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특집 일요초대석> 벽지서 세상을 보다 - 사성암 주지 우석 스님

“철저히 자기중심적으로 사세요”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그야말로 혼돈의 시대다. 대낮에 정치인이 테러를 당하고 국민들은 ‘묻지마 범죄’에 노출돼있다. 마음의 평화는 물질의 풍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국민에게 올바른 방향을 알려줄 길잡이가 필요한 시기다. <일요시사>가 민족의 대명절 설을 맞아 사성암 주지, 우석 스님을 만나 그 답을 물었다.

어찌할 수 없이 궁지에 몰려 있는 상황을 가리키는 ‘이판사판’은 원래 불교 용어다. 참선하고 수행하고 포교하는 승려를 일컫는 ‘이판’과 절을 운영하고 사업을 하는 등 사무처리에 힘쓰는 승려인 ‘사판’의 합성어다. 사찰 내에서 승려의 업무 분담에 따른 구별을 위해 사용됐다.

물 좋고
산 좋은

사성암 주지이면서 화엄사 부주지를 겸하고 있는 우석 스님은 스스로를 ‘사판’이라고 칭했다. 11세부터 절에서 살기 시작한 우석 스님은 18세 때 출가해 33년 동안 전남 동부권 주요 사찰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사성암 주지를 맡은 건 3번째로 햇수로는 8년 동안 암자를 운영했다.

사성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지리산 대화엄사의 말사로 전남 구례군에 있다. 구례구역에서 차로 15분 정도 잘 닦인 길을 올라가면 깎아지는 듯한 절벽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해발 531m 오산의 꼭대기에 자리한 사성암은 주변 자연경관이 빼어난 경승지로 알려져 있다. 2014년에는 명승으로 지정됐다. 

사성암의 원래 이름은 오산암이었다. 백제 성왕 22년(544년) 연기조사가 처음 건립했다고 전해진다. 원효대사, 도선국사, 진각국사, 의상대사 등 4명의 성인이 수행을 했다는 의미인 사성암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도선국사가 수행한 굴로 알려진 도선굴도 있다.


원효대사가 암벽에 손톱으로 그렸다는 마애여래입상이 유명하다.

지난달 26일 사성암서 우석 스님을 만났다. 우석 스님이 기다리고 있던 요사채에서는 지리산 능선과 섬진강, 구례읍이 한눈에 들어왔다. 미세먼지 수치가 높아 뿌연 공기 속에서도 탄성이 절로 나오는 경치를 자랑했다. 매년 일출 때마다 300~500명이 찾아오고 연 단위로는 20만명의 관광객이 드나든다. 

우석 스님은 “사성암서 일출을 보면 다양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는 경관이기 때문에 새해에 찾아주시는 것 같다”며 “그래도 관광객이 제일 많이 오는 시기는 벚꽃축제와 맞물린 봄”이라고 말했다. 지리서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사성암은 고승들의 기도처로 알려진 곳이었다.

일종의 비처(숨겨진 장소)로 스님들 사이에서만 암암리에 소문난 기도 공간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빼어난 자연경관으로 인기를 끌면서 관광지화됐다. 교구 본사인 화엄사와는 차로 30분밖에 걸리지 않아 구례읍에 방문한 관광객은 두 사찰을 모두 들르는 편이다. 여기에 사성암은 올해로 3년째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어 여행객의 발걸음을 잡고 있다. 산 위에 있어 고요함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 손꼽힌다. 

11세부터 절에 살아
20대부터 소임 맡아

우석 스님은 화엄사, 사성암 등에서 다양한 소임을 맡아 활동하면서도 언론 노출을 거의 하지 않았다. 자연재해가 일어나거나 지역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절에서 기부하는 등의 행사를 많이 했음에도 관련 사진 한 장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는 자선 행위로 드러나는 효과가 중심이 돼야지 대상(사람)이 주목을 받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오랜 철학으로부터 비롯된 행보였다. 

그러면서도 우석 스님은 세상이 바뀌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는 “사실 개인적으로는 크게 내키지 않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이 언론 친화적인 행보로 화엄사나 그 주변, 말사의 발전과 변화를 꾀하는 모습을 보면서 필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우석 스님은 20대부터 사찰 운영과 관련해 소임을 맡았다. 화엄사의 재무 소임을 담당하면서 사성암 주지를 겸하는 등 행정업무에 잔뼈가 굵은 그는 인터뷰 내내 현실적이고 날카로운 답변을 내놨다. 종교인이라면 이른바 뜬구름 잡는 식의 선문답을 할 것이라는 선입견과 편견을 부수는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특히 종교가 신뢰를 잃고 있는 분위기에 대해 사회가 변화하면서 종교를 향유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우석 스님은 “종교가 신뢰를 잃었다는 개념보다는 종교의 형태가 조금 바뀌었다고 생각한다”며 “사회의 색채에 따라 종교의 색채가 변화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믿음과 불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분위기가 탈종교화되면서 종교 역시 긍정적인 의미로 세속화되고 실용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종교 자체가 일반인의 니즈에 따라 변해가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예전에는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무조건적 믿음을 바탕으로 마음의 치유를 바랐다면 지금은 가시적인 효과나 변화에 관심이 높아졌다”고 전했다. 

거리감
줄여야

종교를 소비함으로 인해 실제 삶의 변화를 느끼는지 여부에 민감해졌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종교 역시 그런 변화에 발맞춰 바뀌고 있다는 게 우석 스님의 생각이다. 실제 종교에 대한 일반인의 거리감을 줄이기 위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전국 각지의 절에서 운영하고 있는 템플스테이가 그 단적인 예다. 

우석 스님은 “사찰에서는 공간을 제공하고 신도는 그곳에서 경관을 보며 쉬어가면 된다. 종교적인 행사나 고민 해결 같은 어려운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서로가 서로를 괴롭히지 않는 선에서 편안하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사찰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에는 (신 혹은 종교를)믿으면 너에게 행복이 올 것이다. 그러니까 신념과 믿음을 갖고 기도해야 한다고 했다면 지금은 일단 이곳에 와서 시간을 보내봐. 그 이후에 마음이 치유되고 삶에 변화가 온다면 다시 이 사성암으로 찾아와. 힘들 때 와서 자기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해. 이런 식으로 변화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사실 종교가 의사는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욕망을 일일이 다 채워줄 순 없다. 그렇기에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다. 치유의 공간을 만들어서 종교가 갖고 있던 원래의 역할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그 변화의 속도를 종교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석 스님은 종교는 ‘관조’의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실서 한 발자국 떨어져서 ‘중재’의 역할을 해야지 지나치게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종교가 갈등 해소를 위해 사회 활동에 매진하면서 오히려 그 역할에 너무나 매몰돼있던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석 스님은 노사갈등을 예로 들었다. 그는 “노동자와 사업가 사이에 갈등이 발생했을 때 노동자가 양보하고 쟁취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종교가 중간자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직접 들어가 노동자를 대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적대관계도 형성되고 종교 본연의 자세도 잊어버렸다”고 비판했다.


사회적으로 갈등 분위기가 팽배한 부분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빠르게 변화한 사회 시스템의 부작용이라고 언급했다.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서 중진국, 선진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서 발생한 당연한 업보라는 주장이다. 결국 사회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고, 감당의 부분을 어떻게 최소화할지 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개입 아닌
관조해야

우석 스님은 “갈등은 늘 있었다. 형태만 조금씩 달라졌을 뿐”이라며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소할 방법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필요하다. 인간은 누구나 욕망을 갖고 있고 그 크기는 모두 다르다. 이 과정서 생기는 충돌을 두고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식의 해결 방법은 옳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1등 아니면 안 돼’ ‘남보다 잘나야 해’라는 경쟁 분위기가 사회를 지배하면서 패배는 도태라는 인식이 커졌다. 가정, 교육현장 등에서 이 같은 사고방식이 고착되면서 사회 시스템 자체가 경쟁 친화적으로 변화했다. 우석 스님은 이런 사회 시스템이 결국 갈등을 심화시켰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사회 분위기가 국민을 압박하면서 나타난 부작용이 갈등이라는 것이다.

우석 스님은 “과거 물질이 부족했던 시기에는 그 물질로 채우지 못한 부분을 정신적으로 메웠다. 종교가 그 역할을 했던 것이고. 예를 들어 예전에는 빵 한 조각도 나눠먹는 모습을 아름답게 느꼈다면 이제는 빵이 많아서 서로 네 것, 내 것 싸울 일이 사라졌다. 정신적 욕망이 들어설 틈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갈등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현 상황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우석 스님은 정치인을 상대로 한 테러에 대해 언급했다. 인터뷰를 진행하기 하루 전인 지난달 25일,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이 중학생이 휘두른 돌에 머리를 가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보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흉기에 찔렸다. 

우석 스님은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 발생했을 때 관심사는 처벌, 배후 같은 부분에만 집중된다. 왜 테러를 가했는지, 가해자가 왜 흉기를 휘둘렀는지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면 안 된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하지만 사건이 일어났을 때 원인을 파악하려는 시도 없이 테러 방법, 배후 사주 정도만 공개하지, 그 이상은 조사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결국 갈등의 꼬리 자르기가 반복되면서 본질이 흐려지고 적체됐다는 설명이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정권을 잡는 것에만 중점을 두다 보니 본질을 살피는 일은 소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갈등 해결을 위한 소위 통합위원회를 꾸린다 해도 누구 하나 나서서 매듭 짓지 못하니 국민과 정치권, 정부 사이에 괴리가 발생한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종교를 소비하는 방식 변했다”
“갈등 최소화하는 법 생각해야”

우석 스님은 “갈등 해결을 위한 기구를 만들 때 실무를 해온 사람에게 권한을 줘야 한다. 지역서 일어난 갈등을 해결하는 데 연구자를 넣으면 결국 이론밖에 남지 않는다. 해당 지역의 지자체장, 대학 총장 같은 결정권자 역시 필요하다. 갈등은 결국 삶에서 일어나는 충돌인데 이론만 갖고는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고 사회가 경직되면서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국민에게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조언을 건넸다. 우석 스님은 “불교는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종교다. 자기 마음이 편해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비를 실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비를 실천하겠다는 목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피폐하게 한다면 그건 불교의 기본원칙에 벗어난다. 자기중심적이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남한테 피해를 주면서까지 그러라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과 마음을 지킬 수 있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라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우석 스님은 “지금은 물질이 넘쳐서 굶어 죽는 사람은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동냥을 하지 않아도 나름 자급자족이 가능할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삶의 어떤 지점서 물질적인 고통보다 정신적인 고통이 강할 때 그 삶을 버리거나 바꿔서, 또 받아들여서 새로운 삶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외부서 원인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모색하고 변화하는 태도를 취해야 하는 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는 “외적인 요인으로 인해 자기 삶이 압박받고 가둬져 있어 내 삶은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자기중심적이 아니라 외부중심적”이라며 “내가 지금 이 순간 결정하면 모든 걸 다 바꿀 수 있고 새로운 수익구조도 만들 수 있다는 게 바로 자기중심적 사고”라고 부연했다. 

4월 총선을 2개월 앞둔 상황서 지도자의 덕목에 대해서도 물었다.

우석 스님은 “정치권은 정권을 창출하는 데만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예산을 따오는 과정서 본인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만 강조한다. 물론 예산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예산을 지역 특색에 맞게 어떻게 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거철에 많은 공약이 나오는데 비현실적이거나 터무니없는 것도 많다. 그보다는 현실화할 수 있는 공약을 내세워야 한다. 지금은 공약을 당선의 수단, 그리고 목적으로만 여기는 국회의원들이 많다. 지역사회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정치에 대해서도 많이 공부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도자 덕목
공약 현실화

우석 스님은 “기성세대는 자기 삶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가치관이 이미 고착화돼있다. 그에 반해 젊은 세대는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 무엇이 자신의 삶에 중요한지를 더 고민할 수 있다. 물질이나 사회적 지위, 삶을 물질로만 판단하는 태도를 지양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제언했다. 

“4~5년 전, 부처님 그림에 쓰여 있던 글귀인 “나는 천천히 가는 사람이다. 그러나 절대 뒤로 가지는 않는다”를 인용한 그는 “속도는 느려도 방향성 자체는 앞을 향한다는 의지를 담은 표현”이라고 마무리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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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