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특집 일요초대석> 벽지서 세상을 보다 - 사성암 주지 우석 스님

“철저히 자기중심적으로 사세요”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그야말로 혼돈의 시대다. 대낮에 정치인이 테러를 당하고 국민들은 ‘묻지마 범죄’에 노출돼있다. 마음의 평화는 물질의 풍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국민에게 올바른 방향을 알려줄 길잡이가 필요한 시기다. <일요시사>가 민족의 대명절 설을 맞아 사성암 주지, 우석 스님을 만나 그 답을 물었다.

어찌할 수 없이 궁지에 몰려 있는 상황을 가리키는 ‘이판사판’은 원래 불교 용어다. 참선하고 수행하고 포교하는 승려를 일컫는 ‘이판’과 절을 운영하고 사업을 하는 등 사무처리에 힘쓰는 승려인 ‘사판’의 합성어다. 사찰 내에서 승려의 업무 분담에 따른 구별을 위해 사용됐다.

물 좋고
산 좋은

사성암 주지이면서 화엄사 부주지를 겸하고 있는 우석 스님은 스스로를 ‘사판’이라고 칭했다. 11세부터 절에서 살기 시작한 우석 스님은 18세 때 출가해 33년 동안 전남 동부권 주요 사찰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사성암 주지를 맡은 건 3번째로 햇수로는 8년 동안 암자를 운영했다.

사성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지리산 대화엄사의 말사로 전남 구례군에 있다. 구례구역에서 차로 15분 정도 잘 닦인 길을 올라가면 깎아지는 듯한 절벽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해발 531m 오산의 꼭대기에 자리한 사성암은 주변 자연경관이 빼어난 경승지로 알려져 있다. 2014년에는 명승으로 지정됐다. 

사성암의 원래 이름은 오산암이었다. 백제 성왕 22년(544년) 연기조사가 처음 건립했다고 전해진다. 원효대사, 도선국사, 진각국사, 의상대사 등 4명의 성인이 수행을 했다는 의미인 사성암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도선국사가 수행한 굴로 알려진 도선굴도 있다.


원효대사가 암벽에 손톱으로 그렸다는 마애여래입상이 유명하다.

지난달 26일 사성암서 우석 스님을 만났다. 우석 스님이 기다리고 있던 요사채에서는 지리산 능선과 섬진강, 구례읍이 한눈에 들어왔다. 미세먼지 수치가 높아 뿌연 공기 속에서도 탄성이 절로 나오는 경치를 자랑했다. 매년 일출 때마다 300~500명이 찾아오고 연 단위로는 20만명의 관광객이 드나든다. 

우석 스님은 “사성암서 일출을 보면 다양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는 경관이기 때문에 새해에 찾아주시는 것 같다”며 “그래도 관광객이 제일 많이 오는 시기는 벚꽃축제와 맞물린 봄”이라고 말했다. 지리서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사성암은 고승들의 기도처로 알려진 곳이었다.

일종의 비처(숨겨진 장소)로 스님들 사이에서만 암암리에 소문난 기도 공간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빼어난 자연경관으로 인기를 끌면서 관광지화됐다. 교구 본사인 화엄사와는 차로 30분밖에 걸리지 않아 구례읍에 방문한 관광객은 두 사찰을 모두 들르는 편이다. 여기에 사성암은 올해로 3년째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어 여행객의 발걸음을 잡고 있다. 산 위에 있어 고요함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 손꼽힌다. 

11세부터 절에 살아
20대부터 소임 맡아

우석 스님은 화엄사, 사성암 등에서 다양한 소임을 맡아 활동하면서도 언론 노출을 거의 하지 않았다. 자연재해가 일어나거나 지역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절에서 기부하는 등의 행사를 많이 했음에도 관련 사진 한 장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는 자선 행위로 드러나는 효과가 중심이 돼야지 대상(사람)이 주목을 받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오랜 철학으로부터 비롯된 행보였다. 

그러면서도 우석 스님은 세상이 바뀌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는 “사실 개인적으로는 크게 내키지 않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이 언론 친화적인 행보로 화엄사나 그 주변, 말사의 발전과 변화를 꾀하는 모습을 보면서 필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우석 스님은 20대부터 사찰 운영과 관련해 소임을 맡았다. 화엄사의 재무 소임을 담당하면서 사성암 주지를 겸하는 등 행정업무에 잔뼈가 굵은 그는 인터뷰 내내 현실적이고 날카로운 답변을 내놨다. 종교인이라면 이른바 뜬구름 잡는 식의 선문답을 할 것이라는 선입견과 편견을 부수는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특히 종교가 신뢰를 잃고 있는 분위기에 대해 사회가 변화하면서 종교를 향유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우석 스님은 “종교가 신뢰를 잃었다는 개념보다는 종교의 형태가 조금 바뀌었다고 생각한다”며 “사회의 색채에 따라 종교의 색채가 변화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믿음과 불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분위기가 탈종교화되면서 종교 역시 긍정적인 의미로 세속화되고 실용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종교 자체가 일반인의 니즈에 따라 변해가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예전에는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무조건적 믿음을 바탕으로 마음의 치유를 바랐다면 지금은 가시적인 효과나 변화에 관심이 높아졌다”고 전했다. 

거리감
줄여야

종교를 소비함으로 인해 실제 삶의 변화를 느끼는지 여부에 민감해졌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종교 역시 그런 변화에 발맞춰 바뀌고 있다는 게 우석 스님의 생각이다. 실제 종교에 대한 일반인의 거리감을 줄이기 위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전국 각지의 절에서 운영하고 있는 템플스테이가 그 단적인 예다. 

우석 스님은 “사찰에서는 공간을 제공하고 신도는 그곳에서 경관을 보며 쉬어가면 된다. 종교적인 행사나 고민 해결 같은 어려운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서로가 서로를 괴롭히지 않는 선에서 편안하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사찰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에는 (신 혹은 종교를)믿으면 너에게 행복이 올 것이다. 그러니까 신념과 믿음을 갖고 기도해야 한다고 했다면 지금은 일단 이곳에 와서 시간을 보내봐. 그 이후에 마음이 치유되고 삶에 변화가 온다면 다시 이 사성암으로 찾아와. 힘들 때 와서 자기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해. 이런 식으로 변화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사실 종교가 의사는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욕망을 일일이 다 채워줄 순 없다. 그렇기에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다. 치유의 공간을 만들어서 종교가 갖고 있던 원래의 역할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그 변화의 속도를 종교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석 스님은 종교는 ‘관조’의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실서 한 발자국 떨어져서 ‘중재’의 역할을 해야지 지나치게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종교가 갈등 해소를 위해 사회 활동에 매진하면서 오히려 그 역할에 너무나 매몰돼있던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석 스님은 노사갈등을 예로 들었다. 그는 “노동자와 사업가 사이에 갈등이 발생했을 때 노동자가 양보하고 쟁취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종교가 중간자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직접 들어가 노동자를 대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적대관계도 형성되고 종교 본연의 자세도 잊어버렸다”고 비판했다.


사회적으로 갈등 분위기가 팽배한 부분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빠르게 변화한 사회 시스템의 부작용이라고 언급했다.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서 중진국, 선진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서 발생한 당연한 업보라는 주장이다. 결국 사회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고, 감당의 부분을 어떻게 최소화할지 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개입 아닌
관조해야

우석 스님은 “갈등은 늘 있었다. 형태만 조금씩 달라졌을 뿐”이라며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소할 방법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필요하다. 인간은 누구나 욕망을 갖고 있고 그 크기는 모두 다르다. 이 과정서 생기는 충돌을 두고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식의 해결 방법은 옳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1등 아니면 안 돼’ ‘남보다 잘나야 해’라는 경쟁 분위기가 사회를 지배하면서 패배는 도태라는 인식이 커졌다. 가정, 교육현장 등에서 이 같은 사고방식이 고착되면서 사회 시스템 자체가 경쟁 친화적으로 변화했다. 우석 스님은 이런 사회 시스템이 결국 갈등을 심화시켰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사회 분위기가 국민을 압박하면서 나타난 부작용이 갈등이라는 것이다.

우석 스님은 “과거 물질이 부족했던 시기에는 그 물질로 채우지 못한 부분을 정신적으로 메웠다. 종교가 그 역할을 했던 것이고. 예를 들어 예전에는 빵 한 조각도 나눠먹는 모습을 아름답게 느꼈다면 이제는 빵이 많아서 서로 네 것, 내 것 싸울 일이 사라졌다. 정신적 욕망이 들어설 틈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갈등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현 상황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우석 스님은 정치인을 상대로 한 테러에 대해 언급했다. 인터뷰를 진행하기 하루 전인 지난달 25일,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이 중학생이 휘두른 돌에 머리를 가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보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흉기에 찔렸다. 

우석 스님은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 발생했을 때 관심사는 처벌, 배후 같은 부분에만 집중된다. 왜 테러를 가했는지, 가해자가 왜 흉기를 휘둘렀는지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면 안 된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하지만 사건이 일어났을 때 원인을 파악하려는 시도 없이 테러 방법, 배후 사주 정도만 공개하지, 그 이상은 조사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결국 갈등의 꼬리 자르기가 반복되면서 본질이 흐려지고 적체됐다는 설명이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정권을 잡는 것에만 중점을 두다 보니 본질을 살피는 일은 소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갈등 해결을 위한 소위 통합위원회를 꾸린다 해도 누구 하나 나서서 매듭 짓지 못하니 국민과 정치권, 정부 사이에 괴리가 발생한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종교를 소비하는 방식 변했다”
“갈등 최소화하는 법 생각해야”

우석 스님은 “갈등 해결을 위한 기구를 만들 때 실무를 해온 사람에게 권한을 줘야 한다. 지역서 일어난 갈등을 해결하는 데 연구자를 넣으면 결국 이론밖에 남지 않는다. 해당 지역의 지자체장, 대학 총장 같은 결정권자 역시 필요하다. 갈등은 결국 삶에서 일어나는 충돌인데 이론만 갖고는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고 사회가 경직되면서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국민에게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조언을 건넸다. 우석 스님은 “불교는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종교다. 자기 마음이 편해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비를 실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비를 실천하겠다는 목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피폐하게 한다면 그건 불교의 기본원칙에 벗어난다. 자기중심적이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남한테 피해를 주면서까지 그러라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과 마음을 지킬 수 있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라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우석 스님은 “지금은 물질이 넘쳐서 굶어 죽는 사람은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동냥을 하지 않아도 나름 자급자족이 가능할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삶의 어떤 지점서 물질적인 고통보다 정신적인 고통이 강할 때 그 삶을 버리거나 바꿔서, 또 받아들여서 새로운 삶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외부서 원인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모색하고 변화하는 태도를 취해야 하는 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는 “외적인 요인으로 인해 자기 삶이 압박받고 가둬져 있어 내 삶은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자기중심적이 아니라 외부중심적”이라며 “내가 지금 이 순간 결정하면 모든 걸 다 바꿀 수 있고 새로운 수익구조도 만들 수 있다는 게 바로 자기중심적 사고”라고 부연했다. 

4월 총선을 2개월 앞둔 상황서 지도자의 덕목에 대해서도 물었다.

우석 스님은 “정치권은 정권을 창출하는 데만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예산을 따오는 과정서 본인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만 강조한다. 물론 예산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예산을 지역 특색에 맞게 어떻게 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거철에 많은 공약이 나오는데 비현실적이거나 터무니없는 것도 많다. 그보다는 현실화할 수 있는 공약을 내세워야 한다. 지금은 공약을 당선의 수단, 그리고 목적으로만 여기는 국회의원들이 많다. 지역사회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정치에 대해서도 많이 공부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도자 덕목
공약 현실화

우석 스님은 “기성세대는 자기 삶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가치관이 이미 고착화돼있다. 그에 반해 젊은 세대는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 무엇이 자신의 삶에 중요한지를 더 고민할 수 있다. 물질이나 사회적 지위, 삶을 물질로만 판단하는 태도를 지양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제언했다. 

“4~5년 전, 부처님 그림에 쓰여 있던 글귀인 “나는 천천히 가는 사람이다. 그러나 절대 뒤로 가지는 않는다”를 인용한 그는 “속도는 느려도 방향성 자체는 앞을 향한다는 의지를 담은 표현”이라고 마무리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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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