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61년 억울한 인생 최말자

1964년 채워진 족쇄 풀었다

[일요시사 취재 1팀] 안예리 기자 = 성폭행에 저항하다가 가해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는 이유로 중상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최말자씨가 61년 만에 검찰로부터 무죄를 구형받았다. 최근 검찰은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구형했고, 피해자였던 최씨에게 “마땅히 보호받았어야 했음에도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드렸다”며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부산지방법원 형사5부(부장판사 김현순)는 지난 23일 오전 11시, 부산지법 352호 법정에서 최말자씨의 재심 첫 공판과 결심공판을 동시에 진행했다. 보통 재심 사건은 수차례에 걸쳐 공판 준비기일, 본안 심리, 결심공판을 진행하지만 이번 재판은 두 차례 공판 준비기일을 거쳐 당사자 간 쟁점을 좁힌 뒤 곧바로 본안 심리와 구형 절차까지 함께 진행했다.

오랜 기다림
이제야 무죄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무죄 구형과 함께 공개적으로 최씨에게 사과했다. 피고인 최씨에 대한 형사 책임이 없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수사와 공소 과정에서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아간 사법 당국의 책임을 검찰이 직접 인정한 것이다. 구형은 정명원 부산지검 공판부 부장검사가 맡았다.

정 검사는 검찰석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뒤 “이 사건은 생면부지의 남성으로부터, 인적이 드문 장소에서 갑자기 가해진 성폭력 범죄에 대해 피해자가 즉각적으로 대응한 상황”이라며 “피고인이 행한 방어 행위는 정당방위로서 과하지도, 위법하지도 않다고 판단되며 이에 무죄를 선고해주시기를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검찰 조직의 잘못된 판단에 대한 책임을 언급했다.

그는 “검찰은 피해자를 단순히 범죄 피해자로만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른 사회적 편견과 2차 피해로부터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과거 이 사건에서는 검찰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는 방향으로 작용했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그 결과, 성폭력 피해자로서 마땅히 보호받았어야 할 최말자님께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드렸다. 이 자리를 빌려 깊이 사죄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정 검사는 발언을 마친 뒤 다시 한번 피고인을 향해 몸을 숙이며 직접 사과의 뜻을 전했다. 공판은 피고인 심문 절차를 생략한 채 곧바로 결심 단계로 이어졌다. 피고인 최씨에 대한 심문 없이 형사 절차의 마지막 단계인 검찰 구형이 곧바로 진행된 것은, 검찰이 사건의 성격을 정당방위로 명확히 판단했기 때문이다.

변호인 측은 이날 결심 의견에서 “이 사건은 1964년이라는 시대 상황 때문이 아니라, 그 당시에도 법리상 무죄가 나와야 했던 사건”이라며 “검찰과 법원의 초기 판단 착오로 60년이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바로잡히는 사법적 오류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법원이 응답할 차례”라며 무죄 선고를 재판부에 촉구했다.

재판 말미에 재판장이 피고인에게 마지막으로 진술 기회를 부여하자, 최씨는 조용히 손에 쥐고 있던 A4용지 한 장을 펼쳤다. 그 안에는 직접 작성한 최후 진술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국가는 1964년, 생사를 오가는 악마 같은 그날의 사건을 어떤 대가로도 책임질 수 없다. 피해자 가족의 피를 토하는 심정을 끝까지 잊지 말고, 꼭 기억해주시길 바란다”고 운을 뗀 최씨는 “지난 61년간 죄인으로 살아왔다. 이제 나의 소망은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성폭행범 혀 깨물어 ‘유죄’
가해자와 결혼까지 종용당해

이어 “후손들이 성폭력 없는 세상에서, 자신의 인권을 지키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대한민국의 법이 만들어지기를, 두 손 모아 빌겠다”고 마무리했다. 최후 진술을 마친 최씨는 고개를 숙여 재판부를 향해 깊이 인사했다.

최씨 사건은 1964년 5월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남 김해군 대동면 예안리의 한 조용한 농촌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날 오후, 당시 만 19세였던 최씨는 친구 몇 명과 함께 자신의 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오후 4시께, 인근 마을에 사는 노모씨가 최씨의 집 앞에 불쑥 나타났다. 평소 알고 지내던 사이도 아니었던 노씨는 ‘할 말이 있으니 꼭 만나자’며 집 앞에서 기다렸다.

당황한 최씨는 “할 말이 없으니 돌아가라”며 거절했지만, 노씨는 지속해서 보자고 고집을 부렸다. 집요한 태도에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친구들에게 불필요한 위협이 가지 않도록 상황을 정리하려던 최씨는 그를 큰길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 마을 안쪽의 좁은 골목이 아닌, 사람들이 다니는 큰길이면 곧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씨의 생각과는 달리, 두 사람이 큰길을 향해 걷는 도중 노씨는 갑자기 황당한 말을 꺼냈다. 그는 “키스만이라도 하자”며 애원했고, 이를 단호히 거절하는 최씨에게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길가에서 벌어진 실랑이는 20여분 가까이 이어졌다. 노씨는 급기야 최씨를 억지로 붙잡고 바닥에 넘어뜨려 강제로 입을 맞추려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졌고, 세 차례나 최씨를 땅에 쓰러뜨렸다. 위기감을 느낀 최씨는 노씨가 억지로 자신의 입에 혀를 넣은 순간, 강하게 이를 깨물었다. 혀 끝 약 1.5㎝가량이 절단되며 노씨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고, 피를 쏟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 틈을 타 최씨는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집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투성이가 된 노씨가 최씨의 집까지 뒤따라왔다. 그는 문 앞에서 “내 혀를 찾아달라”며 울부짖었고, 최씨는 무섭고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남동생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스스로를
지켰는데…

두 남매는 바닥을 뒤져 잘려나간 혀 조각을 찾아냈고, 노씨는 그것을 들고 2㎞가량 떨어진 병원으로 달려가 봉합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노씨는 당분간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사건 발생 직후 마을 사람들은 이 일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피해자인 최씨는 성폭행의 위협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저항했지만, 마을 사람들 중 일부는 “혓바닥을 잘랐다”는 부분에 집중하며 최씨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문제는 이후 노씨의 행동이다.

병원 치료를 마치고 돌아온 노씨는 최씨의 집을 찾아와 “이런 일도 인연이니 결혼하자”고 제안했다. 자신을 폭행하려 했던 가해자로부터 ‘혼인’을 제안받은 최씨는 이를 거부했고, 그 순간부터 노씨는 돌연 최씨를 협박하며 돌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나를 불구로 만든 책임을 져야 한다” “치료비와 위자료를 내놔라”라며 위협했다. 심지어 노씨는 흉기를 들고 최씨의 집에 침입해 협박까지 벌이는 등 폭력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최씨는 결국 경찰에 노씨를 강간미수 혐의로 고소했다. 노씨는 되려 최씨를 중상해죄로 맞고소했고, 당시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의 정황과 최씨의 진술, 혀를 깨물게 된 경위 등을 종합해 최씨의 행위가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최씨는 혀 절단에 대한 처벌을 받지 않았고, 노씨만 강간미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하지만 검찰에 사건이 넘어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검찰은 오히려 최씨에게 중상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 수사에 착수했다. 최씨는 아버지와 함께 검찰의 출석 요청에 응해 조사를 받으러 검찰청을 찾았다. 하지만 도착한 당일, 검사는 사전 설명도 없이 그녀에게 수갑을 채웠고, 철문이 설치된 좁은 공간에 가둔 채 조사를 진행했다.

이후 조사 절차가 끝나자, 최씨는 다른 피의자들과 함께 포승줄에 묶인 채 곧바로 구치소로 이송됐다.

이 과정에서 구속영장 제시나 구속 사유에 대한 고지, 변호인 선임권이나 진술 거부권 같은 기본적인 권리 안내는 전혀 없었다. 예고 없는 조치에 아버지는 딸과 생이별한 채 홀로 귀가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최씨는 그렇게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이 끝날 때까지 약 6개월 동안 구금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피해자인 최씨에게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됐다.

당시 검찰 수사관은 “남자를 불구로 만들었으면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냐”며 최씨를 몰아세웠고, 담당 검사는 “둘이 결혼하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라며 사실상 결혼을 종용했다. 심지어 법정에서도 판사는 “결혼할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고, 최씨의 국선 변호인조차 “둘은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하기 어려운 처지이니 내가 직접 중매를 서겠다”는 변론을 펼쳤다.

최종 판결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법원은 결국 최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노씨가 최씨를 강제로 끌고 간 정황은 없다”며 “사춘기 소녀가 이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따라간 것일 수 있다”고 적시했다.

강제로 입을 맞춘 행위에 대해서도 “꼼짝 못하게 제압한 것이 아니므로, 이에 저항해 혀를 깨문 것은 방어의 정도를 넘은 것”이라며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정당방위
한계점

반면 노씨는 성폭력 시도 혐의가 인정되지 않았고, 대신 특수주거침입과 협박 혐의만 적용돼 최씨보다 형량이 적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강간미수 혐의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형 집행이 끝난 뒤에도 최씨는 온전히 일상을 회복하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오히려 최씨를 손가락질했다. 이후 최씨는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와이셔츠 공장에 다니고, 포장마차를 운영하며 묵묵히 일상을 이어갔다.

이후 최씨는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63세의 나이에 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했다. ‘여성의 삶과 역사’를 주제로 졸업 논문을 썼고, 여기에 자신이 겪은 사건을 사실 그대로 담았다.

이 논문을 본 주변 동료의 권유로 여성단체에 도움을 청하게 됐고, 최씨는 다시 법정에 서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는 “억울하게 가해자가 된 삶을, 이대로는 눈을 감을 수 없다”는 마음으로 2020년 5월 중상해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했다.

여성단체와 함께 2년 넘게 당사자와 주변인들의 증언, 사건 기록, 당시 언론 보도, 형사사건부 및 인명부 등 증거를 모았다. 하지만 부산지법과 부산고법은 “검사의 불법 구금과 자백 강요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당시 검사의 불법 구금 주장을 입증할 명확한 자료가 없다”고 판단했다.

최씨와 여성단체는 곧바로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그리고 3년이 넘는 법리 심리 끝에, 대법원은 기존 결정을 뒤집었다.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2024년 6월 “1964년 당시 최씨가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전까지 두 달 가까이 구금 상태였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며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재심은 확정된 유죄 판결의 중대한 오류를 바로잡아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비상구제 절차”라며 “최씨의 진술은 일관되며 당시 신문 기사, 재소자 인명부, 형사사건부, 집행원부 등 객관적 자료와 부합한다. 이를 탄핵할 만한 증거나 사정도 없다”고 판단했다.

이후 2022년 부산고법에서 열린 심문기일에 검찰은 “대법원의 취지를 존중해 재심 개시가 타당하다”는 의견을 재판부에 전달했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최씨 사건에 대해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고, 본안 심리에 착수했다.

최씨는 사건 발생 60년 만에 다시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게 됐고, 검찰은 기존 공소 내용을 유지하면서도 사건의 경위를 전면 재검토했다. 이후 마침내 지난 23일 열린 재심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기존과는 전혀 다른 입장을 밝히며 무죄를 구형했다.

“과거 역할을 다하지 못해”
61년 만에 고개 숙인 검찰

이 사건은 국내뿐만 아니라 외신의 주목도 받았다. 미국 <CNN>은 지난 4월 ‘60년 전 성폭행에 저항해 남성의 혀를 깨문 여성, 이제 그녀는 유죄 판결을 뒤집으려 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최씨의 재심 과정을 상세히 보도했다.

<CNN>은 “1960년대 한국 사회는 남성의 폭력이 관습처럼 용인되던 시기였고, 최씨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오히려 가해자로 몰렸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최씨는 단순히 길을 안내해달라는 남성을 따라나섰다가 갑작스럽게 성폭력 위협에 직면했고, 몸싸움 끝에 상대의 혀를 깨무는 방식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이후 그는 강간미수 혐의로 상대를 고소했지만, 검찰은 오히려 최씨에게 중상해 혐의를 적용해 처벌했다는 점도 상세히 다뤘다.

매체는 또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최씨가 수갑을 찬 채 조사를 받고, ‘순결 검증’이라는 이름의 신체 검사를 강요당했으며, 그 결과가 공개되기까지 했다고 전하며 당시 사법기관의 태도를 “지금의 기준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의 2차 가해”라고 지적했다.

특히 재판부와 검찰이 최씨에게 “가해자와 결혼하면 일이 간단히 끝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한국여성변호사회 관계자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판결은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과 여성에 대한 편견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고 이 사건을 평가했다. <CNN>은 이번 재심이 “정당방위의 기준을 다시 정립하고, 향후 성폭력 피해자의 방어권 인정 여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최씨 사건은 당시 사법부가 정당방위의 범위를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법학도들이 판례를 통해 형법의 적용 범위와 한계를 공부할 때, 정당방위로 보기 어려운 사례로 자주 인용되던 사건이다. 실제로 최씨 사건은 이후 형법 교과서에 ‘정당방위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적 판례’로 소개됐다.

대법원이 1995년 법원 100년사를 정리해 발간한 <법원사>에도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으로 공식 소개됐다.

한편,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온 최씨는 “이겼습니다”라고 외쳤다. 이어 “아직 실감은 나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니 대한민국 정의는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며 “모두 국민 여러분 덕분”이라고 말했다.

관습의 시대
뒤늦은 사과

재판을 지켜본 여성단체 관계자들과 방청객 일부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법정 내 전광판에는 ‘최말자는 무죄!’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재판부는 이날 재심 공판을 마무리하며, 오는 9월10일 오후 2시를 최종 선고기일로 지정했다. 검찰이 직접 무죄를 구형한 만큼, 사실상 무죄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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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