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서울경찰청장 불기소 시나리오

외부 전문가들은 책임 있다는데…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500일이 돼간다. 고위 공무원 및 윗선에 관한 수사기관의 진상규명 의지는 증발했다. 그나마 경찰은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게 법률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불구속 기소 가능성이 점쳐졌으나, 관측만 1년을 넘겼다. 결국 검찰이 수사심의위원회를 소집하면서 김 청장의 무혐의 가능성만 커졌다.

10·29 이태원 참사를 수사한 경찰청 특별수사본부(이하 특수본)는 윗선 중 김광호 서울경찰청장만 검찰에 송치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혐의 처분됐다.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서부지검 수사팀은 김 청장을 기소조차 하지 않고 있다. 대검찰청 차원서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이유다.

기로에서…
관측만 1년

특수본은 이태원 참사 수사 당시 형사법 전문가 등 외부 전문가들로부터 ‘김 청장의 혐의가 인정된다’는 취지의 의견을 받았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특수본은 지난해 1월 행안부와 서울시, 경찰청, 서울시 자치위원회, 서울경찰청 등 5개 기관 책임자에 관한 혐의 판단을 구했다.

해경 지휘부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한 세월호 참사 판례나 경찰서장이 불기소된 일본 아카시시 압사 사고 등 상급자의 과실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국내외 판례가 있으니 김 청장 등의 경우는 어떤지 외부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한 것이다.

특수본은 행안부, 서울시, 경찰청장, 서울청장, 서울시 자치경찰위원회 등 5개 기관 책임자에 대한 수사 결과 보고서 초안을 전문가들에게 송부한 뒤 의견을 받았다. 전문가 5명 중 4명은 김 청장의 혐의가 인정된다며 송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서울청장의 혐의가 인정된다’는 수사 결과에 동의한다는 취지였다. 이들은 행안부, 서울시, 경찰청장, 서울시 자치경찰위에 대해선 불송치 내지 입건 전 조사 종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특수본 수사 결과에 동의한다고 밝힌 A 자문위원은 의견서에서 김 청장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주의의무를 진다’고 봤다. A 위원은 김 청장이 참사 보름 전인 10월14일부터 27일 사이 정보분석과·112치안종합상황실 등으로부터 핼러윈 데이와 관련해 보고를 받았고, 참사 당일에도 용산경찰서장으로부터 상황 보고를 받은 점에 주목했다.

A 위원은 “사상의 위험 발생 가능성이 현저함에도 불구하고 서울청장은 인파 관리에 효율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경찰관기동대를 배치하는 등 인명사고의 예방 및 대책을 수립·시행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며 “이태원 사고 피해자나 사고 발생 장소의 상인 등의 과실이 인명사고의 공동 원인이 됐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서울청장 등의 형사책임이 부정되진 않는다”고 분석했다.

사고 발생 500일…윗선 책임자 처벌 ‘0명’
서부지검 전·현 수사팀 의견 충돌 이유는?

자문위원 B씨는 의견서에서 “예년의 경우 관례적으로 기동대가 투입되어 인파 관리를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에만 예외적으로 기동대가 투입되지 않은 데는 모종의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면서 “이런 의혹이 사실이라면 경찰 지휘부 혹은 외부서 기동대 투입을 막은 존재는 사고 발생에 공동정범의 책임을 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해 김 청장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김 청장의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이하 수심위)에 회부했다. 대검찰청은 이원석 검찰총장의 직권으로 15일 김 서울청장과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에 대한 수심위를 개최한다.


김 청장이 수심위에 회부된 것을 두고 서부지검 전·현 수사팀 간 갈등이 표출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9월 바뀐 서부지검 현 수사팀은 세월호 참사 사건서 해경 지휘부 전원이 무죄를 받은 점, 부산 초량 지하차도 침수 사건 항소심서 공무원들이 무죄 혹은 감형 판결을 받은 점 등을 들어 김 청장을 불기소 처리하는 것이 옳다고 보고 있다.

반면 서부지검 전 수사팀은 김 청장을 기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이태원 참사 사건과 관련한 정보보고서를 삭제한 혐의로 기소된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경무관)의 공소장에 ‘참사 전 김 서울청장에게 인파 집중 위험성이 보고됐으며, 김 청장이 이에 대비할 것을 지시했다’는 취지로 기재했다.

기소 의견
책임 명확

서부지검 전 수사팀은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아 지휘부의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인정한 판례를 들여다본 것으로 전해졌다.

고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과 관련해 구은수 전 서울청장이 유죄를 확정받았던 게 대표적이다. 구 전 서울청장은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 현장서 살수차 운용 감독을 소홀히 한 혐의로 기소됐는데, 법원은 “이 사건 집회·시위의 총괄 책임자로서 사전에 경찰과 시위대에 부상자가 발생할 가능성을 예상했다”며 벌금 1000만원을 확정했다.

서부지검 전·현 수사팀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으나 이 총장이 직권으로 김 청장을 수심위에 넘긴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비판이 거세다. 검찰 내부서도 면죄부를 던져준 것이라는 불만이 나타나는 분위기다.

서울중앙지검 한 관계자는 “수사 지휘부서 김 청장을 재판에 넘길 의지가 있었으면 굳이 수심위를 열 필요가 없었다”며 “여러 판례가 존재함에 따라 기소 후 무죄 가능성 등 정치적 이유와 역풍 등을 고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부지검 관계자도 “전 수사팀 관계자들이 정말 열심히 수사해왔다. 유족분들의 눈높이를 맞추려 애썼지만 대검서 김 청장의 구속영장 청구를 반대하는 분위기였던 건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김 청장의 불기소 가능성은 적지 않다. 이태원 참사 재판서 피고인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면서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의 입증과 인과관계에 관한 재판부의 판단이 길어지고 있다. 김 청장이 기소된다고 해도 같은 혐의를 받는 만큼 재판서 무죄를 받을 가능성은 크다는 분석이 제기되는 이유다.

사실상
면죄부?

현재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진행 중인 재판은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 용산경찰서 관계자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용산구청 관계자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공공안녕 정보외사부장 등 경찰 정보라인 관련자 ▲최재원 용산구보건소장 재판 등 4가지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을 비롯한 용산경찰서 관계자들은 보석으로 풀려난 뒤 직위 해제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들은 핼러윈을 앞두고 10만명 인파 운집이 예측된다는 보고 및 참사 당일 압사 위험을 알리는 112 신고를 받고도 별다른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혐의(업무상과실치사상 등)를 받는다.


또 이 전 서장과 그 관계자들은 참사 현장 도착 및 경찰 구조활동 내역을 허위로 기재하도록 지시 및 기재한 혐의(허위공문서 작성·행사 등)도 받고 있다. 이 전 서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은 무전 내용만으로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어려웠다거나 허위 기재 지시 및 작성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밀집 위험을 예측한 정보보고서 등을 참사 직후 폐기하려 한 혐의를 받는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공공안녕 정보외사부장 등 3명 역시 혐의를 부인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폐기 절차가 규정에 따른 올바른 직무수행이었다고 결백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측은 기자 브리핑서 “참사 관련 정보보고서 7건 중 4건이 삭제됐고, 핼러윈 행사 관련 정보보고서가 다수 제작됐지만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총장 직권으로 수심위 회부
김광호 무혐의 가능성 커져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를 받는 박 구청장 등 관계자 4명에 대한 재판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이태원 참사가 예측 불가능한 행사였으며 주최자가 없었기 때문에 관리 책임 또한 없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용산구청 실무자들도 책임을 경찰 측에 떠넘기고 있다. 서울시 인사위원회 측에선 이들에 대해 공무원직무상 의무 위반 등에 따라 징계 절차를 의논하고 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이들 공판이 동일한 사안을 다루는 만큼 선고기일을 최대한 맞추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다. 박 전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 공판의 경우 이달 안으로 1심 선고를 예고한 상황이다.

서부지검 전 수사팀은 지난해 말까지 현 수사팀에 “김 청장을 재판에 넘겨야 한다”는 의견을 지속적으로 피력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서부지검 전 수사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임재 전 서장의 혐의와 김 청장의 혐의가 비슷한 게 아니라 같다. 이 전 서장을 넘겼는데 김 청장을 못 넘길 이유가 없지 않느냐”며 “향후 책임과 혐의 인정은 재판부가 판단할 몫이다. 정치적 이유를 왜 고려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 전 서장의 재판서 검찰은 ‘핼러윈 데이를 맞아 이태원 일대에 인파가 몰린다는 것을 예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고 발생까진 예상하지 못했더라도 인식 없는 과실이 인정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고 발생 가능성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해 과실범으로 기소한 것이지, 사고 발생 가능성을 알았다면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므로 고의범으로 기소했을 것이라는 취지다.

서부지검 전 수사팀에 따르면 김 청장은 참사 당일 이태원 일대에 대규모 인파가 몰릴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여러 차례 전달받았다. 이 전 서장 혐의의 핵심이 되는 ‘인파가 몰릴 것을 예견할 수 있었는데도 적절치 대처하지 않았다’는 논리와 일치한다.

서부지검 초기 수사팀도 김 청장의 혐의를 인정했고, ‘구속 기소가 필요하다’는 의견까지 냈었다.

검찰 내부
갈등 표출?

기소를 뒷받침하는 판례가 상당하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대표적이다. 실제 검찰은 이 전 서장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해당 사건을 언급하기도 했다.

당시 검찰은 “해당 사건에서 법원은 피고인들(제조·판매사 대표)이 ‘위험성을 알리는 자료를 몰랐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몰랐으니 업무상과실치사상이지)그 자료를 확인하고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면 고의범이 성립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결문에 적시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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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시가 돛을 올린 한강버스가 고장 끝에 결국 멈췄다. 과거 ‘아라호 사업’도 재조명되고 있다. 아라호 사업은 2010년대 초반 경인 아라뱃길을 중심으로 관광 활성화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인천시와 공동으로 수백억원을 들여 기획한 수상 교통 프로젝트였다. 아라호는 시민들의 외면과 운영 적자로 인해 자취를 감췄다. ‘반면교사’로 삼았던 걸까? 서울시는 한강을 따라 운행되는 수상 교통수단으로, 서울 전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통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으로 지난 18일 한강버스 운항을 시작했다. 여의도, 잠실, 뚝섬 등 주요 한강변 거점과 지하철역을 연계해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게 핵심이다. 관광이냐 출퇴근이냐 서울시는 한강버스를 통해 관광 교통수단을 넘어 서울을 ‘한강 중심의 스마트 모빌리티 도시’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열흘 만에 운항이 중단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9일 오전 시청에서 열린 주택 공급 대책 관련 브리핑 도중 “한강버스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며 “시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열흘 정도 운행 통해 기계적·전기적 결함이 몇 번 발생하다 보니 시민들 사이에서 약간 불안감 생긴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운항을) 중단하고 충분히 안정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바람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시는 이날부터 10월 말까지 한강버스 시민 탑승을 중단하고 성능 고도화와 안정화를 위한 무승객 시범 운항을 한다. 시는 국내 최초로 한강에 친환경 선박 한강버스를 도입해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22일에는 잠실행 한강버스가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고, 같은 날 마곡행도 운항 준비 중 전기 계통에 문제가 생겨 결항했다. 26일에도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운항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자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 과거 아라호의 값비싼 교훈을 남겼지만, 실패 요인을 분석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결과다. 한강버스 역시 또 하나의 혈세 낭비 사례가 될 수 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아라호 사례를 철저히 분석해 이번에는 실질적인 시민 편익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강버스가 서울의 새로운 교통 패러다임으로 자릴 잡을지, 아라호의 전철을 밟을지는 향후 몇 년간의 운영 성과에 달려 있다. 서울시 아라호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임기 때인 2010년 서울시가 예산 112억원을 들여 만든 2층 유람선으로 지난 2009년 5월부터 1년5개월을 들여 건조됐다. 오 시장의 지시로 건조된 아라호는 시민들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공연과 한강특화공원 관람이 동시에 가능한 선상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는 영리 목적보다 공공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민자 유치 대신 재정이 투입된 사업이었다. 당초 아라호를 한강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운항하는 관광 크루즈선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여덟 차례 시범 운항과 21회 시험 운항만 했을 뿐 사실상 사업은 중단됐다. 제작 당시부터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을 빚었던 아라호는 정식 취항도 해보지 못한 채 팔렸다. 실제 운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험료와 유지비 등 관리 비용에만 연간 1억원이 들어간다는 점도 매각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12억원 들여 29억원에 판 아라호 출항 나흘 만에 고장…오, 좌불안석 아라호가 정식 운항에 나서지 못했던 배경에는 서해뱃길 사업을 둘러싼 서울시와 시의회의 갈등도 있었다. 오 시장의 아라호 활용 계획에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이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0월 고 박원순 전 시장이 취임 후 사업 타당성 문제로 매각을 결정하면서 오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백지화됐다. 결국 서울시는 아라호 매각을 결정한 후 지난 2013년 5월, 106억원의 예정 가격으로 매각 입찰에 나섰으나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이후 2차 입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알만한 이들은 알겠지만, 선박 사업은 수요를 찾기 어려운 사업 중 하나다. 결국 서울시는 3차 매각 입찰에서 최초 예정 가격에서 10% 인하된 95억원으로 깎았지만 이마저도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해 11월, 4차 매각에서 15% 인하된 90억원에 입찰을 시도했지만 응찰자가 없어 가격 인하의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지 못하자 결국 임대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아라호가 정식 운항도 못한 채 6년 넘게 여의도 한강공원 선착장에 방치되면서다. 서울시가 제시한 사업 기간은 연말까지 8개월이고 한 차례 1년간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당시 최저 임대료는 2억6300만원이었다. 아라호는 임대 사업을 시작해 건조 6년 만에 빛을 봤지만, 운항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강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아라호는 지난 2016년 민간업체인 레츠고코리아가 임대사업권을 낙찰받아 3년간 운영하다가 2018년 이랜드그룹 계열사 이랜드크루즈로 사업권을 넘겨줬다. 이랜드크루즈가 사업권을 따낸 시점은 지난 2018년 3월이지만 실제 운영은 2019년 6월부터 시작됐다. 이전 사업자인 레츠고코리아가 서울시의 계약 위반을 주장하며 유람선과 시설물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랜드크루즈는 1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지난 2019년 6월부터 운영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아라호의 임대 운영 사업을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애물단지 전락하나 이랜드크루즈는 임대계약 갱신청구권(1년)마저 포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무렵부터는 주식회사 수가 임대사업권을 이어받았다. 이후 마지막으로 인더라인25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업하는 조건으로 서울시와 지난 2022년 12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년 단기 임대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인더라인25가 철거하지 않아 서울시는 골머리를 앓았다. 아라호 운항은 멈췄지만, 선착장을 한 달째 무단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더라인25는 계약 연장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시는 인더라인25를 상대로 명도소송, 점유 이전 금지 가처분, 행정 가처분 등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라호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수요 예측 실패와 운영비 부담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아라호가 연간 수십만명의 승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예상했으나, 실제 이용객은 예측치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노선 설계가 시민들의 일상적인 통근이나 이동과 잘 맞지 않았고, 요금 역시 육상 교통수단에 비해 비쌌다. 결과적으로 관광객 유치에도 한계가 있었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아라호는 철수될 수밖에 없었다. 아라호는 건조한 지 15년 만에 민간에 팔렸다. 지난 1월 서울시 한강 유람선 아라호는 5차례 입찰 끝에 약 28억5780만원에 팔려 민간업체에 인도됐다. 2013년부터 총 9번의 입찰을 시도한 결과 3분의 1 가격에 달하는 헐값에 팔린 셈이다. 당시 서울시에 따르면 아라호는 2024년 11월 말 공개입찰을 진행한 뒤 지난달 주식회사 마이랜드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길이 58m에 688톤 규모의 아라호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과 서강대교 남단을 오갔다. 승객은 총 310명까지 태울 수 있다. 음악회, 공연, 결혼식, 영화 상영을 위한 시설도 보유했다. 선착장에는 편의점, 치킨집 등 부대시설도 있었다. 아라호는 건조 후 15년 만에 매각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후임 고 박원순 시장이 2012년 사업을 백지화하면서 5년간 방치됐다. 2013년 5월 처음으로 공개입찰에 넘겨졌다. 시는 같은 해에만 총 4번의 입찰을 추진했으나, 입찰자가 없어 매번 무산됐다. 실패했지만 이번엔 달라? 서울시는 수의계약 방식으로도 매각을 시도했으나, 매각사의 자금 동원 문제로 불발됐다. 이에 시는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는 대신 민간 위탁하는 방향을 택했고, 2017년부터 민간 위탁을 통해 운영했다. 하지만 임대계약이 만료되면서 지난해 5월 말부터 운항이 중단됐다. 그러자 시는 다시 매각을 시도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총 5차례의 입찰을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 말 입찰자가 나와 12월 매각 계약을 맺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간 아라호의 위탁 운영은 선박 운항이 아닌 선착장 내 치킨집 등 부대시설 위주로 돌아갔다”며 “자연스레 선박도 노후화되고, 전반적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다시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법적 분쟁으로 얼룩진 아라호를 통해 한강에 배 띄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번 한강버스 사업에서 아라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3가지 전략적 과제를 내세우고 있다. 먼저, 실제 수요 기반의 노선 설계를 강조했다. 또 관광 중심이 아닌, 출퇴근·생활 교통을 고려한 정류장 배치, 그리고 지하철·버스 환승과의 연계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내세우기도 했다. 기존 대중교통과의 환승 할인을 적용하고, 관광·레저용 프리미엄 서비스와 생활 교통 요금제의 이원화를 강조했다. 또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전기·수소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했고, 실시간 교통 정보 제공 및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서울시가 한강버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들인 초기 사업비는 약 542억원으로 향후 발생할 총 사업비는 약 1500억~1750억원으로 예상된다. 아라호 사업비보다 10배가량 많은 혈세가 투입될 예정이다. 한강버스는 출·퇴근용 선박인 만큼 이용객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척의 선박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한강버스 운영사는 6척의 선박을 납품받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재는 첫 출항 이후 3척이 운항 중이며, 향후 6척의 선박이 모두 납품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선착장 시설, 운영 시스템, 접근성 개선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돼 총사업비가 1000억원대 중반까지 증가한다. 묻지 마 10배로 베팅 6시에 나와야 9시 출근 아라호는 ‘유람선 제작’이 중심이고, 공연시설 등이 포함된 문화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의 선박이었다. 시설 설계가 크고 복잡한 부분이 있지만, 수량이 하나라 규모 면에서 제한적이기에 한강버스와 다르다는 결론이다. 반면, 한강버스는 여러 척의 선박을 건조해야 하고, 선착장 설치 또는 보수도 그만큼 갖춰져야 한다. 또 전기 또는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한 만큼, 유지비용도 클 뿐만 아니라 홍보, 안전, 시험 운항 등 여타 부대 비용에 민간투자금 및 보조금 등이 혼합돼있어 사업비 증액은 여러 원인으로 발생한다. 한강버스 사업비가 초기 대비 크게 증가한 이유로 업체 선정 과정에서 계약 조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공정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를테면 선박 제작 능력이 있는 업체와 없는 업체 간의 차이를 분석했는데, 일부 업체는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준비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아 계약이 무산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강버스는 대중교통 기능이 강조되면서 ‘출퇴근 수단’ ‘교통망 보완’ 등의 역할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가 크더라도 지속 운영을 통한 수요 확보가 전제된다. 하지만 계획 대비 수요가 예상만큼 확보될지, 운영비와 적자 보전 부담이 얼마나 될지는 논란 중이다. 한편, 한강버스는 정식 운항 나흘 만에 선박의 방향타 고장 등으로 잇따라 멈춰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지난 23일 기준 누적 탑승객이 1만명을 돌파하는 등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은 한강버스가 정시성 확보가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7시쯤 옥수선착장을 출발한 잠실행 한강버스가 강 한가운데서 20여분간 멈춰섰다. 결국 승객들은 종착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내려야 했다. 한강버스 운영사는 고장 선박을 뚝섬 선착장에 접안한 뒤 승객들을 모두 하선시켰고, 뚝섬에서 잠실까지 구간의 운항을 취소했다.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발생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안내 방송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탑승객은 “20분이 넘게 서 있었고, 안내 방송이 안 나오고 승무원도 안 계시고…. (뚝섬 선착장) 도착하기 2~3분 전에 승무원이 ‘이 배 잠실까지 안 간다’고 뚝섬에 다 내리셔야 된다고…”라고 말했다. 이 사고와 별개로 같은 날 오후 7시30분에 잠실 선착장을 출발할 예정이었던 마곡행 한강버스는 선박 고장으로 아예 결항됐다. 그 바람에 강서 방향으로 이동하려던 시민들은 황급히 다른 교통수단을 찾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다. 승부수? 무리수? 서울시는 두 선박 모두 전날 밤 안정화 조치를 거쳐 다음 날인 23일 운항에는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또 선내 안내 방송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한강버스 운영사가 이상을 감지한 뒤 원인을 파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려 안내에 일부 지연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한강버스는 마곡-망원-여의도-압구정-옥수-뚝섬-잠실 28.9km 구간을 상하행 7회씩 총 14회(첫차 11시) 운항하고 있다. 소요 시간은 마곡에서 잠실까지 127분이다. 여의도에서 잠실까지는 80분이다. 추석 연휴 이후인 다음 달 10일부터는 출퇴근 시간 급행 노선(15분 간격)을 포함, 평일 기준 왕복 30회로 증편한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