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㊽순수성 이용하는 사이비들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3.09.14 09:02:46
  • 호수 1444호
  • 댓글 1개

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나는 피에로 씨를 따라 그곳에 가 보았다. 괴교주 영감은 할인용품점에서 구입한 과자나 과일 따위를 들고 그들의 골방을 찾아가 일장연설을 뇌까리곤 했다. 

“세상과 인생살이에 대한 불평불만과 욕구불만이 물론 많겠지요. 내가 다 이해합네다. 하지만 당신은 지금 아주 허약한 상태예요. 당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은 원래 약한 존재임을 알아야 합네다. 우주신의 가호가 없이는 누구도 어떤 일이나 행복을 성취할 수 없다는 진리를! 당신 자신은 진리를 앞에 두고도 보질 못합네다. 얼마나 가련하고 안타깝습네까? 바로 그래서 내가 여기 온 것입네다!” 

어두운 희망

영감은 가련한 인간의 손을 잡곤 맥을 짚어 보는 듯하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허헛, 이러고도 살아 있다는 게 이상할 정도로군. 경맥이 전부 모조리 다 꽉 막혀 버렸어! 골이 띵하고 숨이 턱턱 막히고 소화가 잘 안 되고 매사에 의욕이 없지요?” 


얼굴이 핼쑥한 사람은 머리를 살짝 끄덕인다. 

“자, 두 손가락으로 이렇게 고리를 만들고 최대한 힘을 꽉 주세요. 자, 그럼 내가 한번 떼어 볼게요. 이것 봐, 맥없이 떨어지고 말지요? 자, 이번엔 ‘우주 통일 여신 박박통통!’이라고 외쳐 봐요… 얏, 이번엔 꽉 붙어서 안 떨어지죠? 절대로 안 떨어져! 혹시 모르니, 여보게, 자네가 한번 힘껏 떼어 봐.” 

지시를 받은 피에로 씨가 다가가서 손가락을 넣어 낑낑거리며 애썼지만 고리는 풀리지 않았다. 교주 영감은 헛기침을 콧김과 함께 내뱉고 나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것은 아직 희망이 있다는 징표입네다. 마음을 통하여 우주 속 백궁 여왕님의 성결한 에너지가 감응한다는 얘깁네다. 자, 그럼 이제 내 눈을 똑바로 보세요. 훔 훔바리 쿰! 이제 막혔던 경혈이 다 뚫려 에너지를 술술 받아들이게 되므로 새로운 생이 열릴 겝니다.” 

영감은 손바닥을 피시술자의 정수리에 얹어 톡톡 두 번 두드리며 엄숙히 말을 이었다. 

“명심할 일이로다! 아집과 아견을 버리고 매일 매순간 박박통통 우주 여신님의 명호를 염송해야 하느니라. 그러지 않으면 경혈은 다시 막혀 죽음의 진창 속을 헤매게 되리로다! 알겠느뇨?” 

가련한 사람은 희망을 조금 얻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듯싶기도 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감읍하여 머리 조아려 절하며 교주님 만세를 외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의심의 눈초리를 던지면서 비웃는 경우가 많았다. 


“흐흐… 이딴 건 뭐 허경영 본좌가 벌써 특허 출원한 방법이잖어. 히힛, 한 번뿐인 인생인데 남을 모방하는 건 경범죄라구.” 

“뭔 소리여? 이건 내가 지리산 상상봉에서 십년 수도한 끝에 창안한 비결인걸.” 

“흐흣, 암튼 허 본좌가 나름 애써 대중화시켰는데, 혓바닥도 안 닦고 따라하면 사기꾼이지 뭘.” 

대우주 창조한 조물주는 독재해도 괜찮다?
적지 않은 의심의 눈초리 비웃는 경우 파다

“흠, 망발을 삼가시오! 사실 허경영이 그 친구는 내 제자란 말여.” 

“도둑 고얭이가 웃겠수.” 

“가련한 인간이여 자중하게! 유튜브를 보면 허경영이가 소싯적에 인왕산 기슭에서 텐트 치고 살았다는 얘기가 나오잖어? 그 당시 나는 그 윗자락의 토굴에서 면벽 수도 중이었는데, 경영이 녀석이 이따금 찾아와설랑 천지 조화의 이법에 관해 묻곤 했었지. 좀 귀찮긴 했으되 쫒아 버리진 않았어. 그 당시만 해도 그 녀석이 요즘과 달리 꽤 순수하고 진중했거든. 헌데 요사이 보니 글러 먹었어.” 

“왜요?”

“진리를 얘기하면서 자기는 진리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고 있잖아. 자기가 대우주를 창조한 조물주고 이 세상을 주재하는 황제이므로 오직 홀로 독재를 해도 괜찮다는 식이지. 불경이나 성경 혹은 정감록 등등에 나오는 구절을 왜곡하여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만 아전인수하는 건 사이비 교주들이 약방 감초처럼 써먹는 방법인데, 왜 사람들은 날파리처럼 속는지 몰라. 그 녀석의 아주 상습적인 특징이랄까 비루먹은 술책 중 하나가 뭔 줄 아는가? 자기에게 달콤한 말을 해주는 사람은 우대하고, 비판하는 사람은 마구 뭉개는 버릇이야.”

“그거야 인지상정인 걸 뭐.” 

“너무 심하니까 하는 소리야. 자기에게 유리한 말을 하는 사람은 설령 악인일지라도 최고 최상의 선인으로 치켜세우고, 비판자는 제아무리 선량하더라도 악인보다 더한 악마처럼 독설 섞어 매도해 버리더군.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적이라고 판단되면 일반인이든 방송 기자든 누구든 공갈 협박해서 겁먹이려 들더구먼. 그런 때는 무슨 주술을 중얼중얼하는 꼴이 영 망측스레 변하더란 말야.”

“그건 즉 진실하지 못하고 허위에 기대어 일을 도모하기 때문이거든. 그 정도 되면 정치를 하든 강의를 하든 노래를 하든 교주 비슷한 노릇을 하든 진리에 입각해서 해도 인기를 끌 텐데 왜 그러는지 몰라. 사람들이 이미 짐작하고 있는 가발을 눌러 쓴 채 생머리라고 강변하기보다 훌렁 벗어 버리고 자연스레 얘기하면 자기도 시원하고 좋을 텐데 왜 굳이 숨길까? 세월 따라 늙어 가는 얼굴에 화장 떡칠을 해서 주름살을 감추기보다 그냥 진실하게 드러내어 연륜을 보여 준다면 더 좋을 텐데….”


인지상정

“요즘 같은 세상에 가발 자체를 허위라고 볼 순 없죠. 하나의 장식품인걸요. 화장 또한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많이 하니깐 가짜 속임수라고 할 수 없어요. 그 양반은 정치가나 진리의 설파자라기보다 그냥 일종의 엔터테인먼트 꾼이라고 생각하고 보는 게 속 편해요.” 

피에로 씨가 자신의 대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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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