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관식이 신드롬’ 배우 박해준

국민 불륜남서 국민 아버지로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고 외치며 시청자들의 혈압을 치솟게 만들었던 배우 박해준이 이제는 ‘국민 아버지’라는 칭호까지 얻으며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에서 양관식역을 맡아 안방극장을 눈물바다로 만든 그가, ‘관식이병’이라는 신드롬까지 낳으며 전 세대에 걸친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드라마 속 양관식은 무던하고 묵묵한 가장이다. 그의 삶은 오직 가족을 향한 헌신과 사랑으로 채워져 있다. 배우 박해준이 연기한 양관식은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가장으로,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오애순을 평생 사랑한 열렬한 사랑꾼이다.

병든 노년 모습
실감나게 표현

10살 양관식은 조기 한 마리를 얻지 못한 채 작은아버지 집에 얹혀살던 오애순을 위해 물고기를 바치고, 장사를 대신하며 사랑꾼의 면모를 보여준다. 말년에도 그는 큰딸을 유학 보내기 위해 집을 팔고, 억척스레 밤낮없이 온몸이 다치도록 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박해준은 드라마 속 헌신적인 가장 양관식을 연기하며 체중을 18kg 감량하고 병든 노년의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실제로도 그는 “이건 누가 시킨 게 아니라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이라며, 이 역할에 대한 진심을 드러냈다.

그는 드라마 촬영 당시 체중을 감량하기 위해 수분을 절제했고, 극 중 병든 모습과 대사 톤을 조율하기 위해 사전에 연구를 반복했다. 실제로 그는 주요 장면을 앞두고 격투기 선수들이 체중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준비했다.


양관식이라는 캐릭터는 드라마 제작 초기 단계부터 ‘부드럽지만 강한’ 이미지를 가진 인물로 설정됐다. 각본과 연출 단계서도 그의 대사는 절제되고 짧으며, 감정 표현은 시각적 요소로 전달되도록 구성됐다. 특히 말을 아끼는 장면에서는 배우의 숨결과 눈빛에 집중한 클로즈업 촬영이 반복적으로 사용됐으며, 이는 캐릭터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장치로 활용됐다.

또, 양관식이 착용한 의상과 소품도 캐릭터 성격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회색 숏패딩, 낡은 셔츠, 일터서 사용하던 작업 장갑 등은 양관식의 삶의 궤적을 보여주는 도구였다.

스타일리스트 팀은 “실제 90년대 중반 지방 근로자의 옷장서 가져온 듯한 설정을 위해 일부 의상을 리폼하거나 의도적으로 낡은 느낌을 주는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박해준은 캐릭터 해석에 있어 실제 아버지의 모습을 많이 참고했다. 그는 “저희 아버지도 과묵한 편이셨고, 가족을 위해 일하시면서도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으셨다”며 양관식 캐릭터의 정서를 형성하는 데 있어 개인적인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드라마 촬영 도중 부친이 암 투병 중이었음을 밝히며, 양관식이 병을 앓는 장면을 촬영할 당시 본인의 감정이 겹쳐져 더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실제로는 철저히 준비된 연기를 위해 반복적인 대사 연습과 감정 조절을 병행했다.

<폭싹 속았수다>에서 양관식 캐릭터는 단순한 픽션이 아닌 현실 재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이상적인 가장이면서도 갈등과 마찰을 피하지 않는 인물이다. 자녀들과 다투기도 하고, 일상의 피로감도 드러내지만, 어떤 상황서도 늘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일관된 태도를 유지한다.

이 같은 연기는 실제 박해준과 양관식이라는 캐릭터의 성향이 비슷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 박해준의 실제 성격은 가정적인 성향이 강했다. 본인의 아내에게서 “양관식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작품 관계자들 역시 그의 성품이 관식이라는 캐릭터와 부합한다고 입을 모았다.


드라마를 집필한 임상춘 작가는 “양관식은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혹은 있었던 아버지들의 복합적인 집합체”라며 “현실서 벗어난 이상형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라고 밝혔다. 연출을 맡은 김원석 감독은 “양관식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는 많지 않았고, 박해준이기에 완성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관식 배역을 캐스팅할 때 “내가 아는 배우 중 가장 착한 사람을 캐스팅했다”고 밝혔다.

‘묵묵한 가장’ 연기
전 세대가 눈물바다

넷플릭스 측은 양관식 캐릭터에 대한 전 세계 시청자 반응을 분석한 결과,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권, 중남미 일부 국가서도 ‘아버지’ 키워드와 함께 박해준의 이름이 급상승 검색어로 등장했다고 밝혔다. 특히 중년 이상 나이대 남성 시청자층에서 높은 공감을 얻은 사례로 분석됐으며, 이는 기존 드라마 소비층과는 또 다른 양상을 보였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관식이병’이라는 유행어가 생길 정도로 시청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양관식 캐릭터는 드라마가 공개된 이후 각종 포털과 SNS서 회자됐고, ‘관식이병’ ‘회색 숏패딩’ 등 관련 키워드가 유행했다. 시청자들은 양관식 캐릭터를 통해 자신들의 아버지를 회상했고, 댓글과 커뮤니티를 통해 “우리 아버지도 저랬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회색 숏패딩만 봐도 눈물이 난다는 사람들, 관식이를 닮고 싶다는 아버지들, 양관식이라는 인물에 자신의 부모를 투영하며 울컥했다는 시청자들까지. 단순한 인기 캐릭터를 넘어, 양관식은 ‘이상적인 아버지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박해준은 이 캐릭터를 두고 ‘희생’이라는 단어를 경계했다.

그는 “관식은 자기가 좋아서 그렇게 산 사람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삶의 방향을 정했고, 그걸 따라 살아갔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삶을 희생이라고 부르기엔 오히려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했을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는 박해준 본인의 삶과 연기 철학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박해준은 1976년 부산서 태어나 고등학생 때까지 자랐다. 학창 시절 내내 과묵하고 관찰력이 뛰어난 편이었으며, 외향적인 활동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을 선호하는 학생이었다고 전해진다. 연기를 처음 접한 시기는 고등학교 시절로, 당시 연극 관련 진로를 구체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내던 중, 연기와의 인연은 뜻밖에 찾아왔다. 이모가 “외모가 받쳐준다”며 연극영화과 진학을 권했고, 그는 별다른 준비도 없이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연극원에 덜컥 합격했다.

입학 이후 그는 서울 생활의 낯섦과 예술대학의 자유로운 분위기, 실기 위주의 수업 방식 등에 적응하지 못했다. 특히, 철저히 준비된 학생들 사이서 비교적 짧은 준비기간으로 입학한 그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고, 수업 결석이 잦아지면서 학사 경고 누적에 따라 자퇴를 권유받았다.

당시 교수에게 “자퇴할래, 아니면 우리가 퇴학시켜 줄까?”라는 말을 들으며 학교를 떠나야 했다. 이후 자퇴 절차를 밟고 군 복무를 마쳤다.

기나긴
무명시절

제대 후, 박해준은 연기가 다시 하고 싶어 2000년 한예종에 재입학했다. 이 시기를 전후로 본격적인 연극 무대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대학로를 중심으로 다양한 소극장서 조연, 단역을 맡으며 실전 연기를 익혔다. 이 시기의 경험은 그에게 ‘무대는 모든 연기의 뿌리’라는 인식을 각인시켰다.


직접 극단서 무대 세트를 조립하고, 조명과 음향 리허설을 병행하며 작업한 시간은 배우로서의 기초 체력을 다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동료 배우들의 평가는 대체로 “조용하지만 몰입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대기 시간에도 대사를 반복하거나 캐릭터의 동선을 그려보며 시간을 보내는 스타일로, 즉흥적인 감정보다는 장면마다 감정의 흐름을 미리 계산해두는 방식에 가까웠다.

스스로도 “감정은 절제된 상태서 더 크게 전달된다”는 말을 자주 인용하며, 표정보다는 리듬과 공기의 밀도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연기에 대한 그의 철학은 소위 ‘보여주는 연기’보다는 ‘살아보는 연기’에 가깝다. 박해준은 캐릭터가 왜 이런 언어를 쓰는지, 왜 이런 방식으로 침묵하는지를 먼저 해석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면보다, 감정을 억제하며 전달하는 장면서 오히려 더 강한 몰입을 이끌어내는 배우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많은 연출자들이 그에 대해 “극적 장면보다 일상의 호흡을 잘 살리는 배우”라고 말한 바 있다.

현장서의 평판은 한결같다. “요구 사항이 적고 신뢰도가 높으며, 조용하지만 존재감이 크다”는 것. 이는 그가 사전에 준비해오는 과정이 매우 철저하고, 장면마다 자신의 감정과 상대 배우의 움직임까지 고려한 계산된 연기를 구사하기 때문이다.


대사를 외우는 데 그치지 않고, 상대의 표정, 카메라 앵글, 조명의 방향에 따라 감정의 높낮이를 세밀하게 조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연극서 방송과 영화로 무대를 옮긴 이후에도 이 같은 접근 방식은 그대로 유지됐다. 장면마다 인물의 감정 곡선을 설계하고, 상황마다 말투나 속도를 조절하는 방식은 연기자의 연륜이 배어 있는 결과였다. 감정을 선으로 표현하기보다 면으로 표현한다는 평가처럼, 박해준의 연기는 단순한 기교가 아닌 누적의 결과에 가까웠다.

박해준은 개인적인 생활 면에서도 자기 절제가 강한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다. 연예계 활동이 늘어나면서도 예능 출연을 자제했고, 공식 석상서도 감정적인 표현이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SNS 활동도 드물었고 인터뷰서도 작품 중심의 이야기 외에는 말수가 적은 편이다.

가족에 대해서도 언급을 아끼지만, 방송을 통해 드러난 모습에서는 자녀와의 관계, 배우자로서의 자세 등이 모두 성실함과 배려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연기 철학과
이미지 변신

2000년대 초반, 재학 중 만난 아내 오유진과는 연극을 함께하며 인연을 맺었고, 2011년 결혼 후 지금까지 안정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자녀 양육에도 적극적인 편으로 알려져 있으며, 작품이 없을 때는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한 인터뷰서 “아이들과 있는 시간이 가장 자연스러운 나”라고 표현한 바 있다.

무명 시절, 그는 수입이 많지 않은 상황서도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기보다는 연기 연습과 작품 준비에 집중했다. 당시 생계는 아내와 함께 한 달 생활비 100만원 정도로 유지했고, 주거는 부모님의 도움으로 마련한 전셋집이었다. 이로 인해 스스로 ‘의존감’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밝힌 적도 있다.

박해준은 이를 ‘채무감’으로 인식했고, 이후에는 부모에게 금전적 보답보다 자신이 배우로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보여드리는 것을 더 중요한 ‘효도’라고 여겼다. 현재는 작품 활동을 통해 안정된 수입과 인지도를 갖게 됐고, 자녀 교육과 부모 봉양 모두 병행 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박해준은 지금도 연기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생활을 연기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스타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기보다는, 하나의 인물을 완성도 있게 표현해내는 데 만족감을 느끼는 배우다. 이 같은 태도는 지금까지의 연기 커리어를 통해 일관되게 이어져 왔으며, 앞으로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연기 철학으로 평가된다.

박해준의 연기 커리어는 연극 무대서 시작됐지만, 대중적으로 얼굴을 알린 건 영화 <화차>였다. 변영주 감독의 연출 아래 그는 악랄한 사채업자 역을 맡아, 짧은 출연에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당시 여주인공이었던 김민희의 뺨을 실제로 때리는 장면은 단 한 번의 테이크로 끝냈을 만큼 몰입감 있는 연기를 보여줬다.

박해준은 “NG를 내지 않고 한번에 끝내야 된다는 압박감에 세게 쳤다”면서 “김민희가 그 장면을 촬영할 당시 입안에서 피가 났다고 했다”고 후일담을 전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에서 스나이퍼 범수역을 맡으며 범죄 집단의 일원으로 등장했다. 날카로운 눈빛과 절제된 대사, 압도적인 분위기만으로도 존재감을 드러낸 그는 점차 충무로서 연기파 배우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철저히 준비된 연기
반복적인 대사 연습

2014년 tvN 드라마 <미생>은 박해준에게 전환점이 된 작품이었다.

박해준이 맡은 천관웅 과장역은 ‘이너서클’에 끼지 못하고 혼자 분투하는 외로운 회사원의 현실을 그려냈다. ‘회식 자리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사람’ ‘상사의 눈치를 보는 사람’ ‘가정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사람’ 등 그가 연기한 천 과장은 많은 직장인들의 공감을 샀다.

이후 드라마 <나의 아저씨>서 스님 겸덕으로 등장해 극 중 오나라가 연기한 정희와의 복잡한 감정선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비구니가 아닌 남자 스님으로서, 연인과의 인연을 끊고 속세를 떠난 인물. 겸덕은 선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복합적 캐릭터였으며, 박해준은 이 인물을 통해 ‘단순히 착하거나 악한 사람이 아닌 복잡한 사람’도 연기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러다 박해준은 운명의 작품을 만나게 된다. 2020년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서 온 국민의 비난을 한 몸에 받은 인물이 됐다. 김희애가 연기한 지선우의 남편 이태오를 연기한 그는 미성숙하고 이기적인 인물의 내면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이후 <부부의 세계>는 엄청난 인기를 끌며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는 대사를 밈으로도 남겼고, 그는 한동안 ‘국민 불륜남’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녀야 했다.

하지만 박해준은 이 작품을 맡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지나친 악역이라 출연을 고사하려 했지만, <화차>의 변영주 감독이 “김희애와 함께하는 드라마는 무조건 하라”고 권유한 덕에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2023년 영화 <서울의 봄>에서는 노태우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노태건역을 맡아 다시 한번 강렬한 이미지를 남겼다. 전두광(황정민)과 함께 군사 쿠데타를 주도하는 역할로, 역사적 반감을 일으키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박해준은 그 복잡한 심리를 설득력 있게 연기했다.

이후 <폭싹 속았수다>에서 그는 양관식이라는 캐릭터로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았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말보다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양관식은, 박해준의 필모그래피서 가장 인간적인 캐릭터로 남았다. 배우 스스로도 이 작품에 대해 “내가 한 건 없다. 주변이 나를 좋게 만들어준 것”이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시청자들은 누구보다 그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야당>서 박해준은 마약수사대 형사 오상재로 분해 관객과 다시 만났다. 정의감과 복수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을 연기하며, 또 다른 ‘가장의 얼굴’을 보여줬다.

중년 아이돌
노년 아이돌

<폭싹 속았수다>와 촬영 시기가 겹쳐 고된 일정이었지만, 그는 “연기할 땐 몰입하지만 생활까지 끌고 오진 않는다”며 프로페셔널한 자세를 유지했다. 인터뷰서 그는 “이제는 정신 차려야 할 것 같다”며 웃었지만, 관식이로 불리는 것과 국민 아버지라는 수식어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박해준은 “중년의 아이돌이라는 말도 좋지만, 언젠가 노년의 아이돌이란 말도 듣고 싶다”며 다음을 기약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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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