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판정승’ 의정 갈등 새 국면

이대로 끝? 2라운드 전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의대 정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전쟁에 법원이 심판자로 나섰다. 정부와 의료계의 시간을 거쳐 법원의 시간에 직면한 셈이다. 장고 끝에 법원은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정부는 의료개혁을 위한 ‘큰 산’을 넘었다는 입장이지만 후폭풍은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의료계 사이에 전운이 감돌았다. 지난 16일 법원의 판단을 앞두고는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양측은 물론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큰 상황이었다. 정부와 의료계는 기대하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다시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모두가 알았다. 법원의 이번 판단이 마지막 단계라는 것을.

최후의 판단

의과대학 정원 증원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고법 행정7부는 지난 16일 의대생, 교수 등이 보건복지부·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 사건 항고심서 각하 결정을 내렸다. 앞서 의대생과 교수, 전공의, 수험생은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배분 처분을 멈춰달라고 신청했다.

재판부는 1심과 같이 이들이 제3자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하거나 청구 내용이 판단 대상이 아닐 경우 본안을 심리하지 않고 재판을 끝내는 결정이다. 다만 재판부는 1심과 달리 의대 재학생에 대해서는 ‘신청인 적격’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세부 심리 끝에 신청은 기각했다. 


재판부는 “헌법 등 관련 법령상 의대생의 학습권이 보장되기 때문에 기존 교육시설에 대한 참여 기회가 실질적으로 봉쇄돼 동등하게 교육시설에 참가할 기회를 제한받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만한 특별한 사정이 인정될 여지가 있다”며 신청인 적격을 인정했다.

또 의대생의 경우 집행정지 요건인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할 우려’도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법원은 의대 정원 증원과 배분 처분이 계속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의대생의 학습권 침해 등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한 필요성이 인정될 수 있지만, 이 사건 처분 집행을 정지하는 것은 의대 증원을 통한 의료개혁이라는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학습권 침해와 공공복지를 두고 비교한 것이다. 

집행정지 신청 각하 결정
의료계 “계속 투쟁할 것”

다만 매년 2000명씩 의대 정원을 늘릴 경우 의대생의 학습권이 심각하게 침해받을 여지가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언급했다. 재판부는 “향후 의대 정원 숫자를 구체적으로 정할 때 매년 대학 측의 의견을 존중해 의대생의 학습권 침해가 최소화되도록 자체적으로 산정한 숫자를 넘지 않게 조치할 필요가 있다”고 명시했다. 

이날 법원의 판단으로 정부와 의료계의 희비가 크게 엇갈렸다. 지난 2월6일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발표 이후 시작된 의정 갈등이 분수령을 맞게 된 셈이다.


윤석열정부가 의료개혁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 시점인 지난해 10월 기준으로는 7개월 만이다. 서울고법의 결정은 정부 입장에서는 ‘마지막 걸림돌’ 의료계 입장에서는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다.

그동안 의료계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맞서 전공의 사직, 의대생 휴학 등 실력 행사에 나섰다. 3개월 넘게 이어진 의정 갈등은 정부와 의료계가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으면서 평행선을 그렸다. 하지만 법원이 정부의 손을 들어주면서 의료개혁은 동력을 얻게 됐다.

반면 의료계는 투쟁 규모와 수위를 재조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서울고법의 판단이 나온 이후 “아직 본안 소송이 남아 있지만 오늘 결정으로 정부가 추진해온 의대 증원과 의료개혁이 큰 고비를 넘어설 수 있게 됐다”며 “아직도 우리 앞에는 의료계 집단행동이라는 해결되지 않은 난제가 남아 있지만 오늘 법원의 결정으로 우리 국민과 정부는 의료개혁을 가로막던 큰 산 하나를 넘었다”고 평가했다. 

이번 결정에 따라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추진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18년 만의 의대 정원 변화가 초읽기에 접어든 것이다. 의대 정원은 2006년 의약분업 당시 의료계의 요구를 수용해 정원을 351명 줄인 이후 현재까지 3058명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의 계획대로면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은 1998년 이후 27년 만에 늘어나게 된다. 

정부는 보건사회연구원과 한국개발연구원(KDI), 홍윤철 서울대 의대 교수의 연구 등이 공통으로 2035년 의사 수 1만명 부족을 언급한 점을 근거로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의료계는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 원점 재논의 등을 요구하면서 복지부, 교육부 등을 상대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등을 진행했다.

법원은 20건에 육박한 문제 제기에 단 한 차례도 의료계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미복귀 시 추가 수련
2026년 2월 시험 자격

문제는 법원 결정으로 의정 갈등이 더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계는 법원 결정이 나온 직후 즉각 재항고 의사를 밝혔다. 의사 측 대리인 법무법인 찬종의 이병철 변호사는 “대법원에 재항고하겠다”며 “대법원이 기본권 보호를 위해 이 사건을 이달 31일 이전(정부의 증원 확정 전)에 심리‧확정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원점 재논의라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면서 강경투쟁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특히 전공의 복귀는 이번 법원 결정으로 더욱 요원해졌다는 게 중론이다. 그 여파로 내년 대규모 의료공백이 불가피해졌다. 

지난 2월부터 병원을 떠난 전공의는 오는 20일 전후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전문의 수련 규정에 따라 추가 수련을 받아야 하는 기간이 3개월을 초과해 전문의 자격 취득 시기가 1년 지연된다. 2026년 2월이 돼야 전문의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전문의 배출 시점이 밀리면 군의관이나 공보관 배출에도 영향이 가게 된다. 


그럼에도 의료계가 꺼낼 수 있는 카드는 이제 많지 않다는 의견이 나온다. 의대 교수들은 지난 3월 말부터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실제 사직까지 이어진 사례는 드물었다. 또 휴진도 의료현장에 끼친 영향이 크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회장의 강경일변도 행보에도 개원의 중심의 회원들이 집단행동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지 않고 참여율도 낮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묘책이 필요한 시기라고 입을 모았다. 의료계의 반발로 대화 가능성도 요원한 상황서 어떤 식으로든 간극을 줄여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전공의 복귀를 위한 길을 열어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행정 처분 등 강경책에 전공의가 반응하지 않은 만큼 유화책이나 회유책 등 다른 방향으로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다.

집단행동?

그러면서도 끝내 전공의가 복귀하지 않는 상황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의료공백을 막기 위한 전공의 복귀 시한이 임박한 만큼 최악의 상황도 가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 의료공백이 의료대란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세심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여전히 의료계와 대화 의지가 있다”면서도 “의료공백을 계속 둘 수 없는 만큼 전공의 복귀를 유도할 다양한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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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