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력 상실한 교정 당국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09.04 13:26:45
  • 호수 14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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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 교도소 터지기 직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극단적 상황에 놓인 두 부류가 살아가는 공간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단연 교도소라고 답할 것이다. 과밀 수용 문제부터 사형 집행까지 지난한 과제가 산적한 곳이다. 많게는 수용자 200명을 교정 공무원 4명이 관리한다. 과밀 수용으로 수용자의 재사회화를 지향하는 교정 당국의 목표가 흔들리는 분위기다.

수용자 인권 위주의 정책으로 교도관들의 존엄성이 무너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교정 당국은 수용자의 사회 복귀를 돕고 재범률을 낮춰 사회를 뒷받침하기 위한 목표가 있다.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소진 현상을 겪고 있는 교정 공무원(교도관)이 늘어날수록 교도소는 ‘먹고 자다 나오는 곳’으로 전락할 수 있다.

과밀 수용 문제는 교화 기능을 떨어트리는 가장 큰 요인이다. A 교도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1인당 수용면적이 최소 수용면적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생활공간이 좁으면 수용자들도 불편하고, 교도관들도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일촉즉발 
과밀 수용

교화의 목적은 재사회화인데, 사용 공간이 좁은 탓에 수용자끼리 범죄 수법을 손쉽게 전수하기도 한다. 특히, 마약사범의 재범률이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 관계자는 “좁은 환경서 쌓인 스트레스로 사고가 발생하는 건 흔한 일”이라며 “가장 큰 문제는 좁은 공간에서 수용자들끼리 마주하면, 출소 후 범죄를 도모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마약사범끼리 만나면 출소 후 밖에서 만나 마약을 거래하는 사이가 된다”며 “교화 목적을 실현하려면 동종 범죄자끼리는 분리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교도소 확충에 나섰다. 인권위는 지난해 1월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교정시설 과밀 수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1인당 수용 면적이 인간으로서의 기본 욕구를 해소하지 못할 정도로 협소하다면 국가 형벌권 행사의 한계를 넘은 비인도적인 처우라는 것이다.

법무부 측은 “몰라서 실행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는 입장이다. 교정시설 확충은 지역주민 반대에 부딪혀 늘 제자리다.

앞서 수도권 구치소 등에 수용자 4명은 과밀 수용으로 기저질환이 악화되고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던 바 있다. 인권위 조사 결과, 실제 이들은 정원을 초과한 수용 공간서 생활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에는 1인당 수용 면적이 약 1.40㎡(약 0.4평)인 거실서 15일쯤 생활한 경우도 있다. 

법무부가 정한 혼거실 최소 수용 면적은 1인당 2.58㎡다. 과밀수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신설, 이전하는 방식으로 확충하는 방법이 꼽힌다. 

이 과정서 해당 지역주민과 갈등이 생기면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교도소는 우리 사회 어딘가에 필요하지만, 우리 지역에는 지어지면 안 된다는 ‘님비현상’의 대표적인 예다.

교도관과 수용자 인권 ‘누가 먼저?’
재범률 갈수록 늘면서 ‘정원 초과’

법무부는 경기 화성시 마도면에 2026년 완공을 목표로 축구장 3배 크기의 여자교도소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여성 전용 교정시설이 전국에 청주여자교도소 한 곳밖에 없어 수용 과밀 문제가 생기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해당 지역주민들은 “이미 외국인보호소와 직업훈련교도소가 있는 마도면에 왜 또 짓냐”며 백지화를 촉구했다. 이들은 교정시설 주변에 ‘마도면 내 교정시설 타운화 결사반대’ 등 현수막을 내걸었다.

교도소 확충은 수용자의 교화 목적과 더불어 교도관의 근무환경 개선사업이기도 하다.

한우재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교정 공무원의 마음이 편하고 안정된 상태서 근무해야 하는데 수용자 눈치를 보면서 어떻게 교정 교화를 하느냐”며 “한국의 교도소는 교정 공무원이 수용자처럼 느끼며 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미국 교도소의 경우, 죄수 처벌에 무게를 두면서도 재사회화 가능성을 배제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다.

미국서 보안등급이 가장 높은 현대판 ‘알카트라즈’인 ADX 플로렌스 교도소를 예로 들어보자. 콜로라도주에 위치한 이곳은 최소 보안등급 캠프인 FPC 플로렌스부터 일반 교도소인 FCI 플로렌스, USP 플로렌스, ADX 플로렌스 순으로 보안등급이 나눠져 있다. 

FCI 플로렌스는 막사처럼 생긴 단체 감호시설 구조와 넓은 야외 활동 구역으로 이뤄진 일반 교도소다. 재사회화를 위한 프로그램도 범죄자가 참여할 수 있다. 

반대로 가장 보안등급이 높고 죄질이 극악무도한 수용자들이 간다는 ADX 등급은 최대 수용 인원이 490명이며, 모두 독방으로 이뤄져 있다. 대부분 무기징역으로 확정판결이 나면 이곳으로 보내질 가능성이 높다. 멕시코의 전설적인 마약왕 호아킨 ‘엘 차포’ 구스만이 수감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교정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돼 재사회화 교육은 없고 최대의 형벌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그래도 가로 2.1m 세로 3.7m 넓이의 독방으로 이뤄져 있어 최소한의 생활공간은 확보된 셈이다. 아무리 흉악범이라도 한 방에 많은 수용자가 생활하는 경우는 선진국서 보기 드물다.

치열한 자리
차라리 독방

교도관의 인권을 보호하면서 수용자의 처벌까지 강화한 최적의 방식이다. 교도관의 쾌적한 근무환경이 교화의 목적을 충분히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한 교수는 “거시적으로 보면 교도관이 겪는 스트레스가 수용자의 교화를 어렵게 하고,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며 “호텔 같은 교도소를 바라는 게 아니다. 교도관이 수용자들을 얼마나 교정 교화를 시키느냐에 따라 이들이 출소했을 때 사회적 안전이 보장되고, 이에 따라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용자가 교도관을 고소·고발하는 사례도 매년 1500~2000건에 달한다. 교도관 10명 중 1명꼴로 고소·고발을 당하지만 대부분 무혐의나 각하 처분됐다.


수용자들의 인권 과보호로 목소리가 커져 교도관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교도관의 운신 폭은 크게 좁아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수도권의 한 교도관은 “떠드는 수용자에게 조용히 하라고 정당한 요구를 해도 인권 침해라며 진정을 넣는 식”이라고 전했다.

교도관이 수용자에게 맞기도 한다. 교정공무원을 폭행해 수용자가 형사 입건된 사건은 최근 2~3년 동안 매년 100건이 넘는다. 10여년 전인 2012년 43건과 견줘 2배 이상 늘었다.

수용자의 폭행과 고소·고발 위협에 시달리는 교정 공무원 4명 중 1명이 정신건강 ‘위험군’에 속한다는 교정본부 실태 조사도 나왔다. 특히, 2012~2021년 목숨을 잃은 교정 공무원이 121명으로 드러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가 38명에 달한다.

법조계 관계자는 “수용자 인권도 중요하지만, 교도관들이 수용자들의 화풀이 대상으로 전락하면서 교정·교화의 기능이 퇴색됐다”고 말했다. 수용자 인권을 강조한 정책의 부작용이 교정 목적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석방
늘려야?

인권보호와 공무집행 권한 사이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교도관들은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수용자들이 인권을 악용하는 사례는 인권위에 접수하는 진정서 엿보인다.


법무부에 따르면 최근 10년 동안 수용자가 인권위에 접수한 진정 건수는 연평균 4000건이 넘는다. 3000건 수준이던 진정 건수가 2017년부터 4000건을 훌쩍 넘어섰다.

진정이 접수되면 교도관이 소명해야 한다는 점을 악용한다. 인권위가 타당하다고 판단해 권고 결정을 내린 진정 비율이 지난 10년 동안 0.1~0.8% 수준에 그친다. 그만큼 교도관 괴롭히기 성격이 짙은 진정이라는 것이다.

교정 목적을 흔드는 또 다른 원인으로 ‘보호장비 착용 최소화’도 꼽힌다. 교도소서 수용자에게 보호장비를 채운 채 용변을 보게 하면 인격권 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 판단이 나왔다. 지난달 24일 인권위에 따르면 경기도의 한 교도소에 수감 중인 A씨는 작년 2월 다른 수용자 10여명과 함께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문을 발로 차고 고성을 질렀다.

교도소 측은 A씨에게 약 5시간 동안 허리에 두른 사슬과 수갑이 연결된 금속보호대를 채워 화장실에 갈 때도 풀어주지 않았다. A씨는 인격권이 침해됐다며 진정을 냈고 교도소는 급박한 상황서 임의로 보호장비를 해제하기는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인권위는 이 교도소가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형집행법) 시행규칙을 어기고 A씨의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수용자가 보호장비를 착용한 채 용변을 보는 것은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교도소장에게 직무교육을 지시하는 등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재사회화 목적 불투명
인권위 진정 악용 늘어

교정시설 과밀화를 해소하기 위해 가석방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5월 법무부에 따르면 올 2월 기준 전국 54개 교정시설 중 33곳(61.1%)이 수용정원을 초과해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주여자교도소의 정원 대비 수용자 비율이 130.8%로 가장 높다. 정원 610명인 시설에 798명이 수감됐다. 일부 6평 남짓한 수용거실(생활공간)에 정원의 약 2배 인원이 수감됐다.

창원교도소(125.2%), 대전교도소(124.9%), 제주교도소(120.4%) 서울동부구치소(118%) 등도 대표적인 과밀시설이다. 

교정시설 확충이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가석방 확대가 거론됐다. 가석방은 징역형이나 금고형을 받고 수형 중인 사람이 복역 태도가 양호한 경우 임시로 석방하는 제도다. 무기형은 20년, 유기형은 형의 3분의 1이 지난 후 행정처분으로 가석방할 수 있다.

다만, 국내 가석방은 국민 법 감정 등을 이유로 소극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총출소인원 대비 가석방 인원 비율을 나타낸 가석방 출소율은 2018년 28.5%, 2019년 28%, 2020년 28.7%였다. 일본과 캐나다가 각각 58.3%, 37.4%인 것과 대비된다.

한 장관은 오히려 가석방 없는 무기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지난 7월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서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가석방 없는 무기형과 관련된 법안을 발의하려고 한다”고 하자 한 장관은 “사형제 위헌 여부 결정 이후 유력하게 검토될 수 있는 의미 있는 방안”이라고 답했다.

가석방 없는 무기형의 가장 큰 특징은 재심이나 사면 같은 특수한 사정 없이는 가석방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최근 한 장관이 가석방 없는 무기형과 사형 집행 가능성 등을 언급한 것을 두고 “범죄자들에게 경각심을 주려는 취지”라고 해석했다.

한 장관은 이달 중순 서울구치소·부산구치소·대구교도소·대전교도소 등 사형 집행시설을 보유한 4개 교정기관에 사형시설을 제대로 유지하라고 지시했다. 

한 교도소 관계자는 “예전부터 사형시설에 청소하는 소리만 들려도 벌벌 떠는 게 수용자들의 심리”라며 “사실상 사형 집행을 안 한다는 인식 때문에 사형수들은 자신들이 사형수라는 사실을 망각하는데, 이번 한 장관의 발언으로 아마 경각심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100%
넘었다

한편, 교정시설 과밀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왔다. 법무부 교정통계연보에 따르면 교정시설 수용률이 99.5%를 기록한 2012년 이후 11년째 10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교정시설 수용률은 2016년 121.2%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104%까지 다소 줄어든 상태다. 2020~2021년 교정시설 내 코로나 확산으로 법무부가 가석방을 적극 시행한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코로나로 구속 수사와 법정 구속이 줄어든 것도 영향을 미쳤다. 교정시설 확충과 가석방 확대는 각각 국민 감정에 번번이 부딪힌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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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