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천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유가족의 눈물

엄마, 딸, 동생이었던 서른여덟 여성의 죽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누군가의 죽음이 입법 시스템의 동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사건 과정서 드러난 법의 허점과 틈새를 피해자의 죽음이 메워주는 식이다. 문제는 피해자의 남겨진 가족이다. 가족은 피해자를 제물로 삼아 변화할 사회를 기다리며 여생을 살아가야 한다. 그들의 기다림에는 기약이 없다. 

한 여성이 자신의 집 앞에서 살해됐다. 누군가의 딸, 엄마, 언니 그리고 동생이었던 여성은 마지막 말도 남기지 못한 채 한 남성의 칼부림에 사망했다. 피해자의 날벼락 같은 죽음은 가족을 덮쳤다. 사건이 일어나고 한 달 남짓 지났을 뿐이지만 이들은 슬퍼할 새도 없었다. 피해자의 죽음 너머 가족이 짊어져야 할 현실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서른여덟
피지 못하고

지난달 17일 오전 5시50분경 인천 남동구 논현동의 한 아파트서 이은총씨가 전 남자친구 A씨의 칼에 찔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살려 달라’는 은총씨의 목소리를 들은 어머니가 A씨를 막기 위해 달려들었다가 손에 큰 부상을 입었다. 가슴과 배 등에 치명상을 입은 은총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범행은 은총씨가 어머니, 딸과 함께 살던 아파트 엘리베이터 부근서 일어났다. 유가족은 A씨가 엘리베이터 옆 비상계단 쪽에 숨어 있다가 출근하는 은총씨를 공격했다고 설명했다. A씨가 휘두른 칼을 맨손으로 막고 있던 은총씨의 어머니는 여섯살 손녀가 집밖으로 나오려 하자 다시 집으로 돌아가 경찰에 신고했다. 손녀를 지키기 위해 집 안으로 들어간 사이 문 너머에서는 딸이 죽어가고 있었다.

A씨는 은총씨를 공격한 20~30㎝ 길이의 회칼로 자신의 복부를 찌르는 등 자해를 한 뒤 피범벅이 된 피해자 옆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고 한다. 유가족에 따르면 출동한 구급대원도 ‘처음 보는 광경’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같은 병원으로 이송됐다.


은총씨는 영안실로, A씨는 중환자실로 각각 옮겨졌지만 피해자의 가족과 가해자의 가족은 한 공간에 있던 셈이다.

지난 11일 인천지검 형사2부(위수현 부장검사)는 살인과 스토킹범죄의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 등 혐의로 A씨를 구속 기소했다. 유가족은 A씨가 은총씨를 살해하기 전, 분명한 ‘전조증상’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2월 은총씨를 폭행한 혐의로, 6월에는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던 것. 

심지어 법원은 “은총씨로부터 100m 이내에는 접근하지 말고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도 금지하라”는 내용의 명령도 내렸다. 경찰은 은총씨에게 ‘스마트워치’를 제공했다. 대상자가 위험에 처했을 때 ‘비상’ 버튼을 누르면 경찰에 신고가 접수되는 방식이다. 은총씨가 스마트워치를 착용하고 있던 한 달간 A씨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법원의 접근금지명령과 경찰이 건넨 스마트워치는 A씨로부터 은총씨를 지킬 최후의 ‘보루’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경찰은 한 달간 A씨가 은총씨 주변에 나타나지 않자 스마트워치 반납을 요구했다. 은총씨가 스마트워치를 반납하고 사흘 뒤 A씨는 회칼을 휘둘렀다.

출근을 위해 이른 시각 집을 나섰던 서른여덟의 은총씨는 끝내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했다. 

지난 18일 오전 전남 지역의 한 카페서 만난 은총씨의 사촌언니 이모씨는 인터뷰 도중 여러 차례 울먹였다. A씨를 향한 분노, 갑작스럽게 가족을 잃은 황망함, 은총씨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 등 많은 감정이 범벅된 눈물이었다. 올해 초 전남 지역으로 이사 온 이씨는 현재 서울을 오가며 은총씨 사건에 매달리고 있다. 

스마트워치 반납 사흘 만에
집 앞에서 칼에 찔려 사망


“저는 은총이를 사촌동생이 아니라 친자매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어요. 작은아빠(은총씨 아버지)도 장애가 있고 저희 아빠도 눈이 안 보이세요. 가정환경이 비슷해서인지 사촌이지만 친하게 지냈어요. 한 직장서 일도 같이했었고 은총이가 힘들 때 저를 찾아온 적도 많았고요. 그놈(A씨)하고 사귀고 있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런 일을 당할 줄은 몰랐어요.”

은총씨는 2021년 운동 동호회서 A씨를 만났다. 이후 또 다른 동호회에 가입할 때도 A씨는 따라왔다. 심지어 A씨가 은총씨의 직장에 입사하면서 두 사람은 같은 장소서 일했다. 접근금지명령을 받으면서 휴직 상태가 된 이후에도 A씨는 은총씨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할 수 있는 지척거리에 맴돌았다. 

두 사람의 교제 기간은 6개월 남짓이었다. A씨는 은총씨의 이별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보다 더 긴 시간 위협을 가했다. 극도의 공포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은총씨는 그 시기 10㎏ 가까이 살이 빠졌다. 특히 자신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어린 딸이 A씨에게 해코지를 당할까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은총씨는 일을 쉴 수 없었다. 남편과 헤어진 이후 세 사람의 생계를 책임지며 가장 노릇을 해왔기 때문. 또 10년 넘게 회사 영업직으로 근무하면서 관리하고 있는 고객도 많아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쉽사리 바꿀 수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게 은총씨가 할 수 있던 최선이었다.  

“저도 해봐서 알지만 영업 일은 밤낮이 없어요. 고객 위주로 돌아가는 일이기 때문에 모든 스케줄을 그쪽(고객)에 맞춰야 하거든요. 은총이는 정말 정신없이 열심히 일했어요. 팀원들하고 손발도 잘 맞았고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보상도 눈앞에 두고 있던 시기로 알아요. 그런데 그렇게 가버린 거죠.”

사촌언니 이씨는 은총씨의 죽음을 접한 이후 끊임없이 발로 뛰었다. 사건 당일 오후 4시경 은총씨 동생을 통해 소식을 들었을 땐 무너질 듯한 슬픔을 느꼈지만 이내 ‘나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라고 마음먹었다. 마냥 슬퍼만 하기엔 산적해 있는 현실적인 사안이 너무 많았다. 

접근금지명령
임시방편일 뿐

당장 사건이 ‘묻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했다. 헤어짐을 요구하는 연인을 스토킹 끝에 살해하는 ‘교제 살인’ 사건이 늘어나면서 아이러니하게 관심이 줄어들었다. 직계가족도 아닌 사촌언니로서 이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은총씨의 죽음이 ‘개인적인 일’로 치부되지 않도록 언론에 호소하는 것뿐이었다. 

이 과정서 이씨는 끊임없이 은총씨와 그 가족을 언급해야 했다. 사촌동생이 얼마나 열심히 살았고 이렇게 죽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는지, 자신을 너무나 사랑했던 엄마를 졸지에 잃은 어린 조카가 어떻게 지내는지, 결혼했다가 이혼한 사실 등 이른바 ‘피해자 서사’를 거듭해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의 태도서 비롯된 불신으로 유가족이 직접 나서고 있는 것이다.

“사실 언론을 통해 가족 이야기를 하는 게 무서워요. 혹시라도 그놈이 나와서 내 가족에게 무슨 짓을 할까 두렵기도 하고요. 어떨 때는 그놈이 바깥에 서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방송에 출연한 은총이 직장 동료들도 지금 잠을 잘 못 잔다고 연락이 와요. 왜 피해자와 그 주변 사람이 이렇게 벌벌 떨어야 하죠. 그놈은 조사 받으면서 편하게 있을 텐데….” 

이씨는 사건 발생 이후 한 달여 동안 공권력에 크게 실망했다고 토로했다. 스마트워치의 실효성은 차치하고라도 경찰의 반납 요구, 그리고 은총씨의 반납 직후 사건이 일어난 게 두고두고 한이 되는 듯했다. 또 은총씨가 스마트워치를 차고 있던 기간 동안 A씨가 범죄를 계획했다는 의혹에 관해서도 경찰은 관심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씨에 따르면 사건 장소 근처서 ‘곱게 개어둔 정장’이 발견됐다. A씨는 6월 접근금지명령을 받은 후 회사에 나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매일 출근하는 것처럼 정장을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주 토요일부터는 집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일요일에는 은총씨가 평소 좋아했던 일본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영화를 보고 지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은총씨가 스마트워치를 반납한 날짜는 7월13일 목요일, 살해당한 날짜는 7월17일 월요일이다. 이씨는 스마트워치 반납과 사건 당일 사이 금·토·일 사흘, 그리고 그보다 앞서 접근금지명령을 받고 범행을 저지르기까지 한 달 동안 A씨가 은총씨의 헤어짐 요구에 앙심을 품고 보복하려는 준비 기간을 가졌던 게 아니냐는 의문을 표했다.  

피해자 가족
직접 나서야

“그렇게 (은총이를)쫓아다니던 놈이 그 한 달 동안 대체 뭘 했냐는 거죠. 그 부분을 알고 싶어서 경찰에 물어봤는데 (A씨가)접근금지명령 기간에 은총이한테 뭔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 그놈이 뭘 했는지 조사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보복살인이라고 생각하는데 경찰에서는 단순 살인으로 보는 것 같아요.”

A씨를 막다가 손을 크게 다친 은총씨 어머니의 거취 문제를 두고도 분통을 터트렸다. 은총씨의 어머니는 사건의 흔적이 가득한 그 집에서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피가 낭자했던 복도와 엘리베이터 주변은 깨끗해졌지만 집 안 곳곳에는 여전히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은총씨 동생은 지방에 살고 있어 어머니의 손을 치료하기에 여의치 않았다. 

범죄 피해자를 위한 주거지원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도 이씨였다. 이씨는 여러 기관에 전화를 돌리고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글을 올리는 등 수소문 끝에야 제도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법무부는 살인 등의 범죄로 기존 집에서 살기 어려워진 피해자를 위해 국민임대주택, 매입임대주택, 전세임대주택 등을 저렴하게 임대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사건을 겪으면서 기관이란 기관에는 다 전화해봤어요. 여성가족부를 시작으로 경찰서 알려준 곳까지 다 전화해봤는데 누구 하나 속 시원하게 말을 안 해주는 거예요. ‘그 부분은 담당이 아니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이쪽으로 전화해보세요’ 이런 식으로 빙빙 돌려요. 인터넷 커뮤니티서 알게 된 분도 도움을 주셨는데 저하고 똑같이 여기저기에 전화하셨더라고요. 결국 기관이 아니라 개인이 알아낸 거죠.”

이씨는 사촌언니라는 관계의 벽에 여러 차례 부딪치면서도 은총씨의 동생을 독려해 사건 처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과정서 ‘왜 사촌언니가 나서?’ ‘친동생도 있는데 그쯤 했으면 되지 않아?’ 등의 말을 숱하게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기엔 은총이의 삶이 너무 안쓰러워서”라고 울먹였다. 

교제 살인 늘면서 관심 줄어들어
“피해자 연대해 대안 요구하고파”

이씨는 A씨가 엄벌을 받을 때까지 지치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하듯 되뇌었다. 남아있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A씨가 ‘무기징역’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상공개도 이뤄지지 않았고 보복살인서 단순살인으로, 살인미수에서 특수상해, 상해 등으로 혐의가 줄어들어 낮은 형량을 받을까 두려운 모습이 역력했다.

“은총이가 출근할 때 노트북이 든 가방을 들고 있었거든요. 그놈이 덤벼들 때 그걸 휘둘렀다면 죽지 않았을지, 소리를 크게 질렀다면 살았을지, 조금 더 늦게 출근했다면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돼요. 저한테 미리 말했다면 다른 조치를 취해줄 수 있었을 텐데. 왜 말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친동생처럼 생각했는데 제가 미덥지 못했을까요.”

은총씨는 A씨의 스토킹이 심해질 무렵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척을 찾아가 인사를 건네고 돈을 들여 짐을 정리했다. 직장 동료에게 자신이 잘못되면 딸은 외할머니(은총씨 어머니)가 키웠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A씨의 위협이 심각했고 이 때문에 자신이 살해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주변 정리를 한 것처럼 보이는 대목이다.

사건 당일 오전 6시도 안 돼 출근길에 나선 것도 일처리를 빨리 마친 뒤 딸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주변 사람들은 은총씨의 딸 사랑이 지극했다고 입을 모았다. 은총씨의 딸은 현재 아빠(은총씨 전 남편)와 함께 있다. 엄마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 아이는 엄마를 찾지도 않고 사건 당시 상황에 관해서도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상태다. 

이씨는 그런 조카의 모습이 너무 안쓰럽고 마음 아프다고 했다. 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도 사촌언니인 이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대신 이씨는 은총씨와 똑같은 사건 피해자를 찾아 나섰다. 이번 사건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그리고 시스템의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는 의지다. 

“이런 일은 아마 또 일어날 거예요.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알아서 노력해야 되는 게 지금 현실이에요. 물론 더 이상 노출되기 싫고 사건을 떠올리기 싫은 분도 계시겠지만 은총이가 겪은 사건과 비슷한 피해자를 모아 현실적인 대책을 강구할 수 있게 국가에 요구하고 싶어요. 칼 들고 쫓아오는 사람이 앞에 있는데 스마트워치를 누른다고 그 살인이 막아지는 건 아니잖아요. 지금 당장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체포했다가 4시간 만에 풀어주는 것도 말이 안 되잖아요.”

또 다시
일어난다

이씨가 무엇보다 가슴 아파하는 부분은 은총씨 사건 이후 가족이 해체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세 모녀는 이제 영원히 함께 살 수 없다. 살인사건 피해자의 가족이라는 굴레는 자의로든 타의로든 쉽게 벗겨지지 않는다. 그 무게에 짓눌려 대다수의 피해자 가족이 갈가리 찢어지고 쪼개진다. ‘그놈’이 살해한 건 은총씨만이 아니었다. ‘그놈’은 은총씨의 가족까지 파괴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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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 인수전’ 카카오 후유증

‘SM 인수전’ 카카오 후유증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입에 삼키기엔 너무 컸던 걸까?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카카오가 사법 리스크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하이브와의 전쟁서 이겼지만 ‘상처뿐인 승리’가 된 모양새다. 엔터계 공룡을 삼킨 공룡 기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불과 몇 년 만에 국민 기업서 밉상 기업으로 전락했다. ‘카카오톡’이 전 국민의 메신저가 될 때까지만 해도 카카오의 미래는 밝았다. 카카오톡의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배경으로 사업을 확장했던 초기에도 부정적인 여론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골목상권 침해, 쪼개기 상장 등의 문제가 터지면서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국민 기업 밉상 기업 카카오가 창립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해 2~3월 하이브와의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인수전 과정서 일어난 일이 사법 리스크로 되돌아오는 모양새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어울리는 결말이다. 승자의 저주는 경쟁에서는 이겼지만 그 과정서 과도한 비용을 사용해 후유증을 겪는 상황을 뜻한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는 지난 17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CA협의체 경영쇄신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 SM 인수 과정서 경쟁사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SM의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매수가인 12만원보다 높게 올릴 목적으로 시세를 조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김 위원장이 카카오가 지난해 2월 2400억원을 동원해 553차례에 걸쳐 SM 주식을 고가에 매수하는 데 관여했다고 보고 있다. 카카오는 사모펀드 운용사인 ‘원아시아파트너스’와 공모해 주가가 떨어지지 않도록 지난해 2월16~17일, 27일 원아시아파트너스가 1100억원을 먼저 투입하고 같은 달 28일 카카오가 뒤이어 1300억원을 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검찰은 원아시아파트너스 대표 지모씨를 시세조종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변호인단은 김 위원장이 SM 지분 매수 과정서 어떤 불법적 행위도 지시, 용인한 바 없으며 지분 매수는 정상적 장내 매수였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카카오 내부는 당혹스러운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영장을 청구한 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첫 구속영장을 발부했던 영장전담판사가 배정된 점 등에 긴장하는 분위기다. 하이브와 크게 벌인 ‘쩐의 전쟁’ 경영권 차지했지만 사법리스크↑ 김 위원장은 지난 9일, 20시간의 밤샘 조사에서 “SM 주식을 장내 매수하겠다는 안건을 보고받고 승인한 것은 맞지만 구체적인 매수 방식과 과정에 대해서는 보고받지 않아 몰랐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날 조사 이후 8일 만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위원장의 혐의를 입증할 인적·물적 증거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사모펀드를 통해 투자해서 우호 지분을 확보하라고 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카카오 임직원 간 메시지를 비롯해 김 위원장의 혐의를 뒷받침하는 관계자의 통화 녹취, 진술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와 하이브의 SM 인수전은 혈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치열했다. SM은 K팝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연예기획사로 H.O.T, 보아, 동방신기, 소녀시대, 샤이니, EXO, NCT, 에스파, 라이즈 등의 유명 보이·걸그룹을 배출한 ‘아이돌 명가’로 알려져 있다. 대형 연예기획사를 둘러싼 카카오와 하이브의 인수전은 K팝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SM 인수전의 시작은 이수만 SM 전 총괄 프로듀서의 지분 매각설서 시작됐다. 이 전 프로듀서는 SM의 설립자로 SM 소속 가수를 좋아하는 팬덤 사이에서는 ‘수만 아버지’로 불리는 등 일종의 개척자로 여겨지고 있다. 이 전 프로듀서가 지분을 매각한다는 소문이 돌았을 당시 카카오, 네이버 등이 매수자로 언급되곤 했다.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하 얼라인파트너스)이 SM 지배구조를 문제 삼으면서 인수전의 막이 올랐다. 특히 얼라인파트너스는 이 전 프로듀서 소유의 라이크기획이 SM과의 내부거래로 주주가치를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SM이 얼라인파트너스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내부 갈등이 촉발됐다. 급히 먹다 탈 났나? 이 과정서 이성수·탁영준 공동대표 등 현 SM 경영진이 얼라인파트너스, 카카오와 손을 잡았다. 이 전 프로듀서 측과 완벽한 대립각을 세운 현 SM 경영진은 ‘SM 3.0’을 발표하고 멀티 제작센터·레이블 체제로 전환을 발표했다. 이 전 대표 지우기에 나선 것이다. 여기에 SM 경영진이 지난해 2월7일 카카오가 신주와 전환사채(CB) 인수를 통해 지분 9.05%를 확보할 것이라고 공시했다. 이 전 프로듀서가 찾은 동앗줄은 하이브였다. 이 전 프로듀서는 SM의 공시 다음 날 법원에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기했다. 그리고 2월9일 자신이 보유한 SM 지분 18% 중 14.8%를 하이브에 매각하는 계약을 맺었다. 하이브는 SM 주식을 주당 12만원에 공개매수해 지분을 추가로 25%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SM 인수전이 카카오와 하이브의 대결로 압축됐다. SM 인수전은 한치 앞도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엎치락 뒤치락을 반복했다. 법원이 이 전 프로듀서가 제기한 가처분신청을 인용하면서 하이브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가 공개매수가 실패한 사실이 드러나자 카카오가 반격하는 식이다. 카카오와 카카오엔터는 지난해 3월7일부터 SM의 지분 35%를 주당 15만원에 공개매수하기 시작했다. 약 833만주에 달하는 주식으로 총 1조2500억원이 투입되는 어마어마한 물량이다. SM 인수전은 하이브가 카카오가 시작한 ‘쩐의 전쟁’서 한발 물러나면서 변곡점을 맞게 됐다. 쇄신 노력 ‘물거품’ 이후 카카오가 경영권을 갖고 하이브는 플랫폼 협력을 하는 방향으로 SM 인수전이 마무리됐다. 지난해 3월12일 하이브는 SM 인수 절차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하이브는 “카카오·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의 경쟁 구도로 인해 시장이 과열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고 판단했다”며 “이는 하이브의 주주가치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의사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카카오는 “SM의 가장 강력한 자산이자 원동력인 임직원, 아티스트, 팬덤을 존중하고자 자율적‧독립적 운영을 보장하고 현 경영진이 제시한 SM 3.0을 비롯한 미래 비전과 전략 방향을 중심으로 글로벌 성장에 속도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엔터계 ‘공룡’을 삼킨 또 다른 공룡 기업의 탄생이었다. 하지만 카카오가 SM을 인수하기 위해 벌인 ‘쩐의 전쟁’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하이브는 당시 SM 인수전서 발을 뺀 뒤 “비정상적 매입 행위가 발생했다”며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에 조사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SM 주가가 공개매수가인 12만원을 넘어 한때 13만원까지 급등한 점을 문제 삼았다.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비정상적으로 주식을 매입해 시세를 조종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금감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이하 특사경)은 지난해 10월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 대표와 카카오법인을 검찰에 넘겼다. 지난 11월에는 김범수 당시 전 카카오 이사회 의장과 홍은택 대표, 김성수·이진수 카카카오엔터테인먼트 각자 대표이사 등을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는 등 카카오 수사에 열을 올렸다. 시세조종 의혹 창업자에 칼끝 댔다 카카오뱅크 대주주 자격 잃을 수도 카카오는 말 그대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금감원이 카카오 경영진과 함께 카카오법인까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면서 카카오뱅크를 잃을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카카오 법인이 벌금 이상의 형을 받으면 카카오뱅크의 지분 27.17%를 보유한 카카오가 대주주 자격을 잃을 수도 있다. 금융당국은 6개월마다 대주주 적격성을 심사하는데 이때 대주주는 최근 5년간 금융간 금융관련법, 공정거래법, 조세범처벌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의 형사 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 SM 인수전 과정서 제기된 시세조종 의혹으로 카카오는 창업자 구속 가능성과 알짜배기 기업을 놓칠 가능성을 함께 안고 있는 셈이다. 카카오의 쇄신 노력에도 찬물이 끼얹어졌다. 카카오는 지난 3월 새 대표이사에 정신아 카카오벤처스 전 대표를 선임했고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카카오게임즈 등 계열사 대표도 바꿨다. 계열사 준법‧윤리경영을 지원하는 독립기구인 카카오 준법과신뢰위원회(준신위)도 쇄신에 속도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김 의장을 비롯한 카카오의 사법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쇄신작업은 물론 기업 전체 동력에 타격을 입게 됐다. 일각에서는 카카오가 그룹 덩치를 줄이기 위해 알짜배기만 남겨두고 일부 자회사를 매각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쪼개기 상장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만큼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서 어렵게 인수한 SM 역시 매각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카카오뱅크 등은 핵심 자산으로 분류된다. 몸집 줄여 해결될까? 문제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카카오는 SM 시세조종 의혹 외에도 문어발식 기업 인수, 계열사 확장 과정서의 잡음으로 수사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다. 서울남부지검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2020년 드라마 제작사 ‘바람픽쳐스’를 인수하는 과정서 김성수 당시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와 이준호 당시 투자전략부문장이 바람픽쳐스에 시세차익을 몰아줄 목적으로 비싸게 매입·증자했다는 의혹을 조사 중이다. 카카오의 운명이 연이은 사법 리스크에 잠식되는 모양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