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사각지대 놓인 정신질환자의 민낯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8.21 13:25:09
  • 호수 14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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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살고 치료 없이 바로 출소하니…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범죄를 저지른 후 스스로를 ‘조현병 환자’라고 말하는 범죄자들이 많다. 이런 일이 지속되다 보니 ‘조현병 환자는 잠재적 범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실상 조현병 환자들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무엇보다 이들이 제대로 치료될 수 있도록 복지를 탄탄하게 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 

묻지마 범죄 또는 무동기 범죄는 대상을 특정하지 않고, 구체적인 동기 없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 저지르는 범죄를 말한다. 칼부림 사건 등에 따른 묻지마 살인이나 상해 범죄 등이 이에 해당한다. 최근 한국은 묻지마 범죄가 급증하고 있어 ‘안전한 나라’라는 타이틀이 흔들리고 있다. 

늘어나는
묻지마 범죄

묻지마 범죄 피의자들은 범행 후 자신이 조현병에 걸려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한다. 그에 맞춰 언론들은 피의자들과 관련한 보도를 쏟아낸다. 특히 피의자의 정신질환을 언급하는 기사들이 많다. 지난 11일, 대전 소재의 한고등학교에 침입해 교사를 흉기로 찌른 혐의(살인미수·건조물 침입)로 구속된 20대 A(28)씨도 마찬가지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4일 오전 9시24분 대전 대덕구의 한 고등학교에 침입해 교사 B(49)씨의 얼굴과 가슴, 팔 부위 등을 흉기로 7차례 찔러 살해하려 한 혐의를 받는다. 

학교 정문을 통과해 교내로 들어온 A씨는 2층 교무실로 올라가 B씨를 찾았고, B씨가 수업 중이란 말을 듣고 복도서 기다리고 있다가 B씨를 발견하고 교무실 안으로 들어가 흉기를 휘둘렀다. 범행 직후 달아난 A씨는 3시간여 만에 거주지 인근서 긴급 체포됐다.


그는 피해 교사 말고도 다른 교사와 동급생들을 가해자로 지목해 경찰이 조사를 벌였는데, 이들은 A씨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경찰은 A씨가 2021년 정신질환 진단을 받았고, 평소 망상 증세를 보였다는 어머니 진술을 확보해 망상에 따른 범행에 무게를 두고 있다. 

A씨는 조현병과 우울증 진단을 받고 지난해까지 치료받다가 의사로부터 입원 치료를 권유받았지만 입원도, 치료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내가 원해서 치료받지 않았다”는 의미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14명의 사상자를 낸 ‘분당 서현역 흉기 난동’의 피의자 최원종(22)은 “나를 감시하는 스토커 조직이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범행을 저질렀다는 수사 결과가 나왔다. 자신의 범행 자체는 후회하지만 피해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끼지 않았다.

치료감호 청구 기각 증가
치료소 정신과전문의 부족

최원종은 2020년 조현성 인격장애(분열성 성격장애)를 진단받았지만 최근 3년간 아무런 치료를 받지 않다가 망상에 빠져 범행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경찰은 최씨의 진술 및 휴대전화 등 디지털증거 분석(포렌식) 결과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을 모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최씨는 “나를 해하려는 스토킹 집단에 속한 사람을 살해하고 이를 통해 스토킹 집단을 세상에 알리려고 범행했다”는 검거 당시의 진술을 유지했다. 또 커뮤니티에 흉기를 든 사진 등 게시물을 올린 적 있고, 이것 역시 스토킹 집단이 커뮤니티를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향해 경고성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였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또 서현역을 범행 장소로 삼은 이유에 관해서는 자기 집 주변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어서 스토킹 집단 소속인 이들이 다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서현역서 디저트 먹는다”는 글도 스토킹 집단이 찾아올 것이라는 이유에서 작성했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조현병에 대한 두려움도 커지고 있다.

한 온라인 지역 커뮤니티에는 “이웃에 조현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일방적으로 반말하고 욕을 하는데 너무 스트레스받는다. 고통스러워서 경찰, 주민센터, 변호사 상담까지 받아봤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다. 가족들도 이미 포기했다고 한다”며 “조현병 환자가 직접적인 상해를 가하지 않으면 처벌이 어렵다고 한다. 정말 누구 한 명 죽어야 해결되는 거냐”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해당 글에는 “강제입원 말고는 답이 없는데 그것도 위협을 받아야 가능하다” “이웃 환우는 안타깝지만 경찰이 강제라도 병원 입원을 시켰으면 좋겠다. 이러다 정상적인 사람까지 정신병 걸린다” “흉기를 들고 난동 부릴 수 있으니 조심하라” “이사 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등의 답변이 달렸다.

통제 불능
어쩌나…

조현병 환자는 위험하니 알아서 피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결국 주변의 조현병 환자들 때문에 일반인이 피해를 보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조현병 환자는 왜 통제 불능 상태가 된 것일까?

국립정신건강센터가 발간한 ‘국가정신건강 현황보고서 2021’을 보면 2021년 기준 중증 정신질환자는 65만1813명이며, 이 중 조현병 진단 환자는 18만2901명, 분열형 및 망상 장애 환자까지 포함하면 23만554명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조현병 환자나 정신질환 범죄자에 대한 형벌에만 집중하고 있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정신질환 범죄자의 치료 및 사회 복귀를 위한 치료감호 청구와 인용률이 동시에 크게 떨어진다.

법조계는 날로 짙어지는 엄벌주의 위주의 형사정책 경향과 함께 치료감호소의 만성적인 인력·예산 부족 등을 원인으로 꼽으며, 치료감호 제도 정상화를 위한 인적·물적 인프라 확대 및 인식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지적한 바 있다.

치료감호법 제2조에는 치료감호 대상자로 ▲형법 제10조1항에 따라 벌하지 않거나 조 2항에 따라 형을 감경할 수 있는 심신장애인으로 금고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은 자 ▲마약·향정신성의약품, 그 밖에 남용되거나 해독을 끼칠 우려가 있는 물질이나 알코올을 식음·섭취·흡입·흡연 또는 주입받은 습벽이 있거나 그에 중독된 자로서 금고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은 자 ▲소아성기호증, 성적가학증 등 특정 성적 성벽이 있는 정신성적 장애인으로 금고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성폭력 범죄를 지은 자 등이 있다.

손 놓은
재범 위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피고인은 재범 위험성을 낮추기 위해선 치료를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데, 법원이 치료감호 청구를 기각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검찰의 치료감호 청구가 줄어드는 건 2009년부터다. 2022 검찰연감에 따르면, 검찰의 치료감호 청구 수는 2009년 350건이었지만, 2013년 254건, 2019년 184건, 2021년 78건 등을 기록해 크게 줄었다.

법원이 1심서 치료감호 청구를 인용하는 비율도 줄고 있다. 사법연감 등에 따르면, 1심서 치료감호 청구 인용률은 2014년 82.9%(223건)에 달했지만 2020년에는 68.3%(114건)로 절반가량 낮아졌다.


전문가들은 치료감호 청구·인용이 줄어든 원인으로 정신질환 범죄에 대한 엄벌주의 강화 기조와 함께 치료감호소의 만성적인 인력·예산 부족 등을 꼽았다. 하지만 정신질환 범죄자는 2018년 이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고, 이들의 재범률은 65.4%를 기록했다.

반면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의 정신과 전문의 충원율은 절반 수준에 불과해, 전문의의 진료 부담이 늘고 있다. 국립법무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충원율은 53.3%밖에 안 돼 정원 15명 중 8명만 일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중증 정신질환자 치료·관리체계의 허점이 드러나 조현병이나 망상장애 진단을 받은 환자 8명 중 7명이 치료를 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에도 입원치료할 수 있도록 국가의 관리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정신의료기관서 치료받은 조현병과 망상장애 환자 중 지역사회서 제공하는 정신건강증진사업을 이용하는 환자의 비율은 0.13으로, 8명 중 약 1명만 지역사회가 제공하는 정신건강관리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나 죽으면 조현병 형 삶은…”
“비자의 입원 더 용이해져야”

조울증으로 알려진 양극성 장애 환자 등록률은 0.05로 20명 중 1명밖에 안 됐고, 주요 우울 장애 환자의 등록률은 그보다 더 낮은 0.01로 100명 중 1명꼴이다. 특히, 조현병과 망상장애 환자가 지역사회서 관리받는 비율은 ▲2018년 0.14 ▲2019년 0.14 ▲2020년 0.13 ▲2021년 0.13으로 소폭 감소했다.


정부는 지역사회 내 정신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전국 260개소에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운영하는 등 정신건강 관리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하지만 홍보 부족과 환자에게 강제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없어서 대상자의 동의를 통해서만 제공된다. 

다만, 자·타해의 위험이 발생한 경우에는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센터가 입원 개입 등 긴급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정신질환 환자와 가족 역시 일상이 힘들다. 조현병 환자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더라도 보호자가 옆에 있어야 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

B씨는 결혼했고, 그의 형은 오랜 기간 조현병을 앓고 있다. 형은 치료를 꾸준히 받았기 때문에 일상생활을 혼자 할 수 있지만, B씨가 형의 실질적인 보호자다. B씨는 규칙적인 시간에 형에게 전화해야 하고, 매주 두 번은 방문해 보살펴야 한다. 한 달에 한 번은 병원에 동행해 형의 주치의와 상담한다.

B씨가 없으면 B씨의 형은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집 앞에 좋은 공원과 산책길이 있지만 한낮에도 커튼을 두껍게 쳐놓고 지낸다. 믿고 의지하는 것은 B씨 뿐이고, 그가 방문하면 형은 어린아이가 떼를 쓰듯 감정을 드러낸다. 

불안한 일이 있거나 신경 쓰이는 일이 있으면 형은 B씨에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화한다. B씨가 가족과 함께 있거나 일을 하고 있다는 것도 고려되지 않는다. 새벽에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택시를 타고 B씨가 있는 곳으로 찾아온 적도 있다.

누군가와 끊임없이 대화하거나 욕을 하기도 하고, 전자 도어록을 믿지 못해 문에 자물쇠를 달아두기도 한다. 물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생수를 직접 골라 마신다. B씨는 평생 형을 보살피면서 살아야 한다. 결국 형이 이만큼 살 수 있는 것은 B씨 덕분이지만, 그만큼 그의 삶은 희생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명백한 허점
결국 답은?

B씨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형을 꾸준히 보살폈다. 그래서 지금 이만큼이라도 스스로 생활할 수 있게 됐고, 폭력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그만큼 내 가정을 보살피지 못한 죄책감이 있다. 나중에 늙으면 형을 보살피기 힘들고, 내가 형보다 먼저 죽으면 형이 어떻게 될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한 의료 관계자는 “자신이나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해 지자체장이 보호와 진단을 신청할 수 있는 ‘행정입원’도 법에 규정돼있지만, 소송 우려 등으로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중증 정신질환자의 비자의(非自意) 입원이 더 용이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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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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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