갈이됐다. 안전 점검을 위해 전국의 공사 현장이 멈췄다. 이정부에서 산재 사망자 비율은 2030년까지 OECD 평균으로 줄이겠다는 구체적인 목표치까지 나오면서 기업은 바짝 긴장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인 1만명당 0.29명을 크게 웃돈다. 이 대통령은 “전 세계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또는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고 하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는 반드시 끊어내겠다”며 의지를 밝혔다.
여당도 법안으로 발을 맞췄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윤 의원은 사업주가 노동자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발생한 산업재해로 최근 1년간 3명 이상 노동자가 숨진 경우, 영업이익의 5%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경우에는 10%까지 가중한다.
11월 처리를 예상했던 법안은 야당의 반대와 경제계 우려로 일단 보류됐다.
국민의힘 김위상 의원은 “공기업에 부과되는 과징금은 결국 국민 부담으로 이어지고 영업이익의 5%는 중소업체가 폐업할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징벌적 규제에 대한 반발이 적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법안 처리가 내년으로 미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사망↑
산업계 ”처벌만으로는 안 돼“
이런 와중에 이정부의 ‘산재 성적표’가 나왔다. 성적은 낙제점에 가깝다. 산재 사망사고가 전년 동기와 비교해 되레 늘어난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산재 사망사고 현장을 방문하고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기업을 압박하며, 여당이 법안을 발의한 것에 비하면 초라한 결과다.
지난 9월까지 사업주 안전조치 의무 불이행으로 사망한 노동자 수는 457명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시기(443명)와 비교해 14명(3.2%)이 늘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5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2025년 3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 잠정 결과를 발표했다.
사고 건수는 411건에서 440건으로 29건(7.1%) 증가했다.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통계는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 조치 의무 등을 이행하지 않아 발생하는 산재 사망사고를 분석한 통계다. 업종별로 보면 건설업이 210명으로 사망자가 가장 많았다. 지난해 3분기와 비교해 사고 건수(200건)는 같았지만 사망자는 7명(3.4%) 늘었다. 제조업이 119명, 기타업종이 128명 등이었다.
규모로 따지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275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년 동기 26명 늘었고 사고 건수 또한 270건으로 25건 많아졌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도 137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같은 시기와 비교해 27명 늘어난 수치다.
증가 폭은 기타 업종에서 가장 높았다. 사업장 규모가 영세하고 안전관리 수준이 열악한 도소매업과 농림어업에서 각각 11명, 10명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또 건설업도 공사 기간이 짧고 안전관리 수준이 열악한 5억원 미만 소규모 건설 현장에서 사망자가 전년 동기 대비 19명이 늘어나 증가 폭에 영향을 미쳤다.
50인 이상 사업장은 182명이 사망해 같은 기간보다 12명 줄었다.
고용노동부의 발표로 이정부의 노동안전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실효성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특히 영세 사업장에서 산재 사망사고가 늘어난 사실이 드러난 만큼 처벌 위주의 정책으로는 개선이 어렵다는 의견이 나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는 지난 25일 국내 기업 262곳을 대상으로 진행한 ‘새 정부 노동안전 종합대책에 대한 기업 인식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70%가 넘는 기업이 처벌과 제재에 초점을 맞춘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려를 표한 기업들은 ‘예방보다 사후 처벌에 집중됐다’를 이유로 꼽았다. 경총은 이번 정부 대책이 오로지 사업주 처벌 및 제재에만 집중돼 이를 우려하는 경영계 시각이 반영된 것이라고 밝혔다.
또 노동안전 종합대책 중 기업에 가장 큰 어려움을 주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과징금, 영업정지 등 경제 제재 강화(44%)’를 첫손에 꼽았다. 사망사고 발생 시 현행 사업주와 기업을 처벌하는 수위에 대해서도 76%가 과도하다고 주장했다.
나섰는데…
하지만 정부 기조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류현철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영세 사업장 중심의 산재 사망사고 증가세에 대해 “산재는 대표적인 후행지표로 단기 변동만으로 원인을 단정하긴 어렵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작은 사업장은 법을 알고도 지킬 여력이 부족하고 위험을 감수해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구조적 한계를 언급했다.
대형 사업장은 정부의 기조가 일정 부분 효과를 내고 있지만 영세 사업장에는 정책이 아직 닿지 않았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류 본부장은 “엄중한 책임 부과와 함께 실제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지원체계를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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