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왕 꿈꾼 마약상 이야기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11.14 08:19:29
  • 호수 14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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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으로 들어간 교도소서 더 배웠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마약 밀매를 시작한 것은 순전히 돈 때문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해 고등학교도 중퇴했으니 돈 버는 것에 목숨을 걸었다. 교도소서 만난 마약 밀매상은 예수였고, 마약은 복음이었다. 복음을 전파한 나는 천문학적 돈을 벌었지만, 인생의 허무함에 빠진 것도 그때부터다.

“참 끊기 어려운 게 마약이다. 아주 운이 좋고 예외적인 가정 외에는 집안에 누군가 마약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될 정도로 그 숫자가 많다. 아들이 마약을 한 후 처벌받고 다시 마약에 손 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람의 힘으로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치료가 시작된다.”

구하기 쉽고
팔기도 쉽다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한국서 마약은 특별한 이슈가 아니다. 하루에 한 번씩은 일반인이 마약을 복용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과거에는 연예인이나 특수한 사람이 마약을 복용했다고 한다면, 이제는 일반인도 마약을 구매하기 쉽다.

아무리 정부가 마약을 엄정 단속하겠다고 해도, 실상은 인터넷에 마약을 검색만 해도 마약 밀매자의 SNS와 쉽게 연결된다.

대검찰청은 지난 7월5일 <2022년 마약류 범죄백서>를 발간하고 지난해 마약사범이 2018년 1만2163명 대비 45.8%p 늘었다고 밝혔다. 이 기간 30대 이하 마약사범은 5257명서 1만988명으로 109%p 급증했다. 외국인 사범도 948명서 2573명으로 171.4%p나 늘었다.

마약류별로는 ▲마약사범 2551명(13.9%) ▲향정(신종마약 포함)사범 1만2035명(65.4%) ▲대마사범 3809명(20.7%) 등이다.

마약 압수량도 2018년 415㎏서 지난해 804.5㎏으로 93.9%p 늘었다. 2021년 필로폰 404㎏와 코카인 400㎏ 밀수 적발에 따라 압수량이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압수된 주요 마약류로는 필로폰 등 향정이 616.2㎏으로 전체 마약류 압수량의 76.6%를 차지했다. 국내서 주로 유통·사용되는 필로폰 압수량은 175.4kg(21.8%)로 집계됐다. 야바 압수량은 2018년 8.5kg서 지난해 167.6kg으로 무려 1871%p 증가했다. MDMA 압수량은 2.8kg서 42.17kg으로 1406%p 폭증했다.

범죄 유형 분석 결과 다크웹 등을 이용한 인터넷 마약 유통이 확대된 것으로 파악됐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다크웹에 마약류 판매 광고를 게시하고 구매자가 나타나면 가상화폐로 대금을 받고 이후 ‘던지기’ 방식으로 매매하는 형태다.

가난 벗어나기 위해 위험한 선택
적발 피하려고 항문·두피에 투약

그렇다면 마약 밀매는 어떤 과정으로 시작될까? 이에 대해서는 ‘마약 밀매서 탈출한 회복자들의 실존 체험 속에 나타난 내러티브 탐구’(논문 저자 유숙경)에 자세히 기재돼있다. 이 논문엔 마약 밀매 및 투약을 10년간 한 A(54세)씨가 등장한다.

A씨는 2남1녀 중 장남으로 어린 시절 식사를 걱정할 정도로 가난했다. A씨의 아버지는 화물트럭 운전기사였지만 화물 운송 중 사고가 나서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이후 술로 소일하던 아버지는 40대 중반에 급성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간암으로 사망했다.

고등학교 시절 A씨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등록금이 매번 밀렸다. 담임교사는 친구들 앞에서 “너 때문에 회의 때마다 혼난다”고 머리를 때리고 망신을 줬다. 결국 A씨는 고등학교 2학년 1학기에 자퇴했다.

지옥 같은 고등학교를 벗어난 그는 동네 선배 소개로 룸살롱 웨이터로 취직했다. 이때 우연히 룸살롱 여종업원이 필로폰을 줬고, 이때부터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

A씨에게 마약은 가난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마약 밀매자가 되기 위해 처음 필로폰을 준 룸살롱 여종업원에게 부탁해 마약 공급책을 소개받았다. 마약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고, A씨는 20대 초반에 양복을 입고 그랜저를 몰고 다녔다. 

A씨는 “예수가 이 땅에 온 것은 복음이라고 성경에 배웠지만, 당시 나를 구원한 것은 마약이었다. 마약 공급원을 아는 건 힘들었지만 간절하니 길이 열렸다”며 “집이 부자인 것도 아니고, 공부도 못하니 오직 마약밖에 없었다. 이 불행한 삶을 한 방에 해결하는 복음”이라고 말했다.

A씨는 고등학교를 중퇴해서 방위 보충역 판정을 받았다. 집에 거주하면서 군부대, 예비군 중대를 보조하는 일이었다. 방위가 좋은 것은 저녁에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때 A씨는 마약을 하러 다녔다. 그때마다 그는 ‘너희가 아무리 대대장, 사단장이어도 군인 한 달 월급을 나는 한 번에 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웨이터부터…
10년의 악몽

그가 마약을 판매했던 첫 번째 고객은 유흥업소 여성이었다. 필로폰을 ‘살 빼는 약’ ‘피로회복제’로 속여 팔았다. 단골 고객에게는 단속을 피하는 방법도 알려줬다. 당시 유흥업소서 마약 사용 여부를 경찰이 단속할 때는 ‘팔뚝 주사 자국’이 있는지가 가장 중요했다.

마약을 공급하면서 A씨는 본인이 원하는 술을 받기도 했다. “나는 마약을 주고 시바스리갈 12년산을 받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12년산이 최고였다”고 말했다.

A씨는 20대 초반에 마약으로 큰돈을 벌었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마약을 공급하던 상선이 경찰에 검거되면서 그도 함께 체포되면서 교도소로 향해야 했다. 하지만 마약 밀매에 대한 죄책감과 후회는 없었다. A씨에게 교도소는 ‘적발되지 않고 마약을 밀매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장소였던 탓이다.

애초에 그의 꿈은 마약 최초 공급자인 상선과 직거래하는 것이었는데, 교도소에선 다양한 마약상을 만날 수 있었다.

A씨는 “마약이 나한테 내려오기까지 몇 단계를 거쳤는지 모른다. 도매상이 있고 소매상이 있는 유통구조와 똑같다”며 “서너 단계 내려오면 내게 떨어지는 돈이 별로 없다. 경찰서에서 조사받고 검사 앞에 끌려간 다음에 교도소에 갔다.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나는 대학교 가는 기분이었다. 어차피 약쟁이는 교도소에 다 있다고, 거기에 가야 마약 밀매 거물을 만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초범이었던 A씨는 가벼운 형벌을 받았다. 마약 판매 횟수와 액수를 줄였기 때문이다. 교도소에는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에 따라 필로폰, 대마초, 본드 흡입자를 다른 수감자와 분리 수감했다. 

교도소서 1년을 보낸 A씨는 이 시간이 마약상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이때 만난 거물 마약상은 지적이고 기품있어 보이는 40대 중반의 방장이었다.

큰돈은
벌었지만…

교도소 생활에 관해 A씨는 “거물 마약상은 정말 선생님 스타일이었다. 양복을 입으면 아무도 마약 장사를 하는지 모르지만 마약에는 박사였다”며 “마약 지식뿐만 아니라 공급 조직도 꿰고 있었는데 이 사람은 징역 6년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교도소와 일반 사회가 다른 점이 있다. 교도소는 죄가 크면 클수록 대우를 받는다. 징역 6개월은 금방 출소하니 대우도 못 받으니 거물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다”며 “내가 사는 길은 저 사람을 붙잡는 것으로, 마약이 내게 복음이라면 이 사람은 예수님,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목적은 달성했다. A씨는 출소하기 일주일 전, 마약을 안전하고 지속해서 공급해줄 수 있는 상선의 연락처를 받았다. 남은 일주일간은 마약 판매 비법을 집중적으로 교육받았다. 교도소서 A씨는 전문적인 마약 밀매상이 되는 준비를 했던 것이다.

출소 후 A씨는 마약 구매 고객을 소매자로 만들면서 자신은 도매자가 됐다. 수익은 천문학적으로 늘었고, 은행 VIP가 돼 돈을 맡기면 일반 창구가 아닌 지점장실로 안내됐다. 모든 일을 처리해 주는 직원도 생겼다.

차는 그랜저에서 벤츠 S 클래스로 바꿨다. 기사까지 둔 그는 말 그대로 ‘사장님’이 됐다. 어디를 가든 대우가 달랐다. 이런 A씨의 인생이 바뀐 것은 결혼이었다. 

A씨는 대형 할인점 매장관리 직원인 연하의 아내를 만났다. A씨는 아내에게 자신을 능력 있는 부동산 분양회사 직원이라고 소개했다. 동년배들은 도저히 만질 수 없는 거금을 가질 수 있는 명분이 필요했다. 작은 사무실을 얻어 부동산 회사 간판을 달아 사장 명함을 찍기도 했다. 

거짓말하면서까지 결혼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A씨는 “마약 장수, 약쟁이가 결혼을 해선 안 됐다. 내가 욕심을 부렸다. 부모한테 제대로 된 사랑을 못 받았으니까 한이 맺혔나 보다. 내가 자식한테 사랑해 주는 부모가 되고 싶었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애가 안 생겼다”고 설명했다.

교도소서 만난 거물급 판매상
일주일간 판매 비법 전수받아

그렇다고 결혼생활이 불행했던 건 아니었다. A씨의 아내는 부모를 모시자고 했다. A씨의 부모님과 형제는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었는데, 아내가 먼저 부모님과 형제를 찾아 빨래도 해주고 반찬도 가져다줬다. 건강이 안 좋은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가기도 했다.

행복이 깨진 것은 A씨가 마약상이라는 것을 들킨 뒤였다. A씨는 재범으로 체포돼 중형을 받게 됐다. 그러나 A씨에게 중요한 것은 중형을 받는 것보다 아내에게 자신이 마약상이라는 사실을 감추는 것이었다.

남편이 마약 밀매로 돈을 번다는 것을 안 A씨의 아내는 교도소에 들어가자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때 A씨는 처음으로 인생의 허무와 한계를 느꼈다. 돈만 많이 벌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상황이 바뀌었다. 

처음 교도소 수감은 안전하고 확실한 공급 루트를 확보하고 마약 밀매상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계획이 있었다면, 두 번째 수감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

A씨는 “교도소에 수감될 때 아내한테 ‘나를 잊어라. 재산 남은 것은 네가 가져가서 새 출발해라’고 했다. 그 뒤 수감돼 아내가 죽은 소식을 들었을 때 공포를 느낀 건 아니다. 그냥 내 삶이 끔찍하고 후회스러웠다. 두 번째 교도소는 인생 학교였다. 징역을 몇 년 받아도 억울해하지 않고 회개하고 살겠다는 각오를 했다”고 소회했다.

실제로 A씨는 교도소에 있는 4년 동안 종교활동을 빠지지 않고 참가했다. 안타깝게도 이 기간 A씨의 어머니는 그가 마약으로 교도소에 들어간 사실도 모른 채 작고했다. 

문제는 출소한 뒤였다. 마약 밀매 경력이 있으니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없었다. 이때 실수한 것이, 바로 다시 유흥업소를 찾았던 것이었다. A씨는 다시 마약을 복용하고 팔다가 다시 교도소에 재수감됐고, 그나마 운이 좋게 징역 4년형을 받았다. 

3번째 출소 후 A씨는 마약에 손을 대지 않기 위해 마약과 관계된 사람은 물론, 장소도 모두 멀리했다. 현금 1800만원을 들고 세상과의 단절을 위해 서너 가구만 있는 강원도 산골 오지 폐촌으로 향했다. 

감옥만
들락날락 

그는 폐촌서도 야생 대마초의 유혹을 받았다. 대마에 빠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A씨는 바로 짐을 쌌지만,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그때 교도소 수감 시절, 호의를 베풀어줬던 목사가 떠올랐다.

A씨는 해당 목사가 은퇴 후 기도원을 운영하다가 현재 중풍과 치매 노인을 돌보는 요양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A씨는 “여기서 노인 똥 닦고 몸을 씻어주고 있으면 내가 선해지는 것 같다. 사람은 유혹에 약하다. 이기려고 하면 절대 안 된다. 도망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 도망 온 것”이라고 소회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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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부는 ‘김부겸 바람’ 해부

대구에 부는 ‘김부겸 바람’ 해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등장하자 보수의 심장인 대구가 좌우로 흔들리고 있다. 광폭 행보에 나선 김 전 총리를 바라보는 대구 시민들도 양가감정이 교차하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은 1995년 민선 시장 선출 이래 대구에서 단 한 번도 시장을 배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대구 민심이 심상치 않은 만큼 최초의 진보 대구시장이 탄생할지 이목이 쏠린다. 대구는 보수 정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광역자치단체이다. 지난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대통령 후보는 대구에서 23.22%(37만9130표)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반면 국민의힘 대선주자였던 김문수 후보는 67.62%(110만3913표)를 기록했다. 이처럼 대구는 윤석열정부 퇴진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조차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약세를 보이는 지역이었다. 적절한 타이밍 그런 대구에서 최근 국민의힘이 힘을 못 쓰고 있다. 지도부를 중심으로 당이 지리멸렬하는 사이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대구시장에 출사표를 던졌고, 민주당이 빠르게 치고 나가면서 우위를 선점했다. 지난달 30일 김부겸 후보는 “지역주의 극복과 지역 균형발전, 그것이 저의 마지막 소명”이라며 공식 출마를 선언했다. 김 후보는 대구에 당선된 경험이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2012년과 2014년 각각 제19대 총선·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대구광역시장)에서 낙선했으나 2016년 제20대 총선을 통해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에서 당선됐다. 이후 제21대 총선에서 또다시 낙선하면서 고배를 마셨다. 당시 김 후보는 캠프 해단식에서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바뀐 게 없는 것 같다. 면목이 없다”면서도 “포기하지 않겠다. 새로운 날들을 향해 걸어가겠다”고 다짐했던 바 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김 후보가 다시 대구 전면에 등장했다. 김 후보는 대구시장 출마 기자회견을 통해 “대구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며 “굳이 이런저런 수치를 열거하지 않겠다. 대구의 정치, 한 당이 독식하는 구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김 후보는 “정치인이 일을 안 한다. 일 안 해도 서울에서 공천만 받으면 또 된다. 대구 시민을 표 찍어주는 기계로 취급한다”며 “요즈음 시장 공천 과정을 보면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냐는 생각이 든다. 지금 국민의힘이 보여주는 모습은 제대로 된 보수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구 시민과 함께 대구의 미래 희망을 찾겠다”는 포부를 밝히면서 “지금 대구에 필요한 사람, 김부겸이다. 나를 잘 써달라. 김부겸과 함께 대구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이날 김 후보는 자신의 개인 전화번호도 공개했다. 김 후보는 “대구시장에 출마하는 김부겸으로서 시민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겠다”며 “경기도 군포 초선 시절부터 해왔던 대로 제 전화번호를 공개하겠다. 대구를 위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해 달라”고 말했다. 아울러 “국민의힘을 버려야 진짜 건강한 보수가 살아난다”며 “이번 선거는 대구가 다시 숨 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지역주의 극복과 지역 균형 발전이 제 마지막 소명이다. 대구 시민과 함께 대구의 미래 희망을 찾겠다”고 강조했다. 사정없이 흔들리는 ‘보수 심장’ ‘민주당’ 없는 민주당 동진 전략 지난 3일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중앙당의 만장일치로 김 후보를 대구광역시장 후보자에 선정했다. 이를 시작으로 김 후보는 광폭 행보를 보였는데, 특히 김 후보는 ‘민주당’이라는 여당 프리미엄을 전면에 세우는 대신 “김부겸을 도구로 써달라”는 실용주의를 내세웠다. 김 후보는 대구·경북(TK)의 상징인 박근혜·박정희 마케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어느 정도 있고 대구 시민들이 자부심을 느꼈다면 과오 논쟁을 넘어 대구의 미래를 향한 논쟁으로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포용의 정치를 강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예방 가능성을 열어둔 데 이어 ‘박정희컨벤션센터’ 공약을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민주당 한병도 원내대표는 KBS에서 김 후보의 박 전 대통령 예방에 대해 “대구 현실에 대한 판단으로 존중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측근인 국민의힘 유영하 의원이 회동의 전제 조건으로 ‘박 전 대통령의 실질적인 명예회복 방안’을 언급한 데 대해서는 “당 차원의 명예회복 조치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김 후보의 선거 전략을 조명했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출마 선언문을 보면 김 후보는 민주당을 강조하는 대신 대구의 발전 방향만 이야기했다”며 “김 후보가 민주당 출신인 것을 모르는 대구 시민은 없다. 그럼에도 ‘내란’ ‘계엄’ 등 예민한 단어를 빼버림으로써 시민들은 김부겸이란 인물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신 김 후보는 국민의힘을 비판한다. ‘지금까지 국민의힘이 대구시장을 해 왔는데 대구가 뭐가 바뀌었냐, 그건 국민의힘이 무능해서’라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준다. 절대 왼쪽으로 치우쳐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현재 보수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분위기가 안 좋다. 그때는 TK를 제외하고 몽땅 내줬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처절하게 패배할 것”이라며 “국민의힘이 명확하게 ‘절윤’하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워낙 김 후보가 전략을 잘 세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민주당’ 빼고 ‘경제’ 넣고 홍준표 전 대구시장도 참전했다. 홍 전 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대구에 도움이 된다면 당을 떠나 정치꾼이 아닌 역량 있는 행정가를 뽑아야 한다”며 김 후보를 추켜세웠다. 그는 “부산은 스윙 보터 지역이라 민주당이 가덕신공항도 해주고 해수부도 이전해 주지만, 대구는 막무가내식 투표를 하니까 민주당 정권이 도와주지도 않고 버린 자식 취급을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후임 대구시장이 능력 있고, 중앙정부와 타협이 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김부겸 전 총리를 언급한 것”이라며 “민주당을 지지한 게 아니라 김부겸을 지지했다고 봐주시면 한다”고 설명했다. 김 후보의 지지율이 연일 상승하면서 안정궤도에 돌입했다는 평이 나온다. TBC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달 28~29일 대구 시민 8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김 후보는 차기 대구시장 적합도 49.5%를 기록해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15.9%)을 큰 격차로 앞섰다. 김 후보와 국민의힘 후보 간의 1대1 가상 대결에서도 추 의원과 맞붙을 경우 52.3% 대 36.6%로 오차범위 밖 우세를 보였다. 해당 여론조사는 무선전화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5%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동안 김 후보는 꾸준히 상위권을 차지했지만 정치권에서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하 방통위원장)과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이 컷오프되자 반발 차원에서 대구 시민이 역결집한 것으로 봤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오름세를 보이면서 이 같은 현상은 단순 역결집이 아니라 실제 보수 민심에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민주당도 김 후보 지원사격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8일 대구에서 최고위원 회의를 열고 김 후보를 ‘제2의 노무현’ ‘제2의 이재명’이라고 평가했다. 정 대표는 “노무현이 종로 꽃길을 마다하고 부산 가시밭길에 도전했듯이 김부겸도 군포 꽃길을 마다하고 대구 가시밭길에 내려왔다”며 “김부겸도 이재명도 대구·경북 사람이고 민주당에서 비주류였다”고 말했다. 이날 정 대표는 당정 차원에서 지역 숙원사업도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이 지난 대구 타운홀미팅에서 TK 신공항 건설, 취수원 문제 등 대구 숙원 사업 추진 의사를 밝혔다”며 “그 의지는 앞으로 예산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팍팍 깎이는 현지 민심 TK 통합에 대해선 “국민의힘이 우왕좌왕, 갈팡질팡하는 바람에 통합이 멈춰 섰다”며 “김 전 총리와 힘을 합쳐 통합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화답하듯 김 후보는 “이 대통령이 대구에 중요한 약속을 했고, 정 대표도 ‘무엇이든지 다해드림센터장’이 되겠다고 했다. 이 보증수표를 믿고 대구를 메딕시티, AI·로봇 수도, 미래 모빌리티 산업 선도 도시로 만들어 그 약속을 시민의 삶과 연결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후보의 전략은 ‘민주당’을 빼고 대신 ‘대구 발전’ ‘민생’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9일 김 후보는 후보 등록을 마친 뒤 취재진들과 만나 1호 공약을 소개하는 등 민생·경제 살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1호 공약으로 대구의 지역 경제 발전을 꼽으며 “지역의 주요 기관과 단체, 어른들께 조속히 인사를 올리는 것이 급선무다. 대구 곳곳을 마주하며 지역의 어려움과 스스로의 부족함을 동시에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최대 현안인 인구 유출 문제를 언급하며 “젊은이들이 떠나는 것이 하나의 흐름으로 굳어져서는 안 되는데 이를 막지 못하는 현실에 시민들이 아픔을 느끼고 있다”며 “그만큼 책임감이 무겁다”고 강조했다. 그는 “청년 일자리 해결과 경제 도약에 집중할 것”이라며 “대구의 절실한 요구를 예산과 법률로 뒷받침하겠다는 것이 핵심 공약”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안방마저 내줄 상황에 몰렸다. 김 후보가 우후죽순 치고 나가고 있지만 국민의힘은 당내 교통 정리에서조차 애를 먹으면서 표가 갈릴 위험에 처한 것이다. 하루가 멀다고 싸움이 일어나는 만큼 여의도에서는 ‘김 후보의 러닝메이트가 장동혁 대표’라는 웃지 못할 농담도 나온다. 국민의힘을 향한 대구의 실망감은 숫자로도 나타났다. 지난 9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이번 지방선거에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의견은 54%, ‘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응답은 30%로 집계됐다. 특히 TK에서 여당 44%·야당 34%로 집계되면서 국민의힘에서도 위기감을 감지한 모양새다. 잘나가는 김 멍 때리는 장 대구 달서병을 지역구로 둔 국민의힘 권영진 의원은 “대구 여론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라며 “모두 기득권을 버리겠다는 각오를 하지 않는다면 사상 처음으로 민주당이 대구시장을 차지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권 의원은 MBC 라디오를 통해 최근 대구 민심에 대해 “그동안 국민의힘에 대한 불만으로 ‘이번에는 갈아보자’고 했지만 대안이 없어 ‘미워도 다시 한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저도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민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구에 반이재명 정서가 강했지만 요즘은 사람들이 많이 달라졌다. ‘윤석열보다는 이재명이 잘한다’, 심지어 ‘얄밉게 잘한다’는 사람도 있다”며 여기에 “김부겸이란 대안도 있어 대구 민심이 그 대안으로 옮겨가기 직전”이라고 지적했다. 권 의원은 국민의힘 지도부의 안일한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상황인데도 당은 ‘무난히 여섯 명(예비 후보) 중 한 명을 뽑으면 된다고 하고 있다”며 “자칫 잘못하면 국민의힘에 대한 실망으로 ‘김부겸을 통해 이익이라도 챙기자’라고 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주호영, 이진숙을 다독거려서 될 문제가 아니다. 6명 중에서 뽑힌 후보가 김부겸을 이기기 힘들 만큼 대구 민심은 훨씬 더 나쁘다”며 “상황이 이렇기에 보수 기득권에 안주하는, 보수 결집으로 이기겠다라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현재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은 무소속 출마 쪽으로 마음을 굳혔으며, 가처분이 기각된 주호영 의원은 “항고심을 지켜본 뒤 거취를 판단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주 후보는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장애물은 장동혁 대표 체제 그 자체”라며 국민의힘 지도부를 정면으로 비판하기까지 했다. 앞서 주 의원은 지난달 26일 법원에 컷오프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제출했고 법원은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이후 주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장 대표를 향해 “민심을 붙잡을 대책도, 보수를 다시 세울 노선도, 국민 앞에 사과하고 변화를 약속하는 모습도 없다”며 “대신 곳곳에서 공천 작당만 벌였다는 비판만 커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대구 현장에서도 장 대표가 싫어 국민의힘을 못 찍겠다는 말이 적지 않다. 장 대표가 먼저 결단해야 한다”며 “비상대책위원회든 선거대책위원회든 새로운 책임 체제를 즉각 구성하라”라고 장 대표의 후퇴를 촉구했다. 이번 대구시장 선거의 변수는 시민들의 막판 결집력이다. “당장 내일 선거가 치러지면 김부겸을 찍겠다”는 이들조차 투표소에 들어가면 “그래도 보수를 찍어야지”라는 마음으로 돌아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그렇게 삼진 아웃? 다만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런 ’습관성 투표‘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봤다. 이 관계자는 “‘보수가 큰일 났다’ ‘대구가 위험하다’라는 위기의식이 있어야 이들이 똘똘 뭉쳐 결집하고 표가 된다”며 “지금은 장 대표가 위기 그 자체다. 그래서 ‘이번에는 김부겸 한번 믿어보자’는 기대감이 오히려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2014년 (박 전 대통령 탄핵 상황)과 지금은 다르다. 보수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어 가면서 보수 지역 민심도 그에 맞춰가는 것”이라며 “김 후보가 크게 실수하지 않는 이상 ‘이대로라면 대구가 민주당에 뺏긴다’라는 위기감보다 ‘그래도 보수를 먼저 살려야지’라는 여론이 형성될 것이라 본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