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천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유가족의 눈물

엄마, 딸, 동생이었던 서른여덟 여성의 죽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누군가의 죽음이 입법 시스템의 동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사건 과정서 드러난 법의 허점과 틈새를 피해자의 죽음이 메워주는 식이다. 문제는 피해자의 남겨진 가족이다. 가족은 피해자를 제물로 삼아 변화할 사회를 기다리며 여생을 살아가야 한다. 그들의 기다림에는 기약이 없다. 

한 여성이 자신의 집 앞에서 살해됐다. 누군가의 딸, 엄마, 언니 그리고 동생이었던 여성은 마지막 말도 남기지 못한 채 한 남성의 칼부림에 사망했다. 피해자의 날벼락 같은 죽음은 가족을 덮쳤다. 사건이 일어나고 한 달 남짓 지났을 뿐이지만 이들은 슬퍼할 새도 없었다. 피해자의 죽음 너머 가족이 짊어져야 할 현실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서른여덟
피지 못하고

지난달 17일 오전 5시50분경 인천 남동구 논현동의 한 아파트서 이은총씨가 전 남자친구 A씨의 칼에 찔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살려 달라’는 은총씨의 목소리를 들은 어머니가 A씨를 막기 위해 달려들었다가 손에 큰 부상을 입었다. 가슴과 배 등에 치명상을 입은 은총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범행은 은총씨가 어머니, 딸과 함께 살던 아파트 엘리베이터 부근서 일어났다. 유가족은 A씨가 엘리베이터 옆 비상계단 쪽에 숨어 있다가 출근하는 은총씨를 공격했다고 설명했다. A씨가 휘두른 칼을 맨손으로 막고 있던 은총씨의 어머니는 여섯살 손녀가 집밖으로 나오려 하자 다시 집으로 돌아가 경찰에 신고했다. 손녀를 지키기 위해 집 안으로 들어간 사이 문 너머에서는 딸이 죽어가고 있었다.

A씨는 은총씨를 공격한 20~30㎝ 길이의 회칼로 자신의 복부를 찌르는 등 자해를 한 뒤 피범벅이 된 피해자 옆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고 한다. 유가족에 따르면 출동한 구급대원도 ‘처음 보는 광경’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같은 병원으로 이송됐다.


은총씨는 영안실로, A씨는 중환자실로 각각 옮겨졌지만 피해자의 가족과 가해자의 가족은 한 공간에 있던 셈이다.

지난 11일 인천지검 형사2부(위수현 부장검사)는 살인과 스토킹범죄의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 등 혐의로 A씨를 구속 기소했다. 유가족은 A씨가 은총씨를 살해하기 전, 분명한 ‘전조증상’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2월 은총씨를 폭행한 혐의로, 6월에는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던 것. 

심지어 법원은 “은총씨로부터 100m 이내에는 접근하지 말고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도 금지하라”는 내용의 명령도 내렸다. 경찰은 은총씨에게 ‘스마트워치’를 제공했다. 대상자가 위험에 처했을 때 ‘비상’ 버튼을 누르면 경찰에 신고가 접수되는 방식이다. 은총씨가 스마트워치를 착용하고 있던 한 달간 A씨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법원의 접근금지명령과 경찰이 건넨 스마트워치는 A씨로부터 은총씨를 지킬 최후의 ‘보루’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경찰은 한 달간 A씨가 은총씨 주변에 나타나지 않자 스마트워치 반납을 요구했다. 은총씨가 스마트워치를 반납하고 사흘 뒤 A씨는 회칼을 휘둘렀다.

출근을 위해 이른 시각 집을 나섰던 서른여덟의 은총씨는 끝내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했다. 

지난 18일 오전 전남 지역의 한 카페서 만난 은총씨의 사촌언니 이모씨는 인터뷰 도중 여러 차례 울먹였다. A씨를 향한 분노, 갑작스럽게 가족을 잃은 황망함, 은총씨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 등 많은 감정이 범벅된 눈물이었다. 올해 초 전남 지역으로 이사 온 이씨는 현재 서울을 오가며 은총씨 사건에 매달리고 있다. 

스마트워치 반납 사흘 만에
집 앞에서 칼에 찔려 사망


“저는 은총이를 사촌동생이 아니라 친자매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어요. 작은아빠(은총씨 아버지)도 장애가 있고 저희 아빠도 눈이 안 보이세요. 가정환경이 비슷해서인지 사촌이지만 친하게 지냈어요. 한 직장서 일도 같이했었고 은총이가 힘들 때 저를 찾아온 적도 많았고요. 그놈(A씨)하고 사귀고 있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런 일을 당할 줄은 몰랐어요.”

은총씨는 2021년 운동 동호회서 A씨를 만났다. 이후 또 다른 동호회에 가입할 때도 A씨는 따라왔다. 심지어 A씨가 은총씨의 직장에 입사하면서 두 사람은 같은 장소서 일했다. 접근금지명령을 받으면서 휴직 상태가 된 이후에도 A씨는 은총씨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할 수 있는 지척거리에 맴돌았다. 

두 사람의 교제 기간은 6개월 남짓이었다. A씨는 은총씨의 이별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보다 더 긴 시간 위협을 가했다. 극도의 공포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은총씨는 그 시기 10㎏ 가까이 살이 빠졌다. 특히 자신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어린 딸이 A씨에게 해코지를 당할까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은총씨는 일을 쉴 수 없었다. 남편과 헤어진 이후 세 사람의 생계를 책임지며 가장 노릇을 해왔기 때문. 또 10년 넘게 회사 영업직으로 근무하면서 관리하고 있는 고객도 많아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쉽사리 바꿀 수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게 은총씨가 할 수 있던 최선이었다.  

“저도 해봐서 알지만 영업 일은 밤낮이 없어요. 고객 위주로 돌아가는 일이기 때문에 모든 스케줄을 그쪽(고객)에 맞춰야 하거든요. 은총이는 정말 정신없이 열심히 일했어요. 팀원들하고 손발도 잘 맞았고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보상도 눈앞에 두고 있던 시기로 알아요. 그런데 그렇게 가버린 거죠.”

사촌언니 이씨는 은총씨의 죽음을 접한 이후 끊임없이 발로 뛰었다. 사건 당일 오후 4시경 은총씨 동생을 통해 소식을 들었을 땐 무너질 듯한 슬픔을 느꼈지만 이내 ‘나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라고 마음먹었다. 마냥 슬퍼만 하기엔 산적해 있는 현실적인 사안이 너무 많았다. 

접근금지명령
임시방편일 뿐

당장 사건이 ‘묻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했다. 헤어짐을 요구하는 연인을 스토킹 끝에 살해하는 ‘교제 살인’ 사건이 늘어나면서 아이러니하게 관심이 줄어들었다. 직계가족도 아닌 사촌언니로서 이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은총씨의 죽음이 ‘개인적인 일’로 치부되지 않도록 언론에 호소하는 것뿐이었다. 

이 과정서 이씨는 끊임없이 은총씨와 그 가족을 언급해야 했다. 사촌동생이 얼마나 열심히 살았고 이렇게 죽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는지, 자신을 너무나 사랑했던 엄마를 졸지에 잃은 어린 조카가 어떻게 지내는지, 결혼했다가 이혼한 사실 등 이른바 ‘피해자 서사’를 거듭해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의 태도서 비롯된 불신으로 유가족이 직접 나서고 있는 것이다.

“사실 언론을 통해 가족 이야기를 하는 게 무서워요. 혹시라도 그놈이 나와서 내 가족에게 무슨 짓을 할까 두렵기도 하고요. 어떨 때는 그놈이 바깥에 서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방송에 출연한 은총이 직장 동료들도 지금 잠을 잘 못 잔다고 연락이 와요. 왜 피해자와 그 주변 사람이 이렇게 벌벌 떨어야 하죠. 그놈은 조사 받으면서 편하게 있을 텐데….” 

이씨는 사건 발생 이후 한 달여 동안 공권력에 크게 실망했다고 토로했다. 스마트워치의 실효성은 차치하고라도 경찰의 반납 요구, 그리고 은총씨의 반납 직후 사건이 일어난 게 두고두고 한이 되는 듯했다. 또 은총씨가 스마트워치를 차고 있던 기간 동안 A씨가 범죄를 계획했다는 의혹에 관해서도 경찰은 관심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씨에 따르면 사건 장소 근처서 ‘곱게 개어둔 정장’이 발견됐다. A씨는 6월 접근금지명령을 받은 후 회사에 나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매일 출근하는 것처럼 정장을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주 토요일부터는 집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일요일에는 은총씨가 평소 좋아했던 일본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영화를 보고 지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은총씨가 스마트워치를 반납한 날짜는 7월13일 목요일, 살해당한 날짜는 7월17일 월요일이다. 이씨는 스마트워치 반납과 사건 당일 사이 금·토·일 사흘, 그리고 그보다 앞서 접근금지명령을 받고 범행을 저지르기까지 한 달 동안 A씨가 은총씨의 헤어짐 요구에 앙심을 품고 보복하려는 준비 기간을 가졌던 게 아니냐는 의문을 표했다.  

피해자 가족
직접 나서야

“그렇게 (은총이를)쫓아다니던 놈이 그 한 달 동안 대체 뭘 했냐는 거죠. 그 부분을 알고 싶어서 경찰에 물어봤는데 (A씨가)접근금지명령 기간에 은총이한테 뭔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 그놈이 뭘 했는지 조사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보복살인이라고 생각하는데 경찰에서는 단순 살인으로 보는 것 같아요.”

A씨를 막다가 손을 크게 다친 은총씨 어머니의 거취 문제를 두고도 분통을 터트렸다. 은총씨의 어머니는 사건의 흔적이 가득한 그 집에서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피가 낭자했던 복도와 엘리베이터 주변은 깨끗해졌지만 집 안 곳곳에는 여전히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은총씨 동생은 지방에 살고 있어 어머니의 손을 치료하기에 여의치 않았다. 

범죄 피해자를 위한 주거지원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도 이씨였다. 이씨는 여러 기관에 전화를 돌리고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글을 올리는 등 수소문 끝에야 제도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법무부는 살인 등의 범죄로 기존 집에서 살기 어려워진 피해자를 위해 국민임대주택, 매입임대주택, 전세임대주택 등을 저렴하게 임대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사건을 겪으면서 기관이란 기관에는 다 전화해봤어요. 여성가족부를 시작으로 경찰서 알려준 곳까지 다 전화해봤는데 누구 하나 속 시원하게 말을 안 해주는 거예요. ‘그 부분은 담당이 아니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이쪽으로 전화해보세요’ 이런 식으로 빙빙 돌려요. 인터넷 커뮤니티서 알게 된 분도 도움을 주셨는데 저하고 똑같이 여기저기에 전화하셨더라고요. 결국 기관이 아니라 개인이 알아낸 거죠.”

이씨는 사촌언니라는 관계의 벽에 여러 차례 부딪치면서도 은총씨의 동생을 독려해 사건 처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과정서 ‘왜 사촌언니가 나서?’ ‘친동생도 있는데 그쯤 했으면 되지 않아?’ 등의 말을 숱하게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기엔 은총이의 삶이 너무 안쓰러워서”라고 울먹였다. 

교제 살인 늘면서 관심 줄어들어
“피해자 연대해 대안 요구하고파”

이씨는 A씨가 엄벌을 받을 때까지 지치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하듯 되뇌었다. 남아있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A씨가 ‘무기징역’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상공개도 이뤄지지 않았고 보복살인서 단순살인으로, 살인미수에서 특수상해, 상해 등으로 혐의가 줄어들어 낮은 형량을 받을까 두려운 모습이 역력했다.

“은총이가 출근할 때 노트북이 든 가방을 들고 있었거든요. 그놈이 덤벼들 때 그걸 휘둘렀다면 죽지 않았을지, 소리를 크게 질렀다면 살았을지, 조금 더 늦게 출근했다면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돼요. 저한테 미리 말했다면 다른 조치를 취해줄 수 있었을 텐데. 왜 말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친동생처럼 생각했는데 제가 미덥지 못했을까요.”

은총씨는 A씨의 스토킹이 심해질 무렵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척을 찾아가 인사를 건네고 돈을 들여 짐을 정리했다. 직장 동료에게 자신이 잘못되면 딸은 외할머니(은총씨 어머니)가 키웠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A씨의 위협이 심각했고 이 때문에 자신이 살해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주변 정리를 한 것처럼 보이는 대목이다.

사건 당일 오전 6시도 안 돼 출근길에 나선 것도 일처리를 빨리 마친 뒤 딸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주변 사람들은 은총씨의 딸 사랑이 지극했다고 입을 모았다. 은총씨의 딸은 현재 아빠(은총씨 전 남편)와 함께 있다. 엄마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 아이는 엄마를 찾지도 않고 사건 당시 상황에 관해서도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상태다. 

이씨는 그런 조카의 모습이 너무 안쓰럽고 마음 아프다고 했다. 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도 사촌언니인 이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대신 이씨는 은총씨와 똑같은 사건 피해자를 찾아 나섰다. 이번 사건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그리고 시스템의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는 의지다. 

“이런 일은 아마 또 일어날 거예요.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알아서 노력해야 되는 게 지금 현실이에요. 물론 더 이상 노출되기 싫고 사건을 떠올리기 싫은 분도 계시겠지만 은총이가 겪은 사건과 비슷한 피해자를 모아 현실적인 대책을 강구할 수 있게 국가에 요구하고 싶어요. 칼 들고 쫓아오는 사람이 앞에 있는데 스마트워치를 누른다고 그 살인이 막아지는 건 아니잖아요. 지금 당장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체포했다가 4시간 만에 풀어주는 것도 말이 안 되잖아요.”

또 다시
일어난다

이씨가 무엇보다 가슴 아파하는 부분은 은총씨 사건 이후 가족이 해체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세 모녀는 이제 영원히 함께 살 수 없다. 살인사건 피해자의 가족이라는 굴레는 자의로든 타의로든 쉽게 벗겨지지 않는다. 그 무게에 짓눌려 대다수의 피해자 가족이 갈가리 찢어지고 쪼개진다. ‘그놈’이 살해한 건 은총씨만이 아니었다. ‘그놈’은 은총씨의 가족까지 파괴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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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