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인문학> 골프 기원에 대한 논쟁

“그렇게 따지자면 잉글랜드가 네덜란드보다 골프 비슷한 놀이는 더 먼저 있었다고 해야죠.” 바닷가를 등지고 다시 박물관 건물로 향하면서 엔젤라 관장은 금발 머리를 쓸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녀는 네덜란드서 골프가 시작됐다는 얘기를 일축하면서 잉글랜드의 골프에 대해 힘주어 말했다. 잉글랜드서도 독자적으로 행해진 ‘캄부카’라는 놀이가 있었다.

런던 인근의 서쪽에 위치한 글로스터 성당은 앵글로색슨족이 서기 7세기경에 세웠는데 그 성당의 뒤뜰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공치기를 하곤 했다. 일종의 필드 하키 형식으로 진행된 놀이였고 주로 상류 사회나 귀족, 왕실서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사람들은 그 성당의 동쪽 뒤뜰에 위치한 거대한 창문을 가리켜 ‘위대한 동쪽 창문’이라고 불렀다. 그 창문은 성 요한, 성 마리아등 성당과 관계된 인물이 대형의 스테인드글래스로 새겨져 있었다.

시작은 어디?

수많은 창문 그림 중 아래쪽에는 둥그런 모양의 창문에 막대기를 들고 공을 치려는 사람이 새겨진 스테인드글래스가 특이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 주변의 전투 장면이 새겨진 스테인드글래스는 1350년 제작됐고, ‘크레시 전투의 창문’으로 불렸다.

골프와 비슷한 형상을 묘사한 창문의 그림과 크레시 전투 간 연관성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체 창문은 크레시 전투를 상징하고 있었다.


크레시 전쟁이란 1347년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영토 싸움으로, 프랑스의 영토인 크레시서 전투가 벌어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 전쟁서 잉글랜드군은 신무기로 새로운 활을 제조했고, 프랑스군은 예전의 전통적인 기사들의 기병이 선발대였다.

전투에 참여한 잉글랜드군은 1만2000여명으로, 프랑스군(3만5000여명)의 1/3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잉글랜드가 만든 2m가 넘는 길이의 활은 프랑스 기사의 갑옷을 뚫었고, 수많은 기사와 말이 죽었다. 결국 사기가 오른 잉글랜드군이 대승을 거뒀다.

이 전투 이후 중세시대의 군 전략은 새로운 형태로 바뀌게 됐고, 위풍당당했던 기사의 시대가 몰락하는 계기가 된다. 이 전투는 백년전쟁 초기에 벌어졌고 1337년에 시작한 백년전쟁은 1453년까지 116년간 계속됐다.

“잉글랜드는 기원설에 대해 별반 이의나 주장을 제기하지 않았나 보죠?” 제임스가 엔젤라의 얼굴을 쳐다봤다. 전방을 향해 눈을 떼지 않은 채 엔젤라는 “캄부카라는 이름이 엄연히 있었고 또 스코틀랜드건 잉글랜드건 그레이트브리튼은 하나의 나라였다”고 답변했다.

다시 박물관 카페로 들어간 두 사람은 좀 전에 바닷가가 보이는 창가의 일인용 의자에 각각 앉았다. 다시 커피를 주문하면서 그녀의 부연 설명은 계속됐다.

구전에 따르면 로마군이 골프 비슷한 놀이를 즐긴 시기는 기원전 300년경으로 알려졌다. 기원전 1세기 카이사르가 통치하던 로마제국은 전 유럽을 발밑에 뒀고, 5세기경 스코틀랜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로마 군인들이 스코틀랜드를 점령하고 야영지서 행했던 파가니카라는 놀이가 있었다.

두 편으로 갈라서 공을 몰아 상대방의 진영에 있는 목표물을 맞히거나 집어넣으면 이기는 경기였다.


당시 공은 새의 깃털을 짐승 가죽에다 집어넣어 꿰맨 뒤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군은 이 경기를 전쟁만큼이나 재밌어했고, 이 경기를 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려 정복 사업에도 힘이 절로 났었다는 전설도 있었다는 것이다.

증거가 될만한 역사적인 기록이나 고증에 대해서는 엔젤라도 말끝을 흐렸다. 골프와의 연관성을 찾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 차이가 있다는 의미였다.

스코틀랜드를 침략해 400년 이상 켈트족을 점령하고 스코틀랜드의 야영지 한쪽에서 그렇게 행해졌던 로마군들의 놀이가 20 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조용히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는 신화적인 전설에 그친다는 의미였다.

제임스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기원설의 마지막이며 최근 들어 인터넷에 올라있는 중국의 골프 기원설에 대한 주장을 엔젤라가 아는지 궁금했다.

어디서부터?…수많은 가설
전파 루트와 관련 설왕설래  

“중국서 실크로드를 타고 전래된 놀이라는 설은 일축해도 되죠?” 단정적이듯이 던지며 제임스는 엔젤라의 반응을 살폈다. 엔젤라는 재론의 여지는 없다는 듯 제임스의 말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글쎄요. 주장은 아무나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들의 자유 의사니까 말이죠.”

인터넷에 떠 있는 중국의 주장은 이랬다. 궁궐서 막대기로 공을 때리던 놀이가 있었는데 여자 혹은 남자끼리 함께 걸어가면서 공을 쳤으며 하나의 지점에 있는 작은 구멍에 그 공을 집어넣는 놀이라는 것이었다. 그 시기는 서기 900년경의 당나라 말, 혹은 남당 시절부터 명나라 초기인 서기 1300여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 놀이가 중국 상인이나 아라비아 상인에 의해 유럽으로 전해졌다는 얘기였다. 만약 700년 전 그 무역상이 이 놀이를 유럽으로 가져왔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실크로드를 타고 티베트 고원지대와 네팔의 험준한 히말라야까지를 넘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스코틀랜드보다 최소한 500년 앞섰다는 것이 중국인의 주장이었다.

그들은 당나라가 멸망하던 서기 900여년경 ‘추환도 벽화’라는 당시의 그림에서 골프치는 모습이 있다는 설을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또 12세기부터는 ‘추이환’이라는 이름으로 골프경기가 성행했으며 ‘환경’이라는 골프 규칙 책자도 만들어져 전해왔다는 설을 근거로 제시했다.

그들의 문헌인 환경에 따르면 공이 놓여져 있는 평지는 ‘평’, 비탈은 ‘요’ ‘철’, 아웃 오브 바운스는 ‘외’ 등으로 나눴다.

나무로 만든 공은 ‘권’, 클럽은 ‘구봉’, 그리고 티샷은 모래 등에 볼을 올려놓고 티를 할 수 있는 ‘초봉’이라 불렸고 두 번째 샷은 ‘이봉’이었다. 한 홀은 파 3이고 버디를 할 경우 ‘일주’, 홀인원은 ‘이주’라 불렸다. 무승부이면 오늘날의 연장전이나 서던 데스처럼 다음날 재경기를 했다고 한다.


엔젤라는 별 관심없다는 투의 반응을 보였다. 기원만 주장하고 그 이후 수백년 동안 골프에 대한 연결고리가 없는 상황서 말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투였다.

영국이 19세기 후반 아시아 여러 식민지에 골프를 전파했는데 그러다 보니 심지어는 캄보디아서 골프가 기원됐다는 말도 있다면서 엔젤라는 그런 근거를 가지고 수백년을 더 거슬러 가면서 그럴듯하게 포장하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제임스를 쳐다보는 엔젤라의 눈빛이 중국의 기원설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은 말이라는 뜻을 내포했다. 내친김에 제임스는 골프가 전파되던 19세기의 아시아 국가 중 한국도 포함돼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물론 알고는 있죠. 홍콩과 일본을 위시해서 한국에도 19세기 말에 골프장이 생긴걸로 알고 있지만 상세한 내용에 대해선 별로.”

미안하다는 투로 엔젤라는 말끝을 흐렸다. 하긴 골프 역사에 대한 저서를 수십권 이상 들여다 본 제임스 역시 영어로 된 골프 역사책에는 한국에 전래된 골프에 대한 내용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단지 한두 권의 책에 “1889년 원산항에 영국인들이 세관을 건설하면서 6개 홀을 지어 골프를 쳤다”는 짤막한 내용만이 적혀 있었다.

다양한 해석


다시 주문한 스코틀랜드 커피의 향이 은은하게 피어 올라오고 있었다. “우리는 완벽한 증거를 가지고 있죠. 바로 600여년 전 스코틀랜드 제임스2세 국왕의 골프금지령이 문서로 기록된 엄연한 증거죠.”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엔젤라는 골프금지령으로 오늘 아침의 만남에 마무리를 지으려는 듯 보였다. 그녀는 다시 600년 전 목동 헨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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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