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대담> ‘돌아온 거물’ 정동영 ‘여야 막론’ 거침없는 쓴소리

“보이지 않는 손? 안보실에 있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박희영 기자 = 거물이 돌아왔다. 15대 국회를 시작으로 통일부 장관을 거쳐 내리 5선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정동영 의원의 이야기다. 22대 국회 문턱도 거뜬히 넘었다. 다시 한번 현역으로 뛰게 된 그는 민주당의 든든한 자산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소속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은 MBC 기자 출신이다. 세월이 흘렀지만 질문 하나에도 여유로운 태도로 예리한 답변을 도출하는 감각은 여전했다. <일요시사>와 만난 정 의원은 여야의 진영을 넘어 날카롭게 정치 현안을 짚어냈다. 다음은 정 의원과의 일문일답. 

-법원이 방송문회진흥회(방문진) 차기 이사진 임명에 제동을 걸었다. 추후 윤석열정부가 어떤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나? 

▲우선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방통위 방문진 신임이사 선임에 대한 임명처분 진행 정지 인용에 즉시 항고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항고를 다루는 곳은 서울고등법원인데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앞으로 행정법원서 신임이사 임명 처분과 관련해 본안 심리를 다룰 계획이다.

가처분 당시 법리 적용이 탄탄해 본안 결과도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법부의 판결 문제라 윤정부가 할 수 있는 부분도 딱히 없다. 6개월 뒤 본안 판결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데 이 판결도 취소 판결로 이어질 것이라 확신한다. 

-법원의 판단이 현재 진행 중인 이진숙 방통위원장 탄핵 심판에 줄 영향은. 기각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는데?


▲법원의 집행정지 인용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방통위는 독립성, 다양성 보장을 위해 대통령이 지명한 2인과 여당이 추천한 1인, 야당 추천 2인으로 구성되는 5인 합의제 행정기구다. 이런 상황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명한 2인의 결정만으로 방송문화진흥회, KBS 이사 선임을 결정한 일은 방통위 설치의 입법 목적에 위배된다.

또 합의제 행정기구 결정서 충분한 토론과 심의는 상당히 중요하다. 83명의 이사 후보 중 방문진 이사 6명과 KBS 이사 7명을 선임한 사실에 비춰 충분한 토론과 심의가 없었다. 

-심각한 위법이 있었다는 뜻인가?

▲행정서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은 입법의 목적에 충실한 이행과 절차에 대한 엄격한 이행이다. 이 위원장은 위법 행위를 실행한 사람이다. 임기의 길고 짧음은 중요하지 않다. 단 하루라도 방통위원장으로서 위법 행위를 했다면 헌법에 비춰 탄핵소추의 대상이 되는 일은 당연하다. 

-국민의힘은 야당이 내놓은 방송3+1법이 악법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사진의 수를 대폭 늘리고, 친민주당적 성향을 임명하기 위한 법이라고 비판하는데…

▲3+1법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방송3법과 방통위 설치법 개정안을 한데 묶어 부르기 때문이다. 방송3법은 공영방송인 MBC와 EBS는 이사 수를 현행 9명서 21명으로 늘리고, KBS는 11명서 21명으로 늘리자는 게 골자다. 이사 추천 권한을 방송과 미디어 관련 학회, 시청자위원회, 방송기자연합회와 같이 직능단체 등 외부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밖에 공영 방송의 사장 선임 역시 성별, 연력, 지역을 고려해 일반 시민 100명이 직접 사장 후보를 추천하는 방식이다. 


-방통위법 개정안도 여당에서 반대하고 있는데…

▲방통위법 개정안은 의결정족수를 4명으로 늘려 2인으로 방통위를 위법적으로 하는 부분을 차단하겠다는 데 있다. 이사 수를 늘려 정치적 간섭을 최소화시키고, 독립성과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을 보장해 특정 정파의 입김을 배제하겠다는 의미가 크다.

이에 대해 친민주적 성향의 이사를 임명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비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방송사를 정권의 장악 대상으로 바라보는 반개혁적 태도다. 

-선거 이야기도 묻고 싶다. 다음 달에 재보궐선거가 예정돼있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호남을 홀대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를 해결할 비책을 말해준다면?

▲호남 홀대론에 대해 호남의 중진 정치인으로서 송구하다. 호남 홀대론 배경에는 경제 문제가 있다. 경제 소외론 때문이다. 지역경제는 침체해 있고, 지역을 대표하는 기업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교통 인프라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결국 중앙정부의 집중적인 예산이 투여돼야 살아난다.

그래야 경제 소외론, 호남 홀대론이 사라질 수 있다. 호남은 민주당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지만 당이 잘못 가고 있다면 매섭게 회초리를 든다. 선거의 결과를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많은 곳이다. 최근 두 번의 전당대회를 치렀을 때 호남을 기반으로 둔 국회의원 중 선출직으로 지도부에 입성한 경우가 없다.

이번 지도부 구성서 지명직 최고위원은 호남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이 돼야 한다.

-이재명 대표가 당권을 잡은 이후 일부 강성 지지층 입김이 과하게 작용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금 윤정부는 날로 극우적 색채를 강화 중이다. 이와 함께 검찰을 동원해 ‘이재명 죽이기’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이 대표만 죽이면 된다는 광기에 휩싸여 있다. 반드시 윤석열정권을 극복하고 정권을 찾아와야 한다. 결국 지금 상황서 초극은 윤극을 위한 초극 체제인 셈이다.

“지금 민주당은 윤 극복 위한 이 초극 체제”
“한 대표는 부처님 손바닥 안 손오공 신세”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가 큰 이유는 당 외곽에 있던 정치 팬덤이 당 안으로 들어와 자기 목소리를 내는 현상으로 당원 주권주의, 당원 참여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흐름이 당장 낯설고 입김이 과하게 작용한다고 비치는 부분이 있지만 그 심연을 보면 민주주의 확대 과정이다.

멀리 보면 대의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가 새롭게 균형을 찾아가는 길이다. 


-민주당 계열 초일회가 만들어졌다. 민주당은 그동안 다양한 계파가 존재해 왔다. 

▲열린우리당 당시 당 의장을 맡았는데 리더십을 세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미국의 정치학자 샤츠 슈나이더는 “정당 정치서 민주주의의 핵심은 당내 민주주의보다는 여당과 야당 사이의 민주주의”라고 말했다. 정당에는 민주적 운영과 함께 지도부에 일정 정도 집중된 권위와 권한이 필요하다.

이는 선거가 대표적이다. 결국 지도부 집중이 관철되지 않은 채 계파라는 이름 아래 지도부의 권위가 부정된다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현상적 다원주의에 불과하다. 정당 내 포용은 지도부의 권위가 확립되는 가운데 이뤄져야 제대로 끌어안을 수 있다. 

-여러 계파를 끌어안을 통합의 방법이 있다면?

▲원내·외에는 여러 의견과 행동 그룹이 존재하는데, 이들 활동이 당내서 부정당하지 않는다. 요체는 의견과 행동이 당원과 지지자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느냐다. 과거에는 계파 간 공개적, 비공개적 교섭과 주고받기로 조율되는 경향이 강했다.

지금처럼 당원 주권주의, 당원 참여주의가 중요한 시기에는 당원과 지지자의 여론이 절대적이다. 당내 포용에 대한 관점이 달라야 한다. 즉 까다롭고 정보력이 많은 정치 관여 성격의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게 중요하다. 이 바탕 위에서 포용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최근 야권에서는 개헌 카드도 꺼냈다. 적절한 시기가 언제라고 보나?

▲가장 좋은 것은 윤 대통령의 임기를 1년 단축하고 개헌을 통해 오는 2026년에 새로운 헌법하에 대통령선거를 치르는 일이다. 일각에선 국회의원 임기를 1년 단축해 2027년 총선을 치르자는 주장도 있는데, 300명의 국회의원보다 대통령 1명의 임기를 줄이는 일이 더 쉽다.

사실 개헌의 적절했던 시기는 과거 문재인정부 출범 당시라고 생각한다. 4·19가 개헌으로 제2공화국을 열었고, 6·10이 개헌으로 6공화국을 열었기 때문에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그때 개헌됐다면 윤정부가 출범할 일은 없었다.

22대 국회는 촛불 2기 국회가 돼야 한다. 대통령 중임제든, 이원집정제든 현재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켜 여야 대결보다는 협치를 제도화하는 데 어떤 체제가 가장 적합할지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윤 대통령과의 관계를 깨고 차별화에 나섰다. 속내를 파악한다면?

▲진영을 떠나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다툼과 차별화는 불가피하다. 문제는 차별화가 성공할 수 있느냐다. 이번 여야 대표 회담서 한 대표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고 본다. 본인이 당 대표에 출마하며 공약했던 제3자 특검법과 의정 갈등 중재를 위한 의대 증원 유예안 모두 의제로 내세우지 못했다.

“윤 대통령 어리석은 지도자 반열 들어가”
“계엄령 근거? 야권서 충분히 제기할 문제”

합의문에 반영되지도 않았다. 대통령과 차별화하려는 시도는 하지만 윤 대통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곤궁한 처지다. 아직까지 부처님 손바닥 안 손오공 신세인 셈이다. 임기가 2년 반이 넘게 남은 윤 대통령이 이른 차별화에 동의할지, 한 대표에게 힘을 실어줄지를 따져봤을 때 모두 고개를 젓는다. 

-제3자 특검법을 국민의힘이 시간을 끌면서 받지 못하는 이유는. 한 대표가 어떤 점을 우려해서 본인이 한 말을 지키지 않다고 보는지?

▲채 상병 제3자 특검법은 엄밀히 말해 ‘윤석열 특검법’이다. 채 상병 사망사건에 대한 수사외압이 특검법의 핵심 사항이다. 시간이 갈수록 수사 외압의 최종적 지시자가 윤 대통령이라는 의혹이 짙어지고 있다. 해당 사안과 관련해서는 앞으로도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채 상병 특검법은 대통령 입장에서는 역린이다. 이걸 국민의힘 의원 중 모르는 사람이 없으며, 한 대표도 익히 알고 있다. 결국 해법을 내놓을 수가 없고, 시간을 끌 수밖에 없다. 

-여야의 대치 정국이 22대 국회 들어 더욱 심해진 양상이다. 현재 대치 상황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국민의힘서 이탈표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나?

▲최근 전세사기특별법과 간호법이 여야 합의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처음에 민주당이 두 법안을 발의해 본회의서 통과했을 때는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던 법안이다. 거대 범야권이 탄생한 결과는 총선 민심의 결과다. 국회 본회의에 범야권이 통과시킨 법안은 정쟁의 수단이 아니다. 총선 민의에 충실하고자 한 민생 법안이자 개혁 법안이다. 

대통령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무차별적으로 거부권을 남발할 게 아니라 정부여당이 마음을 열고 여야 합의안을 만들려고 했다면 전세사기특별법과 간호법처럼 얼마든지 합의안은 낼 수 있다.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에 재표결을 요구하면 사실상 재적 의원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표가 필요한데 대통령 눈치를 봐야 할 여당 의원들로부터 이탈표가 나오기는 쉽지 않다.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연속해서 행사해 왔다. 

▲윤 대통령 마음에 안 들고, 여당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합의안을 모색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부결시키는 것은 다수결을 부정하는 일이다. 사실상 여당의 소수결, 심하게 말하면 대통령 1인이 결정하는 것으로 연성 독재의 모습과 다름없는 것으로 민주주의, 협치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이런 국정기조, 국정 방식서 벗어나 정부여당이 적극적으로 협치에 나섰으면 한다. 

-인사 문제도 연일 논란이다. 최근 들어 뉴라이트 인물을 임명했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데…

▲김태효 안보실 차장이 “윤 대통령은 뉴라이트라는 말도 잘 모른다”고 언급한 적 있다. 그런데 골라내는 사람 전부가 그렇다. 김형석 독립기념관 장관, 김태규 방통위 직무대행, 이진숙 방통위원장까지 전부 그런 사람을 지명했다. 윤 대통령이 모른다면 실제로 윤 대통령이 임명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다른 사람에 의해 기획되고 그림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유시민 작가가 ‘윤 대통령은 참 어리석은 인물’이라는 말을 했다. 실제로 어리석은 지도자 반열에 들어간 것 같다. 모르는데 뉴라이트 인사를 국정 전반에 다 깔았다. 결국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보이지 않는 손이 누구인지 궁금해 광복회장에게 직접 물었고 답을 들었다. (광복회장에게)일본 밀정이 누구냐 질문했는데, 안보실에 있다고 답했다. 

-얼마 전 이 대표가 여야 대표 회담서 계엄령을 언급한 바 있다. 근거가 뭐라고 보나?

▲윤 대통령이 기본적으로 헌법정신을 준수하지 않는 듯 보인다. 국회 입법부를 상당히 불편해하는 것을 넘어 무시하고 있다. 그동안 행정권을 갖고 굉장히 폭압적으로 행사해 왔다. 어떤 의미에서는 국권을 많이 훼손했는데, 통치만 있고 정치는 없다.

정권으로 할 수 있는 모든 폭압적 행동으로 계엄령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서도 내부적으로 비상계엄을 준비한 흔적이 있었다. 야권 입장에선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문제다.

-추가로 의심이 가는 부분은?

▲다른 하나는 대북 정책이다. 윤정부의 대북 정책은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한데 굉장히 도발적이며 공격적이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일체의 대화, 소통이 끊겼는데 이런 부분을 빌미로 삼을 수 있다.

윤정부는 대북 정책서 힘에 의한 평화와 압도적 힘을 강조하고 있는데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문정부 5년 동안 국방비의 평균 증가율은 6.3%, 윤정부는 2년 동안 4.3%에 그친다. 압도적 힘이라면 숫자로 표현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치의 복원이 시급하다. 정치는 정치다워져야 한다. 정치는 상대방을 섬멸하는 게 아닌 상대방을 존중하고 합의점을 찾으려는 협치가 정치의 본령이다. 거야 상황서 협치의 성공 여부는 정부여당에 달려 있다. 국정기조를 전환하라고 말하는 이유다.

윤 대통령이 하루 빨리 잘못된 국정기조서 발을 빼기를 바란다. 전향적으로 야당과 협치에 나서기 원한다. 그게 정치를 살리고, 대한민국을 살리는 길이다. 

<ckcjfdo@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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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