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한동훈 출마설 불붙인 진은정

스타 장관 안주인 떴다 ‘흑장미? 백장미?’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언론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 배우자의 공식 봉사활동을 보도하며 한 장관의 총선 출마설에 불을 붙였다. 출마설에 대해 한 장관은 아직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처가가 연루된 논란도 재점화하며 언론의 띄워주기가 통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부인 진은정 변호사가 첫 공개 행보에 나섰다. 언론은 너도나도 진 변호사에 대해 보도하기 바빴다. 총선을 앞둔 만큼 한 장관의 총선 출마를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진 변호사는 1975년생으로 한 장관과 서울대 법대 동문이다. 서울대를 졸업한 이후 컬럼비아 대학교 로스쿨 법학 석사를 이수한 뒤 KPMG FSI, Ernst&Young, PricewaterhouseCoopers 등 국내외 회계법인서 일하다가 2006년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캠퍼스 커플
엘리트 코스

이후 국내 순위 5위인 ‘법무법인 바른’서 근무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결국 로펌계의 삼성이라 불리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서 2009년부터 현재까지 근무 중이다.

현재 진 변호사는 인사와 노무, 제약·의료기기·식품·화장품·환경 관련 분야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환경 분야의 경우 외국계 기업이 국내 진출 시 필수로 보는 분야기도 하다.


진 변호사는 한 장관과 서울대 법대 캠퍼스 커플로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진 변호사의 부친은 진형구 전 대전고검 검사장이며 한 법무법인의 고문변호사를 역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동생 진동균도 부장 검사 출신이다.

진 변호사는 15일,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 서울사무소서 열린 ‘2023 사랑의 선물’ 제작 행사에 참석했다. 그가 공개 활동에 나선 것은 지난해 5월 한 장관이 취임한 이후 1년6개월 만에 처음이다.

이날 행사에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부인 김희경씨, 김영호 통일부 장관 부인 남미경씨 등 장·차관 배우자, 금융기관장·공공기관장 배우자, 15개국 주한 외교대사 배우자 등 70여명이 참여했다. 진 변호사는 이 중 유독 주목을 받았다. 

수십여곳의 언론사들이 진 변호사 관련 기사와 사진을 보도하자 더불어민주당 일부 인사들은 “한 장관 측이 언론을 부르거나 사진을 뿌린 것 아니냐”라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 

진 변호사가 주목받으며 한 장관이 여당 후보로 총선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진 변호사의 행보는 한 장관의 정치참여를 위한 전략적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는 지난 16일 YTN <뉴스라이더>에 출연해 “국무위원 배우자들이 봉사활동하는 건 늘 있던 일이라 하더라도 왜 모든 언론이 주목해서 진 변호사의 사진을 찍어서 냈을까”라며 “진 변호사도 예상한 듯 준비한 모습으로 보인다. 사진을 보면 어느 정도 공적인 활동을 예상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주장했다.

적십자 행사 참석…장관 취임 후 첫 포착
서울대 법대 동문…김앤장 미국 변호사로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서 “지금 보라. 김건희 여사가(등장한 후) 얼마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냐”면서 “그런 전략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언론은 그런 후각이 발달해 한 장관 부인을 보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남국 무소속 의원도 수위 높게 질타했다. 김 의원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도대체 언제부터 언론서 이름도 모르는 장관 부인의 봉사활동까지 챙겼는지 모르겠다”며 “기사가 너무 노골적이다. ‘궂은 일 솔선수범’ ‘빈 상자를 치우는 등 솔선수범하는 모습’ 등 제목부터 사진까지 아예 대놓고 ‘아부성 기사’”라고 비판했다. 

이어 “찾아보니 다른 언론사들의 기사도 대부분 비슷하다”며 “함께 봉사하고 있는 많은 사람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한 사람’으로 표현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진들을 보니까 윤석열 대통령까지 아웃포커싱으로 날려버린 김건희 여사의 사진이 생각난다”고 덧붙였다.

이에 관해 한 장관은 입장문을 통해 “일부 민주당 측 인사들이 방송과 SNS 등에서 ‘한동훈 장관 측에서 언론을 부르거나 사진을 뿌린 것’이라는 근거 없는 추측을 마구 유포하고 있다”며 “언론서 자발적으로 보도한 것일 뿐 사진을 제공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진 변호사에 대한 주목으로 한 장관의 처가에 관한 논란도 재점화됐다. 진 전 검사장은 조폐공사 파업 유도에 연루된 바 있다. 그는 1999년 대전고검장으로 발령난 시점에 기자들과 폭탄주를 마시는 과정서 조폐공사 파업 유도 발언을 했다. 이 같은 발언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구속됐고 대전고검장직서 면직됐다.

법원서 진 전 검사장은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업무방해 등의 혐의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다만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위반에 관해서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진 전 검사장은 2007년에 각종 주가조작 개입 의혹에도 연루됐다. 재벌 테마주 ‘뉴월코프’ ‘아이에스하이텍’ ‘보타 바이오’ 주가조작에 연루된 것이다. 주가 조작범 조모씨는 재벌 3세와 4세들이 연루된 주가조작 사건의 주범이다. 조씨는 뉴월코프를 비밀리에 인수한 다음 재벌 3세인 박중원씨를 끌어들였다. 

논란, 의혹…
처가 리스크

박씨는 2007년 3월 뉴월코프라는 회사를 유상증자 방식으로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비슷한 시기 뉴월코프는 쿠웨이트의 친환경 오일 슬러지 사업에 투자한다는 공시를 띄웠다. 그는 이 사업에 100억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인터뷰까지 했다.  하지만 모두 거짓이었다. 조씨는 주가가 오르자 주식을 팔아치우고 회삿돈을 횡령했다.

조씨는 비슷한 시기 다른 회사에도 손을 댔다. 그는 뉴월코프의 자금으로 아이에스하이텍을 인수했다. 이후 노신영 전 국무총리 아들 노동수씨, 현대그룹 3세인 정일선씨를 이용해 같은 수법으로 주가를 올렸다. 이번에도 회삿돈을 횡령했다.

조씨는 보타 바이오서 같은 일을 반복했다. 그가 세 회사에서 횡령한 돈은 수십억원에 이른다.


재판 당시 조씨는 자신이 횡령한 돈을 모두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진 전 검사장을 자신이 횡령한 돈 중 3억을 사용한 사람으로 지목했지만 법원은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진 전 검사장이 사건에 연루된 이유는 보타 바이오가 주가조작으로 주가가 급등할 당시 그가 사외이사로 등재돼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검찰이 보타 바이오에 관한 본격적인 수사를 진행하기 직전 그는 사외이사직서 물러나 법적 책임을 면했다. 

진 전 검사장의 아들인 진동균 검사도 조씨의 판결문에 등장한다. 그는 조씨가 아이에스하이텍에 대한 주가조작 당시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진동균 전 검사의 나이는 30세, 사법고시에 합격하기 3년 전이었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란 기존 주주나 일반 투자자가 아니라 회사가 지정한 특정인들에게만 주식을 배정하는 방식이다. 즉 아는 사람들만 참여할 수 있는 특별한 투자 기회다. 조씨와 진 전 검사장 가족은 특별한 관계인 것처럼 보인다.

전략적 
움직임?

이를 증명하듯 조씨는 서울구치소에 수감돼있던 2년 반 동안 280회나 검사실에 출정나갔다. 출정은 구치소나 교도소에 수감돼있는 재소자를 조사하기 위해 검사실로 부를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통상적으로 출정은 기소 전 검찰이 추가 조사를 위해 이용된다. 하지만 조씨의 경우 1심 기소 이후에도 출정을 나간 것으로 조사됐다.


진동균 전 검사는 또 다른 범죄에 연루됐다. 지난 2015년 서울 남부지검 재직 시절, 만취한 후배 여검사를 성추행한 혐의로 사직서를 냈다. 검찰은 징계나 수사도 하지 않은 채 그의 사직서를 수리했다. 진 전 검사는 이후 CJ 상무로 재취업했다.

2018년 검찰 미투 운동으로 상황은 급변했다. 2018년 검찰 성추행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조사단(단장 조희진 서울동부지검장)은 대검 측으로부터 자료를 넘겨받은 뒤 그를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를 진행하고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1심은 진 전 검사에게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했지만 법정 구속하지는 않았다. 재판부는 “증거인멸이나 도망 우려는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2심은 진 전 검사에게 1심과 같은 징역 10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아동·청소년기관과 장애인복지시설에 2년간 취업제한도 명했다.

재판부는 “검사였던 진씨가 같은 검찰청에 근무하는 피해자들을 강제추행해 죄질이 가볍지 않다”며 “피해자는 이번 범행으로 상당한 정신적 충격과 상처를 입었고, 진씨는 2심에 이르기까지 피해자와 합의하거나 진정한 용서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진 전 검사는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이 같은 논란에도 한 장관의 내년 4월 총선 출마 시나리오가 최근 들어 부쩍 구체화하는 모양새다.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정치권 안팎서 출마설이 꾸준하게 거론돼온 가운데, 연말 개각 논의와 맞물려 국민의힘 내에서도 ‘한동훈 총선 역할론’이 공공연하게 언급되면서 등판론이 힘을 받고 있다.

최근 한 장관은 지역 행보에 나섰다. 지난 17일 대구를 방문한 데 이어 21일에는 대전을 방문했다. 24일에는 울산도 방문했다. 

대구서 한 장관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대구 수성구 스마일센터를 시작으로 한 장관이 가는 곳마다 시민들이 운집해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한 장관은 운집된 시민에게 둘러싸여 계획된 일정이 지연돼 결국 돌아오는 서울행 기차표까지 취소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첫 공개 행보 많은 관심
“김건희와 다를 게 뭐냐”

시민들로부터 꽃다발과 편지 등의 선물도 받고 사인과 사진촬영 등의 요청이 쏟아지기도 했다. 대전서도 한 장관에 대한 팬덤 현상은 마찬가지였다. ‘스타 장관’인 한 장관의 출마설이 지속되는 이유다.

한 장관의 현장 행보에 야권은 총선 출마 행보로 봤다.

한 장관은 지난 22일 “저는 정부의 성공을 위해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다. 최근 지방 현장 방문도 같은 취지”라며 “일각에서는 정치 행보니 이런 얘기를 하는데 인구위기 극복을 위한 인구정책과 대한민국 국민을 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범죄 피해 지원정책 같은 건 총선과 관계없는 법무부 장관의 주요 임무”라고 총선 출마설을 일축했다.

그는 ‘문제의 해결 및 정부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측면서 총선 출마도 고려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제 입장에서는 윤석열정부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씀드린다”고 말을 아꼈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한 장관이 수도권 또는 험지에 출마할 경우 보수층과 여성·청년층 사이의 폭넓은 인지도와 지지를 토대로 당 내외 분위기 반전을 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역대 대통령 또는 대권후보들이 거쳐간 서울 종로나 박빙 지역인 용산, 마포 출마로 수도권 선거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란 기대감도 나온다. 

한 장관에게 비례대표 당선권을 주고 공동선거대책위원장등을 맡겨 총선을 지휘하게 한다는 경우의 수도 거론된다. 다만 이 경우 정치 신인인 한 장관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를 위험이 크다.

비례대표 당선의 경우 국회 입성 이후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되는 한 장관의 입지가 약해질 수 있어 한 장관이 고사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해졌다.

한 장관의 결단 시기는 연말을 넘기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요한 혁신위원회가 활동을 종료하는 12월 말을 기준으로 김기현 대표가 총선 대책에 결단을 내릴 것이란 관측이다. 

한 장관의 총선 출마가 사실화하는 것처럼 보이자 민주당은 “‘훈비어천가’를 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국민의힘 대표와 혁신위원장이 훈비어천가를 부르며 한동훈 띄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며 “국민의힘은 집권여당의 위상은 어디다 버리고 용산의 하청 정당을 자임하고 있나. 정녕 국민의힘은 ‘검찰 본당’의 출현을 위한 불쏘시개가 될 작정이냐”고 질책했다.

이에 대해 한 장관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당이 저를 띄우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분들이 공감할 것 같다”고 받아쳤다.

민주당과 정면충돌을 피하지 않았던 한 장관의 출마로 여야의 총선 대결은 더욱 가열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심하던 윤석열 대통령도 여권의 이 같은 간청과 설득을 수용해 한 장관의 총선 출마에 찬성 입장으로 돌아선 것으로 알려졌다.

여론조사에서도 한 장관의 존재감은 나타났다.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이 YTN 의뢰로 지난 19~20일 이틀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 장관의 출마가 ‘여당의 선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응답한 이들은 42%로 집계됐다.

“민주당이 
더 띄운다”

국민의힘 지지층은 74%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고, 민주당 지지층은 64%가 여당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p)

한국갤럽이 지난 7~9일 전국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1명에게 ‘장래 대통령감으로 누가 좋다고 생각하느냐’란 조사에서 한 장관은 13%로 민주당 이재명 대표(21%)에 이어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의 4%,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의 3%,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의 2% 등 주요 여권 인사 4명을 합한 수치와 같다. 

한 장관이 앞서 자녀 입시비리 문제를 뚫고 법무부 장관에 임명된 만큼 이번에도 처가 리스크를 짊어지고 총선서 활약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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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