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합의제 폐지 막전막후

사공 바뀌고 점점 더 산으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국가인권위원회가 산으로 가고 있다. 최후의 보루인 ‘합의제’마저 폐지돼 설립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평가다. 안창호 체제가 들어서면서 회의 분위기가 극우화됐다는 내부 의견도 적지 않다. 실제 인권 문제를 법리적으로만 해결할 수 없음에도 무대응으로 일관하거나 각하하는 경우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권고도 안 하고 반드시 논의해야 하는 사건은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한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의 말이다.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이 신임 인권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사태는 더욱 악화됐다. 막말 논란서 빠지지 않는 이충상·김용원 상임위원의 영향력이 더욱 커져 회의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선택적 의견
개진·권고

인권위가 소위원회의 만장일치 의결 관행을 폐기한 건 지난달 28일이다. 안 위원장은 같은 달 국회 운영위원회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만장일치 관행 폐기가 김 위원의 결정이 위법하다고 한 판결의 법망을 피하기 위한 시도가 아니었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 40년 가까이 한 법조인의 양심을 걸고 해석한 것”이라고 답했다.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은 “김 위원 등은 1명만 반대해도 진정을 기각할 수 있도록 운영 규칙을 바꾸려 시도했으나 송두환 전 위원장이 ‘사회 각계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요구했다”며 “문제는 지난 7월 법원이 기각이 위법하다고 판결하자 법망을 피하고자 규정을 바꾸려고 시도했는데도 ‘법꾸라지’라는 비판을 안 받겠느냐”고 지적했다.

안 위원장은 “법리적으로 그날 결정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법리적으로 3명의 찬성이 있을 때만 인용될 수 있고 과반수로 의결되지 않으면 기각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다만 “그렇게 운영이 되면 미흡하게 처리될 수 있는 문제가 있기에 2 대 2일 경우에 있어선 소위서 노력해야 한다는 별도 의견을 냈다”고 설명했다.


앞서 인권위는 3명으로 운영하던 소위원회를 4명으로 늘리고 구성위원 1명만 반대하더라도 진정을 전원위원회에 회부하지 않고 기각 또는 각하할 수 있도록 운영 방식을 변경하는 안건을 전원위서 의결했다. 지금까지 인권위 소위원회는 만장일치가 되면 곧바로 공식 입장이나 권고를 낼 수 있고 1명이라도 반대하면 합의에 이를 때까지 토의하거나 전원위에 넘겨 논의해 왔다.

지금까지 김 위원과 이 위원을 포함해 한석훈·한수웅·김종민·이한별 비상임위원 등 6명은 ‘소위원회서 의견 불일치 때의 처리’에 대한 의안을 전원위에 제출하면서까지 관행을 깨려는 움직임을 노골적으로 보였다.

법제처는 인권위 관행이 깨지는 것에 대해 “유권해석은 가결되지 않으면 부결된다는 식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인권위원회법 제13조의 의결을 가진 가결로 축소 해석할 필요가 없고 성문법 주의를 취하고 있는 우리나라서 법령 규정의 문자나 문장이 의미하는 바에 입각해 해석하는 게 원칙”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인권 영역 법리만으로 해결 불가한데…
약자 보호해 온 ‘합의제’ 역사 속으로

인권위의 오랜 관례를 깨려는 위원들의 판단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법제처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소위원회서 진정 사건을 처리할 때 가결이 아니면 부결이라고 보거나, 위원회법 제13조를 권고 결정에 한정해 가중된 의결정족수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타당하지 않다 ▲의결과 가결, 부결의 개념, 법 문언의 형식, 다른 유사한 합의제 행정기관의 입법례와 이에 대한 법제처의 유권해석, 더 나아가 위원회법의 목적과 취지, 위원회 결정의 효력 등을 전체적으로 고려할 때, 위원회 설립 이후 지속돼온 의결정족수 규정에 관한 해석과 적용을 위 새로운 주장에 근거해 변경할 수는 없다 ▲소위원회는 위원회법 제13조에 따라 각하, 기각, 권고 등 결정에 3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진정에 관해 의결할 수 있으므로, 어느 하나의 결정에 3인 이상의 찬성이 없으면 의결할 수 없다. 따라서 의결정족수에 미달할 경우, 위원들 간 토론과 설득을 통해 합의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공통의 결론을 내리기 어려우면 본래 전원위원회에서의 위임 취지에 따라 전원위원회에 회부하는 것이 위원회 위원들에게 주어진 역할과 임무다.


김 위원의 막말과 비상식적 태도는 국정감사에서도 논란이 됐다. 민주당 신장식 의원은 김 위원을 향해 “자신의 사적 복수를 위해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에 대한 인권위 직권조사를 하려 한 것 아니냐”고 묻자 김 위원은 “답변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고 했다.

대답을 들은 야당 의원들은 일제히 쏘아붙였고 박찬대 위원장은 “신중히 답하라”고 경고했다.

김 위원은 국정감사에 앞서 하는 증인선서를 앞두고도 “저는 개별적으로 증인선서를 하겠다”며 “형사소송법은 증인이 증인 선서문을 낭독하고 서명·날인을 하게 돼있을 뿐이지 무슨 합동결혼식처럼 집단 선서를 하는 것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야당 의원들은 “운영위뿐만 아니라 많은 상임위서 증인들이 함께 선서한다. 국회에 나와서 증언했던 수많은 증인을 모독하는 언사”라고 비판했다.

20년 지킨
관행 폐기

안 위원장은 김 위원의 합동결혼식 발언이 적절했느냐는 질문에 “저 같으면 그런 발언을 안 했을 것”이라면서 즉답을 피했다.

이 위원 역시 막말 논란서 자유롭지 않다. 지난달 30일 열린 제17차 전원위서 이 위원은 이날 상정된 ‘2023 국가인권위원회 인권보고서 발간의 건’을 심의하는 과정서 보고서에 서술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 관련 부분을 언급하다가 “인권위가 민주노총 지원 인권위원회로 활동해 왔고, 북한 인권에 관해서는 부끄러울 정도로 소극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관련된 특정 팀장 이름을 거명하며 “일을 안 하면 안 할수록 송두환 전 위원장이 좋아했다”고 했다고 한다. 또 인권보고서에 적힌 재판 지연으로 인한 인권침해 서술 부분(재판 신속성 도모)에 수정할 대목이 있다며 “집필자가 누구냐”고 특정 직원 두 명의 이름을 댄 뒤 “쪽팔리다”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위원은 이날 전원위서 이런 발언에 대해 다른 위원이 항의하자 특정 팀장을 다시 거명하며 “정년퇴직 1년 남은 사람을 과장으로 승진 안 시키는 게 관례인데 굳이 승진시켰다”고 비난 수위를 더 높였고 “객관적 진실이자 공익을 위한 발언”이라고 항변했다.

인권위 내부 게시판에는 ‘그런 행태는 비판이 아니라 비난, 힐난임’ ‘전원위서 사무처가 아닌 직원 개인의 이름이 거명되는 것을 보며 어떻게든 눈에 안 띄는 업무로 도망가야 하나 고민하게 됨’이라는 글이 올라와 있다고 한다.

이 위원은 직원들에게 갑질을 일삼기도 했다. 정치권과 <한겨레> 단독 보도에 따르면 인권위는 지난 7월 이 위원과 관련해 제기된 갑질 사례를 조사한 직장 내 괴롭힘 감사 결과 보고서를 정리했다.

이 위원은 지난 2022년 10월 취임 직후 공직자 재산등록을 하는 과정서 담당 직원에게 신분상 불이익을 줄 듯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해당 직원은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고 주변에 스트레스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잇단 막말
끼어들기

피해자의 상급자는 인권위 조사에서 “당시 이충상 위원은 ‘피해자가 잘못 말해서 팔 필요가 없던 주식을 팔았다’ ‘피해자가 미리 본인에게 교육 간다고 말하지 않았고 대체 업무 처리자가 누구인지도 말하지 않았다’며 화가 많이 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진술했다.

이 위원은 “(피해자가)여러 가지로 잘못 안내했고, 내 재산공개에 관해 별로 한 게 없다. 담당 과장이 나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감사반에 진술했다. 피해자는 이 위원의 압박에 “왜 업무 때문에 이런 협박을 당해야 하는지, 제가 저지른 미스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며 사의를 표명했으나 주변의 만류로 이를 철회했다고 한다.

인권위는 육군 12사단 훈련병 사망사건과 관련해 의견 표명조차 하지 않았다. “군 스스로의 개선 노력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게 이유다.

인권위는 육군 12사단 신교대대 운영과 관련해 방문조사를 벌였다. 결과 보고서에는 12사단 신교대대가 교관 및 간부들에 대한 인권교육을 미실시하거나 상급부대의 적절한 조치가 없었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담겨있다.

인권위는 인권교육과 관련해 “육군 12사단 신교대대는 훈련병 대상의 인권교육을 신병교육훈련 과목인 정신교육시간에 실시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어 관련 지침을 준수하지 않은 부분도 확인됐다”며 “지정된 인권교관에 의해 신교대대 교관 및 간부들에 대해 인권교육이 실시된 적도 없었다”고 보고서에 적었다.


또 보고서에서는 “여단 차원서 훈련병들을 대상으로 설문이나 고충 접수를 위한 여하의 관리적 측면의 점검이 있었다고 볼 기록도 확인되지 않는다”며 “사단 차원서 사전에 충분한 고충 접수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조치했다면 금번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고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창호 체제 후 합리적 의사결정 무력화
이충상, 막말에 직원 갑질 징계도 못 해

그러면서 “육군 12사단 신교대대는 기존에도 훈련병 교육에 있어 불합리한 관행이 잔존했음에도 상급부대의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문제점이 있었음이 확인된다”고 강조했다.

인권위는 국회 운영위원회의 인권위 국정감사를 앞두고 방문조사 결과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중요 내용 일부를 삭제하기도 했다.

인권위는 육군사관학교 선임 기수 생도들이 파이 데이(3월14일)에 1학년 생도들에게 초코파이 등 파이류 과자를 강제로 과도하게 먹이고 있다는 제3자 진정과 관련해서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인권위 군인권보호국은 육사 1~4학년 생도를 대상으로 한 개별 및 집단 면담과 전체 생도 106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인권위는 “3월14일 파이 데이 당일 생도 면담 과정서 ‘파이류 과자’를 먹도록 하는 관행과 육사 생도 간 발생한 파이 데이 취식 강요 문화는 과거부터 존재해 오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생도 1·2학년의 경우 선배들의 취식 강요를 거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인권침해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했으며, 나아가 취식 강요 외에도 선배 생도의 후배에 대한 부당한 행위나 차별적 관행 등이 있을 개연성도 있다고 봤다.

전체 생도 1067명을 대상으로 한 모바일 설문조사 결과, 89%는 파이 데이 등 취식 강요 문화를 알고 있었다. 특히 응답 내용 중 일부에선 “3월14일 감시가 심할 것이라며 전날 실시했다” “3월10일과 18일 취식 강요를 경험했다” “10분 안에 음료수 없이 최대한 많이 취식해야 했고, 분대별 대결 형태라 과식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서 금지해도 암암리에 진행했고, 강압적 분위기를 형성해서 토하거나 괴로워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등 구체적인 피해 내용이 언급되기도 했다.

군 문제 조사
의견 표명 무

군인권보호국은 이 같은 방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육사에 파이류 과자 강제취식에 관한 인권침해 관행을 시정해야 한다’는 정책권고와 의견 표명안을 군인권소위에 올렸다. 하지만 지난 9월24일 열린 군인권소위서 군인권보호관을 맡고 있는 김 위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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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