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쌍방울 구원투수’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회장

다시 돌아온 파란만장 풍운아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회장이 쌍방울의 구원투수로 나섰다. 상장폐지의 기로에 놓인 쌍방울은 벼랑 끝에서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절체절명의 순간, 정운호의 투입이 쌍방울을 다시 일으킬 돌파구가 될지 더 깊은 나락으로 빠질지 운명이 갈리고 있다. 한때 화장품 업계를 주름잡았던 그가 위기의 쌍방울을 구할 수 있을까?

쌍방울그룹(이하 쌍방울)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쌍방울은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회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현재 심각한 경영 위기에 처한 쌍방울이 구조조정과 혁신을 단행하기 위한 인물로 정운호를 선택한 것이다. 그의 취임은 기업회생을 위한 절박한 선택이라는 평가와 함께, 과거 여러 논란으로 인해 논쟁의 여지를 남겼다.

위기의
쌍방울

쌍방울은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신당 본사 강당서 진행된 취임식서 정운호 대표이사를 신규 선임했다고 밝혔다. 쌍방울의 위기는 단순한 경영 부진을 넘어 상장폐지 가능성까지 거론될 정도로 심각하다. 쌍방울이 위기에 빠진 이유는 단순한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현재 기업의 위기는 오랜 기간 누적된 재정적 문제, 부실 경영, 그리고 전 경영진의 횡령·배임 사건이 맞물려 발생했다.

쌍방울의 위기가 본격화된 것은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의 불법행위가 드러나면서부터였다. 김성태 전 회장의 횡령 규모만 수백억원에 달하며, 회사 자금을 개인적인 용도로 유용한 정황이 다수 포착됐다. 횡령뿐만 아니라 대북 사업 추진 과정서 거액을 북한에 불법 송금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으며, 정치권 로비 의혹까지 불거졌다.

이후 기업 신뢰도가 크게 떨어졌고, 투자자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재정난이 심화됐다.


쌍방울은 한때 속옷 브랜드로서 강한 입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최근 몇 년간 지속적인 적자를 기록했다. 본업인 속옷 사업이 레드오션화되면서 경쟁력이 약화됐다. 화장품, 바이오, 전자 사업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려 했으나, 무리한 확장으로 인해 부채가 증가했다.

해외시장 진출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투자 대비 수익성이 떨어졌다. 이후, 쌍방울의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됐고 2023년부터 채무불이행 위기까지 거론되는 상황이 됐다.

2023년 7월, 한국거래소는 김 전 회장의 횡령·배임 혐의를 이유로 주식 거래를 정지시켰고 2024년 2월, 한국거래소는 결국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현재 쌍방울은 법원에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제출하며 상장폐지 철회를 시도하고 있지만, 회생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이런 상황서 쌍방울이 정운호를 대표로 앉힌 것은 그의 경영 능력과 사업적 감각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운호는 그야말로 ‘맨손 신화’를 이룬 인물로 통한다. 남대문시장서 트럭을 몰며 화장품을 팔던 그가 국내 대표 화장품 브랜드를 일궈낸 과정은 마치 한편의 영화로도 손색없다. 자수성가형 사업가인 정운호는 전라남도 함평서 태어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졸업 이후 학업을 이어가지 못했다.

사업 시작도 매우 평범했다. 중졸 학력을 가진 그는 학벌이나 자본 없이 남대문시장서 보따리 장사를 하며 돈을 모았다.

하지만 그의 사업 감각은 남다른 면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장사 수완이 뛰어났고, 화장품 유통업을 하면서 시장의 흐름을 빠르게 읽는 감각을 길렀다. 시장서 가장 잘 팔리는 물건이 무엇인지 빠르게 파악했다.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을 오가며 싸게 물건을 떼어와 더 높은 가격에 되파는 방식을 터득했고, 이 과정서 유통구조를 이해하게 됐다.


트럭 장사서 화장품 거물로 우뚝
네이처리퍼블릭 성공 신화 주인공

당시 그는 대기업 화장품을 직접 사러 올 수 없는 지방 도매상들에게 제품을 공급하며 차익을 남겼다. 한창 장사가 잘될 때는 하루에도 몇 백만원씩 벌 정도로 감각이 뛰어났다. 단순히 물건을 유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도 이때였다.

정운호는 동대문시장서 화장품을 대량으로 구매하던 여성 고객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고객들은 백화점 브랜드를 사기엔 부담스럽고, 시장서 판매하는 화장품은 품질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좋은 화장품이 있다면 틈새시장을 공략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후 그는 직접 화장품 제조업체를 찾아다니며 제품을 기획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서 ‘세계화장품’이 탄생했다. 정운호는 대기업 브랜드가 장악하고 있던 화장품 시장서 중저가 화장품의 가능성을 보고, 1993년 세계화장품을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세계화장품은 백화점 브랜드보다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괜찮은 화장품을 유통하는 회사였다. 주된 전략은 대형 브랜드 제품을 직거래로 공급받아 보다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것이었다.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 로드숍 등을 중심으로 도매·소매 유통망을 확장했고, 전국 단위로 거래처를 확보하며 성장했다.

중저가 화장품 시장이 활성화되던 시기에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단순한 유통 사업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고, 제조업으로의 확장이 필수적이었다. 당시 화장품 시장의 흐름을 빠르게 읽었던 그는 단순히 제품을 유통하기보다 직접 브랜드를 만들어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세계화장품의 성장이 어느 정도 안정화되자 2003년 정운호는 브랜드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더페이스샵’이었다. 세계화장품이 단순한 유통업체였다면, 더페이스샵은 하나의 브랜드로 소비자와 직접 만나기 위한 전략적 도전이었다.

더페이스샵을 창립한 후, 정운호는 다른 화장품 브랜드와 차별화된 전략을 구사했다. 그중 하나가 초고속 가맹점 확장이었다. 당시 미샤, 이니스프리 등 경쟁 브랜드들은 신중하게 가맹점을 늘려가던 반면, 정운호는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높이기 위해 하루에도 수십개의 매장을 오픈하는 전략을 썼다.

한 일화에 따르면, 한 투자자가 “이렇게 빠르게 가맹점을 늘리면 관리가 어려울 것”이라고 조언했지만, 정운호는 “매장은 많을수록 좋다. 브랜드를 키우려면 먼저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고 받아쳤다. 실제로 그의 전략은 단기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공격적인 가맹점 확장과 함께 자연주의 콘셉트를 앞세우며 소비자들에게 빠르게 어필했다.

‘정운호 게이트’
사건으로 발목

더페이스샵은 출시 2년 만에 15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중저가 화장품 업계 최강자로 떠올랐다.

이후, 그는 이 브랜드를 오랫동안 운영하기보다는 빠르게 성장시켜 높은 가격에 매각하는 전략을 택했다. 2005년, 사모펀드 어피니티에퀴티파트너스(AEP)에 더페이스샵을 매각하며 1000억원대의 자산을 확보했다. 이후 2010년, AEP와 함께 더페이스샵을 LG생활건강에 다시 매각하며 2000억원 이상의 차익을 남겼다.


정운호는 더페이스샵을 성공적으로 매각한 뒤, 두 번째 브랜드를 준비했다. 그의 진짜 승부수는 ‘네이처리퍼블릭’이었다. 2009년 네이처리퍼블릭을 창립하며 다시 한번 중저가 화장품 시장을 공략했다. 네이처리퍼블릭은 더페이스샵과 유사한 자연주의 콘셉트를 유지하면서도, 한류를 활용한 글로벌 마케팅에 더욱 집중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시도했고, 빠르게 성장했다. 6년 만에 연 매출 2800억원을 기록하며 국내 5대 화장품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세계화장품을 시작으로 유통을 경험하며 쌓아온 사업 감각이 더페이스샵과 네이처리퍼블릭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네이처리퍼블릭은 사업이 커지면서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무리한 해외 진출과 경영권 다툼, 내부 재정 문제 등이 불거지며 그의 경영 스타일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정운호의 경영 방식에 대한 비판 중 하나는 지나치게 공격적인 확장 전략에 의존했다는 점이다.

그는 빠른 시장 점유율 확대를 목표로 무리한 가맹점 확장과 해외 진출을 시도했지만, 장기적인 기업 운영에는 실패했다. 더페이스샵과 네이처리퍼블릭의 사례를 보면 그는 브랜드를 키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기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에는 한계를 보였다.

정운호의 전성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사업가로서 성공을 거둔 그는 화려한 생활을 즐겼다. 최고급 호텔서 파티를 열고 슈퍼카를 타고 다녔으며, 정재계 인사들과 어울렸다. 그가 운영하던 네이처리퍼블릭의 매출은 매년 급성장했으며 한때 그는 K-뷰티를 대표하는 기업가로 평가받았지만, 도박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마카오와 필리핀서 초호화 카지노 VIP룸을 드나들며 거액의 베팅을 했고, 수백억원을 잃기도 했다.


한 카지노 관계자에 따르면, 정운호는 한번에 몇 십억원을 베팅하는 대담한 플레이어였다. 2015년, 그는 해외 원정도박 혐의로 구속되며 경영 일선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네이처리퍼블릭은 내부 혼란을 겪으며 성장이 둔화됐고, 정운호가 회사를 떠난 뒤에도 경영난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시 쓰는
맨손 신화

해외 원정도박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게 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다. 그의 이름은 한국 사회서 한동안 ‘법조 비리’의 상징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는 단순한 도박 사건이 아닌 법조계를 뒤흔드는 대형 스캔들로 번지게 된다.

수사 과정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정운호는 필리핀과 마카오서 약 700억원 이상을 불법 도박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서 도박으로 인한 손실을 줄이기 위해 불법 환전을 시도했으며, 결국 외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됐다.

사건의 핵심은 단순한 도박이 아니라, 이를 무마하기 위해 벌인 광범위한 법조계 로비로 번졌다. 그는 자신의 혐의를 축소하거나 아예 무혐의 처분을 받기 위해 현직 판사, 검찰 고위 관계자, 변호사 등에게 거액의 돈을 건넸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관 변호사들에게 사건을 맡겼고, 이들은 현직 판사와 검찰 간부들에게 사건을 유리하게 진행하도록 로비를 시도했다.

이 과정서 수십억원대의 뇌물이 오갔고, 일부 판사와 검찰 관계자들이 실제로 사건을 무마하려 한 정황이 포착됐다. 그가 로비한 대상에는 전·현직 판사와 검사, 변호사 등이 포함돼있었으며 이들의 부패가 드러나면서 법조계 전체를 뒤흔든 ‘정운호 게이트’로 번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정운호의 로비에 연루된 전직 부장판사와 고위 법조인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정운호의 변호를 맡으며 사건을 무마하려 했고, 그 대가로 거액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전직 검사장 또한 사건 무마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 구속됐다.

현직 판사 일부도 사건 조작에 연루된 혐의로 조사를 받았고, 법원 내부서도 적지 않은 후폭풍이 발생했다. 대형 로펌들도 수사 대상에 올랐다.

이 스캔들은 한국 법조계의 전관예우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기도 했다. 전관 변호사들이 거액을 받고 사건을 담당하면, 법원과 검찰 내부서 이를 눈감아주는 관행이 존재한다는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정운호 사건을 계기로 법조계 내부의 전관예우 관행과 부패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 사건으로 인해 법조계에 대한 불신이 극도로 커졌고, 이후 사법개혁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법조계의 전관예우 문제와 로비 논란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이 사건을 이후로 돈 많은 사업가가 법을 움직이려 했다며 정운호에게 ‘비리 사업가’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씌워졌다.

해외 원정도박 검찰 수사 과정서
법조계 전방위 구명 로비 스캔들

정운호는 결국 2017년 대법원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한때 대한민국 화장품 업계를 주름잡는 성공한 사업가였던 그는, 법조계 비리를 만든 장본인이자 불법 도박의 당사자로 전락했다. 2019년 12월, 만기 출소했던 그는 한동안 대외 활동을 자제하며 조용히 지내다가 지난달 27일, 쌍방울 대표로 복귀했다.

다시 사업가로서 재기에 나섰으나, 그의 법적 논란이 여전히 대중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는 점이 발목을 잡고 있다. 과거 논란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은 그가 기업을 정상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을 갖고 있다. 정운호의 과거 행적을 고려했을 때, 시장과 소비자들이 그를 쉽게 신뢰할 수 있을지 여부는 예단이 쉽지 않다.

정운호는 뛰어난 사업 감각과 성공 경험을 가진 인물임과 동시에 도박, 법조 비리 등의 논란을 피할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네이처리퍼블릭서 보여준 성공과 몰락은 경영자로서 가진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드러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번에 그가 맡게 된 쌍방울은 단순한 경영 부진이 아니라 상장폐지 위기에 놓여 있는 기업이다.

그는 취임식서 “쌍방울을 단순한 회생이 아닌 혁신과 개혁을 통해 더 강한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정운호는 취임식 직후 ▲미래 지향 혁신 경영 ▲브랜드 재탄생 및 사업 다각화 ▲재무구조 혁신 ▲인재 중심 조직 문화 혁신 ▲지속 가능 경영·사회적 책임 실천 등 5대 전략을 발표했다.

이후 쌍방울의 핵심 브랜드인 ‘트라이’의 쇼룸을 직접 시찰하며 향후 브랜드 전개 비전을 밝혔다. 그는 “트라이는 쌍방울의 핵심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며 “혁신적인 제품을 통해 소비자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고, 글로벌 시장서 입지를 넓히겠다”고 말했다.

정운호는 “쌍방울을 단순한 회생이 아닌 과감한 혁신과 강력한 개혁을 통해 더 강한 기업으로 만들겠다”며 “현재 쌍방울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면밀히 검토해 기존 사업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최신 트렌드에 맞는 신규 사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글로벌 시장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트라이 브랜드 리뉴얼을 단행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과거 화장품 업계를 주름잡던 그의 사업 감각이 다시 통할 것인지, 아니면 같은 방식의 공격적인 경영이 또 다른 위기를 초래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쌍방울이 처한 상황이 단순한 경영 위기가 아니라 법적, 재정적 문제까지 얽혀 있는 만큼 과거와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희망 불씨
재기 발판

과거 더페이스샵과 네이처리퍼블릭을 성장시킨 그의 경험이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적지 않다. 반면, 일각에서는 과거 그의 논란을 고려했을 때 경영 정상화가 아닌 또 다른 위기의 불씨를 안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가 과거의 논란을 극복하고 쌍방울을 회생시킬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번 기회가 그에게 ‘재기의 발판’이 될지, 또 다른 실패의 기록으로 남게 될지는 앞으로 그의 행보에 달려 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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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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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