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63)모리배들의 권력적 횡포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4.01.02 08:00:00
  • 호수 14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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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그러고 보니 한 며칠 못 들어본 것 같네요. 대체 뭔 일이죠?”

“혹시 문화 예술인 블랙리스트라고 모르세요?”

“알긴 알죠. 그럼 혹시…?”

“아마 거기 찍힌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허 참….”


나는 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자기네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요즘 같은 대명천지에 검은 살생부를 만들어 예술가들의 창조성을 얽어 맨다는 건 상식 이하의 폭거였다.

변질된 통일

그런 아이디어를 누가 제안하고 누가 허가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난 그 무렵부터 우리 여대통령이 살짝 미치지 않았는지 의심했었다. 

아마 애초엔 수하의 똘마니들이 권력적 횡포로 벌인 짓이었겠으나, 문화 예술인들이 차가운 거리로 나서서 부르르 떨며 부당성을 외치는데도 일언반구 없는 채 계속 밀어붙였다는 건 그녀의 의도가 투영된 ‘정책’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아버지 박통으로부터 배운 방법이었는지 모른다.

고古 박통 또한 1960~70년대 독재 시절에 자기 입맛을 거스르는 문화 예술인들은 억누르고 투옥했으며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다. 그에 비하면 가볍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 당시 수많은 대중 가수와 민중 가수들이 불온스런 노래를 부른다는 죄목으로 이른바 대마초 사건에 얽어 매여 연예계로부터 퇴출당했었다.

금지곡 혹은 불온 가수라는 빨간 딱지가 붙는 순간 예술 활동을 할 수가 없는 비극 시대였다.


“혹시 노래 가사 때문인가?”

술잔을 손에 든 가수가 독백처럼 말했다.

“글쎄, 그럴까요?”

나는 속으로 가사를 가만히 되새겨 보았다.

“통일이나 분단을 대박 또는 쪽박으로 표현해서….” 

가수는 유리잔을 꽉 쥐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대통령께서 대박이라고 공언했는데 쪽박이라 노래한다고 삐졌을까?”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럴지도 몰라요. 정말 어이가 없어서….”

그는 눈썹을 잔뜩 찌푸린 채 또 술을 마셨다.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가사를 쓸 때 불찰이 좀 있었는지 몰라도, 난 그냥 사실대로 썼을 뿐이에요. 통일이 대박이 될지 쪽박이 될지, 분단 상태가 쪽박인지 대박인지 누구도 확실히 모르니까요. 그래서 국민들도 속으로 많이 혼란스러워하고 있고 말예요. 노래를 듣기도 하고 부르기도 하면서 한번 생각해 보자는 것뿐인데….” 

“맞아요. 작곡가 선생님도 가사가 재미있다면서 흔쾌히 착수하신 거예요. 쉽게 곡을 주시는 분이 아닌데….” 


“자, 속풀이 술이나 한잔 쭉 마십시다. 오랫동안 꿈꾸어 온 일이라 저보다 훨씬 마음이 쓰리고 답답하시겠지만 여기서 포기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다른 방법을 찾아보면 분명 있을 거예요. 가왕 조용필 씨도 옛날 박통 시절에 억울하게 대마초 가수로 낙인 찍혀 방황의 위기를 맞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슬기롭게 노력해 한 차원 높은 새로운 노래의 세계를 열었다잖아요.” 

“그동안 밑바닥을 실컷 기어 본 것도 이럴 땐 좀 도움이 되는 것도 같네요. 그래도 이 소주 한 잔에 섞인 얘기가 없었다면 꽤 씁쓸했을 거예요.” 

정권 비판 문화예술인들 ‘빨간 딱지’
뒷거래 이득으로 욕망 추구한 권력자

우리는 건배를 하곤 깊어 가는 밤의 바람 소리를 들으며 인생담을 나누었다. 

여대통령은 날이 갈수록 어딘지 모르게 점점 더 이상스러운 낌새를 보이고 있었다. 그 실상이 뭔지는 흑막 속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아직 잘 알 수가 없었다.

일반 국민들의 가슴속에 의혹이 싹튼 이유는, 정치를 잘 하지 못해서라기보다 그녀의 모습이 상상 외로 변해 갔기 때문이었다.


불과 얼마 전의 대통령 선거 유세 당시 보여 줬던 미숙하나마 일면 강직스러워 보인 기색은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채 생동적인 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의 조종을 받는 인형처럼, 그녀 자신의 본래 정체성이 희미해져 가는 듯싶었다. 

얼굴도 언행도 왠지 모르게 바뀌어 국민들은 차츰 의아스러워했다. 비판자와 중도적인 국민들뿐만 아니라 열혈 지지자들마저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였다.

문고리 3인방이니 특수 종교인이니 자매 친구 멘토니 뭐니 하며 나날이 의혹의 그림자는 점점 짙어졌건만 정신차려 국정을 바로잡을 만한 소위 ‘우주적 초능력’은 발휘하지 못했다.

통일 대박이란 캐치프레이즈도 누군가 흑막 뒤에서 지시해 주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지금 여기서 대한민국 최초의 여대통령을 욕하려는 건 아니다. 오히려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을 부추겨 정치판으로 끌고 나온 자들, 아버지 박통의 후광에 눈이 먼 채 투표로 딸을 대통령으로 뽑아 준 유권자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는지도 모른다.

북한의 3대 부자간 세습을 가장 비난하고 욕하던 사람들이 아마 박통 부녀에게 가장 많은 표를 주었을 듯싶은데, 뭔가 배울 게 있다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혹은 다른 까닭이 있었는지 궁금한 노릇이다. 

그 무렵엔 웬일인지 통일 대박론도 슬그머니 꼬리를 감춰 버렸다. 국정은 난장판이었고 나라의 앞날은 오리무중 상태였다. 집안 단속하기도 어려운 판국이라 통일 운운하기는 먼 세상 얘기일 터였다.

어차피 애초 통일은 그들의 노리개가 아님이 드러났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통일이란 권력자 모리배들의 뒷거래 이득이 아니라 우리 민중의 몫이다.

통일을 통해 뭔가 고차원의 이익을 얻으려 한다면(즉 가진 자들만의 욕망 추구), 설사 결합되더라도 반목으로 인한 쟁투가 심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이미 너무나 많이 경험해 보지 않았던가! 담백한 심정으로 흐르고 흘러 두물머리 세물머리에서 합쳐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강물처럼 남북의 민중들이 바로 통일 주역이 되어야 한다.

자기네들이 물(국민) 위에 떠 가는 배라고 비유하는 정치꾼들의 자만을 뒤집어엎고 우리 스스로 물꼬를 터 만나기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시기다.

민중의 가슴엔 통일 염원이 늘 한강과 대동강처럼 흐르건만, 제 잘난 위정자들은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해 거기에 철조망을 치고 있다.

국민의 몫

피 흘리는 반쪽짜리 가슴이(더 나아가 반쪽짜리 머리가)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남북 코리아(그리고 민중들)의 현실이다.

반쪽 가슴과 머리로 참 대단한 기적 같은 업적을 이루어왔지만 문제점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건 정체된 위험한 앙금처럼 우리의 내부에 쌓여 있다. 

통일은 그런 식이 아니라 좀 더디고 어려울지언정 삿된 길보다 정도를 택해야 한다. 어둠보다는 밝음 속에서, 억지보다는 자연스럽게, 무력 정복보다는 화해 협력을 통해 가시밭길을 한 걸음씩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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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