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㉑험한 세상 거지로 버티기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4.10.14 04:00:00
  • 호수 15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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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건 그렇구 저 꼬맹이는 어떻게 할 거요? 저렇게 또 찾아오는 걸 보니 앞으로도 계속 올 것 같은데 말요.”

“그러게 말여. 잠이야 재워 준다고 했으니께 오는 거야 상관없지만…….”

“꼬마야, 너 어디 살았는지 정말 기억이 안 나냐?”

“예…….”

왕초네 식구들


“그럼 말이다, 네 발로 가까운 경찰서엘 한번 찾아가 봐라. 그래서 어디 고아원이라도 들어가야지, 무작정 이러면 어떡할 거야, 응?”

용운이 묵묵히 듣기만 하자 한참을 더 타이르던 텁석부리 사내는 피곤한지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텁석부리 사내가 돌아간 뒤 자리를 깔고 눕기 무섭게 노인이 주절주절 얘기를 시작했다.

“나는 니가 어쩌다 이렇키 됐는지 자세히 모르겄다. 밑도 끝도 없는 니 말을 어디까지 믿어얄지도 모르겄구 말이야. 하지만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고아원에 가기 싫거들랑 털보 왕초네 식구라도 되는 게 어떠냐? 험한 시상 죽지 않고 버틸라문 그렇키래두 해야지. 무작정 에미만 찾을라는 니가 안되어서 하는 소리여.”

“괜……찮아요.”

“괜찮다니? 배를 곯는데도 괜찮어?”

“예…….”


“거지들은 안 가는 데가 없단다. 그러니 그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에미를 찾을 수도 있을 거야.”

“정말인가요? 그럼 할아버지 말씀대로 하겠어요.”

용운은 재빨리 말했다.

노인은 한숨을 쉬며 언제까지고 용운을 멀뚱멀뚱 내려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멀리서 야경꾼의 딱딱이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똑바로 누워 있던 용운이 고개를 돌리고 바라보자 노인은 한숨을 푹 쉬더니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거지들에게도 엄한 법이 있어서 남의 구역을 침범해서는 안 되고 도둑질은 더욱 금물이니라. 동냥을 할 때는 끼니때가 조금 지난 뒤에 가는 게 예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은 도와주는 것이 도리니라. 알겠느냐?”

“예.”

“먹고 사는 게 중요하냐? 살기 위해 먹느냐? 구걸할 때마다 이 문제를 항상 명심하거라. 비천한 신세이지만 거지에게도 좋은 점은 있단다. 모든 걸 다 놓아 버리고 아무 욕심도 없이 자유롭게 한 세상 떠돌다 가는 것도 한 가락 낭만은 있지 않겠나. 부귀영화도 좋지만 욕망과 소유의 괴로움을 벗어나는 것이 곧 천당이니라.”

“예.”

노인은 도사처럼 허연 수염을 쓰다듬었다.

“네 이름이 용운이라 했겄다? 음, 구름을 뚫고 승천하는 용의 운수로구나. 그걸 네 운명이라 생각하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지그시 참으며 헤쳐 나가야만 운이 펴인단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가출이 아니라, 큰 도를 찾는 출가라 생각하고 나아가면 그 또한 사나이의 한 멋이 아니겠냐? 모든 것엔 좋고 나쁜 양면이 함께 섞여 있다고 생각하면 한 단계씩 먹구름을 뚫고 승천하는 데 도움이 되리로다.”

“욕망·소유 벗어나”
그들만의 엄한 법


“예.”

노인의 근엄해진 표정이 좀 우습기도 했지만 용운은 순순히 대답을 했다. 

미리내가 은은히 흐르는 밤하늘에 별똥별 하나가 길게 꼬리를 끌며 어둠 속으로 사그라지고 있었다. 수많은 별들 중에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 별이 서울역 인파 속으로 사라지던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 같다고 용운은 생각했다.

용운은 다시 솟구치려는 눈물을 손등으로 찍어 눌렀다. 

청계천 다리 밑 텁석부리 왕초의 식구가 된 용운은 거지 세계에 정식으로 입문했다. 

용운의 일과는 아침 일찍 구걸하러 나가는 노인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노인은 구걸을 할 때면 언제나 용운을 앞세워 동정심을 유발했다. 


“늙은이야 상관없소만 이 어린 게 사흘이나 굶어서…….”

그런 작전은 때로 효과가 있어서 동냥질은 비교적 순조로운 편이었다. 그러면 노인은 불그스레한 잇몸이 드러나도록 히벌쭉 웃으며 부근의 헛간으로 가서 쪽박을 놓았다. 

노인은 날씨가 좋을 때면 밖으로 나가 옷을 벗고 이를 잡았다. 노인의 이 잡는 방법은 재미있었다. 이란 놈은 항상 옷의 솔기 속에 많이 숨어 있게 마련이었다.

노인은 솔기 부분을 양손에 길게 늘려잡고 이쪽부터 저쪽까지 어금니로 잘근잘근 씹어가는 것이었다.

“타닥, 톡, 툭, 틱…….” 하는 그 소리 또한 들을 만했다. 

일단 기습 작전이 끝나면 다음엔 평평한 돌 위에 옷을 펼쳐놓는다. 그러면 곧 죽지 않은 이들이 사방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왔다.

영감은 반들반들한 돌멩이로 그것들을 따라가며 콩콩 찍어 죽였다. 어쩌다 피를 잔뜩 빨아먹어 통통한 놈이라도 몇 마리 나오면 즉각 죽이지 않고 싸움을 시키며 가지고 놀았다.

잔뜩 처먹은 시뻘건 놈들이 성을 내며 싸우는 꼴은 볼만하면서도 징그러웠다. 그러다가 노인은 싫증이 나면 손톱으로 탁 터뜨려 죽이고는 히히 하고 웃는 것이었다. 

아침에 구걸을 나가다 보면 동네 어귀에 옹기종기 모여 아침밥 짓는 굴뚝의 연기가 멎기를 기다리는 아이들과 마주쳤다.

어느 때는 쇠죽통 속에 손을 파묻고 있는 아이들과 만나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더러운 손을 흔들며 부르곤 했다. 손의 때를 벗기고 가라는 것이었다. 

쇠죽에 닦은 손

농부가 쇠죽을 쑤어 여물통에 내놓으면 슬쩍 다가가서 손을 푹 파묻었다.

묵은 때를 닦는 데는 그처럼 좋은 것이 없었다. 겨울철엔 더욱더 그럴 터였다.

뜨끈한 수분과 열기로 때도 잘 불지만, 볏짚과 콩깍지에서 우러나온 기름기가 비누가 되고 또 때수건 역할까지 해서 손은 신기하리만큼 잘 닦였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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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선포’발 윤석열 탄핵 시계

‘비상계엄 선포’발 윤석열 탄핵 시계

[일요시사 정치팀] 강주모 기자 =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6당이 4일, ‘비상계엄령 선포’를 선언했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이날 탄핵안에 포함된 인사는 윤 대통령 외에도 김용현 국방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포함됐으며 내란죄가 적용됐다. 국방부에 따르면, 이번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김 장관의 건의로 이뤄졌다. 이날 국방부 관계자는 ‘김용현 장관이 계엄을 건의한 게 맞느냐’는 질의에 “맞다”고 답변했다.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제출됨에 따라 헌법 및 국회법에 따라 본회의 보고 및 표결 절차를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법상 탄핵소추안은 본회의 보고 후 24시간 이후부터 72시간 이내에 의결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 이날 오전 민주당은 서울 여의도 국회서 긴급 의원총회 직후 결의문을 발표하면서 “윤 대통령이 사퇴하지 않을 시 즉시 탄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박성준 원내부대표는 “오늘 자정이 지난 시점에 국회 본회의를 개의해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을 보고할 예정”이라고 의원들에게 공지했다. 박 원내부대표는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의결해야 하니 토요일(7일)까지는 비상 대기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탄핵소추안의 의결 정족수는 재적 의원 300명 중 200명 이상으로, 민주당 및 범야권 의석(192석)만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정가에선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 소수 야당들도 윤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고 있는 데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이탈표가 나올 수 있는 만큼 가결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다. 만약 국민의힘서 8명 이상의 이탈표가 발생할 경우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게 되며, 대통령의 직무도 즉시 정지된다. 물론,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해서 탄핵이 이뤄지는 건 아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론이 나올 때까지 정지되며,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헌재 탄핵은 재판관 9인 중 6인이 찬성할 경우 인용되나 현재 6인 체제인 만큼 즉시 탄핵 심리는 어려울 것이라고 법조계는 보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박근혜정부 당시 ‘국정 농단’이 화두가 되면서 인용됐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헌재의 탄핵 결정이 나오기까지 3개월1일이 소요됐지만, 윤 대통령의 경우는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앞서 지난 3일, 윤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의 예산 폭거는 대한민국 국가재정을 농락했다. 예산까지도 오로지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이런 민주당의 입법독재는 예산 탄핵까지도 서슴지 않았다”며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이후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회의원 전원을 긴급 소집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상정한 후 본회의 표결에 부쳐 190명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면서 선포 6시간 만인 오전 4시30분께 전격 해제됐다. 이날 계엄작전은 미리 계획돼있었다는 듯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뤄졌다. 계엄령 선포와 함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됐으며 11시께 포고령 1호를 발령했다. 포고령엔 국회, 지방의회 등의 정당‧정치 활동은 물론, 파업, 태업, 집회 행위 등을 금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언론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을 것도 명했다. 이날 현장을 찾았다는 시민 등에 따르면, 국회에 투입됐던 경찰 병력은 더불어민주당 당직자 및 시민들의 경내 진입을 막아섰으나 자리를 지키는 정도로 격렬하게 대응하진 않았던 것으로 확인된다. 간혹 큰소리를 내며 국회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는 시민을 향해선 ‘지금은 출입이 통제된 상태니 자제해달라’고 고지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다만 공수부대, 특전사로 구성됐던 계엄군은 국회 본관 내 진입을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당직자 등에 따르면, 계엄군은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실 등의 유리창을 깬 후 본관 안으로 진입했다. 하지만 이들은 국회 및 민주당 당직자들의 거센 저지를 받았다. 이러는 사이 우 의장 직권으로 비상계엄 해제 결의요구안이 본회의서 가결 처리됐고, 계엄군을 막고 있던 이들은 “당신들은 반란군”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국회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통과되자, 윤 대통령도 4시29분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 해제를 선언하면서 긴박했던 12·3 비상계엄 6시간은 막을 내렸다. 의아스러운 부분은 ‘전공의를 비롯해 파업 중이거나 의료 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해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는 내용이었다. 또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이날 계엄군은 경기도 과천시 소재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도 투입됐다. 매체는 제보받았다는 영상을 근거로 “어젯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 이후, 무장한 계엄군이 국회 본청 뿐 아니라 또다른 주요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까지 장악하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오늘 새벽 비상등을 켠 버스서 내린 무장 군인들이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로 진입하는 장면이 담겨있다. 중앙선관위 청사에 투입된 2~30명의 계엄군은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은 10시20분경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더불어민주당의 예산 폭거는 대한민국 국가재정을 농락했다. 예산까지도 오로지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이런 민주당의 입법독재는 예산 탄핵까지도 서슴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자유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서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라고 지적하면서 “국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탄핵과 특검, 야당 대표 방탄으로 국정은 마비 상태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됐고, 입법 족대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며 “자유민주주의 기반이 돼야 할 국회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이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저는 북한 공산 세력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말했다. 또 “비상계엄을 통해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낼 것이며, 이를 위해 지금까지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다”며 “체제 전복을 노리는 반국가 세력의 준동으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안전, 그리고 국가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며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계엄 선포로 인해 자유 대한민국 의 헌법 가치를 믿고 따라주신 선량한 국민들게 다소 불편이 있겠지만, 자유 대한민국의 영속성을 위해 부득이한 것이며 대통령으로서 오로지 국민 여러분만 믿고 신념을 바쳐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낼 것”이라고 약속했다. 워딩 어디서도 의료나 전공의라는 단어는 물론 관련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이날 비상계엄 후폭풍의 영향으로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은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 한편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에 대한 탈당 요구, 내각 총사퇴 입장을 청와대에 전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한 대표는 서울 여의도 국회서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서 “내각 총사퇴, 국방부 장관 해임, 대통령 탈당을 요청해야 한다”며 “최고위원들도 이 의견에 공감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위기를 통과하지 못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kangjoomo@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