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대담> 친한계 좌장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5.02.11 08:20:20
  • 호수 15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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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에 의리는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부정선거를 했다면, 특정정당이 계속 당선돼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부정선거 음모론에 심취한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했다. 이어 “윤 대통령과 차별화할 수 있는 후보를 선출하면 충분히 승산 있을 것”이라면서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대선 승리 가능성을 강조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두 달이 지났다. 그동안 현직 대통령 체포·구속 기소에 이어 파면 이후 조기 대선 가능성이 구체화되는 등 숨가쁜 나날들이 이어졌다. <일요시사>는 국민의힘 6선 중진이자 친한(친 한동훈)계 좌장 조경태 의원을 만나 국민의힘의 상황과 향후 정국에 관한 의견을 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으로서 체포·구속 기소됐다.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의 최다선 의원으로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윤 대통령의 비상식적·위헌적인 행동엔 반드시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윤 대통령은 체포 이후에도 자신의 잘못을 자꾸 회피하려고 하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상당히 아쉽게 생각한다. 이 문제가 빨리 마무리되길 바라고 있다.

-현 상황에 대한 지역구(부산 사하을), 나아가 부산 지역의 여론은?

▲부산은 민주화의 성지라고 할 정도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민도가 아주 높다. 지난 1979년 부마민주항쟁 당시 군부독재에 저항했던 정신도 여전히 살아 있다. 부산시민들께선 윤 대통령의 잘못된 비상계엄을 상당히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국민의힘도 지나치게 대통령을 옹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좋다.


-윤 대통령이 강하게 주장하는 부정선거 음모론에 대한 평소 입장은?

▲윤 대통령은 정치적 경험·경력이 매우 짧다. 그러다 보니 부정선거 음모론에 잘 휩싸였다. 대통령은 보통의 부정선거론자와는 달라야 한다. 충분히 과학적으로 검증해 사실로 드러난 후 의혹을 제기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음모론에 너무 쉽게 빠져들었다.

부정선거 관련 논란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도 있었다. 부정선거 음모론의 내용은 상당히 비슷하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배출했고, 박 전 대통령은 국민의힘이 배출했다. 부정선거를 했다면, 특정 정당이 계속 당선돼야 한다.

어떻게 해석해야 하겠는가?

이는 양당이 사실상 같은 이야기를 해서 생긴 오류다. 부정선거론자들은 명백히 선거 불복자들이다. 여기에 윤 대통령이 빠져들었다는 것은 심히 유감스럽다. 본인이 부정선거를 주장하면, 자신도 부정선거로 인한 당선이니 스스로 무효라고 주장해야 타당하지 않겠는가.

-윤 대통령 스스로 “내가 10% 이상 이겼어야 했는데, 0.73% 차이로 이긴 것이 이상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저도 여러 번 선거를 해봤다. 항상 많은 격차로 이기길 바라고, 그렇게 예측한다. 하지만 후보자 자신의 생각일 뿐이다. 실제로 드러난 결과는 존중해야 한다.


-국민의힘 주류는 윤 대통령 두둔에 이어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도 두둔하는 것 같은 언행을 이어가고 있는데…

▲어떤 형태로든 폭동을 하면 안 된다. 사법부는 법치국가 최후의 보루다. 사법부를 향한 폭동을 두둔하는 정치 세력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서 정치할 자격이 있겠는가. 철저한 발본색원을 통해 엄히 다스릴 필요가 있다.

-국민의힘은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도 공격하고 있다. 사법부를 향한 공격이 야당 일각서 주장하는 정당해산의 명분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우려를 많이 한다. 그나마 비상계엄을 아주 잘못된 행위라고 규정하면서 윤 대통령 탄핵에 적극 참여한 의원들이 있었다. 그 덕분에 우리 국민의힘이 나름대로 균형을 잡고 살아있다고 보고 있다. 법원에 대한 폭동 두둔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민께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의힘이 앞으로도 수권정당이 되려면, 국민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

-윤 대통령에 대한 제1차 탄핵소추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던 이유는?

▲위헌적·불법적 비상계엄을 한 대통령의 직무 정지는 많은 국민의 염원이었다. 직무를 정지시키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대통령 스스로 사퇴하는 것이고, 하나는 탄핵을 통해 강제로 직무를 정지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탄핵은 변수가 많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대통령 스스로 자진 사퇴하길 바랐다. 윤 대통령에게 사퇴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탄핵을 통해 직무를 정지시켜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제2차 탄핵소추 표결에 참여했다.

-윤 대통령은 고집이 센 것으로 알려졌다. 자진사퇴가 가능했을까?

▲윤 대통령에 대한 압박이었다. 저는 윤 대통령이 명예로운 퇴진을 하길 바랐다. 그래야 탄핵 찬반 세력의 충돌 등 사회적 갈등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윤 대통령 스스로도 지난해 12월7일 “임기와 향후 국정 안정 방안을 당에 일임하겠다”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했다. 자진사퇴 의지가 조금은 비쳐졌다. 그런데 며칠 사이로 윤 대통령의 생각이 바뀌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역전됐던 기점은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소추였다. 한 총리 탄핵에 찬성했던 이유는?

▲지금도 그 소신엔 변함이 없다. 한 총리가 국가를 생각하는 분이라면, 헌법재판관들을 서둘러 임명해 헌법재판소를 정상화시켜 빨리 이 문제를 해결했어야 한다. 그런데 한 총리는 “여야 합의가 안 됐다”면서 국회가 추천한 헌법재판관들에 대한 임명을 미뤘다.

이는 굉장히 무책임한 직무유기에 가깝다. 추경호 전 원내대표도 지난해 11월19일 “헌법재판관 3명 추천을 마무리하기로 여야가 합의했다”고 밝혔다. “합의가 안 됐으니, 합의를 하라”는 한 총리의 주장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어불성설이다.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 안 된다”는 것이 국민의힘의 공식 입장이었는데…


▲임명하지 않으면 헌재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재판관이 6명만 있는 상황서 탄핵 심판을 진행하면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당내 주류가 헌재의 그 불확실성을 바란 것은 아니었을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비상계엄 사태를 옹호하는 것 밖에 안 된다. 위헌적·불법적 비상계엄을 한 대통령은 당연히 탄핵해서 직무를 정지시켜야 한다.

-비대위원장·국회부의장·원내대표 등 당내 주요 보직을 맡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당내 주류들이 윤 대통령과 코드·눈높이가 맞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분을 원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정치인은 권력자의 눈높이가 아니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 그동안 제 선택과 정치적 행보를 후회한 적은 없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치를 하는 것이 정상적이고, 지극히 상식적이라고 보고 있다.

-김상욱 의원은 윤 대통령 탄핵을 찬성하는 소신을 밝힌 이후 지역구를 방문할 때 방검복을 입고 간다고 알려졌다. 상임위도 갑자기 바뀌었는데…


▲초선 의원으로서 소신 있는 발언과 용기 있는 행동을 한 김 의원에게 많은 격려를 보내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 당 초·재선 의원들 중 김 의원 같은 정의롭고 용기있는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일각에선 “6선 의원은 못 건드리고, 만만한 초선한테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는데…

▲그런 것은 아니라고 본다. 김 의원은 두루두루 많은 의원들과 관계를 잘 맺는다. 그러다 보니 부딪치는 부분도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초선이든 다선이든,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바른 소리를 해야 한다. 다수의 잘못된 생각에 매몰돼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소신이 없는 것이다. 소신 없는 정치인을 국민이 과연 좋아하시겠는가. 지역주민들도 소신 있는 정치인이 바른 소리를 하는 것을 많이 원하실 거다.

-민주당서도, 국민의힘서도 비주류라는 평을 듣거나 소수계파서 활동하는 이유는?

▲저는 항상 정치개혁을 주장했다. 헌법 제46조에 규정됐듯이, 국회의원은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시하고,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국회의원 300명 중 국가 이익을 우선시하고 당론이 아닌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는 의원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저는 항상 당론보다 국론을 우선시했다. 민주당서도, 국민의힘서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저는 상식적·원칙적인 주장을 하면서 비상계엄 사태를 지적하고 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게 상식이다. 국민의힘에선 “비상계엄 사태는 잘못됐다”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소수다. 그게 우리 국민의힘의 한계다. 민주당도 좀 더 분발해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당으로 발돋움한다면, 국민께서 좀 더 안심하실 것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 3일 윤 대통령을 면회하면서 “인간으로서의 도리”라고 말했다. 의리를 지칭한 것 같다. 양당의 강성 지지자들도 의리를 말한다. 정치인의 의리란 무엇인가?

▲오랫동안 정치하면서 양당의 모습을 봐왔는데 의리 있는 정치인은 막상 없다. 의리를 내세우면서 정치할 것이라면, 의리의 대상인 분의 정치적 생명이 다했을 때, 같이 끝나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궁극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의리라는 표현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정치인은 결단코 특정인과 특정 계파에 충성하면 안 된다. 정치인이 충성해야 할 대상은 국민과 국가여야 한다. 개인과 계파에 충성하는 것은 조폭처럼 무법·무도한 행위를 하는 자들과 다름없다. 정치인이 가져야 할 덕목은 국민을 위한 마음가짐이다.

-양당서 각각 3선을 해서 6선 의원이다. 양당의 장점과 단점은 있다면?

▲민주당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보편적 복지를 존중한다. 국민의힘은 경제성장 등 한국 사회가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성을 고민한다. 단점은 양당 공통이다. 극단적인 당리당략과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한 극단주의가 만연해 있다.

-극복할 수 있겠는가?

▲극복하려면 상대를 탓하지 말고, 자신의 변화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 국민의힘에선 구성원들이 보다 성숙한 민주적 의식구조와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을 갖춰야 한다.

-윤 대통령이 파면되면 조기 대선이 진행된다. 국민의힘의 대선 전망은?

▲조기 대선이 진행되면, 국민의힘은 원인 제공자가 된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대선이기 때문에 대국민 사과부터 해야 한다. 그 토대 위에 적합한 인물을 잘 찾아내야 한다. 예를 들어 윤 대통령과 차별화할 수 있는 후보를 잘 선출하면, 상대 당 후보와 견줬을 때,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으로 본다.

-한동훈 전 대표의 유튜브 채널이 만들어졌고 “조만간 움직임이 있을 것”이란 관측도 있는데…

▲대선 출마 의지는 있는 것 같다. 사회 지도층 등 다양한 분들을 많이 만나 의견을 경청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통합 방법과 국민께서 겪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자아성찰 내지는 고민을 많이 한다고 알고 있다.

-개헌에 대한 입장은?

▲지난 3일 우원식 국회의장과 미국·유럽 특별방문단 소속 의원들의 차담회가 있었다. 저는 “지금과 같은 헌법으론 우리 사회의 어떤 문제점도 해결할 수 없으니 개헌을 서둘러 논의하고,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기 대선이 진행되면, 대선주자들은 개헌 공약을 제시할 것이다. 지금까진 대통령이 된 후 개헌 공약을 유야무야했다. 이젠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자신의 임기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해야 한다. 개헌 의지를 분명히 밝히고 실천할 후보가 대통령에 적합하고 타당하다.

저는 개인적으로 4년 대통령 중임제를 선호한다. 4년 중임제를 하면서 책임총리제까지 포함하면, 대통령의 무소불위한 권력을 축소시키고 삼권분립 정신이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4년 중임제와 책임총리제가 겹치면,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나 우리나라 제1공화국 통치체제와 비슷한 것 같은데…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시키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의회도 지금처럼 다수당이 지나치게 횡포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의회 스스로 견제할 수 있는 안전장치들이 필요하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정치적·경제적·심리적 충격을 견디고 있는 국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런 상황에까지 온 것에 대해 국회 최다선 의원으로서 상당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하루라도 빨리 국정 혼란을 수습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의무다. 국민께서 정상적인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실 수 있도록 국회가 좀 더 분발해야 한다.

저는 오는 10일 국회 한미의원연맹 공동회장이자 국회의장 특사 자격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우 의장의 친서를 전달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다. 미국서 트럼프 2기 정부에 대한민국의 국익과 한미동맹 가치를 미국의 행정부와 유력 정치인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그런 활동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도 소원해지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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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