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쌍방울 구원투수’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회장

다시 돌아온 파란만장 풍운아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회장이 쌍방울의 구원투수로 나섰다. 상장폐지의 기로에 놓인 쌍방울은 벼랑 끝에서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절체절명의 순간, 정운호의 투입이 쌍방울을 다시 일으킬 돌파구가 될지 더 깊은 나락으로 빠질지 운명이 갈리고 있다. 한때 화장품 업계를 주름잡았던 그가 위기의 쌍방울을 구할 수 있을까?

쌍방울그룹(이하 쌍방울)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쌍방울은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회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현재 심각한 경영 위기에 처한 쌍방울이 구조조정과 혁신을 단행하기 위한 인물로 정운호를 선택한 것이다. 그의 취임은 기업회생을 위한 절박한 선택이라는 평가와 함께, 과거 여러 논란으로 인해 논쟁의 여지를 남겼다.

위기의
쌍방울

쌍방울은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신당 본사 강당서 진행된 취임식서 정운호 대표이사를 신규 선임했다고 밝혔다. 쌍방울의 위기는 단순한 경영 부진을 넘어 상장폐지 가능성까지 거론될 정도로 심각하다. 쌍방울이 위기에 빠진 이유는 단순한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현재 기업의 위기는 오랜 기간 누적된 재정적 문제, 부실 경영, 그리고 전 경영진의 횡령·배임 사건이 맞물려 발생했다.

쌍방울의 위기가 본격화된 것은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의 불법행위가 드러나면서부터였다. 김성태 전 회장의 횡령 규모만 수백억원에 달하며, 회사 자금을 개인적인 용도로 유용한 정황이 다수 포착됐다. 횡령뿐만 아니라 대북 사업 추진 과정서 거액을 북한에 불법 송금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으며, 정치권 로비 의혹까지 불거졌다.

이후 기업 신뢰도가 크게 떨어졌고, 투자자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재정난이 심화됐다.

쌍방울은 한때 속옷 브랜드로서 강한 입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최근 몇 년간 지속적인 적자를 기록했다. 본업인 속옷 사업이 레드오션화되면서 경쟁력이 약화됐다. 화장품, 바이오, 전자 사업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려 했으나, 무리한 확장으로 인해 부채가 증가했다.

해외시장 진출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투자 대비 수익성이 떨어졌다. 이후, 쌍방울의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됐고 2023년부터 채무불이행 위기까지 거론되는 상황이 됐다.

2023년 7월, 한국거래소는 김 전 회장의 횡령·배임 혐의를 이유로 주식 거래를 정지시켰고 2024년 2월, 한국거래소는 결국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현재 쌍방울은 법원에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제출하며 상장폐지 철회를 시도하고 있지만, 회생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이런 상황서 쌍방울이 정운호를 대표로 앉힌 것은 그의 경영 능력과 사업적 감각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운호는 그야말로 ‘맨손 신화’를 이룬 인물로 통한다. 남대문시장서 트럭을 몰며 화장품을 팔던 그가 국내 대표 화장품 브랜드를 일궈낸 과정은 마치 한편의 영화로도 손색없다. 자수성가형 사업가인 정운호는 전라남도 함평서 태어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졸업 이후 학업을 이어가지 못했다.

사업 시작도 매우 평범했다. 중졸 학력을 가진 그는 학벌이나 자본 없이 남대문시장서 보따리 장사를 하며 돈을 모았다.

하지만 그의 사업 감각은 남다른 면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장사 수완이 뛰어났고, 화장품 유통업을 하면서 시장의 흐름을 빠르게 읽는 감각을 길렀다. 시장서 가장 잘 팔리는 물건이 무엇인지 빠르게 파악했다.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을 오가며 싸게 물건을 떼어와 더 높은 가격에 되파는 방식을 터득했고, 이 과정서 유통구조를 이해하게 됐다.

트럭 장사서 화장품 거물로 우뚝
네이처리퍼블릭 성공 신화 주인공

당시 그는 대기업 화장품을 직접 사러 올 수 없는 지방 도매상들에게 제품을 공급하며 차익을 남겼다. 한창 장사가 잘될 때는 하루에도 몇 백만원씩 벌 정도로 감각이 뛰어났다. 단순히 물건을 유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도 이때였다.

정운호는 동대문시장서 화장품을 대량으로 구매하던 여성 고객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고객들은 백화점 브랜드를 사기엔 부담스럽고, 시장서 판매하는 화장품은 품질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좋은 화장품이 있다면 틈새시장을 공략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후 그는 직접 화장품 제조업체를 찾아다니며 제품을 기획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서 ‘세계화장품’이 탄생했다. 정운호는 대기업 브랜드가 장악하고 있던 화장품 시장서 중저가 화장품의 가능성을 보고, 1993년 세계화장품을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세계화장품은 백화점 브랜드보다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괜찮은 화장품을 유통하는 회사였다. 주된 전략은 대형 브랜드 제품을 직거래로 공급받아 보다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것이었다.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 로드숍 등을 중심으로 도매·소매 유통망을 확장했고, 전국 단위로 거래처를 확보하며 성장했다.

중저가 화장품 시장이 활성화되던 시기에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단순한 유통 사업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고, 제조업으로의 확장이 필수적이었다. 당시 화장품 시장의 흐름을 빠르게 읽었던 그는 단순히 제품을 유통하기보다 직접 브랜드를 만들어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세계화장품의 성장이 어느 정도 안정화되자 2003년 정운호는 브랜드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더페이스샵’이었다. 세계화장품이 단순한 유통업체였다면, 더페이스샵은 하나의 브랜드로 소비자와 직접 만나기 위한 전략적 도전이었다.

더페이스샵을 창립한 후, 정운호는 다른 화장품 브랜드와 차별화된 전략을 구사했다. 그중 하나가 초고속 가맹점 확장이었다. 당시 미샤, 이니스프리 등 경쟁 브랜드들은 신중하게 가맹점을 늘려가던 반면, 정운호는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높이기 위해 하루에도 수십개의 매장을 오픈하는 전략을 썼다.

한 일화에 따르면, 한 투자자가 “이렇게 빠르게 가맹점을 늘리면 관리가 어려울 것”이라고 조언했지만, 정운호는 “매장은 많을수록 좋다. 브랜드를 키우려면 먼저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고 받아쳤다. 실제로 그의 전략은 단기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공격적인 가맹점 확장과 함께 자연주의 콘셉트를 앞세우며 소비자들에게 빠르게 어필했다.

‘정운호 게이트’
사건으로 발목

더페이스샵은 출시 2년 만에 15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중저가 화장품 업계 최강자로 떠올랐다.

이후, 그는 이 브랜드를 오랫동안 운영하기보다는 빠르게 성장시켜 높은 가격에 매각하는 전략을 택했다. 2005년, 사모펀드 어피니티에퀴티파트너스(AEP)에 더페이스샵을 매각하며 1000억원대의 자산을 확보했다. 이후 2010년, AEP와 함께 더페이스샵을 LG생활건강에 다시 매각하며 2000억원 이상의 차익을 남겼다.

정운호는 더페이스샵을 성공적으로 매각한 뒤, 두 번째 브랜드를 준비했다. 그의 진짜 승부수는 ‘네이처리퍼블릭’이었다. 2009년 네이처리퍼블릭을 창립하며 다시 한번 중저가 화장품 시장을 공략했다. 네이처리퍼블릭은 더페이스샵과 유사한 자연주의 콘셉트를 유지하면서도, 한류를 활용한 글로벌 마케팅에 더욱 집중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시도했고, 빠르게 성장했다. 6년 만에 연 매출 2800억원을 기록하며 국내 5대 화장품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세계화장품을 시작으로 유통을 경험하며 쌓아온 사업 감각이 더페이스샵과 네이처리퍼블릭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네이처리퍼블릭은 사업이 커지면서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무리한 해외 진출과 경영권 다툼, 내부 재정 문제 등이 불거지며 그의 경영 스타일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정운호의 경영 방식에 대한 비판 중 하나는 지나치게 공격적인 확장 전략에 의존했다는 점이다.

그는 빠른 시장 점유율 확대를 목표로 무리한 가맹점 확장과 해외 진출을 시도했지만, 장기적인 기업 운영에는 실패했다. 더페이스샵과 네이처리퍼블릭의 사례를 보면 그는 브랜드를 키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기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에는 한계를 보였다.

정운호의 전성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사업가로서 성공을 거둔 그는 화려한 생활을 즐겼다. 최고급 호텔서 파티를 열고 슈퍼카를 타고 다녔으며, 정재계 인사들과 어울렸다. 그가 운영하던 네이처리퍼블릭의 매출은 매년 급성장했으며 한때 그는 K-뷰티를 대표하는 기업가로 평가받았지만, 도박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마카오와 필리핀서 초호화 카지노 VIP룸을 드나들며 거액의 베팅을 했고, 수백억원을 잃기도 했다.

한 카지노 관계자에 따르면, 정운호는 한번에 몇 십억원을 베팅하는 대담한 플레이어였다. 2015년, 그는 해외 원정도박 혐의로 구속되며 경영 일선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네이처리퍼블릭은 내부 혼란을 겪으며 성장이 둔화됐고, 정운호가 회사를 떠난 뒤에도 경영난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시 쓰는
맨손 신화

해외 원정도박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게 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다. 그의 이름은 한국 사회서 한동안 ‘법조 비리’의 상징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는 단순한 도박 사건이 아닌 법조계를 뒤흔드는 대형 스캔들로 번지게 된다.

수사 과정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정운호는 필리핀과 마카오서 약 700억원 이상을 불법 도박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서 도박으로 인한 손실을 줄이기 위해 불법 환전을 시도했으며, 결국 외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됐다.

사건의 핵심은 단순한 도박이 아니라, 이를 무마하기 위해 벌인 광범위한 법조계 로비로 번졌다. 그는 자신의 혐의를 축소하거나 아예 무혐의 처분을 받기 위해 현직 판사, 검찰 고위 관계자, 변호사 등에게 거액의 돈을 건넸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관 변호사들에게 사건을 맡겼고, 이들은 현직 판사와 검찰 간부들에게 사건을 유리하게 진행하도록 로비를 시도했다.

이 과정서 수십억원대의 뇌물이 오갔고, 일부 판사와 검찰 관계자들이 실제로 사건을 무마하려 한 정황이 포착됐다. 그가 로비한 대상에는 전·현직 판사와 검사, 변호사 등이 포함돼있었으며 이들의 부패가 드러나면서 법조계 전체를 뒤흔든 ‘정운호 게이트’로 번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정운호의 로비에 연루된 전직 부장판사와 고위 법조인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정운호의 변호를 맡으며 사건을 무마하려 했고, 그 대가로 거액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전직 검사장 또한 사건 무마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 구속됐다.

현직 판사 일부도 사건 조작에 연루된 혐의로 조사를 받았고, 법원 내부서도 적지 않은 후폭풍이 발생했다. 대형 로펌들도 수사 대상에 올랐다.

이 스캔들은 한국 법조계의 전관예우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기도 했다. 전관 변호사들이 거액을 받고 사건을 담당하면, 법원과 검찰 내부서 이를 눈감아주는 관행이 존재한다는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정운호 사건을 계기로 법조계 내부의 전관예우 관행과 부패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 사건으로 인해 법조계에 대한 불신이 극도로 커졌고, 이후 사법개혁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법조계의 전관예우 문제와 로비 논란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이 사건을 이후로 돈 많은 사업가가 법을 움직이려 했다며 정운호에게 ‘비리 사업가’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씌워졌다.

해외 원정도박 검찰 수사 과정서
법조계 전방위 구명 로비 스캔들

정운호는 결국 2017년 대법원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한때 대한민국 화장품 업계를 주름잡는 성공한 사업가였던 그는, 법조계 비리를 만든 장본인이자 불법 도박의 당사자로 전락했다. 2019년 12월, 만기 출소했던 그는 한동안 대외 활동을 자제하며 조용히 지내다가 지난달 27일, 쌍방울 대표로 복귀했다.

다시 사업가로서 재기에 나섰으나, 그의 법적 논란이 여전히 대중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는 점이 발목을 잡고 있다. 과거 논란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은 그가 기업을 정상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을 갖고 있다. 정운호의 과거 행적을 고려했을 때, 시장과 소비자들이 그를 쉽게 신뢰할 수 있을지 여부는 예단이 쉽지 않다.

정운호는 뛰어난 사업 감각과 성공 경험을 가진 인물임과 동시에 도박, 법조 비리 등의 논란을 피할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네이처리퍼블릭서 보여준 성공과 몰락은 경영자로서 가진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드러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번에 그가 맡게 된 쌍방울은 단순한 경영 부진이 아니라 상장폐지 위기에 놓여 있는 기업이다.

그는 취임식서 “쌍방울을 단순한 회생이 아닌 혁신과 개혁을 통해 더 강한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정운호는 취임식 직후 ▲미래 지향 혁신 경영 ▲브랜드 재탄생 및 사업 다각화 ▲재무구조 혁신 ▲인재 중심 조직 문화 혁신 ▲지속 가능 경영·사회적 책임 실천 등 5대 전략을 발표했다.

이후 쌍방울의 핵심 브랜드인 ‘트라이’의 쇼룸을 직접 시찰하며 향후 브랜드 전개 비전을 밝혔다. 그는 “트라이는 쌍방울의 핵심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며 “혁신적인 제품을 통해 소비자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고, 글로벌 시장서 입지를 넓히겠다”고 말했다.

정운호는 “쌍방울을 단순한 회생이 아닌 과감한 혁신과 강력한 개혁을 통해 더 강한 기업으로 만들겠다”며 “현재 쌍방울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면밀히 검토해 기존 사업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최신 트렌드에 맞는 신규 사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글로벌 시장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트라이 브랜드 리뉴얼을 단행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과거 화장품 업계를 주름잡던 그의 사업 감각이 다시 통할 것인지, 아니면 같은 방식의 공격적인 경영이 또 다른 위기를 초래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쌍방울이 처한 상황이 단순한 경영 위기가 아니라 법적, 재정적 문제까지 얽혀 있는 만큼 과거와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희망 불씨
재기 발판

과거 더페이스샵과 네이처리퍼블릭을 성장시킨 그의 경험이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적지 않다. 반면, 일각에서는 과거 그의 논란을 고려했을 때 경영 정상화가 아닌 또 다른 위기의 불씨를 안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가 과거의 논란을 극복하고 쌍방울을 회생시킬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번 기회가 그에게 ‘재기의 발판’이 될지, 또 다른 실패의 기록으로 남게 될지는 앞으로 그의 행보에 달려 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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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BBQ 정보 유출 사건’ 위증 재판으로 확대⋯박현종 목줄 잡혔다

[단독] ‘BBQ 정보 유출 사건’ 위증 재판으로 확대⋯박현종 목줄 잡혔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대법원에서 집행유예로 확정된 사건이 다시 법정으로 끌려 나왔다. ‘BBQ 내부망 불법 접속’ 사건의 핵심 증거였던 ‘ID·비밀번호 메모장’을 둘러싼 위증 여부를 다투는 후속 재판이다. 박현종 전 bhc 회장의 집행유예가 확정된 사건임에도 검찰은 관련 증인들을 위증 혐의로 직접 고발했다. 핵심은 과연 BBQ 직원의 ID와 비밀번호가 적힌 그 메모장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유창성 전 bhc 정보전략팀장의 손을 어떻게 거쳐 전달됐는가다. 그리고 그 과정을 둘러싼 법정 진술의 신빙성이다. 검찰은 최근 공판에서 “피고인(박현종 등)에게 유리한 허위 증언이 반복됐다”는 판단 아래 유 전 팀장 등 관련자 3명을 위증 혐의로 고발했다. 메모장 전달자 통상 위증 여부는 재판부 판단 이후 별도 절차로 넘겨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처럼 검찰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단순한 진술 번복이나 기억 착오 수준이 아닌 사건의 본질을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허위 진술이 있었다고 본 셈이다. 이번 공판의 중심에는 ‘메모장 전달자’로 지목된 유 전 bhc 정보전략팀장이 있다. 그는 과거 재판에서 결정적 증거로 채택된 BBQ 직원들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적힌 메모를 박현종 전 bhc 회장에게 전달한 인물이다. 이 메모장은 박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는 핵심축이었다. 이 메모장의 출처와 작성 경위가 흔들리면, 사건 전체의 구조도 다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이 박 전 회장에게 건넨 메모장의 내용 자체를 문제 삼았다. 메모장에 기재된 임직원 계정 정보 뒤에는 ‘퇴사자 임시’라는 내용이 덧붙어 있었다. 이는 BBQ 내부망에서만 확인 가능한 정보라는 점을 강조했다. 외부에서 추정이나 기억만으로 재구성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 성명불상자가 BBQ 내부망에 관리자 권한으로 접속해 계정을 취득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를 유 정보팀장을 거쳐 박 전 회장에게 전달했다는 구체적 시나리오까지 제시했다. 재판부 역시 “기억과 추리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떠올렸다는 설명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며 검찰 주장에 일정 부분 무게를 싣는 듯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재판부는 “특정한 심증을 가진 것은 아니”라며 추가 심리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피고인 측은 거칠게 반격했다. 변호인은 검찰 주장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bhc와 BBQ가 극도로 적대적인 관계였던 상황에서, bhc 소속 직원이 BBQ 내부 직원과 접촉해 계정 정보를 빼냈다는 가정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논리다. 나아가 검찰이 실제 내부망 침입을 입증하지 못한 채 추측만을 쌓고 있다고 공격했다. 6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에 리스크 추가 ‘BBQ 직원 ID·비밀번호 유출’ 둘러싼 공방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피고인 측은 기존 재판에서 채택된 증거와 증인 진술 전반에 대해 신빙성을 문제 삼으며, 데이터베이스(DB) 조작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사실상 1·2심은 물론 대법원 판단의 기초 자체를 뒤흔드는 주장이다. 확정 판결 이후 재판에서 “증거 자체가 위조됐다”는 취지의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법조계에서도 보기 드문 강수로 평가된다. 유 전 팀장은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근무하다가 bhc 매각과 함께 bhc 정보전략팀장으로 이직한 인물이다. 이후 그는 박 전 회장에게 BBQ 직원의 개인정보를 적은 쪽지를 전달했다. 개인정보가 유출된 인물은 BBQ 재무임원과 재무 실무진이다. 2021년 11월3일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박 전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 관련 7차 공판에 유 전 팀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유 전 팀장은 박 회장에게 BBQ 직원의 개인정보를 건넨 이유에 대해 “박현종 회장이 국제상공회의소(ICC) 중재 소송 때문에 BBQ 직원들의 아이디만 필요하다고 했다”며 “해당 직원들의 개인정보가 업무 수첩에 적혀있어 이를 그대로 전달했다. 당시 위법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박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BBQ 직원들의 개인정보와 비밀번호가 있으면 좋겠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과 증인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 데 대해 묻는 검찰 질문에 유 전 팀장은 “박 전 회장의 진술은 모르겠고 아이디만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유 전 팀장은 BBQ와 bhc의 ICC 중재 소송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소송에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증언했다. BBQ 직원들의 개인정보 취득 경위와 관련해서는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일할 당시 BBQ 재무임원이 그룹 전산망의 데이터가 다르다고 확인 문의가 왔다”며 “당시 물류 전산망이 바뀐 지 얼마 안 돼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아 문제 해결을 위해 임원에게 개인정보를 요청해 받은 뒤 이를 업무 수첩에 적은 이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 전 팀장이 개인정보를 받았다고 지목한 BBQ 재무임원은 앞서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개인정보를 아무에게도 전달한 적 없다”며 “업무 처리도 유씨가 아닌 다른 직원과 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검찰은 유 전 팀장이 그룹 전산망에 접근할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내부 정보 취득 시점이… 유 전 팀장은 재무임원의 개인정보를 취득한 시점에 대해서도 그간 검찰 조사에서 했던 진술을 번복했다. 그는 2011년~2012년 즈음에서 2013년 1월로 시점을 바꿨다. 검찰은 증인에게 진술을 번복한 이유가 물류 전산망이 바뀐 시점으로 맞추기 위함이냐고 묻자 유 전 팀장은 “단순 착오”라고 답했다. 유 전 팀장은 bhc 직원으로 일할 당시 BBQ 퇴사자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알 수 있냐는 검찰 질문에 “자신이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일할 당시 퇴사자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다루는지 알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추측해 박 회장에게 전달했다”고 답했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의 증언에 BBQ가 퇴사자에게 부여하는 임시 비밀번호를 줄 때 증인이 말한 방식을 쓴 것은 증인 퇴사 이후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이 박 전 회장에게 BBQ 전·현직 직원들의 정확한 개인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bhc가 BBQ의 데이터베이스(DB)를 모조리 빼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박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BBQ 허락하에 BBQ DB를 모두 가져왔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 진술 이외에 검찰 판단을 뒷받침하는 정황도 있다. 2013년 6월 말 bhc 매각 이후 bhc는 자체 전산망 구축을 위해 BBQ와 bhc 전산망 분리 작업이 필요했다. 그해 7월2일 외부 업체는 해당 작업이 최소 한달 이상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유 전 팀장과 부하 직원 한 명, 그리고 한달 이상이 걸릴 것으로 판단했던 외부업체는 2013년 7월5일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불과 12시간 만에 BBQ로부터 분리된 bhc 전산망을 구축했다. 이와 관련해 유 전 팀장은 “bhc 직원이 100명 남짓에 불과해 수작업으로 데이터를 옮겨 가능했다”며 “BBQ DB는 가져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BBQ DB 관련 박 회장과 유씨의 진술이 배치되는 데 대해 유 전 팀장에게 묻자 “자신은 박 회장에게 BBQ DB를 가져왔다고 말한 적 없다”며 “박 회장이 검찰에서 왜 그리 말했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다만 유 전 팀장은 노트북 하드 교체 관련 재판 과정에서도 말이 일치하지 않았다. 뻔히 보이는 해킹의 목적 첫 증언에서는 bhc 매각 시기인 2013년 이후 노트북 감가상각 5년을 계산해 2018년에 바꿨다고 했지만 이후 2017년으로 고쳤다. 기존 사건이 ‘불법 접속이 있었느냐’는 사실관계 다툼이었다면, 이번 후속 재판은 ‘그 사실을 둘러싸고 법정에서 거짓말이 있었느냐’는 문제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는지 여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2월, 박 전 회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이 BBQ 직원 계정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취득할 수 없었고, 불법적 경로일 가능성을 인식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는 무죄였지만, 정보통신망법 위반은 명확히 유죄로 못 박았다. 그러나 사건은 집행유예 판결로 끝나지 않았다. 검찰이 위증을 별도의 범죄로 끌어올린 이상, 수사는 ‘위증교사’를 밝히는 단계로 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법원이 관련자들의 위증을 인정할 경우, 그 진술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유도했는지가 핵심 수사 대상이 된다. 화살이 결국 박 전 회장을 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위증교사는 기존 사건과는 별개의 범죄로, 추가 기소로 이어질 경우, 사법 리스크도 한층 더 커진다. 문제는 입증이다. 위증교사는 단순한 정황만으로는 성립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지시나 교감, 사전 조율 정황이 확인돼야 한다. 하지만 검찰이 이미 “유리한 허위 증언 반복”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고발까지 단행한 점을 감안하면, 단순한 가능성 제기를 넘어선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BBQ 출신 정보전략팀장 진술 번복 검, 증인들 위증 혐의로 직접 고발 이 사건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축은 bhc와 BBQ 사이의 오랜 분쟁이다. 박 전 회장은 삼성전자와 삼성에버랜드에서 근무하다가 2012년 BBQ 글로벌 대표로 영입됐다. 이어 2013년 BBQ 자회사 bhc가 미국계 사모펀드에 팔린 뒤 bhc 대표로 옮겨가며 양사 갈등의 중심에 섰다. 2018년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 등과 함께 bhc를 사들여 오너 경영자가 된 동시에 각종 소송과 형사적 리스크의 한가운데에 서게 됐다. 이번 사건 역시 단순한 개인 비위가 아니라, 기업 간 치열한 법적 분쟁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무게가 다르다. 검찰에 의하면 박 전 회장은 2015년 7월3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 bhc 본사에서 BBQ 직원 2명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무단 도용해 BBQ 전산망에 접속한 뒤 bhc와 BBQ가 연루된 국제 중재 소송 관련 자료들을 살펴봤다. 이로 인해 박 전 회장은 2020년 11월 재판에 넘겨졌다. 아울러 박 전 회장은 유 정보팀장으로부터 BBQ 직원 이메일 아이디, 비밀번호, 전산망 주소가 적힌 메모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6월 1심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인정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입증이 부족하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사건은 항소심으로 넘어갔다. 항소심 3차 공판 때 검찰과 변호인은 파워포인트(PPT)를 통해 2시간 동안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먼저 의견 개진 기회를 얻은 변호인은 “BBQ가 여러 차례 박현종 회장을 영업비밀 침해 등의 이유로 고소했지만 계속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그런데 검찰이 정보통신망법을 무리하게 적용해 박현종 회장을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변호인은 “검찰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혐의를 입증한 것도 아니”며 “왜곡 가능성이 큰 간접 증거만 제시됐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박현종 회장은 2015년 7월3일 순댓국 프랜차이즈 인수 회의에 참석해 BBQ 전산망에 접속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부연했다. 반면 검찰은 “bhc가 2013년부터 BBQ 전산망에 무단 접속한 횟수가 236회에 달하지만 행위자가 드러나지 않아 기소하지 못했다”며 “박현종 회장은 무단 접속이 명백해 기소했다”고 반박했다. 지시했나 사면초가 검찰은 박 전 회장의 범행 동기에 대해 “2015년 BBQ 직원들이 박현종 회장이 bhc 매각을 총괄했다”는 진술서를 국제 중재 법원에 냈다. 국제 중재 소송에서 질 경우 지위가 불안정해질 수 있었던 박 전 회장은 “해당 진술서를 검토하고 반박해야만 했다”고 했다. 이어 “박현종 회장 휴대전화에서 BBQ 직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적은 메모 사진이 나왔다. BBQ 전산망 접속 데이터 분석 결과, 박현종 회장이 BBQ 사내 메일을 포워딩(전달)한 개인 메일을 2년 만에 열람한 기록도 있다”며 혐의를 입증할 물적 증거가 많다고 했다. 검찰은 “2015년 7월3일 순댓국 프랜차이즈 인수 회의 참석자 2명은 박현종 회장을 회의에서 보지 못했다고 했다”며 박 전 회장의 알리바이를 부인하기도 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