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누명 벗고 돌아온 김건모

6년 만에 무대 오르는 ‘가왕’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김건모가 오랜 침묵을 깨고 돌아왔다. 무려 6년 만의 복귀다. 그간 성폭행 의혹에 휘말려 만신창이가 된 그는 무혐의 처분에도 지난 6년간 꽁꽁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김건모는 마침내 용기 내어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러 무대에 선다.

김건모의 성폭행 의혹이 시작된 건 2019년 12월6일,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이하 가세연)’를 운영하던 강용석과 김세의는 가수 김건모가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은 방송을 통해 “김건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성이 직접 메일을 보내와 두 차례 만났다”고 주장했다.

거짓된 미투
실추된 명예

피해 여성의 진술에 따르면 2016년 8월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유흥주점에서 김건모가 그에게 구강성교를 강요한 뒤 성폭행을 했다는 것이었다. 강용석은 “피해 여성이 직접 가게 내부 구조를 그려 줬고, 김건모가 당시 입고 있던 의상은 7부 길이 배트맨 티셔츠였다”고 주장했다.

이날 방송에서 가세연 측은 “구체적 진위 여부를 따져보기 위해 증거를 많이 확보했다”고 주장했지만, 즉시 증거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월요일(12월9일)에 고소장이 제출될 예정”이라고 밝히며 본격적인 법적 절차가 진행될 것임을 예고했다.

김건모 소속사 건음기획은 같은 날 “본인 확인 결과 절대 사실이 아니다”라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이어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에 대해 법적 대응을 진행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2019년 12월9일, 강용석 변호사는 피해 여성 A씨를 대리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고소장에는 2016년 8월 김건모가 술집에서 A씨를 성폭행했다는 피해 사실이 적시돼있었다. 검찰은 이 사건을 여성아동범죄조사부에 배당한 뒤, 사건 발생 장소와 관계인 주거지 등을 고려해 강남경찰서에 수사 지휘를 내렸다.

김건모 측은 즉각 반격에 나섰다. 소속사는 12월13일 입장문을 내고 “김건모는 피해 사실조차 전혀 모른다”며 “유튜브 방송으로 인해 거짓이 진실처럼 받아들여지는 현상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맞고소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건음기획은 A씨를 정보통신망법 위반 및 무고 혐의로 강남경찰서에 고소했다. 입장문에서 김건모 측은 “진실된 미투는 보장돼야 하지만 거짓 미투와 미투 피싱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며 의혹을 완강히 부정했다.

김건모의 성폭행 의혹은 곧 방송과 공연 활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SBS 예능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의 제작진은 당시 고정 출연하던 김건모의 분량을 편집하거나 촬영을 취소했다. 논란 이후의 방영분부터는 김건모 모친의 출연 분량까지 편집됐고, 프로그램의 오프닝·엔딩 음악으로 사용되던 김건모의 곡 ‘My Son’도 교체됐다.

MBC 에브리원의 <비디오스타>에서도 김건모 예비 처남 장희웅이 출연해 결혼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해당 부분은 통편집됐다. 25주년 기념 전국투어 콘서트도 타격을 받았다.

인천 공연 이후 부산, 광주, 수원, 대구, 서울 등에서 이어질 예정이던 공연은 예매 티켓 환불이 잇따르면서 전면 취소됐다. 주관사 아이스타미디어는 “최근 발생한 아티스트 측 이슈로 전국 투어 일정을 취소한다”며 전액 환불 조치를 안내했다.

이후 가세연은 또 다른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성 B씨의 사례를 공개했다. B씨는 2007년 1월10일 강남 테헤란로의 한 유흥주점에서 매니저로 일하다 김건모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언쟁 끝에 김건모가 욕설을 하며 머리채를 잡고 주먹으로 얼굴과 복부를 때려 피를 흘렸다”고 말했다.


성폭행 의혹 무혐의 처분
2019년 중지한 활동 재개

그가 병원에서 안와상·코뼈 골절 진단을 받았다는 의무기록 사본도 공개됐다. 당시 업소 관계자가 가세연 인터뷰에 등장해 “피해자가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나왔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곧 반론도 나왔다. 2020년 1월, 유튜브 채널 ‘이진호의 기자싱카’에서는 또 다른 인터뷰를 공개하며 당시 상황이 가세연 주장과 달랐다고 전했다.

해당 영상에서 제3의 인물과 피해자로 지목된 다른 종업원은 “실제 폭행의 시작은 B씨였고, 김건모는 말리는 과정에서 휘말렸을 뿐”이라고 증언했다. 이어 B씨 측이 합의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900만~1000만원가량을 건넸다는 사실도 공개됐다.

성폭행 의혹의 핵심 단서로 언급된 ‘배트맨 티셔츠’ 역시 논란이 됐다. 피해 여성은 당시 김건모가 배트맨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고 진술했지만, 티셔츠 제작자는 “해당 제품은 2016년 12월부터 제작된 한정판으로, 피해자가 주장한 2016년 8월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제작자는 “김건모를 위해 특별 제작한 제품이며, 첫 착용 시점도 2016년 12월이었다”고 증언했다. 이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흔들었다.

2020년 1월15일, 김건모는 서울 강남경찰서에 출석해 약 12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그는 조사 후 “하루빨리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경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차량 GPS 기록 등을 분석했지만, 피해자 진술 외에는 직접적 증거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2020년 3월, 경찰은 기소 의견을 달아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이 과정에서 김건모가 폭행 피해를 주장한 여성을 상대로 제기했던 명예훼손 고소는 2020년 5월 취하됐다. 반면, 김건모의 무고 고소 건은 경찰이 “무고죄가 아니다”라는 판단을 내려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로 넘어갔다. 그러나 2021년 11월18일, 검찰은 김건모에게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 이유는 피해 여성의 진술이 구체적인 행위 부분에서 모순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졌다는 점 때문이었다.

피해 여성은 이에 반발해 항고했으나 2022년 6월 기각됐다. 이어 법원에 재정신청을 제기했지만 2022년 11월4일에도 기각됐다. 이로써 김건모는 성폭행 혐의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됐다. 재판부는 “검찰의 불기소 처분은 정당하며, 달리 부당하다고 인정할 자료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90년대
아이콘

김건모 측은 “혐의를 벗는 데 고통스럽고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수사 과정에서의 고충을 토로했다. 김건모 성폭행 의혹은 2019년 12월 가세연의 폭로로 시작해 2022년 11월 최종 무혐의 확정까지 약 3년에 걸쳐 이어졌다. 김건모는 성폭행 의혹에 휘말린 이후 방송과 공연에서 사실상 퇴출됐고, 수십억원의 금전적 손해와 명예훼손을 겪었다.


김건모가 성폭행 무혐의를 받자 대중들은 “명예가 크게 실추돼 잃은 것이 너무도 많다”는 반응을 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건모는 한 시대의 아이콘이 될 정도로 음악가로서의 명예가 대단했기 때문이다. 김건모는 1990년대 대한민국 대중음악계를 대표하는 가수로 꼽힌다.

데뷔 직후부터 독특한 음색과 폭넓은 장르 소화력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았고, 다수의 히트곡을 발표하며 ‘국민 가수’라는 별칭을 얻었다. 음반 판매량과 방송 출연, 각종 시상식에서의 기록은 당시 한국 가요계의 절대적인 입지를 보여준다.

김건모는 1992년 1집 앨범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를 발표하며 가요계에 데뷔했다. 서울예술대 국악과 출신으로, 군 복무 시절 해군 홍보단에서 음악 활동을 병행하며 실력을 다졌던 그는 프로듀서 김창환과의 인연으로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타이틀곡은 라디오와 방송을 통해 인기를 얻었고, 후속곡 ‘첫인상’은 KBS <가요톱텐>에서 5주 연속 1위에 오르며 골든컵을 수상했다. 1집은 약 70만장이 판매되며 신인으로서는 큰 성과를 거뒀고, 방송 3사 신인상과 10대 가수상을 휩쓸며 이름을 알렸다.

김건모는 당시 한국 대중음악에서 흔치 않았던 재즈·소울 기반의 음악을 보여줬다. 여기에 레게와 힙합 리듬을 결합해 새로운 음악을 선보였다. 1993년 말 발표된 2집 <핑계>는 김건모의 입지를 노래 잘하는 ‘인기 가수’에서 ‘국민 가수’로 끌어올린 앨범이었다.

타이틀곡 ‘핑계’는 레게 리듬을 도입한 댄스곡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길거리 불법 테이프 판매점에서부터 입소문이 퍼지면서 전국적인 히트를 쳤고, 다수의 음악 방송에서 1위를 차지했다.


후속곡 ‘혼자만의 사랑’은 발라드를 소화하는 그의 역량을 보여줬다. 김건모표 발라드는 이후에도 꾸준히 호평을 받았다. 2집은 약 180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1994년 음반 판매량 전체 1위를 차지했고, 그해 방송 3사 연말 가요대상, 서울가요대상,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모두 대상을 수상했다.

역대 최다 판매
기네스북 등재

당시 5대 가요 시상식에서 대상을 휩쓴 가수는 김건모가 최초였다.

1995년 2월 발매된 3집 타이틀곡 ‘잘못된 만남’은 김건모의 대표곡이 됐다. 빠른 비트와 랩, 고음이 결합된 곡은 유로비트 기반의 하우스 음악을 국내에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 곡은 KBS <가요톱텐> 5주 연속 1위, SBS <TV가요20> 6주 연속 1위, MBC <인기가요 베스트50> 2주 연속 1위 등 각종 방송 차트를 석권했다.

3집 앨범은 약 286만장이 판매돼 당시 대한민국 음반 역사상 최다 판매 기록을 세우며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였다. 이는 현재까지도 한국 가요사에서 손꼽히는 판매량이다. 3집에는 ‘아름다운 이별’ ‘너에게’ ‘드라마’ ‘넌 친구? 난 연인!’ 등 히트곡이 다수 수록되어 음반 전반의 완성도가 높았다.

3집 활동 이후 김건모는 홀로서기를 택했다. 1996년 발표한 4집 <Exchange>에서는 타이틀곡 ‘스피드’가 인기를 얻었고, 160만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1997년 5집 <Myself>에서는 ‘사랑이 떠나가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등이 사랑받았고, 1999년 6집 <Growing >은 대중적 흥행은 다소 저조했지만 음악적 완성도 면에서 높게 평가됐다. 이 시기 김건모는 자작곡을 늘리며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역량을 입증했다.

2001년 발표한 7집 <Another Days...>는 대중성과 음악성을 동시에 확보하며 김건모의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타이틀곡 ‘미안해요’ 코믹 댄스곡 ‘짱가’ 리메이크곡 ‘빗속의 여인’ 등이 모두 히트했고, 앨범 판매량은 143만장에 달했다. 김건모는 서울가요대상 대상을 수상하며 다시 정점에 섰다.

2003년 8집 <History>에서는 발라드 ‘청첩장’ 자전적 곡 ‘My Son’ 코믹송 ‘제비’ 등이 발표됐다. 앨범은 53만장 이상 판매되어 그해 국내 음반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김건모의 8집은 대한민국 음반 시장에서 마지막으로 하프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앨범으로 평가된다.

2005년 발표한 9집 <잔소리>와 2006년 10집 <Soul Tree>는 대중적 흥행에 크게 성공하지 않았지만, 평단에서는 김건모의 음악적 색채가 잘 드러난 작품으로 평가했다. 특히 10집 타이틀곡 ‘서울의 달’은 시간이 흐른 뒤 재평가받으며 오디션 프로그램과 음원 차트에서 꾸준히 인기를 얻었다.

김건모는 이 곡을 공연에서 즐겨 부르며 곡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김건모는 특유의 까랑까랑하면서도 간드러지는 보컬과 음색으로 주목받았다. 그는 재즈, 소울, 레게, 하우스 등 다양한 장르를 한국 대중가요에 접목시켰으며, 무대에서 보여주는 라이브 실력도 동시대 가수들과 견주어도 높은 수준을 보였다.

“음악 한순간도 놓은 적 없어”
깜짝 복귀에 콘서트 전석 매진

그는 서울예대 재학 당시 ‘천재’로 불릴 정도로 작곡·편곡·피아노 실력까지 겸비한 뮤지션이었다.

1990년대 한국 가요계에서 김건모의 입지는 절대적이었다. 그는 1994년 한 해 동안 방송 3사 연말 가요제, 서울가요대상, 골든디스크 시상식 등 5대 시상식에서 모두 대상을 수상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유일한 가수다. 또 1994년, 1995년, 2003년 세 차례 음반 판매량 연간 1위를 기록했다.

‘핑계’ ‘잘못된 만남’ ‘아름다운 이별’ ‘스피드’ ‘청첩장’ ‘서울의 달’ 등은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히트곡이다. 윤일상 작곡가는 저서에서 “조용필 이후 상상을 초월하는 음악적 역량을 가진 가수”라고 김건모를 평가하기도 했다.

2000년대 후반 이후 김건모는 방송 출연을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갔다. 2010년대에는 SBS 예능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하며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파일럿 방송부터 원년 멤버로 합류한 그는 ‘철없는 형’ 캐릭터와 어머니 이선미 여사의 솔직한 입담으로 시청자의 웃음을 자아냈다.

횟집 어항을 집에 들여놓거나 5시간 넘게 대왕 김밥을 만드는 장면 등은 프로그램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특히 어머니 이선미 여사가 서장훈과 주고받던 직설적인 대화는 꾸준히 화제를 모았다. 김건모는 예능 활동을 통해 중장년층뿐 아니라 젊은 시청자들에게도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가며 높은 시청률을 이끌었다.

긴 공백 끝에 김건모는 올해 9월부터 6년 만에 전국투어 콘서트를 열며 가요계 복귀를 알렸다. 공연제작사 아이스타미디어컴퍼니는 “김건모가 부산 KBS홀을 시작으로 대구, 대전, 서울 등 주요 도시에서 ‘KIM GUN MO.’ 투어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김건모의 전국 투어는 오는 27일 부산 KBS홀 공연을 시작으로 막을 올린다. 이어 10월18일 대구 엑스코(EXCO)에서 팬들과 만날 예정이며, 12월20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도 무대를 이어간다. 투어의 마지막은 내년 1월 서울 공연으로 예정돼있다.

소식이 전해지자 예스24를 통해 오픈된 부산 공연 티켓은 전석 매진됐고, 대구와 대전 공연도 빠르게 판매되며 여전한 인기를 입증했다.

공연 관계자는 “김건모는 오랜만의 무대인 만큼 세트 구성과 밴드 편성, 곡 순서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며 “팬들에게 완성도 높은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 준비에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김건모는 무대를 떠나 있었지만, 음악만큼은 단 한 순간도 놓지 않았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라고 덧붙였다.

공연 일정이 발표되자 팬덤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기대감을 드러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만난다” “힘든 시간을 겪고도 팬들과 약속을 지키는 모습이 감동적이다”라는 댓글이 이어졌고, 중장년층 팬들뿐 아니라 과거 히트곡으로 김건모를 접한 젊은 세대까지 티케팅에 동참했다.

오랜 기다림
팬들과 조우

방송인 박명수는 자신의 라디오에서 김건모의 대표곡을 직접 선곡하며 “개인적으로 건모 형 노래를 좋아한다. 다시 활동하신다니 반갑다”며 “‘서울의 달’ 같은 곡은 다시 무대에서 듣고 싶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건모 형의 무대를 다시 보고 싶다. 꼭 라디오 쇼에 나와주셨으면 한다”며 섭외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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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