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의대교육 정상화 노리는 김택우

‘의정 갈등’ 해결할까

[일요시사 취재 1팀] 안예리 기자 =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신임 회장이 정부와의 강경투쟁에 시동을 걸었다. 김 회장은 정부에 2025학년도 의료교육을 정상화시킬 ‘마스터플랜’을 촉구하며 전쟁의 서막을 알렸다. 의료계는 앞으로 김 회장이 ‘마스터플랜의 키’가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제43대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회장 선거 1차 투표서 1위를 차지했던 김택우 후보가 지난달 7일 2차 결선 투표서 최종 당선됐다. 이번 선거는 지난해 5월 취임한 임현택 전 회장이 6개월 만에 탄핵된 이후 치러진 보궐선거였다. 김 회장은 공약을 통해 ▲의료정책의 중추가 되는 의사협회 구축 ▲의사의, 의사에 의한, 의사를 위한 의협 ▲전공의 수련과 의대생 교육 정상화 등을 내걸었다. 김 회장은 앞으로 2027년 4월 말까지 의협을 이끌게 된다.

면허정지
사직 조장

김 회장은 대정부 투쟁에 있어 강경파로 분류되며, 의대 증원 중지 및 교육 정상화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는 회장 출마 당시 의대 증원에 대해 ‘의료 농단’이라 지칭하며 정부에 모든 의료정책을 멈춰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이로써 김 회장이 이끌 의협은 대정부 강경투쟁을 이어갈 것으로 기정사실화됐다.

김 회장은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박명하 조직강화위원장과 함께 전공의 집단 사직을 조장해 업무방해를 교사했다는 혐의로 의사면허 정지 3개월 처분을 받은 적이 있다. 지난해 2월 김 회장은 의대 증원 반대 집회서 “함께 투쟁해야 한다”며 시위에 앞장섰다.

같은 달 25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앞,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회원 300여명은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정원 70% 확대 정책에 반대하며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서 김 회장은 “40개 의과대학이 있는데 20여개를 더 만들면서도 아무런 대책이 없다”며 “내가 아는 윤석열 대통령은 합리적이고 법에 밝다. 법으로 할 것이 있고 대화로 해야 할 것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의료정책은 한번 망가지면 되돌아올 수 없다”며 “의료 전문가로서 향후에 닥칠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떻게 이기주의가 되느냐”고 호소했다.

집회 여파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김 회장과 박 위원장에게 의사 면허 자격 3개월 정지 처분을 내렸다. ‘의대 정원 증원 저지 궐기대회’ 당시 이들의 발언을 문제 삼은 것이다.

김 회장은 “여러분의 마음을 한곳으로 모아 기필코 정원 저지를 위해 앞장서겠다. 저 혼자 면허 취소하고 던지지 않겠다”며 “13만 대한민국 의사가 동시에 면허가 취소되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야 우리가 이 전쟁서 승리한다”고 발언했다.

정부와 강경투쟁 시동
‘의대 증원 중단’ 촉구

박 위원장은 “투쟁이 필요하다면 서울시의사회가 앞장서겠다”며 “저 박명하는 의사 회원과 국민을 위한 저지 투쟁서 저 개인의 희생을 영광이라는 각오로 오로지 저지 투쟁의 최선봉에 서겠다”고 말한 것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김 회장은 면허정지 처분에 대해 한시적으로 중단해달라며 집행정지를 신청했지만 법원서 기각됐다. 그는 “정부의 필수의료 패키지와 2000명 의대 증원은 대한민국 의료의 붕괴를 촉발하는 독단적이고 과도한 정책”이라며 “14만 의사 회원과 2만 의대생들의 자발적이고 정당한 의사 표현을 조기 차단하기 위해 정부는 전방위적으로 법률상 근거도 없는 무리한 겁박을 감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의 이번 면허정지 처분은 우리의 투쟁 의지를 더욱 견고히 할 뿐임을 명백히 밝힌다”며 “우리의 정당한 투쟁서 발생하는 어떠한 희생도 감수할 것이다. 향후 추가적인 행정처분뿐만 아니라 경찰과 검찰의 부당한 압박에도 흔들림 없이 저지 투쟁의 선봉에 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16일 김 회장은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취임 후 첫 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에서는 새로운 집행부 구성과 의료계 현안 대응 방향에 대해 밝혔다.

그는 “대통령이 궐위 상태므로 추진했던 모든 정책은 잠정 중단하는 것이 맞다”며 의대 증원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또 의대 교육과 전공의 수련 정상화에 확고한 입장을 밝히며, 논의 여지가 있는 대안을 정부가 먼저 제시하기 전까지 의정 간 협의는 어렵다고 못 박았다.

김 회장은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 관련 논의에 앞서 반드시 2025년도 의대 교육 정상화를 위한 마스터플랜을 제시할 것을 촉구한다”며 “이 상태로는 도저히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음을 인정하고 명확한 계획과 방침을 공표해야 의료계도 2026년 의대 정원 문제를 포함한 계획을 논의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비공개 회동
마스터플랜

김 회장은 2025학년도 증원에도 여전히 반대하는 입장이다. 2026학년도와 더불어 올해 증원 계획조차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2025학년도 증원은 받아들이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받아들일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이어 “증언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가 아니라, 교육이 가능한지 아닌지를 정부에 묻고 싶다”며 반문했다.

그는 “의협이 그간 협의체서 탈퇴하는 방식으로 항의 표시를 했는데 이 부분은 한계가 있어 앞으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의 아젠다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가 신설을 진행하고 있는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그는 “공정성과 구성 등이 불합리하다고 본다”며 “공정성과 합리성을 담보로 하는 위원회에서는 충분히 의견을 제시할 수 있지만, 경영자나 특정 지역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위원회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이어 “올바른 법안이 만들어지는지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의대생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의협 내 구조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날 의협의 새 집행부 명단도 공개됐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새로운 부회장단에 합류했다. 박 부회장은 “이전 의협 집행부와 소모적인 갈등이 진행된 측면이 있었지만, 앞으로 집행부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고민하겠다”며 “같은 목적을 갖고 해결 방안을 찾아야 현재 의료 사태의 해결을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김 회장은 주말에 비공개 회동을 했다. 이날 만남을 통해 2026년학년도 의대 정원 조정 문제와 ‘의정 갈등’ 현안에 대해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동은 이 부총리의 제안으로 성사됐다. 이 부총리가 김 회장과 상견례를 통해 비공개로 만났고 올해 증원에 따른 교육 방안에 대해 의논했다고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는 “의대 증원이든 감원이든 허심탄회하게 대화해서 서로 욕먹을 각오로 담판 짓자”는 얘기가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의대 정원
시급하다

교육계에선 ‘2026학년도 의대 정원 감축’에 대한 얘기도 나눴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교육부 관계자는 “이 부총리와 의협회장이 처음 만난 자리였고 사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했다”고 반박했다.

최근 대학 총장들과 만난 자리서 이 부총리는 지난 1년간 의대 증원 문제로 인해 겪은 힘겨움을 호소했다는 후문이다. 의대 정원은 교육부 장관이 보건복지부 장관과 협의해 결정할 수 있다고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나와 있지만 실상은 교육부 장관에게 결정권이 없고 대통령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정부 내에서도 2026학년도 의대 정원에 의견이 분분하다. 대통령실과 복지부는 의대 정원 축소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의정 갈등 주무 부처인 복지부서도 반대 의견이 강하다. 의정 갈등 실무를 지난 1년 동안 총괄한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의대 증원을 되돌릴 거면 지난 1년간 왜 그렇게 환자들을 힘들게 했냐”며 “핵심 정책을 바꾸려면 사람을 바꿔야 한다”고 질책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계는 합격자가 발표된 지금까지도 2025학년도 의대 모집 취소를 요구해 왔다”며 “저자세 대응으로는 전공의도, 의대생도 돌아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도 같은 입장이다. 사직 전공의 복귀율이 2.2%로 미미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4월 각 의과대학에서는 정부 방침인 2000명 증원을 반영해 2026학년도 대학입학전형 시행계획을 공지했다. 하지만 2026학년도 의대 정원에 변동이 생긴다면 각 대학들은 4월 말까지 한국대학교교육협의회에 대입전형 시행계획 변경을 신청해야 한다.


의대 정원은 정부가 결정권을 쥐고 있는 만큼 전체 의대 정원을 몇 명으로 할지, 각 대학별로 어떻게 배분할지를 빠르게 결정해야 한다.

“욕먹을 각오로 담판 짓자”
“과거같이 끌려가지 않겠다”

의협은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을 0명으로 하거나 2025학년도에 증원된 만큼 덜 뽑아야 의대 교육이 정상화된다”고 주장했다. 이 부총리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지난 1년간 많은 대책을 내놓았지만 의대생들은 돌아오지 않은 상황이고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을 줄여야 의대생들에게 명분이 생긴다는 입장이다.

앞서 정부는 전공의 유인책으로 수련 및 입영 특례를 적용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현재 전공의 수련 규정은 사직 후 1년 내 복귀를 제한하고 있지만 전공의가 사직 전 수련한 병원과 전문과목으로 복귀하는 경우에는 수련 특례 조치를 통해 이 같은 규정을 적용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사직한 의무사관 후보생이 수련에 복귀하면, 수련을 마친 후 의무장교로 입영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공표했다.

하지만 의협은 이런 정부의 유화 조치에도 “의대교육 정상화 방안부터 내놔야 한다”며 강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 대해 “후속조치에 불과하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부가 전공의 복귀 조치와 함께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원점 검토 입장을 밝히고,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공개 사과도 했지만 완고한 태도를 유지한 것이다.

김 회장은 “과거같이 정부 정책에 끌려가지 않겠다”며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가 결자해지한다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2월 의대 증원 발표 이후 의대생들이 대거 휴학했다. 이들이 새 학기에 모두 복학할 경우 2025학번 신입생을 포함해 최대 7500명가량이 한꺼번에 1학년 수업을 듣게 된다.

최근 정부 회의서 이 부총리는 이 문제에 대해 “서울대 의대생들 대다수도 이번 학기에 복귀할 것 같다”며 “정부가 선제적으로 의대 정원을 제로베이스서 재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서 복귀를 촉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25년에는 교원 증원과 시설·기자재 확충, 의대교육 혁신 지원 등 의학교육 여건 개선에 총 6062억원 예산을 투자하겠다”며 의대생들 복귀 시 수업이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연이어
강경파

일각에선 2026학년도 신입생을 아예 뽑지 않거나 줄여서 뽑은 후 2024·2025학번을 올해와 내년에 분산해 수업을 듣게 하는 방법도 제기됐다. 대다수의 대학교가 3월에 개강을 앞두고 있는 만큼 2026년 의대 정원은 내달까지 확정해야 한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회서 ”3월 신입생이 돌아오기 전에 의협과 빨리 협의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imsharp@ilyosisa.co.kr>
 

<기사 속의 기사> 박단 신임 부회장 MZ 의사 대표로 등장

지난해 전공의들의 병원 이탈 사태를 앞장서 주도했던 박단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장의 부회장 선임이 눈에 띈다.

대한의협 김택우 회장은 “새로운 의협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최적의 인선을 완료했다”며 “박단 비상대책위원장을 부회장으로 임명했고 젊은 의사들의 참여를 대폭 확대했다”고 말했다.

제43대 의협 집행부서 13명의 부회장 중 80,90년대생은 박 위원장이 유일하다.

그는 올해 나이 만 34세로 가장 젊은 나이로 부회장이 됐다.

지난달 19일에 마감한 사직 전공의 모집 결과, 전체 사직 전공의 9220명 중 2.2%인 199명이 지원했다.

이를 두고 박 위원장은 “정부에 이렇게 될 거라고 경고했다”며 비판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부는 언제까지 발악할 것이냐”며 “지난 6월 교육부 이주호 장관을 만나 진작에 이렇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더니 그럴 리 없다고 했다”며 “플랜 B가 없겠냐? 정부를 무시하지 말라더니 어떻게 된 것이냐”고 일침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에게는 “잘못을 했으면 시인하고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사태 수습도 해야 한다. 눈 가리고 아웅하면 누가 해결해 주겠느냐”며 “당신들 때문에 의료가 무너지고 있다. 무리해서 강행하셨으니 수습할 대책을 가져오라”고 조치를 촉구했다.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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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