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록 법무사의 쉬운 경매> 배당요구종기 연기-임차인 29명, 배당받을 길이 열리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기 저편에서 다급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법무사 사무실이죠? 법무사님 좀 바꿔주세요”

“김기록 법무사입니다. 말씀하십시오”

“<일요시사>에 올린 ‘배당요구종기 연기’에 관한 글을 보고 전화 드렸습니다. 법무사님, 제발 저희 좀 도와주세요”

여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슬프지만 슬픔을 드러내지 않는 그래서 더욱 애처로운, ‘애이불비(哀而不悲)’가 투영된 목소리였다.

여인의 아들은 경기도 오산 소재 대학교에 입학을 했다. 가족들은 서울에 거주하고 있었으므로 아들을 위해 오산에 전세방을 구해야 했다.


여인이 가져온 임대차계약서와 아들의 주민등록초본, 임차주택의 등기사항증명서와 임차주택에 대한 경매사건의 사건검색을 통해 권리분석을 해봤다. 보증금 2800만원, 아들 명의로 임차인 대출을 받은 빚이었다. 전세방을 인도받아 입주하고,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도 받았다.

선순위 근저당권 때문에 대항력은 취득하지 못했지만, 배당요구종기까지 배당요구를 했더라면 적어도 소액보증금 1400만원은 배당을 받을 수 있을 텐데, 배당요구종기를 놓쳐버린 게 문제였다.

임차인이 임차주택에 경매가 들어온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은 먼저 집행관이 현황조사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임차주택을 방문했을 때다. 집행관은 경매목적물에 대한 점유관계를 조사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해서 점유자를 만나지 못하면 메모지에 전화번호를 적어서 연락을 해달라는 메모를 남긴다.

집행관이 경매목적물을 세 번 방문해도 만나지 못하면, 집행관은 전입세대에 대한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아 현황조사보고서에 첨부하여 법원에 제출한다. 전입신고가 된 임차인에게는 법원이 배당요구를 해야 배당을 받을 수 있다는 ‘임차인통지’를 하는데, 이 통지는 처음에는 송달통지서가 첨부된 우편송달을 했다가 송달이 불능된 경우에는 발송송달을 하게 된다.

발송송달은 실제 송달 여부와 상관없이 등기우편으로 우편물을 발송한 때에 송달의 효력을 부여하는 송달이다. 

여인의 아들이 사는 집은 50세대가 사는 건물이었다. 방이 50개에 이르는데도 호수별로 등기가 돼있지 않은 아파트였다. 10층짜리 건물에 1층은 주차장이고 9개 층은 방으로 구성돼있는데, 총 50개의 방을 가진 건물임에도 호수별로 등기가 돼있지 않은 탓에 임차인통지가 제대로 송달될 리가 없었다. 

경매사건을 검색해 보니 많은 수의 임차인이 배당요구종기가 지나도록 배당요구를 하지 않고 있었다. 외국인도 10명이나 됐다. 이제 임차인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가슴이 저려왔다.


배당요구종기는 경매기입등기가 되고 난 후 1주일 이내에 결정하되, 결정일로부터  2개월 이상 3개월 이내의 기간으로 정하도록 돼있다. 2개월 이상을 주는 것은 경매개시결정의 송달, 현황조사, 감정평가, 신문공고 등 매각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3개월 이내로 정한 것은 집행사건의 신속한 처리를 위함이다.

그리고 배당요구종기 연기는 배당요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배당요구종기를 준수하지 못한 데에 귀책사유가 없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해 주라는 것이 대법원 판례의 태도다(대법원 2013다204324 판결).

임차인들의 임차보증금은 그들의 전 재산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수년간 갚아야 할 빚인 경우가 많다. 임차인을 보호해주기 위해 국회는 주택·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과 전세사기피해자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었고, 법원도 주택임차권등기명령에 의한 임차권등기를 임대인에게 결정문을 송달하기 전에도 등기가 될 수 있도록 임차권등기명령 절차에 관한 규칙을 개정했다.

필자는 집행법원에 임차인들을 구제해 줄 필요성과 임차인통지서가 송달되지 못할 만한 사정 등을 감안해 배당요구종기를 연기해 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지난달 29일 배당요구연기신청서를 제출한 후 필자는 매일 관련경매사건을 검색했다. 여인에게도 가끔 사건검색을 해 보라고 일러줬다. 그러나 별다른 조치가 없었고 필자는 포기하고 있었다.

그랬던 것이 지난 19일 드디어 배당요구종기연기결정이 나고 임차인들에게 연기된 종기일인 내달 3일까지 배당요구를 하라는 임차인통지서가 배당요구종기를 놓친 28명의 임차인들에게 발송됐다. 필자가 배당요구종기연기신청을 하면서 대신 배당요구신청을 해줬던 여인의 아들까지 합치면 29명의 임차인이 배당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연기신청을 한 후 매일 기도를 올렸다는 여인의 전화를 받으며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그동안 얼마나 가슴을 졸였을까? 그나저나 저 28명의 임차인들이 이번에는 기회를 잃지 말고 부디 변경된 배당요구종기 이내에 배당요구를 해서, 그들의 임차보증금을 배당받아 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들이 ‘법에도 때로는 눈물이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아울러 이 같은 어려운 결정을 해준 집행법원의 조치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김기록은?]
법무사·공인중개사
전 수원지방법원 대표집행관(경매·명도집행)
전 서울중앙법원 종합민원실장(공탁·지급명령)
<김기록 법무사·공인중개사 NAVER 블로그(02-535-3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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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 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②윤통의 영구 집권 큰 그림

[단독 공개] 검찰 수사 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②윤통의 영구 집권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12·3 비상계엄이 해제된 지도 5개월이 지났다. 위헌이자 위법이었기에 내란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윤 전 대통령은 반국가 세력과 간첩을 여러 차례 언급하면서 과거와는 다른 유형의 계엄을 선포했다. 결과적으로 실패했으나 전두환보다 위험했고 무모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의 내란 수사 기록에는 그가 영구 집권을 꿈꾼 정황이 확인됐다. “규모로만 봤을 때는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 군 전문가들과 법조인들이 바라본 12·3 내란 사태에 대한 평가다. 재판에 넘겨진 군 장성들의 진술조서에도 이들의 규모와 체계가 구체적으로 적시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려 영구 집권을 계획했던 걸까? 경고성이자 평화적 계엄이었다는 주장은 무색하게만 들린다. 경고성 계엄? 대규모 준비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사태는 1979년 12·12 군사 반란과 흡사하면서도 다르다. 전두환씨는 당시 반란을 통해 1980년 5·17 비상계엄의 발판을 마련했다. 국회의원들을 협박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으나 장교 3명, 병사 95명에 불과했다. 윤 전 대통령이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등에 투입한 경찰과 군인 수는 각각 3144명, 1605명이다. 군 1605명을 부대별로 나눠보면 육군 특수전사령부 1109명, 수도방위사령부 282명, 국군방첩사령부 164명, 국군정보사령부 약 40명, 국방부 조사본부 10명이다. 전씨의 반란과 비교하면 약 16배가 더 투입됐다. 군사력에 의존해 기존의 사회 시스템을 무너뜨린 행위는 같으나 규모로 보면 국회의원들을 겁박하는 수준을 넘어 국회를 점령하거나 통제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 목적이 뚜렷한 친위 쿠데타였다는 평가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내란 수사 기록을 보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계엄 열흘 전 (윤 전 대통령이) ‘10명이 넘는 관료들을 탄핵하는데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냐’고 말씀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은 이외에도 김 전 장관에게 ▲명태균씨 공천 개입 의혹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 재판·수사 관련 판·검사 탄핵 가능성 등을 언급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도 “윤 전 대통령이 항상 헌법상 비상조치를 해야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씀했고 평소에도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은 이른바 ‘충암파’로 불리던 최측근들에게 자신의 의견에 대해 반대하거나 정책에 태클을 거는 이들을 ‘반국가 세력’이자 ‘간첩’이라고 규정했다. 여 전 사령관은 검찰 조사에서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조해주, 조국, 양정철, 이학영, 김민석, 김민웅, 김명수, 김어준, 박찬대, 권순일 등이 체포 명단에 있다. 윤 전 대통령이 평소에도 부정적으로 말했던 사람들이다. 김 전 장관은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정치 활동 금지 포고령 위반자들에 대해 전시 합동수사본부서 체포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1년 전부터 “특단의 대책” 사실상 계엄 언급 군 장성 대부분 우려 “성공 가능성 낮다” 판단 국회에 투입된 군이 위에 언급된 이들을 체포했다면 비상계엄 해제는 불가능했다. 윤 전 대통령이 국회 장악에 성공했다면 건설적 논의 없이 “반국가 세력을 척결해야 한다”며 자신의 불법적 행위를 합리화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대통령실 출신 한 여권 인사는 “임기 초부터 여소야대 형국이다 보니 온갖 정책에 브레이크가 걸려 윤 전 대통령이 ‘격노’를 자주 했다. 술도 자주 마셨고 날이 갈수록 자신에게 직언하는 참모를 멀리했다. 항상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다른 정치권 관계자도 “합법적 수단을 통해 권력을 소유하던 국가 지도자가 입법부를 해체하거나 헌법을 무효화하려 했다면 쿠데타다. 체제 전복 행위로 이어지고 대부분 전체주의적 독재자가 된다. 윤 전 대통령도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여 전 사령관은 계엄 성공 가능성을 낮게 봤다. 여 전 사령관은 검찰에 “계엄 당일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연락해서 ‘오늘 뭔 일 있는 거 아니냐’고 물었고 국무위원, 안보실장 등의 안전장치가 있는데 설마 하겠냐”고 했다. 또 여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정치적 문제를 왜 군사적인 계엄령으로 하느냐. 장병들이 초기에는 따를 수 있지만, 오래 갈 수 있겠느냐. 지금 대한민국 군대는 예전과 같지 않다. 휴대폰, SNS 등이 있어서 안 된다’고 했다”고 진술했다. 군 간부들은 윤 전 대통령의 국회 무력화에 대해 여러 차례 증언했다. 국회 무력화 시도 수차례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 수사보고서에는 특전사령부 소속 김형기 1특전대대장이 이상현 여단장으로부터 “‘담을 넘어가 국회 본관으로 들어가서 (국회)의원들을 끄집어내라. 걔들이(국회의원들이) 문 잠그고, 의결(계엄 해제 의결)을 하려고 한다’ 대통령님이 ‘(본회의장) 문짝 부숴서라도 다 끄집어내라고 한다’고 했다”고 적시됐다. 군인들이 국회의원을 체포하려 한 정황도 확인된다. 곽종근 전 사령관의 지시로 국회로 이동한 김현태 특전사령부 대령은 “케이블타이는 어떤 목적으로 갖고 간 것이냐”는 특수본 검사의 질문에 “특전사의 경우 테러 진압 시 적을 포박하기 위한 용도로 케이블타이를 쓴다. 곽 전 사령관이 ‘들어가서 끌어낼 수 있겠느냐. 진입이 안 되냐. 150명이 안 되는데’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김창학 수방사 군사경찰단장도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이 ‘국회 담을 넘어 들어가 게이트를 차단한 후 불응하는 사람들을 체포하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김대우 전 방첩사 수사단장은 여 전 사령관으로부터 “우리 부대 수사관 5명, 군사경찰 5명, 경찰 5명 등 타 인원과 25명으로 팀을 꾸려라. 이송 및 구금 명단은 14명이고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조해주, 조국, 양경수, 양정철, 이학영, 김민석, 김민웅, 김명수, 김어준, 박찬대, 정청래 등에 대해서는 인수받아 호송 후 구금시설로 이동한다”고 지시받았다. 김 전 수사단장은 “여 전 사령관이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에게 집중하고 위치추적과 구금까지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국회가 내란 사태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 계엄을 해제하는 데 성공했으나 윤 전 대통령은 이 전 사령관에게 “아직도 못 들어갔어? 본회의장으로 가서 4명이 1명씩 들쳐 업고 나오라고 해” “아직도 못 갔냐, 뭐 하고 있냐, 문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라고 지시했다. 사실상 ‘발포 명령’까지 내린 것이다. 이후 “국회의원이 190명 들어왔다는데 실제로 190명이 들어왔다는 건 확인도 안 되는 거고” “그러니까 내가 계엄 선포되기 전에 병력을 움직여야 한다고 했는데 다들 반대해서” “해제됐다고 하더라도 내가 2번, 3번 계엄령 선포하면 되는 거니까 계속 진행해”라고 다그쳤다. 음모론 배포 국민적 의혹 이 전 사령관의 얘기를 전해 들은 군 간부는 “‘대통령이 진짜 갈 데까지 갔구나. 돌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이 극우 유튜브에 심취했다는 건 검찰 수사 기록서도 확인된다. 자신의 참모들에게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해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윤 전 대통령의 얘기를 가장 귀 기울여 들은 건 김 전 장관이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조사에서 “매해 선거 때마다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됐고, 증거자료들이 제출되거나 부정선거에 대한 명확한 스모킹건이 될 수 있는 자료도 나왔음에도 조사도 안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국민적 의혹이 있던 건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특수본 검사가 “부정선거에 대한 증거자료가 무엇이고 의혹의 출처는 어디냐”고 묻자 그는 “선거인보다 투표인이 더 많은 선거구도 있었고 직인이 안 된 투표용지, 투표함 바꿔치기, 해킹, 전산 조작 등의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고 부방대(부정선거방지대책본부)에 많이 나와 있다. 대통령께서 가장 우려하셨던 건 국정원의 보고였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국정원이 진짜 서버도 아닌 모형 서버임에도 보안시스템이 취약해 아무나 해킹해 선거 조작을 할 수 있다는 수준이라고 보고했고 실제 해커들을 투입해 서버에 들어가 투·개표 용지 바꿔치기, 개표 과정 개입 등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다 성공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국회 입법권 무력화 노린 후 개헌 계획? ‘노상원 수첩’ 검찰 수사 진척 오리무중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검찰 조사에서 “2021년 3월부터 2년간 선관위에 대한 북한의 해킹 시도가 8회 있었고 국정원 3차장 산하서 보완 조치를 해달라고 선관위에 통보한 바 있다. 2023년 6월에는 선관위 요청으로 국정원과 한국인터넷진흥원, 선관위 등이 합동 점검을 실시했는데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전 장관과 윤 전 대통령이 부정선거 음모론의 실체를 확인하는 과정을 적극적으로 도운 인물이 있다. 내란 기획자로 지목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다. 노 전 사령관에 대한 검찰 수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의 수첩에는 극단적 표현이 담겨있다. ‘1차 수집’이라는 제목으로 국회가 있는 여의도서 30~50명, 언론 쪽은 100~200 민노총, 전교조, 민변, 어용 판사와 함께 ‘500여명 수집’이라고 적시됐다. 노 전 사령관은 ‘수거 대상 처리 방법 연구’와 ‘수거 후 호송 시 대책’을 구체적으로 적었다. 인물마다 등급을 매겨 ‘특별 수사와 재판소로 사형, 무기형을 받게 한다’고 적고, ‘수거 A급 처리 방안’으로 ‘연평도 이송’이라고 적었다. 특히 A급으로 분류한 인물들을 가스·폭파·침몰·격침 등을 통해 사살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단어를 강조했다. 그의 수첩에 적힌 ‘백령도 작전’ 내용과 국지전 유도 등 외환죄로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은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 노 전 사령관은 계엄 이후의 계획을 적기도 했다. 헌법 개정을 통해 ‘재선’을 넘어 ‘3선’이라고 적었다. 중국과 러시아의 선거제도를 연구해야 한다고도 썼다. 검찰은 백령도 작전이 수거 대상을 체포한 뒤 배에 태워 백령도로 보내는 과정서 사살한다는 취지의 내용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수첩은 김 전 장관과 논의했던 것들”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노상원과 김용현이 논의한 내용은 윤 전 대통령에게도 보고됐다. 보통 김용현이 질문하고 노상원이 답하는 식”이라며 “대화를 나눈 내용 중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수첩에 적는 습관이 있다”고 주장했다. 재선, 3선… 독재자 발상 군 출신의 한 야권 의원은 “수년 전부터 반국가 세력이라고 규정하면서 대화를 배제하고 협치를 실종시켰다”며 “민주당을 몰아낸 이후 개헌을 주도해 임기 연장을 구상했다면 영구적으로 대통령을 하겠다는 독재자와 같은 발상”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검찰 특수본은 경찰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으로부터 노 전 사령관의 수첩을 넘겨받았으나 여전히 외환죄와 관련된 수사에는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노 전 사령관의 재판에도, 검찰의 공소장에도 그의 수첩과 관련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정치권의 ‘내란 특검’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