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휘동 청호그룹 회장의 거주지가 구설수에 올랐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정 회장은 공식적으로 서울에 ‘둥지’를 튼 서울 시민이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미국 이주민 신분으로 지내고 있다. 정 회장이 무슨 이유로 국내에서 이삿짐을 싼 것일까. 또 미국에 이삿짐을 푼 사연은 뭘까.
정휘동 청호그룹 회장의 거주지가 미국인 것으로 확인됐다. 법인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주주명부에 등재된 정 회장의 현재 주소지는 ‘미국 일리노이주 팔라틴 노르웨이 애비뉴 ○○○○’으로 올라있다.
정 회장은 지난 2003년 3월 청호나이스 대표이사로 취임할 때까지만 해도 거주지가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로 표시돼 있다.
그러나 2006년 3월 청호나이스 대표이사로 재취임하면서 주소지가 미국 일리노이주로 바뀌었다. 정 회장은 2007년 1월 경영일선에서 한발 물러난 지 1년6개월 만인 지난해 8월 다시 대표이사로 복귀할 당시에도 그대로 미국 일리노이주에 거주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청호그룹 측은 정 회장이 한국 국적을 가진 미국 영주권자라고 해명했다. 미국 국적을 취득한 시민권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영주권자는 참정권, 투표권 등 모든 공적권리를 제외하고 영구 왕래 또는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영주권자는 법적으로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반면 미국 시민권자는 ‘자진해서 외국 국적을 취득한 자는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다’고 규정한 국내 국적법에 따라 한국 국적이 자동 소멸된다.
회사 관계자는 “정 회장은 멀쩡한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한국사람”이라며 “주소지가 미국으로 돼 있는 것은 대학 유학시절부터 줄곧 미국에서 지낸 탓에 영주권을 갖고 있어 가능하다”고 말했다.
1958년 경북 경주 출신인 정 회장은 ‘은둔 경영자’로 불릴 만큼 외부 노출을 극도로 꺼려한다. 가족 관계 등의 사생활은 더욱 베일에 싸여 있다. 언론에서도 그의 가족 얘기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여타 오너 및 경영자들과 사뭇 대조적이다. 그룹 측은 “정 회장이 나서기를 싫어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주소 미 일리노이주… 2006년까지 서울시민
“한국 국적 영주권자” 해명… 경영 지장 우려도
그나마 정 회장의 부친인 고 정인호 청호그룹 명예회장이 2005년 7월 숙환으로 별세할 당시 유족으로 어머니와 두 명의 동생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는데 이들 모두 미국에서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도 가족들과 미국 생활을 하면서 영주권을 취득했다는 게 그룹 관계자의 전언이다.
1970년대 후반 미국으로 건너가 미네소타주립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그는 1980년대 중반부터 미국 환경관리 업체에서 개발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1988년 미국수질협회(WQA) 수질관리 자격증 중 최고등급인 CWS-V(Certified Water Specialist-V)를 한국인 최초로 따냈다.
이후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1991년 파견근무 형태로 웅진코웨이 제품개발팀에 합류한 뒤 2년 계약이 끝나자마자 1993년 청호그룹을 세웠다.
정 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웅진과의 계약이 끝난 후 미국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함께 일하다 퇴사한 연구원들로부터 창업 제의를 받고 청호나이스를 설립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때부터 한·미 양국을 쉴 새 없이 오가는 정 회장의 ‘태평양 경영’이 시작됐다. 문제는 미국 영주권자는 국내 체류기간이 한정된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경영인으로서 국내 활동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영주권자는 나이와 상관없이 국내 체류 기간이 6개월로 정해져 있다. 출국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면 최대 1년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다만 미국에서 ‘여행허가서(Reentry Permit)’를 받으면 2년으로 체류기간이 늘어난다.
더구나 청호그룹은 그동안 유지했던 전문경영인(CEO) 체제를 과감히 접고 정 회장 단독체제인 ‘오너 경영’으로 회귀한 상태다. 연구원 출신인 정 회장이 과거같이 신제품 개발에만 전념할 수 없는 이유다. 그만큼 미국 영주권자 신분으로 경영 보폭에 무리가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청호그룹 관계자는 “정 회장의 개인적인 사안이기 때문에 미국 영주권 취득 경위 등은 확인할 수 없으나 영주권자라 해도 국내 활동엔 전혀 상관이 없다”며 “만약 정 회장이 자리를 비울 경우에도 등기이사만 없을 뿐이지 각 부문별 대표가 있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해외 영주권자는?
전세계 145만명
해외 영주권자는 얼마나 될까. 최근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2008년 말 현재 시민권자를 포함한 전체 해외동포(미성년자 포함)는 683만3973명이다. 이 가운데 시민권자는 379만1658명이다. 국가별로는 중국 276만4990명, 미국 204만5866명, 일본 59만7992명, 캐나다 21만176명, 러시아 20만9025명 등이다.
이중 영주권자는 145만5845명. 미국이 73만8367명으로 가장 많고 이어 일본 49만9016명, 캐나다 7만6564명 등이다. 나머지 유학생, 여행자 등 일시 체류자는 158만6470명이다. 일시 체류자는 중국이 51만6130명으로 가장 많고 이어 미국 46만532명, 일본 9만8976명, 호주 5만926명 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