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그룹 때리고 달래는’ 공정위 이상한 이중잣대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12.29 10:12:14
  • 호수 14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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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뒤집기 ‘병 주고 약 줬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내부거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해욱 DL(옛 대림)그룹 회장이 지난 8월31일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앞서 공정위가 공정거래법상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행위’라고 보고 이 회장과 관련 회사들을 검찰에 고발하면서다. 이 와중에 DL그룹은 공정거래위원회의 CP 등급평가서 우수기업으로 선정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됐다.

CP(Compliance Program)는 기업들이 공정거래 관련 법규를 준수하기 위해서 자체적으로 제정·운영하는 내부준법시스템을 말한다. 공정위는 CP 등급평가를 신청한 기업을 대상으로 매년 1회 이상 CP 운영실적 등을 평가해 총 6단계 등급을 산정한다. 지난 14일 공정위는 2단계에 해당하는 AA등급(우수기업) 평가증을 DL그룹에 수여했다.

CP 등급 평가
2단계 AA등급

DL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 위치한 ㈜대림과 지주사인 DL㈜은 올해 공정위 CP 등급평가서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그룹 측은 “이해욱 회장이 강조하고 꾸준히 추진해온 그룹의 ESG 경영을 인정받은 결과”라고 자축했다.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경영은 기업이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 개선 등을 고려해야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ESG가 자본시장의 미래 핵심 키워드로 부상하는 만큼, 걸맞은 자격도 요구되는 시점이다.

일각에선 이 회장이 ESG 경영과 거리감이 존재한다고 봤다. 계열사를 동원해 개인회사를 부당하게 지원한 혐의로 기소돼 2억원의 벌금형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 8월31일 대법원(주심 이동관 대법관)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회장의 상고심서 그에게 2억원의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DL법인에게 벌금 5000만원, 글래드호텔앤리조트에게 벌금 30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도 함께 확정했다.

공정위 사정권에 들었던 DL그룹이 벌금형을 선고받은 올해에 우수기업으로 선정될 수 있던 배경에는 ‘공정거래 자율준수프로그램 운영 및 유인 부여 등에 관한 규정’이 있다.

규정에 따르면 CP 등급 평가 대상은 “최근 2년간 공정거래 관련 법규 위반이 있는 기업은 CP 등급평가 최종 결정 시, 평가 등급을 과태료·과징금의 경우 1단계, 고발의 경우 2단계 하향해 이를 최종 등급으로 한다”고 적혀있다.

“회장이 벌금형을 선고받은 기업을 우수기업으로 선정할 수 있냐”는 질문에 공정위 경쟁정책과 관계자는 “DL그룹 고발건은 2년도 지난 일이기 때문에 규정에 따라 가능하다”며 “CP 등급평가를 신청한 기업을 마냥 기다리게 할 순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다만, 공정위의 허술한 평가 대상 기준을 만족시킨 DL그룹은 도의적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회장 사익편취 논란에도 우수기업 선정
내부거래 고발 “2년 지났으니 괜찮다”

앞서 이 회장은 DL그룹 차원서 가족이 운영하는 개인회사를 부당 지원한 혐의로 지난 2019년 12월 불구속 기소됐다. DL그룹은 2014년 여의도 사옥을 ‘여의도 글래드호텔’로 개발하면서 자회사인 오라관광(현 글래드호텔앤리조트)에 운영을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오라관광은 이 회장과 그의 아들 이동훈이 100% 지분을 보유한 회사 에이플러스디(APD)의 호텔 브랜드 ‘글래드(GLAD)’와 브랜드 사용계약을 맺고 매달 수수료를 지급하기도 했다.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기반을 총수일가가 소유한 회사에 양보한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DL그룹은 자체 개발한 브랜드를 APD 명의로 출원 등록하게 한 뒤, 글래드 호텔이 2016∼2018년 사이 총 31억원을 APD에 지급토록 했다. 검찰은 이를 통해 부자간의 부당이익이 오간 것으로 판단했다.

반면, DL그룹 측은 APD가 글래드의 브랜드 사업을 영위한 건 특수관계인의 사익을 편취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글래드 브랜드 사업 수행은 사업기회 제공 행위가 아니며 이 회장의 지시와 관여도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1심은 DL그룹과 APD 사이 거래가 통상적인 경우보다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고 봤다. 또, 이 회장의 지시와 관여가 있었다고 판단, 이를 대기업집단이 부당한 내부거래를 통해 사익을 편취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 회장과 검찰 측 모두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2심은 양측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대림(DL그룹)에 이익이 될 것을 APD에 제공했다는 것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며 “부당한 이익 범위를 산정하는 데 있어 APD가 마케팅을 시작하기 전까지 포함되는지 등을 유리하게 본다 해도 전부 부당한 이익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했다. 일각에선 “31억원의 부당이득을 편취한 것에 반해 3억원의 벌금형은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이러니 상황
자격 두고 뒷말

이 회장의 ‘개인회사 부당 지원’ 논란은 공정위로부터 시작됐다. 공정위는 오라관광이 APD에 지급한 수수료가 지나치게 많아 공정거래법상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행위’라고 보고 지난 2019년 5월 이 회장과 관련 회사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와 함께 공정위는 대림산업과 오라관광, APD에 과징금 13억원도 부과했다.

당시 총수 일가가 소유한 회사에 사업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대해 공정위가 제재한 것은 최초였다. 이전까지는 대부분 거래단계서 총수 일가가 소유한 회사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안겨준 것에 대해서만 제재했다.

공정위는 “이 회장 아들이 소유한 APD가 호텔 브랜드만 보유하고 있을 뿐 호텔 운영 경험이 없다”고 설명했다. 수수료 협의 과정도 거래당사자인 APD가 아닌 대림산업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등 이례적인 방식으로 진행됐다. 호텔 시공·운영과정 등 실제 운영의 상당 부분을 오라관광이 대신한 것으로 드러났다.

오라관광은 스스로 구축한 이 기준을 APD에 제공해 이를 영업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APD는 오라관광에 아무런 브랜드 마케팅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케팅 분담금을 받았다. APD는 2026년 계약 종료까지 약 253억원에 달하는 브랜드 수수료를 받을 예정이었다.


대림 총수 일가는 2018년 7월 APD 지분 전부를 오라관광에 무상 양도했다. 공정위는 조사에 착수하자 대림이 무상 양도한 것으로 분석했다. 당시 김성삼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대기업집단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행위와 부당 지원행위를 철저히 감시하겠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2006년부터 CP를 도입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운영 실태와 성과에 따라 매년 등급을 평가하고 있다. 평가는 CP 운영 방침 수립, 최고경영자(CEO) 지원, 자율준수편람 등의 항목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실시한다. 등급은 총 6개(AAA, AA, A, B, C, D)로 나뉜다.

A등급 이상을 받은 기업에게는 직권조사 면제, 공표명령 감면 등의 인센티브가 제공된다. 최근에는 ESG 경영의 지표로 자리 잡았다.

DL그룹은 ESG 경영 지표인 CP 평가를 받기 위해 지주사인 DL㈜의 주도로 올해 1월 ‘DL그룹 CP운영 TF팀’을 발족해 주요 계열사의 공정거래자율준수 프로그램을 활성화했다. 다만, DL그룹이 CP 평가를 충족시키려는 노력은 ‘중대재해 최다 건설사’라는 오명을 씻기 위함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끊이지 않는
사건·사고들

중대재해 최다 건설사 DL그룹이 공정위 우수기업으로 선정된 것에 관해 공정위 측은 “공정거래법상 문제는 없지 않느냐”고 일축했다. 법률적이진 않지만, ESG 경영의 일부인 사회적 책임 분야서도 ‘산업재해예방’은 중요한 항목이다. 공정위 CP 기준을 폭넓게 평가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DL그룹 건설 현장에 연일 사고가 터지면서 이 회장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출석한 건 불과 2주 전이다. 지난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이후 DL그룹에서는 11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핵심 계열사 DL이앤씨에서만 지난해 4차례 사고가 발생해 5명이 사망했다. 올해 8월에도 부산 연제구 아파트 건설 현장 추락사고 등 3건의 사고로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총 8명이 사망해 ‘단일 기업 최대치’라는 오명을 썼다.

부산 현장 노동자 추락 사망사고와 관련해 철저한 사고 원인 규명, 유가족의 보상, 사업장의 산재 예방대책 등을 누차 지적해왔다. 사건 발생 100일 지나서야 DL그룹의 공식 사과와 함께 유족 측과 손해배상, 장례 절차, 민사상 손해배상금 등에 관한 합의에 이르렀다.

지난 10월 고용노동부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된 이 회장은 해외 출장을 핑계로 출석하지 않았다. 환노위 관련 법률에 따라 이들을 고발하려다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야당 주장에 따라 청문회 개최를 의결했고 이 회장은 결국 국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청문회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년 반 동안 7건의 사고로 8명이 사망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지 않나”라고 질문하자 이 회장은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날 이 회장은 앞으로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 조치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올해는 지난해보다 안전 비용을 29% 증액했고, 내년에도 20% 늘릴 계획이다. 가장 안전한 현장을 운영하는 회사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다.

고개 숙인 회장님
중대재해 최다 오명

근로자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데도 DL이앤씨에서는 전문적인 최고안전책임자(CSO) 없이 최고경영자(CEO)가 이를 겸직하는 등 여전히 구조적인 문제가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CSO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안전보건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주요 기업이 줄줄이 도입한 직책이다.

노웅래 의원실이 국내 주요 건설사 6곳(현대건설, 삼성물산, 대우건설, 포스코이앤씨, GS건설, DL이앤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CSO와 CEO를 별도로 분리하지 않은 기업은 DL이앤씨가 유일했다. DL이앤씨를 제외한 대부분 건설사는 CSO와 CEO를 별도로 분리했고, 독립기구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DL이앤씨는 조직도상 주택, 토목, 플랜트 부문별 CSO를 두면서도, 주택 부문에서는 마창민 DL이앤씨 대표가 CSO를 겸직해왔다. “공정을 잘 이해해야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만큼 마창민 대표가 주택 부문 CSO 적임자라고 판단했다”는 것이 DL이앤씨 입장이지만 재계에서는 ‘경영-안전 책임자를 철저히 분리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노 의원은 “경영 효율화를 책임지는 CEO가 CSO를 겸직하면 안전보건을 위한 내부 견제 기능이 무용지물이 된다. DL이앤씨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대국민 사과를 했음에도 형식적인 안전관리 시스템을 운용해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마창민 대표는 “안전 대책을 강화하고 문제가 안 생기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개선점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안전 책임 의무가 있는 원청 DL이앤씨가 하청업체에 책임을 떠넘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7월4일 경기도 의정부시 신곡동 ‘e편한세상 신곡파크프라임’ 현장에선 콘크리트 타설 장비를 올리던 중 작업대가 낙하해 장비 운전원 1명이 사망했다. 

DL이앤씨는 “관리자가 부재한 점심시간에 임의 작업이 이뤄졌고 그 와중에 사망사고가 발생했다”고 해명했다. 8월 11일 부산 레이카운티 현장 사고와 관련해서는 “신고되지 않은 임의 작업을 하다 추락했다”고 주장했다.

사망 사고뿐 아니라 DL이앤씨서 발생하는 산업재해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2021년 260건이었던 DL이앤씨 산재 승인 건수는 지난해 302건으로 16% 뛰었다. 올해 들어서도 10월 누적 322건으로, 이미 지난해 수준을 넘어섰다.

“문제 없다”
개선의지 실종

논란이 커지자 DL그룹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DL이앤씨는 지난 9월부터 약 2개월간 고용노동부 지정 안전관리 전문 컨설팅 기관인 산업안전진단협회와 함께 본사, 현장의 안전보건체계 점검을 실시했다.

DL이앤씨 관계자는 “최근 실시한 산업안전진단협회 점검 결과도 면밀히 분석해 개선 방안이 있다면 본사와 전 현장에 전파해 유사한 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건설업계는 DL이 ‘중대재해 최다 건설사’라는 오명서 벗어나지 못하면 ‘e편한세상’ ‘아크로’ 등 주택 브랜드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바라봤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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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