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세관 수사 애먹는 경찰, 왜?

두 달간 제자리…답답한 꼬리잡기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경찰의 인천공항세관 수사가 시작된 지 두 달이 지났다. 일부 세관 직원이 동남아 마약상들의 마약밀수를 도왔다는 의혹이다. 연루된 일부 직원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경찰이 최근까지 압수수색을 감행하는 등 수사 강도가 높은 것과는 상반된 모양새다. 직접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까닭일까? 경찰 수사에 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인천공항세관(이하 세관) 직원들의 마약밀수 조력 의혹 수사가 잠잠해졌다. ‘상부상조’ 사이인 경찰과 세관 간 대치는 이례적이다. 뜨거운 감자였던 사건이 조용해진 건 경찰이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으로 파악됐다.

세관 직원들의 마약밀수 조력 의혹 수사는 두 달 전부터 시작됐다. 별건의 마약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말레이시아 출신 국제 범죄조직원 A씨로부터 구체적 진술을 얻어낸 게 컸다. 영등포경찰서(이하 영등포서)는 A씨를 조사하면서 “지난 1월 입국 당시 세관 직원 4명의 도움을 받았다”는 증언를 확보했다. 체포된 다른 조직원들도 A씨의 진술과 유사했다.

마약상 밀수
도운 의혹

A씨는 한국과 중국, 말레이시아서 주로 활동했다. 지난 1월27일 인천공항을 통해 필로폰 24kg을 몸에 붙여 들어온 운반책 6명 중 1명이다. 한 달 뒤에는 다른 조직원이 김해공항을 통해 6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필로폰 약 4kg을 밀반입하다 적발돼 1심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세관 연루 의혹을 수사하던 경찰은 다른 조직원을 통해 A씨의 신원을 확보하고 현장검증에도 참여시켰다.


A씨는 “밀반입 루트와 계획을 세관 직원들이 알고 있었고 운반책들의 얼굴을 알았기 때문에 통과됐던 것”이라고 진술했다. 실제 운반책들이 입국할 때 무리 없이 심사를 통과했고 세관 직원들이 먼저 알아보고 안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 때문에)농림축산검역대를 통과해야 하는데 세관 구역으로 몰래 통과할 수 있게 빼줬다”고 증언했다.

부산지검은 필로폰 14㎏ 상당을 김해공항을 통해 밀반입을 시도한 혐의로 말레이시아 국적 20대 여성 B씨를 구속 기소하기도 했다. B씨는 지난 5월29일 말레이시아서 푸딩파우더 포장재 안에 필로폰 약 14㎏을 숨겨 김해공항을 통해 밀반입을 시도했다.

검찰이 압수한 필로폰 약 14㎏(시가 약 463억원)은 김해공항을 통해 밀반입을 시도한 역대 최대 물량으로, 46만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검찰은 B씨에게 징역 20년을 구형했고, 부산지법 형사5부(부장판사 장기석)는 A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부산지검 관계자는 “밀반입을 시도한 필로폰의 양이 상당하고, 마약 밀반입은 공중보건과 사회질서에 미치는 악영향이 매우 크다”며 “더욱 중한 선고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고 설명했다.

영등포서는 초기 수사 단계서 성과를 거뒀다. A씨의 진술대로 한 부서의 실무급 직원들이던 세관 공무원들의 혐의가 사실로 밝혀지면, 수사는 윗선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컸다.


필로폰 24kg 몸에 붙여 무사통과
수사대상 오른 직원들 밀수 조력?

그러나 외압 의혹이 제기되면서 수사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복수의 경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서울경찰청 출신 C 경무관은 영등포서 D 경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찰청 감찰담당관실은 지난달 C 경무관에게 전화를 건 경위와 통화 내용 등에 대해 직접 물었고, B 경정에게도 당시 상황에 대해 확인했다.

C 경무관과 D 경정은 감찰담당관실에 통화 상황을 각각 진술했다.

C 경무관은 과거 자신이 영등포서장과 인천공항경찰단장을 지낸 이력을 언급하며 “국정감사를 앞두고 관세청장이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며 “내가 (세관 측에) ‘관세청이나 경찰청 모두 정부 일원이기 때문에 타 기관을 예우할 거다. 그렇게 무리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말했다.

‘과거 업무 때문에 인연을 맺은 인천공항본부세관 측 인사로부터 요청을 받아 전화를 걸었다’는 취지의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C 경무관은 당시 이 사건과는 관련 없는 보직을 맡고 있었고, D 경정은 C 경무관의 관계를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고 말했다.

D 경정은 “이튿날 서울청으로부터 수사팀이 배제된 상태서 세관 직원 관련 사건의 이첩을 검토 중이라는 통보를 받았고 중간 수사 결과 발표 때(지난달 10일) 세관 연루 내용은 제외하고 발표하라는 지휘부의 지시 등도 있었던 상황이라, A 경무관의 전화와 사건 이첩 논의 등을 세관 직원 수사에 대한 대한 ‘외압’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C 경무관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서 “국정감사를 앞두고 세관이 예상 질의를 준비하기 위해 이 사건 보도자료에 세관 관련 내용이 들어가는지 확인 요청을 해 왔고, 이에 기관 간 업무협조 차원서 전화를 건 것일 뿐이다. 수사 개입 의도는 없었다”고 밝혔다.

“억울하다”
5명 혐의는?

수사팀이 특정범죄가중처벌법(마약류 관리법) 위반 및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입건한 세관 직원은 현재까지 총 5명이다. 그러나 수사는 아직 마약 유통책들의 진술 이외에 뾰족한 추가 증거를 찾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수사팀이 세관 직원과 마약 유통책 간 금전거래 여부를 들여다보기 위해 신청한 금융거래내역 압수수색 영장도 검찰서 두 차례 반려됐다.

세관에는 고급 마약 첩보들이 몰린다. 검찰이 일부 수사권을 회복하면서 한동안 마약수사에 올인하던 경찰과 경쟁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상황이다. 세관 내부에서는 제공할 수 있는 첩보가 한정적이기에 경찰보다는 검찰에 넘기는 게 유연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세관 직원은 “경찰이 세관을 마약과 관련해 강도 높게 수사한 적이 없다. 이번 수사와 관련해 검찰에만 첩보를 제공하는 것에 관한 화풀이가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고 주장했다.

우선 경찰청 간부가 영등포서 측에 연락을 취한 수사 외압 의혹은 본청 차원서 진상조사가 시작됐다. 사건 수사는 디지털포렌식 과정을 거치는 단계에 이르렀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외압 의혹 부분은 본청 차원서 진상조사 중이다. 서울청 단위서 할 수 있는 부분은 철저한 수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영등포서를) 지원하고 있고 지휘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사건 관련자들이 참여하면서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리고 있다”며 “현재 피의자는 5명인데 일부 조정은 가능하다. 원래는 4명이었는데 지금 5명이 됐다. 한 명이 줄어들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관세청은 영등포서의 수사를 지켜보되 사건에 연루된 직원 1명을 직위해제 조치했다. 연루된 직원 중 일부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조직원들이 “세관 직원들이 길을 안내해서 따라갔다. 농림축산검역소가 아니라 세관 구역으로 나왔다”는 진술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해 힘든
유착·외압

당시 조직원들이 타고 온 비행기는 검역 대상인 쿠알라룸프르발 비행기였다. 해당 비행기서 내린 모든 승객은 세관의 검역을 받아야 한다. 경찰은 해당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해 수사를 이어가는 중이다. 하지만 사건에 연루된 세관 직원들의 말은 다르다.

한 세관 직원은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물품이 들어 있는지를 체크하는 게 검역”이라며 “신병 검색은 절대 하지 않는다. 들어오는 인물이 누구인지 체크해 따로 분류하는 경우는 없다”고 주장했다.


다른 직원도 “몸을 강도 높게 수색하는 경우는 드물다. 검역소 직원들은 승객들이 들여오는 햄, 고기, 과일 등을 확인한다. 몸을 수색할 이유가 없다. 상식적으로 과일을 옷 사이에다가 많이 들고 오는 여행객들이 있냐”고 되물었다.

경찰은 수사 직전인 내사 단계서 현장검증을 진행한 바 있다. A씨와 타 조직원들이 진술한 내용을 비교하는 등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복수의 조직원들은 세관 직원 3명을 ‘도와준 인물’이라고 정확하게 지목했다고 한다. 자리에 없었던 나머지 한 명도, 조직원들은 사진을 보더니 “이 사람이 도왔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관 직원들은 “통역사를 제외하면 현장검증에 온 조직원은 단 두 명이었다. 이 중에서도 1명이 주로 진술했다”고 반박했다.

압수수색 영장 잇단 반려
아직 물적 증거 확보 못해

가장 먼저 공범으로 지목된 세관 직원은 조직원들이 입국했던 날인 1월27일에 연가를 내기도 했다. 조직원들이 입국장에 들어선 건 오전 8시쯤이지만 해당 직원 이 시간, 공항서 차로 20분쯤 되는 집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 직원은 1월26일부터 27일 사이 중앙 통로에 출입한 내역이 조회되지 않았다.

조직원들이 진술한 내용 중 빠져나갔던 통로도 수상한 지점이다. A씨는 “주로 4, 5번 검색대로 통과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 수사 대상에 오른 세관 직원 중 해당 검색대서 일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경찰은 연가임에도 불구하고 공항으로 나와 조직원들을 돕고 중앙 통로를 제외한 다른 기록이 있는지 수사 중이다. 영등포서 관계자는 “세관 직원들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자료와 정황이 있다. 아직 수사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인 확인은 어렵다”고 말했다.

부산도 마약 사건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부산지법 형사5부(장기석 부장판사)는 특정범죄가중처벌에관한법률 위반(향정) 혐의로 기소된 태국인 E(40대·여)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또 특정범죄 가중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출입국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함께 기소된 F(30대·남)씨 등 태국인 2명에게는 각각 징역 8년을 선고했다.

E씨는 지난해 12월 합성마약 ‘야바’ 1만9369정(시가 19억3690만원 상당)을 태국서 김해국제공항을 통해 몰래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려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E씨는 알고 지내던 F씨로부터 “야바를 숨긴 물품을 반입해주면 대가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태국으로 출국했다.

이후 청바지 뒷주머니나 손가방 등에 은닉된 야바 1만9369정을 받아 자신의 여행용 가방에 넣은 뒤, 기내 수하물로 휴대해 입국하다가 김해공항서 세관 당국에 적발됐다.

이들은 E씨가 들여온 야바를 받아 국내에 유통하려 했으나, E씨가 적발되면서 연달아 붙잡혔다. 이들은 마약 소지나 투약 혐의, 체류 기간을 넘겨 국내에 머문 혐의도 함께 받아 기소됐다. 이들이 밀반입하려던 야바 1만9000여정은 김해공항서 적발한 사례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재판부는 “마약류 밀수입 범행은 마약류의 확산 및 그로 인한 추가 범죄로 이어질 개연성이 다분해 위험성이 크고, 피고인이 밀수한 야바의 양은 분량이 상당히 많은 편”이라며 “다만 국내에 유통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뻥 뚫린
김해공항

부산본부세관에 따르면 지난 10월20일에도 말레이시아 국적 G씨가 필로폰을 위탁 수하물에 넣고 들어오려다 김해공항서 적발됐다. 당시 필로폰은 셔츠 등을 고정하기 위한 두꺼운 도화지 부자재인 의류용 등대지인 것처럼 위장해 옷 속에 들어 있었다. G씨가 가져온 필로폰은 8kg가량으로 시가 240억 상당이다.

세관은 엑스레이 촬영과 정밀 판독 등 검사를 벌여 공항서 마약을 확인하고 G씨를 검거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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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