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칼 빼든 ‘재판 지연’ 실태

말려 죽이는 판사 ‘바뀔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판사는 말려 죽인다’는 말이 있다. 재판 장기화가 죽을 정도의 고통이라는 것이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사법부 개혁과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증가했던 재판 지연율이 조희대 대법원장의 취임으로 해소될지 지켜봐야 한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취임하면서 사법부 수장의 공백 사태가 79일 만에 풀렸다. 조 대법원장은 남들보다 짧은 임기를 가지고 있는 만큼 법원의 가장 큰 문제로 꼽히는 재판 지연 문제를 우선 해결하려는 모양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11일 열린 취임사에서 “사법부 구성원 모두가 심기일전해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나가야 한다”면서 “헌법과 법률에 따른 균형 있는 판단 기준을 바탕으로 공정하고 신속하게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초장기 사건

이어 “국민들이 지금 법원에 절실하게 바라는 목소리를 헤아려 볼 때 재판 지연 문제를 해소해 분쟁이 신속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구체적인 절차의 사소한 부분부터 재판 제도와 법원 인력의 확충과 같은 큰 부분에 이르기까지 각종 문제점을 찾아 함께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재판 지연 문제 해소에 관한 의지를 다졌다.

재판 지연 문제는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임기 동안 눈에 띄게 늘었다. 이 기간 전국 법원서 2년 내에 1심 판결이 나오지 않은 장기 미제 사건이 민사소송은 3배로, 형사소송은 2배로 늘었다. 서울중앙지법서 5년 넘게 판결을 내리지 않은 ‘초장기 미제 사건’도 5배나 급증했다.


2022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에 접수된 민사본안 사건은 1심, 항소, 상고를 모두 합쳐 82만9897건이다. 처리된 사건은 85만700건이다. 처리율로 따지면 105%의 처리율을 보이지만 미제로 남은 사건은 42만2978건이나 된다.

전심급서 1년을 초과한 미제사건은 6만4387건으로 전체 미제사건의 15.2%에 달한다. 민사본안 사건 1심서 법정기간 내 미제 사건은 21만2673건이고 1년 이내 사건은 7만7238이다. 장기 미제로 볼 수 있는 1년을 초과한 사건은 5만3114건이다.

김 전 대법원장이 취임하기 전인 2017년은 총 36만2570건의 미제가 있었다. 이 중 1년 이내의 미제 사건은 32만5755건이며 장기미제 사건은 3만339건이다. 김 전 대법원장이 취임한 이후 2만2775건의 장기 미제가 늘어난 셈이다.

형사재판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2022년 31만254건의 형사사건이 접수돼 이 중 미제로 남은 것은 16만1116건으로 약 52%에 달한다. 이 중 장기미제는 5만2337건으로 32.5%이다.

반면 2017년에는 37만1524건을 접수받아 13만3212건의 미제를 남겼다. 장기미제는 단 1만88건뿐이었다.

김명수 임기 민사 3배·형사 2배↑
법원장 후보 추천제 개혁 속도전

재판 평균 일수도 늘어났다. 2017년 민사본안 사건 합의 처리 기준 1심 처리 기간은 293.3일이었다. 평균적으로 6개월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무려 420.1일을 기록했다. 2018년 297.1일, 2019년 298.3일, 2020년 309.6일, 2021년 364.1일로 꾸준히 증가했다.

형사사건의 1심 평균 처리 기간(합의 재판부 불구속 기준)도 꾸준히 늘었다. 2017년 168일서 지난해 223.7일로 늘어났다. 2018년 159.6일 수준이었지만 2019년 174일, 2020년 194.2일, 2021년 217일로 길어졌다.

소송법서 심급별로 5개월 안에 선고하라고 적시돼있지만 소송법 자체가 재판·집행에 의한 실체법 실현의 방법·형식의 규율을 목적으로 하는 점에서 형식법이라 강제성이 없는 상황이다.

재판 지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대면조사 불가, 복잡한 사건 증가, 법관 부족 현상, 법원장 후보추천제 등이다.

법조계에서는 장기 미제 사건이 증가한 가장 큰 이유로 ‘법원장추천제(이하 후보추천제)’를 꼽았다. 후보추천제는 일선 판사들이 직접 법원장 후보들을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최종 임명하는 제도로 지난 2019년부터 시행됐다.
이전에는 대법원장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중에서 지방법원장을 임명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김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장의 권한을 분산하고 각급 법원의 사법행정 민주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후보추천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법원장 후보로 유력한 부장판사 등이 동료 및 후배 판사들의 눈치를 보느라 신속한 재판 진행을 독려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계속해서 불거졌다. 

정혁진 변호사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고참 법관들이 후배 판사들에게 ‘너무 일하지 마, 1주일에 세 건만 판별해’ 이런 식이었다”면서 “결국 위아래도 없어지고, 판결문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판사들도 여럿 생기고 있다”고 후보추천제의 폐단을 지적했다.

정 변호사는 “재판 지연으로 이익을 보는 것은 범죄자다. 국민은 재판 지연으로 고충을 겪었다”고 꼬집었다.

사법부 수장 교체로 기대감
취임 직후 의지…해소되나

조 대법원장은 재판 지연 문제 해결에 속도를 내고 있다. 조 대법원장은 취임 직후 후보 추천제의 기틀은 유지하면서도 일선 법원 판사의 투표 절차를 생략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방안은 일선 법원별로 법원장 후보자를 추천받는 게 아니라 전국 단위로 후보군을 추리는 방안과 대법원 법원장 인선 자문위원회에 판사들이 직접 후보자를 추천하는 방식이 논의되고 있다.


법원 관계자에 따르면 전국 단위로 추천이 되면 자문위서 결격 사유자를 배제하고 대법원장이 전국 법원장을 최종 임명하는 안이 유력하게 검토되는 중이다. 또 조 대법원장은 민사 항소 절차를 줄이기 위한 제도도 준비하고 있다. 

현재 형사소송법에는 항소이유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지만 민사소송법은 관련 규정이 없다. 이로 인해 1심 판결에 대해 실질적으로 항소할 의사가 없더라도 판결이 확정되는 걸 막고 보자는 취지서 일단 항소부터 제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 보니 민사소송의 경우 항소 기록을 접수한 뒤 첫 준비서면 제출까지 걸리는 시간은 매년 늘고 있다. 2017년에는 평균 94.8일 걸렸지만 2021년에는 평균 136.6일 걸리며 소요 시간이 50% 가까이 늘었다. 서류가 접수된 뒤 첫 재판이 열리기까지 걸리는 기간도 2017년 평균 133.5일서 2021년 평균 189.6일로 늘었다.

법원행정처는 조 대법원장의 뜻에 따라 항소 기록 접수 통지를 받은 날부터 30일 또는 40일 이내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의무적으로 각하하는 제도를 만들어 재판 진행을 신속하게 만드는 방안을 본격 추진할 방침이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민사소송서 항소이유서를 의무화하면 불필요한 기일 공전을 방지할 수 있고, 무분별한 항소 제기도 줄어들 것”이라며 “항소심 진행을 평균 2개월 이상 단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조 대법원장이 취임 직후 이러한 방안을 내놓으며 일선 법원 판사의 반발에 휩싸일까 우려한다. 실제로 후보추천제에 대한 개선 방안이 보도되자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A 판사는 지난 13일 ‘재판 지연과 후보추천제도 개선 관련 언론 보도에 대해’란 제목의 글을 법원 내부 전산망에 올렸다. 


발만 동동

그는 “이런 논의를 왜 법원 내부서 먼저 접하지 않고 기사들을 통해 접하는지 의문”이라며 “최소한 사법행정에 관한 논의는 법원 내부서 먼저 시작되길 바란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A 판사는 “후보추천제의 대표적 폐단으로 ‘법원장이 소속 판사들의 눈치를 보느라 재판 지연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다’는 점이 꼽히는데, 법원장이 재판 지연을 제대로 단속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법원장이 사법행정권을 부당하게 남용하지 않는 전제서 어떤 방식으로 단속하면 재판 지연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인지 솔직히 의문이 든다”고 썼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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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