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쌍방울 구원투수’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회장

다시 돌아온 파란만장 풍운아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회장이 쌍방울의 구원투수로 나섰다. 상장폐지의 기로에 놓인 쌍방울은 벼랑 끝에서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절체절명의 순간, 정운호의 투입이 쌍방울을 다시 일으킬 돌파구가 될지 더 깊은 나락으로 빠질지 운명이 갈리고 있다. 한때 화장품 업계를 주름잡았던 그가 위기의 쌍방울을 구할 수 있을까?

쌍방울그룹(이하 쌍방울)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쌍방울은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회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현재 심각한 경영 위기에 처한 쌍방울이 구조조정과 혁신을 단행하기 위한 인물로 정운호를 선택한 것이다. 그의 취임은 기업회생을 위한 절박한 선택이라는 평가와 함께, 과거 여러 논란으로 인해 논쟁의 여지를 남겼다.

위기의
쌍방울

쌍방울은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신당 본사 강당서 진행된 취임식서 정운호 대표이사를 신규 선임했다고 밝혔다. 쌍방울의 위기는 단순한 경영 부진을 넘어 상장폐지 가능성까지 거론될 정도로 심각하다. 쌍방울이 위기에 빠진 이유는 단순한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현재 기업의 위기는 오랜 기간 누적된 재정적 문제, 부실 경영, 그리고 전 경영진의 횡령·배임 사건이 맞물려 발생했다.

쌍방울의 위기가 본격화된 것은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의 불법행위가 드러나면서부터였다. 김성태 전 회장의 횡령 규모만 수백억원에 달하며, 회사 자금을 개인적인 용도로 유용한 정황이 다수 포착됐다. 횡령뿐만 아니라 대북 사업 추진 과정서 거액을 북한에 불법 송금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으며, 정치권 로비 의혹까지 불거졌다.

이후 기업 신뢰도가 크게 떨어졌고, 투자자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재정난이 심화됐다.


쌍방울은 한때 속옷 브랜드로서 강한 입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최근 몇 년간 지속적인 적자를 기록했다. 본업인 속옷 사업이 레드오션화되면서 경쟁력이 약화됐다. 화장품, 바이오, 전자 사업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려 했으나, 무리한 확장으로 인해 부채가 증가했다.

해외시장 진출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투자 대비 수익성이 떨어졌다. 이후, 쌍방울의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됐고 2023년부터 채무불이행 위기까지 거론되는 상황이 됐다.

2023년 7월, 한국거래소는 김 전 회장의 횡령·배임 혐의를 이유로 주식 거래를 정지시켰고 2024년 2월, 한국거래소는 결국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현재 쌍방울은 법원에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제출하며 상장폐지 철회를 시도하고 있지만, 회생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이런 상황서 쌍방울이 정운호를 대표로 앉힌 것은 그의 경영 능력과 사업적 감각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운호는 그야말로 ‘맨손 신화’를 이룬 인물로 통한다. 남대문시장서 트럭을 몰며 화장품을 팔던 그가 국내 대표 화장품 브랜드를 일궈낸 과정은 마치 한편의 영화로도 손색없다. 자수성가형 사업가인 정운호는 전라남도 함평서 태어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졸업 이후 학업을 이어가지 못했다.

사업 시작도 매우 평범했다. 중졸 학력을 가진 그는 학벌이나 자본 없이 남대문시장서 보따리 장사를 하며 돈을 모았다.

하지만 그의 사업 감각은 남다른 면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장사 수완이 뛰어났고, 화장품 유통업을 하면서 시장의 흐름을 빠르게 읽는 감각을 길렀다. 시장서 가장 잘 팔리는 물건이 무엇인지 빠르게 파악했다.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을 오가며 싸게 물건을 떼어와 더 높은 가격에 되파는 방식을 터득했고, 이 과정서 유통구조를 이해하게 됐다.


트럭 장사서 화장품 거물로 우뚝
네이처리퍼블릭 성공 신화 주인공

당시 그는 대기업 화장품을 직접 사러 올 수 없는 지방 도매상들에게 제품을 공급하며 차익을 남겼다. 한창 장사가 잘될 때는 하루에도 몇 백만원씩 벌 정도로 감각이 뛰어났다. 단순히 물건을 유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도 이때였다.

정운호는 동대문시장서 화장품을 대량으로 구매하던 여성 고객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고객들은 백화점 브랜드를 사기엔 부담스럽고, 시장서 판매하는 화장품은 품질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좋은 화장품이 있다면 틈새시장을 공략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후 그는 직접 화장품 제조업체를 찾아다니며 제품을 기획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서 ‘세계화장품’이 탄생했다. 정운호는 대기업 브랜드가 장악하고 있던 화장품 시장서 중저가 화장품의 가능성을 보고, 1993년 세계화장품을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세계화장품은 백화점 브랜드보다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괜찮은 화장품을 유통하는 회사였다. 주된 전략은 대형 브랜드 제품을 직거래로 공급받아 보다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것이었다.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 로드숍 등을 중심으로 도매·소매 유통망을 확장했고, 전국 단위로 거래처를 확보하며 성장했다.

중저가 화장품 시장이 활성화되던 시기에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단순한 유통 사업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고, 제조업으로의 확장이 필수적이었다. 당시 화장품 시장의 흐름을 빠르게 읽었던 그는 단순히 제품을 유통하기보다 직접 브랜드를 만들어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세계화장품의 성장이 어느 정도 안정화되자 2003년 정운호는 브랜드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더페이스샵’이었다. 세계화장품이 단순한 유통업체였다면, 더페이스샵은 하나의 브랜드로 소비자와 직접 만나기 위한 전략적 도전이었다.

더페이스샵을 창립한 후, 정운호는 다른 화장품 브랜드와 차별화된 전략을 구사했다. 그중 하나가 초고속 가맹점 확장이었다. 당시 미샤, 이니스프리 등 경쟁 브랜드들은 신중하게 가맹점을 늘려가던 반면, 정운호는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높이기 위해 하루에도 수십개의 매장을 오픈하는 전략을 썼다.

한 일화에 따르면, 한 투자자가 “이렇게 빠르게 가맹점을 늘리면 관리가 어려울 것”이라고 조언했지만, 정운호는 “매장은 많을수록 좋다. 브랜드를 키우려면 먼저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고 받아쳤다. 실제로 그의 전략은 단기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공격적인 가맹점 확장과 함께 자연주의 콘셉트를 앞세우며 소비자들에게 빠르게 어필했다.

‘정운호 게이트’
사건으로 발목

더페이스샵은 출시 2년 만에 15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중저가 화장품 업계 최강자로 떠올랐다.

이후, 그는 이 브랜드를 오랫동안 운영하기보다는 빠르게 성장시켜 높은 가격에 매각하는 전략을 택했다. 2005년, 사모펀드 어피니티에퀴티파트너스(AEP)에 더페이스샵을 매각하며 1000억원대의 자산을 확보했다. 이후 2010년, AEP와 함께 더페이스샵을 LG생활건강에 다시 매각하며 2000억원 이상의 차익을 남겼다.


정운호는 더페이스샵을 성공적으로 매각한 뒤, 두 번째 브랜드를 준비했다. 그의 진짜 승부수는 ‘네이처리퍼블릭’이었다. 2009년 네이처리퍼블릭을 창립하며 다시 한번 중저가 화장품 시장을 공략했다. 네이처리퍼블릭은 더페이스샵과 유사한 자연주의 콘셉트를 유지하면서도, 한류를 활용한 글로벌 마케팅에 더욱 집중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시도했고, 빠르게 성장했다. 6년 만에 연 매출 2800억원을 기록하며 국내 5대 화장품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세계화장품을 시작으로 유통을 경험하며 쌓아온 사업 감각이 더페이스샵과 네이처리퍼블릭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네이처리퍼블릭은 사업이 커지면서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무리한 해외 진출과 경영권 다툼, 내부 재정 문제 등이 불거지며 그의 경영 스타일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정운호의 경영 방식에 대한 비판 중 하나는 지나치게 공격적인 확장 전략에 의존했다는 점이다.

그는 빠른 시장 점유율 확대를 목표로 무리한 가맹점 확장과 해외 진출을 시도했지만, 장기적인 기업 운영에는 실패했다. 더페이스샵과 네이처리퍼블릭의 사례를 보면 그는 브랜드를 키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기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에는 한계를 보였다.

정운호의 전성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사업가로서 성공을 거둔 그는 화려한 생활을 즐겼다. 최고급 호텔서 파티를 열고 슈퍼카를 타고 다녔으며, 정재계 인사들과 어울렸다. 그가 운영하던 네이처리퍼블릭의 매출은 매년 급성장했으며 한때 그는 K-뷰티를 대표하는 기업가로 평가받았지만, 도박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마카오와 필리핀서 초호화 카지노 VIP룸을 드나들며 거액의 베팅을 했고, 수백억원을 잃기도 했다.


한 카지노 관계자에 따르면, 정운호는 한번에 몇 십억원을 베팅하는 대담한 플레이어였다. 2015년, 그는 해외 원정도박 혐의로 구속되며 경영 일선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네이처리퍼블릭은 내부 혼란을 겪으며 성장이 둔화됐고, 정운호가 회사를 떠난 뒤에도 경영난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시 쓰는
맨손 신화

해외 원정도박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게 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다. 그의 이름은 한국 사회서 한동안 ‘법조 비리’의 상징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는 단순한 도박 사건이 아닌 법조계를 뒤흔드는 대형 스캔들로 번지게 된다.

수사 과정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정운호는 필리핀과 마카오서 약 700억원 이상을 불법 도박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서 도박으로 인한 손실을 줄이기 위해 불법 환전을 시도했으며, 결국 외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됐다.

사건의 핵심은 단순한 도박이 아니라, 이를 무마하기 위해 벌인 광범위한 법조계 로비로 번졌다. 그는 자신의 혐의를 축소하거나 아예 무혐의 처분을 받기 위해 현직 판사, 검찰 고위 관계자, 변호사 등에게 거액의 돈을 건넸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관 변호사들에게 사건을 맡겼고, 이들은 현직 판사와 검찰 간부들에게 사건을 유리하게 진행하도록 로비를 시도했다.

이 과정서 수십억원대의 뇌물이 오갔고, 일부 판사와 검찰 관계자들이 실제로 사건을 무마하려 한 정황이 포착됐다. 그가 로비한 대상에는 전·현직 판사와 검사, 변호사 등이 포함돼있었으며 이들의 부패가 드러나면서 법조계 전체를 뒤흔든 ‘정운호 게이트’로 번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정운호의 로비에 연루된 전직 부장판사와 고위 법조인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정운호의 변호를 맡으며 사건을 무마하려 했고, 그 대가로 거액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전직 검사장 또한 사건 무마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 구속됐다.

현직 판사 일부도 사건 조작에 연루된 혐의로 조사를 받았고, 법원 내부서도 적지 않은 후폭풍이 발생했다. 대형 로펌들도 수사 대상에 올랐다.

이 스캔들은 한국 법조계의 전관예우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기도 했다. 전관 변호사들이 거액을 받고 사건을 담당하면, 법원과 검찰 내부서 이를 눈감아주는 관행이 존재한다는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정운호 사건을 계기로 법조계 내부의 전관예우 관행과 부패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 사건으로 인해 법조계에 대한 불신이 극도로 커졌고, 이후 사법개혁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법조계의 전관예우 문제와 로비 논란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이 사건을 이후로 돈 많은 사업가가 법을 움직이려 했다며 정운호에게 ‘비리 사업가’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씌워졌다.

해외 원정도박 검찰 수사 과정서
법조계 전방위 구명 로비 스캔들

정운호는 결국 2017년 대법원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한때 대한민국 화장품 업계를 주름잡는 성공한 사업가였던 그는, 법조계 비리를 만든 장본인이자 불법 도박의 당사자로 전락했다. 2019년 12월, 만기 출소했던 그는 한동안 대외 활동을 자제하며 조용히 지내다가 지난달 27일, 쌍방울 대표로 복귀했다.

다시 사업가로서 재기에 나섰으나, 그의 법적 논란이 여전히 대중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는 점이 발목을 잡고 있다. 과거 논란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은 그가 기업을 정상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을 갖고 있다. 정운호의 과거 행적을 고려했을 때, 시장과 소비자들이 그를 쉽게 신뢰할 수 있을지 여부는 예단이 쉽지 않다.

정운호는 뛰어난 사업 감각과 성공 경험을 가진 인물임과 동시에 도박, 법조 비리 등의 논란을 피할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네이처리퍼블릭서 보여준 성공과 몰락은 경영자로서 가진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드러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번에 그가 맡게 된 쌍방울은 단순한 경영 부진이 아니라 상장폐지 위기에 놓여 있는 기업이다.

그는 취임식서 “쌍방울을 단순한 회생이 아닌 혁신과 개혁을 통해 더 강한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정운호는 취임식 직후 ▲미래 지향 혁신 경영 ▲브랜드 재탄생 및 사업 다각화 ▲재무구조 혁신 ▲인재 중심 조직 문화 혁신 ▲지속 가능 경영·사회적 책임 실천 등 5대 전략을 발표했다.

이후 쌍방울의 핵심 브랜드인 ‘트라이’의 쇼룸을 직접 시찰하며 향후 브랜드 전개 비전을 밝혔다. 그는 “트라이는 쌍방울의 핵심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며 “혁신적인 제품을 통해 소비자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고, 글로벌 시장서 입지를 넓히겠다”고 말했다.

정운호는 “쌍방울을 단순한 회생이 아닌 과감한 혁신과 강력한 개혁을 통해 더 강한 기업으로 만들겠다”며 “현재 쌍방울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면밀히 검토해 기존 사업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최신 트렌드에 맞는 신규 사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글로벌 시장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트라이 브랜드 리뉴얼을 단행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과거 화장품 업계를 주름잡던 그의 사업 감각이 다시 통할 것인지, 아니면 같은 방식의 공격적인 경영이 또 다른 위기를 초래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쌍방울이 처한 상황이 단순한 경영 위기가 아니라 법적, 재정적 문제까지 얽혀 있는 만큼 과거와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희망 불씨
재기 발판

과거 더페이스샵과 네이처리퍼블릭을 성장시킨 그의 경험이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적지 않다. 반면, 일각에서는 과거 그의 논란을 고려했을 때 경영 정상화가 아닌 또 다른 위기의 불씨를 안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가 과거의 논란을 극복하고 쌍방울을 회생시킬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번 기회가 그에게 ‘재기의 발판’이 될지, 또 다른 실패의 기록으로 남게 될지는 앞으로 그의 행보에 달려 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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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최대 변수 송영길,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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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돌아왔다. 3년의 옥살이 끝에 무죄를 선고받은 만큼 명분과 서사를 모두 거머쥐었다. 두 팔 벌려 환영했지만 송 전 대표를 바라보는 정청래 지도부의 고심이 깊은 모양새다. 앞으로 치러질 각종 선거의 변수가 된 송 전 대표의 쓰임새는 무엇일까? 지난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의 무죄가 확정됐다. ‘돈봉투 사건’을 주도하고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서다. 송 전 대표는 “돈봉투 의혹 사건, 2심 무죄에 이어 최종 무죄가 확정됐다”며 “긴 시간 함께 걱정해 주시고, 흔들림 없이 믿어주시며 끝까지 곁을 지켜주신 많은 분의 성원에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진실은 결국 가려지지 않았다. 이제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책임 있게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돌아온 큰형님 송 전 대표는 지난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경선을 앞두고 6000만원의 상당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역 본부장에게 현금이 든 돈봉투를 건네고, 민주당 윤관석 의원을 통해 국회의원에게 나눠줄 돈봉투 6000만원을 제공하는 데 개입한 혐의 등을 받았다. 아울러 그의 외곽 후원 조직인 ‘사단법인 먹고사는문제 연구소(이하 먹사연)’를 통해 기업인 7명으로부터 후원금 명목의 불법 정치자금 총 7억6300만원을 챙긴 혐의 등도 있다. 당초 1심 재판부는 송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으나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윤성식)는 이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심 판단이 돈봉투 사건과 먹사연 사건 범죄 사실의 관련성을 인정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먹사연 사건 관련 공소 사실의 경우 압수물이 영장 없이 증거로 사용됐다”고 판단했다. 송 전 원내대표의 복귀는 화려했다. 무죄가 선고된 날 서울고등법원 현장에는 민주당 강득구·김교흥·김상욱·박선원·부승찬·전현희 의원 등 10여명이 모였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자신의 SNS에 “송 대표의 무죄 판결을 축하한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며 “검찰 전횡을 바로잡는 검찰개혁에 더 매진하겠다”고 작성했다. 이 판결로 송 전 대표는 ‘정치 검찰의 희생양’이라는 강력한 명분을 얻었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정치 검찰의 서슬 퍼런 칼날을 이겨내고 돌아오신 송 전 대표를 환영한다”며 “이재명정부 성공을 향해 연대와 통합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송 전 대표는 이날 민주당 인천시당을 찾아 복당 신청서를 제출했고, 그달 27일 최종 의결됐다. 정 대표는 “송 전 대표의 복당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앞으로 민주당 발전과 이정부의 성공을 위해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또한 정 대표는 “탈당 후 당의 요청이 아니면 다른 경선에서 20% 감산되는 불이익을 받는데, 당 대표인 제가 요청해 (감산이 없도록) 처리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인천시당에 복당을 신청한 것이 서울시당으로 이첩됐던 것을 중앙당 당원자격심사위원회로 보내라고 지시해 복당했다”고 말했다. “정치 검찰 피해자” “이재명의 은인” 정점 찍은 서사…‘송 사용법’ 고심 송 전 대표는 2021년 전당대회서 당의 주류였던 친문(친 문재인)계를 꺾으며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났다. 그런 그에게는 이재명 대통령과 끈끈한 연결고리가 있다. 같은 해 치러진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서 두 사람의 관계가 본격화됐고, 송 전 대표가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밀어줬다는 이른바 ‘이심송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후보를 국회로 이끈 인물 역시 송 전 대표다. 그는 2022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서 사퇴했고, 그때 이 후보가 보궐선거를 통해 당내에 입성했다. 당시 그는 이 후보의 전략공천을 환영하는 입장을 밝히며 “당의 단단한 결정과 이재명 (당시) 상임고문의 결단이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됐다. 이 상임고문은 우리 민주당과 현재 한국 정치에 큰 자산”이라고 치켜세우며 “이번 지방선거 승리의 큰 구심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가 국회 입성에 성공하고 당 대표직을 따내는 등 정치인으로서 성공가도를 걸었던 반면, 송 전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하며 정치적 치명상을 입게 됐다. 이때부터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는 송 전 대표가 ‘자신을 희생하고 후배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정치인’이라는 인식으로 남았다. 2023년 두 사람에게 본격적인 위기가 찾아왔다. 돈봉투 의혹 수사가 송 전 대표를 덮쳤고, 이재명 대표는 거리를 두는 전략을 택했다. 민주당은 당 전체의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송 전 대표의 자진 탈당을 압박했고, 송 전 대표 역시 당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당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3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송 전 대표가 자신의 서사를 어떻게 활용할지 이목이 쏠린다. 과거의 영광을 누렸던 그가 복귀하자 현 수장인 정 대표의 셈법만 복잡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방선거, 전당대회, 나아가 다음 대선까지 송 전 대표가 차후 진행될 모든 선거의 변수가 됐다. 6월 치러지는 지방선거 및 재보궐선거가 첫 번째 관문이다. 복당 이후 송 전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였던 계양을로 이사오면서 이곳에서 치러질 보선에 출사표를 던질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계양구는 송 대표의 정치적 고향으로, 지난 2000년 해당 지역에서 당선돼 16대 국회에 입성한 뒤 17·18·20·21대 총선까지 내리 승리했다. 이때 쌓은 조직력을 기반으로 2010 민선 5기 인천시장에도 당선됐다. 굴리는 주판알 인천 계양에 출마가 유력한 김남준 청와대 대변인과의 교통정리 여부가 변수다. 송 전 대표는 YTN과의 인터뷰서 김 전 대변인도 계양을 출마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당 지도부가 잘 판단하고 결정할 것”이라며 “지역구라는 게 정치인들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국민과 당원의 뜻이 중요하다. 당 지도부가 여러 가지를 검토해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중진과 대통령의 최측근인 신인 정치인의 대결구도가 예상되는 만큼 시선은 지도부의 교통정리에 쏠렸다. 정 대표와의 신경전도 예상된다. 정 대표가 당 대표 연임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송 전 대표가 국회에 입성하면 차기 당권을 노릴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다. 송 전 대표가 실제 당권에 도전할 경우 정 대표를 비롯해 ‘차출설’이 제기되는 김민석 총리와 함께 3파전 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론조사에서는 벌써 송 전 대표의 이름이 거론된다. 지난달 26일 <뉴스토마토>가 23일부터 24일까지 이틀간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034명을 대상으로 ‘민주당 8월 전당대회에서 다음 세 사람이 맞붙는다면, 누가 민주당을 이끌 차기 당대표로 적합하다고 보는지’를 묻는 말에 답변은 ▲정청래 대표 21.6% ▲송영길 전 대표 19.4% ▲김민석 국무총리 18.8%로 집계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0%이며 ARS(RDD) 무선전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1.8%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강경 개혁파로서 외연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게 단점으로 지적돼 왔다. 정 대표의 강경 노선이 지지층 결집에는 효과적이지만, 중도층과 무당층을 포섭해야 하는 전국 단위 선거에서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비슷한 중도·실용주의적 성향인 송 전 대표는 민주 당원의 또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이미 온라인 공간에서는 ‘뉴이재명’ 그룹이 송영길 역할론에 불을 지피면서 그의 존재감을 키워주는 상황이다. 거침없는 저격수 따라서 송 전 대표 본인이 나서지 않더라도 정 대표의 리더십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정청래 VS 송영길 구도를 만드는 등 당내 경선을 앞두고 판이 깔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결국 모든 권력투쟁의 종착지가 그렇듯 그가 2027년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송 전 대표는 복귀와 동시에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최근 친청(친 정청래)·친문으로 분류되는 김어준씨의 유튜브 채널 ‘뉴스공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는가 하면,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두고 ‘대국민 사기’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의 책임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한 라디오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 공소 취소 거래설’의 근원지인 ‘뉴스공장’을 향해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라”고 충고했다. 송 전 대표는 “(‘뉴스공장’에) 섭외를 받아도 안 나가고 싶다”며 “특정 언론 유튜브에 국회의원들이 줄 서서 알현하듯이 있는 모습이 좋은 건 아니다. 우리가 국민의힘에 대해서 고성국이나 전한길 비판하듯이 우리 스스로도 돌이켜볼 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친명인 강득구 의원도 김씨의 방송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그에게 힘을 실었다. 강 의원은 “큰 틀에서 송 전 대표의 문제 제기에 뜻을 같이 한다”며 “(최근) 김씨는 김 총리의 미국 출장을 두고 ‘차기 주자 육성 프로그램처럼 보인다’고 해석했다. 해석은 자유이지만 다소 자의적인 판단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8월 전대 ‘정·송·김’ 3파전? 6월 지선·재보선 첫 번째 관문 코로나 백신 논란에 대해서는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대표가 참전하면서 사태를 키웠다. 조 대표는 “송 전 대표는 두 가지 음모론을 여전히 믿고 주장하고 있다. 첫째, 극우 변희재가 주장한 최순실 태블릿 PC 조작론. 둘째, 코로나 백신 국가적 사기론”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송 전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순실 태블릿PC 조작설’을 주장해 온 변희재씨와 손을 잡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JTBC와 검찰, 특검이 태블릿 PC 조작을 통해 박근혜 탄핵 수사에 활용했다는 의혹이) 법률가인 제가 보기에도 일리 있는 주장이라 공감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조 대표의 부산 출마’ 필요성을 언급한 송 전 대표를 비판했다. 조 대표는 “최근 송 전 대표께서 느닷없이 저와 혁신당을 향해 ‘호남 이삭줍기 말고 영남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호남 출마자들이 어떻게 이삭이냐”며 “모욕과 폄훼”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혁신당 후보들은 지난 총선 시기에 송 전 대표가 손을 잡았던 극우 인사 변희재·최대집씨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이라며 다시 한번 송 전 대표의 과거 행적을 거론했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송 전 대표는 ‘뉴이재명 바람’에 올라탔다. 지난 15일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이 개최한 ‘뉴이재명 토론회’ 현장에 나타나 지지자와 인사를 나눴다. 송 전 대표의 축사가 끝나자 지지자들은 연신 “송영길”을 외치기도 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송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최고의 칼”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송 전 대표와 이 대통령, 두 사람은 혁신과 쇄신을 강조하는 등 성격이 비슷하다”며 “정부·여당에 타격을 입히는 ‘당정 갈등설’을 부인하는 것도, 논란을 만드는 것도 정 대표다. 이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지지층이 봤을 때 이 대통령이 어떤 의중을 전달할 때 정 대표가 아닌 송 전 대표의 입을 빌리는 편이 쉬울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쏘리재명’ ‘쏘리영길’ 그러면서 “뉴이재명은 송 전 대표에 대한 부채 의식이 있다. 3년 동안 옥살이를 하게 했다는 미안함과 이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일 등, 송 전 대표의 희생정신을 높게 평가할 것”이라며 “이런 여론이 확산하면 앞으로 치러질 모든 당내 선거에서 송 전 대표가 승산이 있다고 계산해 어떤 방식이든 (출마를) 결심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송영길 소나무당 어디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지난 2024년 옥중 창당했던 소나무당이 해체했다. 송 전 대표는 무죄를 선고받자 “소나무당을 해산하고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하겠다”고 말했다. 소나무당 시도당위원장 협의회(이하 협의회)는 입장문을 내고 송 전 대표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협의회는 “송영길 대표의 소나무당 해산 및 더불어민주당 복당 천명은 바로 그 위임에 따른 책임 있는 정치적 결단”이라며 “이는 개인의 정치적 유불리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소나무당이 존재했던 이유와 역할을 다른 방식으로 완성해 나가겠다는 결정이라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소나무당은 해산하지만,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정치적 신뢰와 연대의 경험은 각자의 자리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송 대표의 정치적 결단을 존중하며 그의 정치적 행보를 함께 지켜보고 응원하는 시민들과 새로운 방식의 역할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