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나들이 가볼만한 곳 ②반구천의 암각화·암각화박물관·대곡박물관·자수정 동굴나라·언양알프스시장

시간을 달리는 울주 유네스코 역사 여행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나들이하기 좋은 요즘, 울산 시내보다 한적하고 볼거리도 많은 울주로 떠나보자. 그곳에는 최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반구천의 암각화를 비롯해 역사와 문화를 품은 여행지가 많아,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역사를 횡단하는 시간 여행을 즐길 수 있다.

태화강 상류에 해당하는 대곡천(구 반구천) 일대에는 선사인과 고대인의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는 그림일기가 숨어 있다.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반구천의 암각화다. 반구천의 암각화는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를 아우르는 명칭이다.

크리스마스의 기적

그들의 흔적은 대곡천을 따라 3㎞ 정도 이어지며, 단면이 고르고 편편한 바위 두 곳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12월25일에 발견되어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도 불린다. 높이 4.5m, 너비 8m에 이르는 거대한 암면에 돼지, 호랑이 같은 육지 동물과 거북, 상어, 고래 같은 바다 동물을 새겼는데, 그중에서도 북방긴수염고래, 혹등고래, 향고래 등 최소 7종의 고래를 구체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좌측 상단에는 새끼를 등에 업은 귀신고래의 모습도 보인다. 반구대 암각화는 고래 탐색부터 사냥, 인양, 해체에 이르는 고래잡이의 전 과정이 새겨진 세계 유일의 유적이다. 이를 통해 당시 동해에 고래 떼가 자주 출몰했고, 선사인들이 조직적으로 고래를 사냥했음을 알 수 있다.


암각화 맞은편에는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지만, 암각화 전체를 관찰하기란 쉽지 않다. 암면에 햇빛이 들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비가 많이 오면 그림이 물속에 잠기기도 한다. 그래서 울주군은 수위가 비교적 낮은 4월부터 9월 중순 사이 맑은 날,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어두운 암면을 비추는 오후 4시에 방문할 것을 권한다. 전망대에 설치된 망원경을 활용하면 암각화를 보다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울산암각화박물관에서 운영하는 답사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암각화를 가까이에서 관람하는 것은 물론, 반구천 일대를 누비며 반구서원, 공룡 발자국 화석 등 다양한 유적도 탐방할 수 있다. 프로그램은 2~6월, 9~11월에 진행되며, 화~금요일에는 오후 3시, 주말에는 오전 10시30분과 오후 3시에 선착순 20명 규모로 진행된다.

참여를 원한다면 전화 예약을 하거나 박물관 안내데스크에 문의하자.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는 반구대 암각화보다 상류에 있다. 높이 약 2.7m, 너비 약 9.8m의 중심 암면에는 600여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는데, 바위 위쪽이 앞으로 기울어진 형태라 비바람으로부터 암각화를 보호한다. 암면의 상단에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그린 그림이, 하단에는 신라시대 사람들이 그린 그림이 남아있다.

사슴, 상어 등 동물 그림과 기하학적 무늬가 주를 이루는 선사시대 그림에 비해 신라시대 그림은 말을 탄 사람들의 행렬이나 용의 비늘과 발톱까지 섬세하게 묘사해 눈길을 끈다.

한편에선 신라의 귀족과 화랑들이 남긴 방명록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대곡천이 신라시대에도 지금과 같이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자연 명소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실제로 법흥왕의 동생인 사부지갈문왕이 이곳을 서석곡이라 칭했고, 진흥왕은 즉위 전 어머니와 함께 다녀갔다고 전해진다. 재미있는 점은 방명록이 선사시대 사람들이 그린 그림을 피해 한 귀퉁이에 작성되었다는 것이다.


울주서 떠나는 역사와 문화의 시간 여행

반구대 암각화보다 1년 앞서 발견된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사람이 이룬 작품이다. 선사인들은 단단한 돌로 풍요에 대한 바람을 담아 동물 그림을 그렸고, 신라인들은 금속 도구를 이용해 글자와 그림을 남겼다.

현대인들은 이를 연구하고 있으니, 암각화는 단순한 유적을 넘어 과거와 현재를 잇는 통로가 아닐까?

반구천의 암각화를 둘러본 후에는 울산암각화박물관에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이곳은 국내 유일의 암각화 전문 박물관으로, 흐릿했던 암각화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박물관은 반구천의 암각화를 소개하는 영상 상영 공간, 선사시대의 예술을 소개하는 공간, 암각화 실물 모형과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소개하는 공간 등으로 꾸며져 있다.

실물 모형 옆에는 암각화의 그림들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터치스크린도 있어 현장에서의 아쉬움을 달래준다.

절벽이나 바위에 쪼기, 갈기, 긋기 등 다양한 기법으로 새겨진 암각화는 전 세계에서 발견되는 문화적 산물이다. 문자가 없던 선사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고 느낀 것을 바위에 새겼고, 이를 수천 년간 간직해 온 암각화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울산암각화박물관에서는 반구천의 암각화 외에도, 세계 각지의 암각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반구천의 암각화 세계유산 등재를 기념하는 특별 기획전도 진행 중이다. 1970년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를 발견한 순간부터 보존을 위한 노력들, 그리고 마침내 세계유산에 등재되는 순간까지의 기록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보유국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특별전은 2026년 2월28일까지 진행된다.

대곡천 상류에 자리한 울산대곡박물관은 울산의 첫 공립 박물관이다. 대곡천에 댐을 건설하기 위해 발굴 조사를 하던 중 삼국시대의 고분군, 철, 분청사기, 백자 등의 유물과 절터, 건물터 등이 출토된 것을 계기로 세워졌다. 박물관 천장에는 오리 모양의 조각이 걸려있는데, 토지 발굴 중에 발견된 오리 모양 토기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새가 죽은 자의 영혼을 저승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인지 삼한시대와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무덤에서는 새 모양의 그릇, 장식품 등 새와 관련된 유물이 많이 출토된다.

대곡박물관은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적뿐만 아니라, 대곡댐이 건설되며 고향을 잃은 이들의 이야기 등 현대의 이야기도 담은 서부 울산 지역의 거점 박물관이다. 이곳에서는 이제껏 몰랐던 울산의 내밀한 면모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자수정동굴나라는 자수정 광산을 활용해 만든 테마파크로, 연중 12~16℃를 유지해 쾌적한 환경을 자랑한다. 내부는 도보로 관람하는 육로와 보트를 타고 다니는 수로로 나뉘는데, 일반적으로는 도보 탐방 후 보트 체험을 한다.

동굴 안에는 경주 석굴암을 본떠 만든 소원 동굴, 미디어아트 동굴, 공룡 동굴 등 볼거리가 다양하고, 암석에 박힌 자수정 원석도 볼 수 있다. 동굴 밖에 마련된 판매장에서는 자수정을 활용한 다양한 액세서리도 판매하고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들러도 좋다.


언양의 대표 전통시장인 언양알프스시장은 상설 시장으로 운영되지만, 5일장이 열리는 2일과 7일이면 더욱 활기를 띤다. 언양알프스의 모든 길은 언양장으로 통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골목마다 사람이 북적인다. 시장을 지켜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양알프스시장의 오랜 전통과 정통성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세상이 달라지고 편해졌지만, 대장장이인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 내가 그 자리에 없다면 그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아닌가?”

대장간에 크게 새겨진 대장장이의 다짐이다. 40여년 경력의 대장장이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자리를 지킨다. 매일 신선육을 공수해 순살 닭강정을 판매하는 청년 사장은 자신만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중이다.

언양알프스시장

시장을 구경하다 배꼽시계가 울리면 언양의 별미를 맛보자. 언양은 일제강점기에 도축장이 자리해 소고기 요리가 발달했다. 소고기를 잘게 다져 간장과 마늘 등을 넣고 버무린 후 숙성 과정을 거쳐 석쇠에 구워 먹는 음식인 언양불고기가 대표적이다. 소머리를 우려내 깊은 맛을 자랑하는 곰탕은 여행의 피로를 덜어줄 안주로 제격이다.

 

<여행 정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유네스코 세계유산]: 주소: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산234-1, 문의: 052-254-5724, 홈페이지: https://www.ulsan.go.kr/s/bangucheonpetroglyphs/contents.ulsan?mId=001001002000000000, 운영 시간: 상시 개방, 이용 요금: 무료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유네스코 세계유산]: 주소: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산210-2, 문의: 052-254-5723, 홈페이지: https://www.ulsan.go.kr/s/bangucheonpetroglyphs/contents.ulsan?mId=001001003000000000, 운영 시간: 상시 개방, 이용 요금: 무료

-울산암각화박물관: 주소: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반구대안길 254, 문의: 052-229-4797, 홈페이지: https://www.ulsan.go.kr/s/bangudae/main.ulsan, 운영 시간: 매일 9:00~18:00(매년 1월 1일, 매주 월요일 휴무), 이용 요금: 무료

-울산대곡박물관: 주소: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서하천전로 257, 문의: 052-229-4787, 홈페이지: https://www.ulsan.go.kr/s/dgmuseum/main.ulsan, 운영 시간: 매일 09:00~18:00(매년 1월1일, 매주 월요일 휴무), 이용 요금: 무료

-자수정 동굴나라: 주소: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자수정로 212, 문의: 052-254-1515, 홈페이지: http://www.jsjland.co.kr/, 운영 시간: 평일 9:15~17:00, 주말 9:15~17:30, 이용 요금: 동굴+보트 패키지 대인 1만4000원, 소인 1만2000원

-언양알프스시장: 주소: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장터1길 12-1, 문의: 0507-1385-5728, 운영 시간: 매일 08:00~19:00 (장날 2일,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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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 국민의힘과 봉건제 연결고리

무기력 국민의힘과 봉건제 연결고리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더불어민주당은 비판을 들을지언정 정국 대응에 일사불란하다. 이는 강성 지지층의 압박으로 형성된 중앙집권 형태의 정치 때문이다. 반면 국민의힘 의원들은 지역구에서 봉건 영주처럼 군림하는 봉건제 형태 정치를 유지하고 있다. 국민의힘의 무기력함은 이로부터 시작된다. 매년 국회 국정감사가 진행되면 ‘맹탕’이란 표현이 나온다. 올해도 어김없었다. 올해엔 ‘추태’란 표현도 나왔다. 미국 의회에선 상시 청문회 제도를 안착시켜 아주 촘촘한 청문회 제도를 운용한다. 이를 토대로 “정기 국정감사를 없애고, 상시 국정감사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어김없이 나왔다. 변함 없는 맹탕 국감 국민의힘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의 과거 이력과 함께 그와 이재명 대통령과의 인연을 집중적으로 추궁하려고 한다. 국민의힘은 김 실장의 국정감사 출석에 당력을 기울였다. 대통령실을 피감기관으로 두고 있는 운영위원회는 물론,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도 그를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범여권에선 방어막을 쳤다. 당력을 기울여 김 실장의 국정감사 출석을 막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태도는 김 실장에 대한 각종 의혹을 키운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김 실장이 국정감사에 출석하더라도 국민의힘이 그에 대한 각종 의혹을 명쾌하게 밝혀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14일엔 민주당 박지원 의원과 국민의힘 신동욱 의원이 반말 논란으로 설전을 벌였다. 박 의원은 법사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정성호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사건 질의를 이어갔다. 박 의원이 발언 시간 초과로 마이크 전원이 나간 이후에도 계속 질의를 이어가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를 제지하려 들었다. 박 의원이 “조용히 하라”고 소리치자, 신 의원은 “왜 반말을 하느냐”고 반발했고 다시 박 의원이 “난 옛날부터 너한테 말 내렸다” 등 언쟁을 벌였다. 한술 더 뜨는 논쟁은 같은 날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에서 이어졌다. 민주당 김우영 의원은 박 의원으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를 공개했다. 문자 중엔 박 의원이 김 의원에게 “에휴, 이 찌질한 X아”라는 욕설이 들어가 있었다. 이때 박 의원의 휴대전화 번호도 고스란히 노출됐다. 이에 항의하던 박 의원은 김 의원에게 “한심한 XX는 나가”라고 소리쳤다. 박 의원은 “지난달 2일 상임위에서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방통위 관련법을 통과시킨 것에 대해 항의했더니, 김 의원이 저를 지칭해 ‘저 인간만 없으면 과방위가 좋을 텐데’라고 말했다”며 “김 의원이 시끄럽게 전화 통화까지 하길래 항의했더니, 김 의원이 욕설을 퍼붓고 멱살을 잡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의원은 제 가족 사진까지 화면에 띄우면서 저를 비판했다”며 “김 실장의 경기동부연합 연루 사실까지 폭로했더니 제가 보낸 문자메시지를 공개했다”고 강조했다. 친여 성향 무소속 최혁진 의원은 지난달 13일 조희대 대법원장을 상대로 진행된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조 대법원장과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합성한 사진을 제시하면서 ‘조요토미 히데요시’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다음 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도움되지 않았고, 조 대법원장을 국회에 불러 압박해 망신을 줬단 프레임에 갇혔다”며 “지나치게 과했다”고 지적했다. 강성 지지층 눈치에 몰아치는 민주당 특유의 봉건제…국감서도 의욕 상실 최 의원은 지난달 20일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배우자 김재호 춘천지방법원장을 상대로 “나 의원의 언니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의 내연남 김충식씨의 새 내연녀를 소개했다”고 주장했다. 김 법원장은 “나 의원에겐 언니가 없다”고 반박하면서 최 의원에 대한 비판·조롱이 이어졌다. 최 의원은 이튿 날 진성철 대구고등법원장에게 재판소원 관련 질의를 하는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 옆에 있다가 바라보는 자세로 몸을 돌렸다. 이어 주 의원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기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을 맡은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국정감사 기간 중 국회 사랑재에서 딸 결혼식을 진행해 파문을 일으켰다. 최 의원이 배포한 모바일 청첩장엔 신용카드 결제 링크가 포함돼있었다. 지난달 초엔 청첩장을 과방위 소속 국회 사무처 직원들에게도 전달했다. 최 의원은 “양자역학을 공부하느라 딸 결혼식에 신경을 못 썼다”는 기이한 해명을 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그는 지난달 26일엔 국회 본회의장에 앉아 보좌진에게 “축의금을 피감기관들에 돌려주라”고 지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이 포착돼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결혼식 축의금 50만원을 냈다가 돌려받은 사람 중 1명은 다름 아닌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였다. 청탁금지법 시행령이 지정한 경조사비 한도는 5만원이다. 여야의 정쟁 때문에 국정감사가 중단되는 등 파행이 일어나는 사례는 연례행사 중 하나다. 국정감사엔 다수의 증인·참고인이 출석한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시간을 쪼개 출석 의무에 응했거나, 출석할 필요가 없는데도 출석한 것이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이들의 시간·일상은 아랑곳하지 않고 소모적인 정쟁을 거듭하면서 이들 증인의 시간도 잡아먹는다. 이는 국회의원 특유의 꼰대질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김 의원과 박 의원이 욕설을 주고받는 현장엔 사이버 레커들로부터 피해를 본 유튜버 쯔양이 참고인으로 출석해 있었다. 쯔양은 이들이 욕설을 주고받자 놀라는 표정을 지었고, 그 표정은 고스란히 카메라에 잡혔다. 몰아치는 사법개혁 이날 여야는 박 의원이 보낸 문자메시지에 대한 공방을 밤 늦게까지 이어갔다. 양당은 국정감사가 이어진 지난달에도 자신들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김 의원이 박 의원의 전화번호를 공개한 후 박 의원은 이날 내내 민주당 지지자들이 보내는 문자폭탄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민주당은 정청래 대표를 필두로 헌법재판소의 헌법소원 대상에 법원의 재판을 포함하는 재판소원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14명인 대법관 수를 26명으로 늘리는 방안도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2017년 추진되는 듯했다가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의 반대로 사그라들었던 법원행정처 폐지도 다시 추진할 조짐을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 5월1일 이재명 대통령의 허위 사실 공표 혐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후 민주당은 일사불란하게 대법원을 겨냥하고 있다. 대법관 수 증원은 민주당 내 사법개혁 특별위원회가 지난달 20일 확정한 방안이다. 재판소원은 민주당 김기표 의원이 당 지도부와 협의해 당론 법안으로 별도 추진할 예정이다. 일각에선 민주당의 사법개혁 방안을 일컬어 “과도하다”고 비판한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29일 사설에서 “대법원이 이 대통령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기 전엔 법원의 각종 숙원사업을 들어주려고 했다”며 “판결 이후 개혁을 명분으로 사법부를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은 아니면 말고 식으로 마구잡이로 던지는 것”이라며 “법원이 마음에 안 드는 결정을 할 때마다 단세포적으로 대응한단 느낌마저 든다”고 해석했다. 반대 진영의 날 선 지적에도 민주당은 특유의 몰아치기를 유지하고 있다. 검찰·법원 등 개혁은 민주당의 오랜 관념이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강성 지지층의 욕구는 몰아치기와 일부 의원들의 과도한 언행으로 이어진다. 민주당 소속이 아닌 최 의원도 대법원·국민의힘 공격 최전선에 서자,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많은 후원금을 송금받았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반대로 예의 무기력함을 유지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나름대로 ▲김 실장 관련 의혹 제기 ▲정희철 단월면장 사망 등 김건희 특검의 과잉 수사 의혹 제기 ▲10·15 부동산 대책 비판 등 문제 제기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별다른 관심을 얻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국민의힘 특유의 무기력함이 국민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선 별다른 의욕도 느껴지지 않고, 국민이 관심가질 만한 내용도 발언으로 채우지 못했다. 이는 국민의힘에서 민주당으로 옮긴 김상욱 의원이 국민의힘 내 ‘언더 찐윤(진짜 친윤)’ 그룹의 존재를 주장한 이후 많은 사람에게 인식된 국민의힘 특유의 봉건제로부터 비롯된다. 토착 세력 주도 형태 김 의원이 주장하는 ‘언더 찐윤’은 대구·경북·강원 등 지지 기반을 지역구로 두고, 지역구 관리에만 몰두하는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을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이들은 지역구의 왕이자 소리 없이 국민의힘을 움직이는 핵심 그룹이다. 이들은 “당권을 지켜 공천만 계속 받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기반을 완전히 움켜쥐고, 중앙 정치에도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토착 세력이 주도하는 정치 형태는 봉건제 정치 형태와 비슷하다. 국민의힘 내부의 봉건제는 전제 왕조 시절의 봉건제보다 후퇴한 형태라고 볼 수도 있다. 언더 찐윤 의원들이 지역구를 스스로 개척해 국민의힘의 텃밭으로 만든 게 아니기 때문이다. 봉건제가 본격적으로 작동한 중국 주나라에선 왕이 제후들에게 국가의 힘이 미치지 않는 이민족 중심 미개척지를 봉토로 하사했다. 이는 “미개척지를 개척·장악하면, 봉토로 인정해주겠다”는 취지였다. 주나라는 봉건제를 토대로 중앙의 왕이 각지의 제후들을 통제하는 통치 형태를 완성했다. 초기엔 주로 종친들을 제후로 책봉했기 때문에 가부장적 질서가 유지됐지만, 세월이 흘러 혈연 의식과 왕실의 힘이 약해지자 춘추전국시대란 난세가 열렸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중앙 정치에선 적당히 치적으로써 지역에서 내세울 만한 ‘사진’만 얻으면 된다. 이런 성향이 핵심 지지 기반에 퍼져 굳어지자, 국민의힘에선 이준석 전 대표와 김용태 전 비상대책위원장 등이 추진했던 체질 개선이 번번이 무력화됐다. 그럴수록 당은 무기력해지고, 존재감을 잃는다. 반면 민주당에선 강성 지지자의 영향력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의원들도 이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그러면서 옳고 그름을 떠나 당론을 일사불란하게 밀어붙이는 중앙집권형 정치 형태가 만들어졌다. 이는 국민의힘 같은 무기력한 야당을 만나면 상대적인 장점으로 보일 소지가 강하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따질 시간과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에, 한번 어긋나면 결정적인 파국으로 연결될 위험이 있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였던 지난 2021년 12월 국민의힘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와 갈등하던 중 <조선일보>와 인터뷰하면서 이들을 ‘봉건 영주’라고 지칭했다. 당시 이 대표는 “윤 후보가 2022년 지방선거에 출마하고 싶어하는 봉건 영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선을 치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앙 정치는 ‘사진’만 얻으면 그만? 귀족이 왕권 능가했던 백제의 끝은? 이들이 바로 훗날 김 의원이 규정한 ‘언더 찐윤’이라고 볼 수 있다. 핵심 지역 기반에서 자리 잡은 국민의힘 의원들은 중앙당으로부터 지역구를 ‘분봉’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분봉받은 지역구의 공작 작위를 받아 공국을 구성했다고 볼 수도 있다. 봉건제 국가에서 외침이 발생하면 제후들이 각자 군을 이끌고 와서 연합군을 구성한 후 전쟁에 나선다. 따라서 왕이 제후와 사이가 안 좋으면, 제후가 방어에 협조하지 않아 국가에 큰 위기가 닥친다. 백제 개로왕은 왕권 강화를 시도하면서 강한 영향력을 가진 기존 귀족을 배제하고, 잦은 토목공사를 강행했다. 그러던 중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를 침략해 큰 위기를 맞았다. 고구려는 공격 7일 만에 수도 한성을 함락했고, 개로왕은 고구려군에 사로잡혀 죽었다. 귀족은 아무도 개로왕을 돕지 않았고, 당시 동맹이었던 신라만 구원군을 보내는 황당한 상황이 이어졌다. 이후 백제에선 문주왕·삼근왕·동성왕 등이 연이어 귀족에게 피살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백제 마지막 임금 의자왕은 즉위 후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정적들을 추방하고, 아들 40명을 지금의 장관에 해당하는 좌평에 임명해 중앙 정계에 진출시켰다. 백제가 멸망하는 과정엔 귀족이 구원군을 제대로 보내지 않았던 영향이 있다는 설도 만만치 않게 제기된다. 실제로 영화 <황산벌>에선 이 설을 그대로 반영해 귀족이 의자왕에게 “당신이 아들 40명을 좌평에 임명했을 때, 우리의 조국은 진작 망했다”고 비웃는 장면이 묘사됐다.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도 미개척지가 많은 영토 특성 때문에 세습령병제가 시행됐다. 이는 신하가 병사를 대대로 소유하면서 마음대로 부리는 제도를 말한다. 이 때문에 오나라는 위나라·촉한의 침략은 성공적으로 막았지만, 두 나라를 상대로 한 영토 확장은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었다. 신하들의 이권도 함께 걸려 있던 남방 개척은 성공적이었던 것과 비교된다. 백제와 오나라의 상황은 핵심 지지 기반을 지역구로 둔 의원들이 지역구 관리엔 능숙하지만, 중앙 정치에선 기행을 거듭하는 등 불성실한 국민의힘의 특성과 맞물린다. 국민의힘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초유의 기행을 거듭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대선을 앞두고 급하게 옹립된 대선후보였다. 체계적인 계획 없이 그때그때 이익에 따라 큰 선거를 치르는 국민의힘의 특성과 맞물린다. 거칠게 요약하면, 역사는 봉건제를 중앙집권제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으로 구성된다. 이 과정에선 많은 변혁이 필요하다.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체질 개선을 거부했다. 계획 없이 그때그때 장동혁 대표도 강경 보수 세력의 지원에 힘입어 당선됐다. 장 대표 취임 이후 국민의힘에선 혁신 담론이 아예 실종됐다. 장외투쟁에 대해선 보수 성향 신문도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에 웬 시대에 뒤떨어지는 일을 하느냐”고 비판했다. 이는 국민의힘 내부에 스며든 봉건제로부터 비롯된 일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을 보면 봉건제가 보인다. 뒤집어 말하면, 봉건제를 알아야 국민의힘을 알 수 있다. 국민의힘은 정말 봉건 영주의 연합정당인 걸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