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위장’ 베트남 원정 성매매 전말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10.16 14:37:30
  • 호수 14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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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20만원에 황제 대접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코로나 엔데믹 특수를 노린 원정 성매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 ‘보복 여행’ 증가의 영향으로 지난 9월까지 베트남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890만명에 달한다. 이중 한국인 관광객은 250만명으로 전체의 28%를 차지해 부동의 1위를 유지했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있는 법. 베트남 현지서 한국 남성을 상대로 한 성매매 업소가 적발돼 국제적 망신을 샀다.

지난 11일, 베트남 호찌민시서 한국 남성들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알선한 40대 한국인이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베트남 현지 언론은 호찌민 경찰이 시내의 한 식당을 급습해 한국인 업주 손모(47)씨를 체포했다고 지난 6일 보도했다. 베트남 언론은 이들과 현지인 여성 종업원 등의 얼굴을 모자이크 없이 공개했다.

출입 관리

호찌민 경찰은 지난 3일 호찌민 팜타이브엉 거리에 있는 식당 2층서 성매매가 이뤄진 것을 현장서 적발한 뒤 이들을 체포했다. 경찰은 성매매 알선·중개 혐의로 손씨를 포함해 김모·윤모·이모·유모 씨 등 한국인 4명과 베트남 여성 종업원 4명을 같은 혐의로 함께 체포했다.

손씨 등은 “식당 수익을 늘리기 위해 종업원에게 다양한 종류의 성매매를 하도록 지시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손씨가 운영한 식당은 4층 규모로, 총 28개의 룸을 갖췄다. 베트남 여성 200여명을 고용해 대부분 한국인을 상대로 성매매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성 매수자들은 여권을 제시하거나 주인과 친분이 있음을 증명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성매매를 할 수 있었다.


호찌민 경찰은 같은 날 이 식당의 여성 종업원 4명이 지역 내 다른 호텔서 한국인들과 성매매를 하는 현장도 적발했다. 체포된 여성 종업원들은 손님당 300만∼500만동(17만∼28만원)을 받고 성매매를 했다. 이 업소의 최근 월 매출액은 수억원에 달했다.

2020년 영업을 시작한 이 식당의 직원은 226명이나 됐다. 또 고객 운송을 위한 차량 3대도 보유한 기업형 성매매 업소였다. 식당 밖에는 출입을 통제하는 경비원이 3~5명 있었으며, 단속에 대비해 무전기와 경보시스템(체계) 등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손씨 등은 경찰 수사를 피하고자 베트남 손님은 거부하고 한국인만 상대로 성매매를 알선했다.

베트남서 적발된 한국인 성매매 사건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7월에도 호찌민서 한국인들이 접대부를 고용해 조직적으로 윤락을 알선하다가 현지 공안에 검거됐다.

당시 현지 언론에 따르면 경찰은 A씨(48) 등 한국인 3명을 성매매 알선 혐의로 체포했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호찌민 시내서 30여개의 불법 노래방 시설을 포함한 식당을 운영했다. 동시에 여성 접대부 80여명을 고용해 인근 호텔과 임대 아파트서 윤락을 알선했다.

성매매 고객은 주로 외국인들이며, 대다수는 한국인으로 조사됐다. 성매매 대가로 건당 300만∼400만동(16만∼21만원)을 받아 체포 당시 총 40억동(2억1000만원)을 챙겼다. 대부분의 베트남 성매매 알선 업소는 골프와 유흥을 위해 찾은 한국인을 상대로 영업한다. 단체 여행객의 가이드 등을 통해 윤락을 알선해 돈을 버는 행태다.

코로나 특수를 노린 것만은 아니다. 베트남서 성매매 혐의로 현지 경찰에 적발된 경우는 수년 전부터 존재했다. 2019년 5월에는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한 유흥주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알선한 현지인에게 징역 3년이 선고됐다. 그러나 이 주점의 실제 업주라고 지목된 한국인은 처벌을 면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베트남 하노이 인민법원은 당시 성매매 알선 혐의로 기소된 현지인 짱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종업원인 그는 2018년 10월에도 한국인 남성 2명에게 성매매를 알선한 혐의로 체포돼 재판을 받았다.

짱씨는 경찰에 출석해 “한국인 업주 B씨(45)가 지난해 1월부터 이 주점을 운영했다”고 밝혔다. 해당 주점의 업주로 등록한 현지인 히엡(36)씨도 업주 B씨에게 명의를 빌려줬다고 진술했다. B씨는 “손님을 맞이할 준비 상황을 체크하고 돈 관리만 했을 뿐 짱씨가 성매매를 알선하는지 몰랐다”고 관련 혐의를 부인해 처벌을 면했다. 

운송까지 준비 기업형 구조
손님당 약 17만~28만원

2019년 10월 코로나 확산 직전 베트남서 성매매를 하던 한국인 남성 9명도 현지 경찰에 적발됐다. 베트남 호찌민 주재 총영사관에 따르면 2019년 10월27일 새벽 1시쯤 호찌민 시내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유흥주점 2곳에 현지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이날 경찰은 접대부와 손님 명단을 확보해 호텔을 봉쇄한 뒤 9명의 한국인 남성 관광객을 성매매 혐의로 체포했다.

현지 소식통은 “성관계를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된 한 남성(72)은 바로 풀려났지만, 나머지는 공안 유치장서 조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피의자들은 같은 날 오후까지 조사를 받았고, 10월31일 전원 귀국했다. 경찰은 가라오케를 관리하던 한국인 여성 2명도 체포해 조사했다.

베트남이 성매매에 대한 처벌이 약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전히 많은 한국인이 ‘섹스 관광’을 목적으로 베트남을 찾는다. 

베트남 형법에 따르면 성매매 여성의 경우 벌금 10만∼30만동(5500원∼1만7000원)과 경고 처분에 그친다. 다만, 포주와 성매매 알선 조직원은 6개월∼5년의 징역형에 처한다. 또 성매매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외국인은 추방도 피하기 어렵다.

베트남 성매매 관련 처벌이 비교적 약하지만, 체포와 구속에 영장주의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성매매를 하는 건 위험하다.

조범석 변호사(법무법인 법승)에 따르면 “베트남도 헌법상으로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고, 피혐의자에 대해 체포나 구속을 할 때 영장에 의해서 하기는 한다”면서도 “우리나라와 가장 큰 차이점은 체포·구속 같은 신병 집행에 대해서 영장주의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해석하자면, 베트남은 우리나라 경찰에 해당하는 조사기관, 검찰에 해당하는 검찰원, 그리고 법원이 ‘각자의 필요와 판단에 따라’ 스스로 대인적 강제조치를 취한다. 이는 법원에 의한 영장 통제가 없이, 검찰원의 비준으로 영장이 발부돼 집행되고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각자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장기간 피의자를 구금할 수도 있다.

체포와 구속 기간도 비교적 긴 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사기관에서는 최장 30일, 법원에서는 1심 최장 6개월 같은 식으로 제한이 있는 반면, 베트남 형사소송법은 조사를 위한 피의자 구속시한을 최단 2개월서 최대 20개월까지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재판 과정서의 구속 기간은 아예 제한이 없다. 

따라서 구속 기간이 나중에 선고형보다 긴 부당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베트남 여행 중 체포나 구속되는 상황을 맞게 되면, 이질적인 규정이나 실무 때문에 크게 당황해서 적절한 대처를 취하지 못할 위험이 크다.

한편, 최근 베트남 정부는 유흥시설에 대한 규제를 더욱 강화하고 나섰다. 호찌민과 하노이 등에서 성행하는 한국인 섹스 관광을 대놓고 저격했다.

2019년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는 나이트클럽과 가라오케를 규제하는 법령의 일부 변경을 제안했다. 제안에 따르면 가라오케는 잠금장치나 경보시스템이 허용되지 않는다. 운영시간도 제한키로 했으며 각종 이벤트 등은 베트남의 문화나 정서에 위배되지 않아야 한다.

또 가라오케와 나이트클럽이 학교, 병원, 종교시설, 유적지, 정부청사 등에서 최소 200m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나라 망신


베트남 문체부는 가라오케나 나이트클럽이 주로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술을 제공하는 등 위험성이 높은 사업이기 때문에 엄격한 규제가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잠금장치를 허용하지 않는 이유는 성매매가 이뤄질 가능성을 없애기 위함이라고 덧붙였다.

문체부가 마지막으로 조사한 2018년 자료에 따르면, 조사관들은 2900개 이상의 유흥시설을 조사했다. 이 중 1400건의 위반사항을 적발하고 75만5000달러 이상의 벌금을 부과했다. 베트남 정부가 강력한 규제에 나선만큼, 한국인 관광객의 도 넘는 비위 행각을 멈춰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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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