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경주 APEC 정상회담이 호평 속에 막을 내렸다. 핵추진잠수함과 GPU 26만장 공급 등 이어지는 호재에 주식시장이 들썩였고 곳곳에서 축제 분위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선물 보따리가 두 손에 잡힐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지난달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승인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핵추진잠수함의 연료를 우리가 공급받을 수 있도록 결단해달라”라고 요청한 지 불과 하루 만이다. 미국이 한국 정부의 ‘깜짝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핵추진잠수함 논의는 이번 정상회의의 최고 성과로 자리 잡았다.
겹경사
지난달 29일 이 대통령은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의 오찬 회담에서 핵추진잠수함으로 먼저 운을 뗀 뒤 “트럼프 대통령님께 충분히 자세한 설명을 못 드려서 약간의 오해가 있으신 것 같다”며 “우리가 핵무기를 적재한 잠수함을 만들겠다는 게 아니다. 디젤잠수함이 잠항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북한, 중국 쪽 잠수함의 추적 활동에 제한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핵추진잠수함 연료 공급을 허용해주면 우리 기술로 재래식 무기를 탑재한 잠수함을 여러 척 건조하겠다”며 “(한국이) 한반도 동해, 서해에 해역 방어 활동을 하면 미군의 부담도 상당히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이 대통령은 핵연료 재처리에 대한 의견도 전달했다. 이 대통령은 “이미 지지해주신 것으로 이해한다”면서도 “사용 후 핵 연료 재처리나 우라늄 농축 부문에 대해 실질적 협의가 진척될 수 있도록 지시해주시면 좀 더 빠른 속도로 그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한미 군사동맹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며 “나는 한국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구식에 기동성이 떨어지는 디젤 추진 잠수함 대신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하도록 승인했다”고 전격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건조 장소로 필리조선소를 지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바로 이곳,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할 예정”이라며 “미국의 조선업이 곧 화려한 부활을 맞이할 것이다. 기대해달라”고 밝혔다.
핵추진잠수함은 단어 그대로 핵 연료로 추진력을 얻는 잠수함이다. 디젤 잠수함과 달리 장시간 잠항이 가능하고 기동성 역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핵은 단순 동원력으로, 무기 용도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핵잠수함 가시권, 팽팽한 줄다리기
한, 자주 국방 VS 미, MAGA 밑거름
핵추진잠수함은 노무현정부 때부터 숙원 사업으로 여겨졌지만 미국은 “핵 확산의 우려가 있다”며 번번이 거절했다. 문재인정부는 북한의 핵 미사일을 언급하며 “미국 본토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잠수함 건조 장소를 놓고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무산됐다.
미국이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더불어민주당은 “엄청난 분수령”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에 나섰지만, 아직 샴페인을 터트리기에는 이르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건조 장소와 핵연료 공급 문제를 둘러싼 까다로운 협상이 예상된다는 점에서다.
먼저 트럼프 대통령은 건조 장소로 필리조선소를 짚었다. 지난해 한화그룹이 인수한 미국의 조선소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해 있다.
당초 필리조선소는 상선을 건조하는 곳인 만큼 지상 조립 방식인 핵잠수함을 만들기엔 부적절하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조선소의 기술 절차를 모두 점검하고 새로운 인력을 도입하는 데만 5~10년이 걸릴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은 “핵추진잠수함은 단순한 전력 보강이 아니라 우리 해군의 작전 능력과 해양 이익을 지키는 핵심 전력·전략 무기”라며 “우리 산업 기반과 방산 역량을 활용해 국내에서 추진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 역시 “우리가 30년 이상 기술 축적과 연구를 해왔기 때문에 (한국에서 건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며 “현재 미국 필리조선소는 기술력과 인력, 시설 등이 상당히 부재한 면이 있다고 판단한다. 정부 부처와 긴밀히 협의해야 할 사항”이라고 밝혔다.
잠수함 원자로에 투입될 핵연료 공급망 확보도 미해결 과제다. 미중 간의 갈등이 격화하는 현 시점에서 제2의 ‘사드 사태’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핵연료를 확보하는 고차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아울러 핵연료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미국 의회의 문턱을 넘어야 해 한미 의회 간의 관계도 소홀히 할 수 없다.
“GPU 26만장 공급” 들썩이는 IT 업계
급제동 건 트럼프…받을 수 있을까?
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에 참석한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깜짝 선물’도 눈길을 끌었다. 지난달 29일, 경주를 찾은 황 CEO가 2030년까지 총 26만장의 블랙웰(B100) GPU를 공급하기로 하면서 IT업계에 훈풍이 분 것이다.
당시 하정우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은 “확보량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세계 3위가 된다는 의미”라며 “AI 컴퓨팅 파워는 곧 국가 경쟁력으로, 제조·의료·국방 등 전 산업의 디지털 전환 속도를 끌어올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같은 날 <CBS> 인터뷰에서 “가장 진보된 칩은 미국 외에는 누구에게도 주지 않을 것(The most advanced, we will not let anybody have them other than the United States)”이라고 밝히면서 찬물을 끼얹었다. 최신 AI 칩 공급 활로가 막힌다면 한국 또한 GPU를 확보하는 데 차질이 생길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국내 반도체 주식가가 하락하는 등 한차례 휘청였지만 다음 날 미국이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을 허가하면서 ‘중국 압박용’이라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엔비디아 최첨단 칩의 중국 판매를 허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한국에 공급하기로 한 26만장에는 해당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대통령실 역시 “기존에 발표한 것과 같이 26만장 확보는 명백한 사실”이라며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다만 핵추진잠수함과 마찬가지로 GPU 공급 역시 구체적인 공급 일정이나 방식을 공식화한 문서가 존재하지 않아 수출 제한국이 확대 될 수 있는 등 각종 변수에 주목해야 한다는 외부의 시선도 적지 않다.
이번 APEC 정상회담의 성적표는 공동 성명 자료인 ‘조인트 팩트시트’다. 여기에 적힌 문구 수위와 단어에 따라 이재명정부 외교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리스크
팩트시트가 발표가 한미 협상의 끝은 아니다. 법적 구속력이 없을뿐더러 원론적인 표현이 담길 가능성이 커 향후 협력 방향 등 큰 틀에서의 합의만 이뤄지기 때문이다.
핵추진잠수함 역시 구체적인 건조 시점이나 장소 등 세부적인 사안은 추가 협상을 통해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APEC 정상회담의 최대 변수였던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인보다 사업가 기질이 강해 서명 후 ‘맞손’을 잡기까지 무엇 하나 안심할 수 없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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