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북풍 공작’ 노상원, 탈북민 휴민트 접촉 정황

‘용현파’ 북 원점 타격 조력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성민 기자 = 12·3 불법 계엄 사태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민간인 신분임에도 정보사 안가서 군 간부들과 회동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비상계엄 때 활동할 HID 요원 선발을 계획했다. 회의를 마친 노 전 사령관이 수시로 접촉한 이들이 있다. 탈북민 출신 휴민트들이다. 노 전 사령관이 실제 북풍 공작을 실행하려 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계엄 전부터 회의를 진행한 데 중 한 곳이다. 탈북민 출신 휴민트도 연루돼있다.” 한 군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주도한 이 모임의 장소는 대방아트센터로 알려진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 중앙신문단 건물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12·3 불법 계엄과 관련된 회의를 진행했다.

계엄 전
적극 회의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군·정보사 관계자들은 노 전 사령관이 회의를 마치면 탈북민 출신 휴민트(Human Intelligence)와 접촉했다고 강조했다.

21세기의 대북 첩보는 HID뿐만 아니라 북한 사람과 탈북민이 휴민트로 활동하며 첩보 보고서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정성욱 대령과 김봉규 정보사 중앙신문단장(대령)과 회동한 이후 탈북민 출신 휴민트들과 접촉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노 전 사령관이 만난 휴민트들은 현직 군인이 아니다. 정보사 내부에서는 이들에 대해 ‘민간인 블랙’이라고 하지만 현재 휴민트로 활동하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노 전 사령관은 이들과 지난해 3월부터 경기도 안양과 신길동 인근서 만났고 불법 계엄 직전까지 모임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군 정보 소식통은 “노 전 사령관이 국정원 파견 근무 시절부터 알고 지낸 이들이다. 김용현 전 장관에게 대북 첩보를 제공해 이쁨받을 때 이들의 공이 컸다. 노 전 사령관은 탈북민 출신 휴민트들과 회의한 내용을 항상 김 전 장관에게 보고했다”고 주장했다.

정보사 고위 관계자는 “탈북민 출신 휴민트는 휴민트 중에서도 가장 많은 대북 첩보를 알고 있는 이들이다. 북한 현지서 활동하다 내려와 대북 교란 전략과 혼란 유도 전문가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정보사 중앙신문단 위장 ‘대방아트센터’ 회동
노, 탈북 출신 휴민트 미팅 후 김용현에 보고?

다른 정보사 관계자도 “국정원이 관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육군 대북 첩보 공작 전문인 820(인간정보)병과에서 관리한다. 노 전 사령관은 150(일반정보) 출신이다 보니 대북 첩보 및 공작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다. 일부 언론서 노 전 사령관과 문상호 정보사령관이 전문가라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탈북민 출신 휴민트라면 ‘북풍 공작’ 적임자라고 볼 수 있다. 속초서 교육받은 북파공작원들이 공작 행위에 뛰어나다고 하지만 탈북민 출신들을 능가할 순 없다. 군은 수십년간 탈북민 출신들을 휴민트로 적극 활용해 왔다. 이들이 있었기에 북한과의 ‘정보 전쟁’서 우위를 점해 왔다”고 단언했다.

 

노 전 사령관과 신길동 건물서 만난 인물은 총 3명이다. 김 대령과 노 전 사령관, 정승욱 대령 등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모인 장소는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대방아트센터다. 탈북민들은 이곳을 대성공사라는 국가정보원 안가로 알고 있다.


국정원 직원들도 왕래하긴 하지만 정보사 소속의 6073부대 겸 중앙신문단 건물이다. 과거에는 중앙정보부·정보사·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국방정보본부·경찰 등 5개 기관이 이곳에서 탈북민을 합동으로 신문했다.

중앙신문단으로 명칭이 바뀐 건 1994년 4월이다. 2008년에는 관련 업무를 모두 경기도 시흥에 있는 중앙합동신문센터(이하 합신센터)로 넘겼다. 합신센터는 국정원이 관리했다. 2010년 탈북민 급증으로 합신센터가 모든 인원을 수용하지 못하자, 중앙신문단은 2014년까지 4년 동안 다시 탈북민을 받았다.

중앙신문단장인 김 대령은 12·3 불법 계엄 사태 당시 HID 파견을 주도한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수사를 받고 있다. 김 대령은 노 전 사령관의 지시로 대방아트센터서 정 대령과 함께 불법 계엄 선포 3주 전부터 HID 요원 선발을 논의했다.

3주 전부터
HID 선발 논의

정 대령은 최근 공수처 소환조사에서 “중복되는 인원은 최종 조율했고, 김 대령이 노 전 사령관이 ‘인원들 중에서 전라도 출신은 제외하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 조사를 받은 다른 정보사 관계자도 “대방아트센터서 선발한 HID 요원들이 서울로 오면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 회의한 내용을 노 전 사령관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했다”고 말했다.

노 전 사령관의 수첩에는 HID 요원들이 체포한 정치인, 언론인, 법조인 등을 수용할 방법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관할 지휘통제 벙커인 B1 벙커 외에도 추가적인 구금시설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방아트센터는 이미 장기간 수용과 심문에 필요한 시설을 갖췄다. 공수처는 비상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노 전 사령관이 주도하는 수사2단이 이 건물을 본부로 뒀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에 강하게 집착했다. 관련 증거 확보를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직원들을 고문할 물품까지 준비했다. 지난해 11월17일 경기 안산에 위치한 롯데리아서 노 전 사령관은 정 대령에게 “부정선거와 관련된 놈들은 다 잡아서 족치면 부정선거했던 게 다 나올 것”이라며 “야구방망이, 니퍼, 케이블 타이 등 물건을 준비해 놓으라”고 지시했다.

노태악 선관위원장에 대해서는 ‘직접 심문’ 의사를 밝혔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달 1일 안산 롯데리아서 정 대령과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노태악은 내가 확인하면 된다” “야구방망이는 내 사무실에 갖다 놓아라” “제대로 이야기 안 하는 놈은 위협하면 다 분다”는 등 심문 과정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취지의 말도 남겼다.

정 대령은 이때 노 전 사령관에게서 A4용지 10여장 분량의 문서를 전달받았다. 선관위 직원 체포 작전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와 자료였다.

“북서 활동한 공작·대북 혼란 야기 전문가”
공조본, 노 진술 거부 사실관계 확인 못해


그중 ‘부정선거와 관련된 선관위 직원’이라고 적힌 명단엔 선관위 전산 직원 5명, 정보보호 직책 직원 2명, 선관위 산하기관인 여론조사심의위원회 직원 23명 등 모두 30명의 이름이 담겼다. 정 대령은 최근 공수처 조사에서도 “선관위 직원 30명 이름은 노 전 사령관이 작성해 알려줬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이 외부에 공개되지도 않은 선관위 개별 직원들의 직책과 이름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었는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선관위 홈페이지에는 과장급 이상 간부 외 실무 직원들의 이름은 공개돼있지 않다.

정보사 고위 관계자는 “수사2단은 모두 현역 군인으로 구성됐는데 선관위 직원 명단 확보는 군 외부 인사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은 함께 자리한 김 대령에게 “선관위 홈페이지 관리 직원을 확보하고 ‘부정선거 자수 글’을 올리라”고 지시했다.

앞서 정 대령의 법률 자문을 맡은 김경호 변호사는 지난 20일 ‘대국민 사과 및 자료 공개문’을 배포하고 ‘햄버거 회동’을 통해 “선관위 직원들을 사실상 자유를 박탈하는 수단(필요하면 케이블 타이 논의)까지 검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정보사 ‘체포조’의 구체적인 도구 사진까지 공개했다. 송곳, 망치, 야구방망이, 케이블 타이, 안대 등이다. 검찰에 따르면, 정보사 간부는 30여명의 체포 대상자 명단을 작성하고 포승줄과 복면 등을 준비, 요원들에게 “포승줄로 묶고 얼굴에 복면을 씌운 후 수방사 벙커로 이송하라”고 지시했다.


군 정보 소식통은 “검찰이 공개한 사진 속 도구들은 정보사 물품이 아니다. 비상계엄이 지속됐다면 수사2단서 쓸 물품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정보사 내부는 현재 그야말로 아사리판이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계엄에 개입되면서 존폐 위기까지 언급되고 있다. 특히 대북 첩보·공작 비전문가들이 두루 요직을 차지하면서 문 사령관을 향한 분노도 커지고 있다.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지난달에 신임 100여단장으로 취임한 정모 준장은 문 사령관의 최측근이자 공작 비전문가”라며 “100여단장으로 150출신을 내세우는 건 간첩이 판치라는 얘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보망
초토화

공작요원들과 HID로 이뤄진 100여단은 지금까지 820특기 출신이 여단장을 맡아왔고, 820 내부서 준장으로 임기제(2년) 승진을 해왔다. 820특기 내부서 준장 승진자가 없는 경우에는 100여단 내에 있는 최선임 대령이 여단장 직무 대리를 맡아 왔다. 공작요원, HID 등 인간정보를 주특기로 하는 이들을 진두지휘해야 하는 100여단장이 공작 업무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인물이 된 셈이다.

다른 군 고위 관계자도 “이미 정보사 간첩 사건으로 휴민트망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황인데 비전문가가 여단장을 맡은 건 정보사 문 닫으라는 소리”라며 “내부서도 분노가 상당하다. 간부들이 내란범 최측근의 말을 듣겠냐”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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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