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형 송환과 테라·루나 재판 상관관계

50조 말아먹은 그놈이 온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피해액이 약 50조로 추산되는 테라·루나 사태의 주범으로 꼽히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의 한국 송환이 결정됐다. ‘여의도 저승사자’인 서울남부지검의 증권범죄합동수사단 1호 수사인 테라·루나 사건의 재판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테라·루나의 증권성 여부가 타 가상자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몰락했던 ‘한국판 일론 머스크’가 다시 한국에 돌아올 예정이다. 테라·루나 코인 개발자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이야기다. 그의 한국 송환으로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이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지난 7일,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은 기존 권씨의 미국 인도 결정을 뒤집고 한국 송환을 결정했다.

미국 인도 
결정 뒤집어

재판부는 당시 미국 정부 공문이 한국보다 하루 더 일찍 도착했다고 본 원심과 달리 “한국 법무부가 지난해 3월24일 영문 이메일로 범죄인 인도를 요청해 미국보다 사흘 빨랐다”고 밝혔다. 또 미국 정부 공문에는 권씨에 대한 임시 구금을 요청하는 내용만 담겨있어 이를 범죄인 인도 요청으로 간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앞서 몬테네그로 법원은 권씨에 대해 미국과 한국 중 어디로 범죄인 인도될 것인지를 두고 1년여간 법정 공방을 벌여왔다. 권씨의 한국 송환은 몬테네그로 법무부가 권씨의 한국 송환을 승인하면 한국 법무부에 이를 통보 후 구체적인 신병 인도 절차 협의를 통해 이뤄질 예정이다.

현재 우리 경찰은 권씨를 한국으로 송환하기 위해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에 협조 요청한 상태다.


이용상 경찰청 국제공조담당관은 “몬테네그로 같은 유럽계 국가는 인터폴의 영향력을 받기 때문에 범정부 차원의 공조 지원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 12월부터 지속적으로 인터폴사무총국에 송환 관련 얘기를 해 왔는데, 이번에 몬테네그로 법원이 기존 미국 인도 판결을 뒤집은 것을 계기로 다시 관심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낸 것”이라고 부연했다.

법무부도 권씨가 국내서 재판받고 형이 집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권씨의 항소 기한이 연기돼 한국 송환 날짜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권씨 측이 영문 판결문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권씨 측은 고등법원 법원장에게 권씨가 이해하는 언어인 영어로 된 결정문을 보내는 긴급조치를 취해 달라고 요구했다. 권씨 측이 중형이 예상되는 미국 송환을 뒤집고 한국 송환 결정을 받은 만큼 시간을 지체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으로 풀이된다.

권씨는 2018년 가상화폐 업체 테라폼랩스를 설립하고 스테이블 코인 테라USD와 자매코인 루나를 발행했다. 루나 공급량을 조절해 스테이블 코인인 테라 1개의 가치를 1달러로 맞추는 방식이다. 테라를 예치하면 루나로 바꿔주고 최대 20%의 이율을 약속하는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집했다. 

2022년 5월 가상화폐 시장이 폭락을 거듭하면서 테라가 1달러 밑으로 추락, 테라폼랩스는 루나를 대량 발행해 가격을 방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50조원에 이르던 시가총액이 한순간에 증발했다. 이로 인해 가상화폐 업계 전반이 휘청였고 국내서만 피해자가 20만명 이상으로 추산됐다. 

몬테네그로 법원 한국 송환 결정
공동대표·최측근 재판 진행 중

권씨는 가상화폐인 테라·루나의 폭락 위험성을 알고도 투자자들에게 이를 알리지 않고 계속 발행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그는 미국과 한국, 싱가포르 등 3개국서 사기 등 혐의로 수사를 받고 수배 명단에 올랐다. 중동과 동유럽 등에서 도피 생활을 이어오다 지난해 3월23일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공항서 위조 여권을 사용해 덜미를 잡혔다.


권씨의 한국 송환이 결정된 이후 한국서 재판 중인 테라·루나 사건에 관심이 모인다. 지금 한국서 재판 중인 건은 2건으로 테라폼랩스의 공동창립자인 신현성 전 차이코퍼레이션 총괄대표와 테라폼랩스 최고재무책임자 한창준이 각각 기소된 재판이다.

신 전 대표는 지난해 4월 사기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신 전 대표는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테라 프로젝트의 허구성을 숨긴 채 지속적인 거래 조작, 허위 홍보 등으로 전 세계 투자자를 속여 4629억원 상당의 부당이익을 취득하고 약 3769억원을 상습 편취한 혐의를 받는다.

전자상거래 업체 대표에 대한 금품 로비, 결제 정보 무단유출, 테라폼랩스 법인자금 횡령 등의 혐의도 적용됐다. 신 전 대표는 이 과정서 허구에 가까운 ‘테라 블록체인 지급결제 사업’을 내세운 ‘차이 프로젝트’로 국내외 벤처투자사 등으로부터 투자금 1221억원을 유치한 혐의도 받는다.

차이코퍼레이션이 갖고 있던 고객정보를 테라폼랩스 등 다른 회사에 유출한 혐의, 소셜커머스 업체 티몬의 전 대표 유모씨에게 “테라를 간편결제 수단으로 도입한다고 홍보해 달라”고 청탁하고 그 대가로 루나를 제공한 혐의도 적용됐다.

신 전 대표는 혐의를 전면 부인 중이다. 신 전 대표 측 변호인은 첫 공판서부터 “2020년 권도형과 사업적으로 결별했고, 폭락의 원인도 결별 이후 권도형이 진행한 앵커 프로토콜의 무리한 운영과 외부 공격 때문”이라며 “피고인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테라 프로젝트 구상 당시 가상자산 활용 결제 방식에 대한 법적 규제가 없었던 점, 자진 귀국해 수사에 적극 협조한 점, 약정된 루나 코인 7000만개 중 32%밖에 수령하지 못한 점, 신 전 대표가 루나 코인 대부분을 매도한 시점이 루나 코인 가격 폭등 이전인 점 등을 들어 신 전 대표의 혐의를 부인했다.

현재 신 전 대표의 재판은 증인신문을 진행 중이다.

권씨와 함께 도피했던 한씨는 지난달 21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자본시장법 위반(사기적 부정거래),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3개국서
수사 중

검찰에 따르면 한씨는 테라 프로젝트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속여 루나 코인을 판매·거래해 최소 536억원의 부당이익을 취한 혐의를 받는다. 

또 증권신고서 제출 없이 루나 코인을 판매하는 등 증권의 모집·매출행위를 한 혐의와 차이페이 고객의 전자금융 결제 정보 약 1억건을 동의 없이 테라 블록체인에 기록해 무단 유출한 혐의도 있다.

테라 코인 발행으로 주조차익이 발생한 것처럼 속여 테라폼랩스 회사 자금 141억원을 자신이 대표로 있는 회사에 대가 없이 지급해 손해를 끼친 혐의도 받는다. 2022년 4월 권씨와 한국을 떠나 도피한 한씨는 지난해 3월 몬테네그로 현지 경찰에 권씨와 함께 체포됐다.


법무부는 이들에 대한 범죄인 인도를 청구하고 몬테네그로 당국과 협의해 한씨의 신병을 인도받아 지난달 6일 송환한 뒤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한씨의 재판은 지난 6일 첫 공판기일이 진행됐지만 공전했다. 한씨 측 변호인은 이날 “아직 증거기록을 입수하지 못했다”며 “기록 검토 후 공소사실에 대한 의견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검찰 측에선 기존에 진행 중이던 신 전 대표 사건에 한씨 사건을 병합해 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결국 그렇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사건으로 보인다”면서도 양측에 “증인의 진술조서 등을 최대한 빨리 준비해 달라. 증인신문 진행 후 사건을 언제 병합할 수 있을지 날짜를 정하겠다”고 했다.

결국 신 전 대표의 재판에서 증인신문이 마무리돼도 한씨 재판서 증인신문이 이뤄진 후 병합이 될 예정이라 재판 자체는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권씨도 송환된 후 기소되면 해당 재판들과 병합될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법조계와 피해자 커뮤니티에 권씨가 유력 법무법인과 미리 초호화 변호인단을 준비했다는 소문이 돌았던 만큼 첨예한 법적 공방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권씨 송환 이후 재판서 주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건 테라‧루나의 증권성 여부다. 가상자산의 증권성 여부는 이들의 처벌 수위에도 영향을 끼친다. 증권성 여부가 인정되면 자본시장법 혐의가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두 건의 재판
현재 상황은?

자본시장법 제443조에서는 시장 교란 행위를 통해 불법 이익을 취한 사람을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불법으로 취득한 재산의 규모가 50억원을 넘어설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도록 하고 있다. 증권성이 인정되면 권씨 등 테라·루나 관계자들은 피해액이 수천억원에 이르는 만큼 무기징역이 선고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검찰은 신 전 대표 등이 만든 루나 코인이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해 증권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루나 투자자와 테라폼랩스 간 공동사업인 테라 블록체인 플랫폼 사업이 존재하고, 루나 투자자는 이 사업에 법정화폐 혹은 가상자산을 투자했으며, 공동사업은 테라폼랩스가 독점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신 전 대표 측은 재판서 “발행 법인과 루나 보유자 사이, 루나 보유자들 사이의 공동사업성 모두를 인정하기 어렵고, 다수 참여자의 활동으로 사업을 수행하고 발전시켜왔기 때문에 타인성 역시 인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루나 보유자가 발행법인에 어떠한 계약상 권리를 가지지 않기 때문에 계약상 권리를 보유해야 한다는 요건도 충족하지 못한다”며 증권성을 부인하고 있다. 권씨도 “루나는 증권이 아닌 화폐”라며 계속해서 증권성을 부인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는 이미 테라·루나가 증권이라고 결론내렸다. 지난해 12월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은 테라폼랩스와 권도형이 ‘미등록 증권’을 판매해 법을 위반한 책임이 있다는 판단을 내놨다. 하지만 금융위원회에서는 증권성 판단을 아직 내리지 못하고 있다. 법정에서 인정될 만한 논리적 근거가 없어 법원에 판단을 맡기고 있는 형국이다. 

대검찰청이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단국대학교 산학협력단을 통해 진행한 ‘가상자산의 증권성 및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제화 방향성 검토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가상자산이 경제적 실체에 따라 증권형과 비증권형으로 구분되며 증권형에 해당할 경우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적용을 받게 되고 비증권형에 해당할 경우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2024년 7월 시행 예정)’ 적용을 받게 된다.

문제는 가상자산의 증권성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과 가상자산을 발행하는 주체가 사안별로 판단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증권성 여부 다시금 수면 위로
‘가중주의’보다 낮은 처벌 예상

테라·루나에 관해서는 “테라 트랜잭션이 발생할 때마다 수수료를 배분하는데 이를 전매차익으로 볼 수 있는지 아니면 분배수익으로 볼 수 있는지에 따라 자본시장법 위반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스테이킹을 하는 루나 보유자에게 하는 스테이킹 보상을 ‘주로 타인이 수행한 공동사업의 결과에 따른 손익을 귀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지에 따라 역시 자본시장법 위반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대검찰청이 의뢰한 연구서도 명확히 판단이 어렵다고 인정한 셈이다.

한 형사전문 변호사는 “이런 연구 결과와 정부 대처를 변호인단을 파고들 가능성이 크다”며 “명확한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권씨나 그 조력자들 모두 제대로 처벌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는 테라·루나의 증권성 여부로 다른 가상자산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가상자산 전문 디센트법률사무소의 진현수 변호사는 “특경법상 사기죄는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문제는 자본시장법 위반 여부”라면서 “처벌 여부를 떠나 가상자산의 증권성 판단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코인 전문 변호사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테라, 리플 등 논란이 있는 가상자산에 대해 신속히 증권성 여부를 판단하지만 우리나라는 테라·루나 폭락 사태 이후 2년이 지나도록 증권성 여부에 대한 제대로 된 의견을 내지 않고 있다”며 “현재 선례가 없어 판단이 미뤄지고 재판서 미국 판례를 이용하고 있는데 테라·루나 재판이 완료되면 다른 가상자산 사건에 해당 판례가 이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특정 코인을 증권이라 규정할 경우 후폭풍이 부담스러워 법원도 판단을 못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테라·루나의 증권성이 인정되면 상장 폐지 전까지 이 코인의 거래를 중개했던 두나무 등 국내 거래소들이 모두 법적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루나 등과 같은 기준으로 많은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가상자산)들도 증권성 논란의 대상이 되면서 가상자산 시장 전체가 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테라·루나의 증권성 여부와 상관없이 권씨는 미국의 처벌 수위와 비교하면 솜방망이 처벌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미법계’인 미국은 개별 혐의 형기를 합쳐 형량을 정하는 ‘병과주의’를 택하고 있다. 징역 10년 선고가 가능한 범죄를 10개 저질렀다면 100년형을 선고할 수 있는 식이다. 하지만 ‘대륙법계’인 한국은 ‘가중주의’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보다
솜방망이?

국내 형법은 한 사람이 2개 이상 범죄를 저지른 ‘실체적 경합범’의 경우 여러 혐의 중 최고 형량의 최대 2분의 1을 가중토록 한다. 최고 형량이 징역 10년인 2개의 범죄를 저질렀을 때 법상 선고 가능한 최고 형량은 15년이다. 이 밖에 형법에선 유기징역 상한을 30년, 가중할 경우 최대 50년으로 정하고 있다.

권씨에게 적용될 혐의는 특경법상 사기로 한국 경제사범 중 역대 최고형은 대법원이 2022년 1조원대 펀드 사기 혐의로 기소된 김재현 옵티머스자산운용 대표에 대해 확정한 징역 40년이다. 미국으로 송환됐다면 115년 형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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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