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민주당 부위원장 뒷돈 피소 내막

“유력 정치인과 친해” 4000만원 진실공방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정치인과 맺는 관계는 특수한 만큼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한 번 잘못 얽혀버리면 관련된 모두가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경북 포항의 한 지역서 정치인과 당원이 돈 문제로 공방을 벌이고 있다. 과연 진실이 뭘까?

정치인이 또 다른 정치인과 친분을 과시하면 그 자체로 신뢰가 생긴다. 유력 정치인과의 관계를 과시하면 더욱 그렇다. 평범한 더불어민주당 당원인 A씨도 똑같이 믿었다. 정치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대상이 시장 선거에 출마할 정도의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A씨는 빚까지 짊어지면서 돈을 써가며 요구사항을 들어줬다고 주장하는 반면, 고소를 당한 측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인연서
악연으로

민주당 당원인 A씨에 따르면 B 전략기획위원회 부위원장을 처음 만난 것은 2019년이다. 민주당 국회의원 보좌관의 소개로 B 부위원장을 소개받았다. 소개받은 정치인은 지역서 야무지고, 똑똑한 이미지로 당원들 사이서 평가가 좋았다. 

B 부위원장은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중앙당 부대변인 출신의 정치인으로 2014년엔 단체장 선거서 포항시장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포항 지역의 첫 야당 여성 후보로 인지도를 쌓았다. 이후 민주당 경북도당 위원장으로도 출마했고, 현재는 민주당 부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A씨는 평범한 식품 소스 사업을 하던 중 2019년경 B 부위원장과 인연이 생겼다. 처음 만난 B 부위원장은 영락 없이 정치를 하려는 사람으로 보였다. A씨는 “항상 피켓을 들고 누군가를 위해, 이 나라를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어 그의 여러 요구를 대부분 들어줬다”고 말했다. 


그랬던 A씨는 최근 대구지방검찰청 포항지청을 찾아 B 위원장에 대해 사기죄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고소장에는 A씨가 운영하는 가게에 어느 날 B 부위원장 자주 동행하는 C씨와 함께 찾아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B 부위원장은 “이번에 민주당 경북도당 위원장에 출마하는데 반드시 위원장이 된다”며 “만들고 있는 소스류를 전국 농협 하나로마트에 공급하도록 해주겠다. 자신이 농수산부 장관 민주당 유력 의원, 도지사 등과 막역한 사이”라고 사업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듯 접근해왔다. 

식품 소스류를 전국 농협 하나로마트에 공급할 수 있도록 하고 민주당과 관련 있는 전국 공공기관에 납품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한 것.

의원들에게 부탁해 국가지원금 20억원을 받아 식품 제조 공장을 지을 수 있게 하겠다는 약속에 A씨는 혹할 수밖에 없었다. B 부위원장의 말을 믿고 4억원의 돈을 마련해 380평가량의 땅을 매입해 공장 설립을 준비했다. 

정면 대치되는 고소장 속 인물들 진술
A씨 “그들이 먼저 찾아와 돈 달라 해”

이후 A씨는 용지를 매입한 뒤 설립자금이 필요해 “약속한 대로 공장설립 지원금 20억원을 지원받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공장 사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A씨의 주장대로라면 B 부위원장이 “개인 명의로 지원은 할 수 없고 법인을 설립해 법인 명의로 부지 이전 시 돈을 받을 수 있다”고 말을 바꿨기 때문이다. 

사정이 급해진 A씨는 B 부위원장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 영어조합법인을 설립하고 같은 해 법인 명의로 A씨 부지를 이전등기하고 상황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후 상황은 점차 악화돼갔다. 부지 이전등기 이후 경제진흥원에 대출을 알아봐주겠다고 말을 바꾸었으나 대출이 이뤄지지 않아서다. 결국 A씨는 영어조합법인을 폐업할 수밖에 없었다.

공장 관련 지원금을 받으려면 3년간 재무제표가 있어야 하고, 3년 이상 동종업계에 종사한 경력 등 5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조건이 되지 않아 대출받기 힘든 구조였던 셈이다. 현재 A씨는 빚만 6억원~7억원이다. 

A씨에 따르면 이후에도 B 부위원장은 민주당 의원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지속적으로 선거 출마 공탁금, 정치인들과의 식사를 위한 경비 마련, 선거운동 비용, 생활비 등 명목 등으로 돈을 요구해왔다. 

A씨의 주장대로라면 B 부위원장이 C씨의 계좌를 통해 해당 명목으로 빌려 간 돈만 12회에 걸쳐 4000만원이 넘는다. <일요시사>가 A씨 측으로부터 입수한 거래 내역서에도 실제 C씨에게 4000만원가량 돈이 송금된 이력이 남아 있다.

“사업에 도움”
12회에 걸쳐?

2020년 5월4일부터 같은 해 11월11일까지 적게는 몇 만원부터 크게는 500만원까지 이체됐다. A씨의 말처럼 민주당의 중진 정치인도 몇몇 만났다. 직접 준비해간 회도 함께 제공했다.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A씨는 “B 부위원장이 빌려놓고 자기 이름으로 빌리지 않아 자신은 안 빌렸다며 C씨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의원들과 조금은 친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친한지는 모르겠다. 자기가 어떤 위치에 있다는 걸 과시하려고 해왔다”고 말했다.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A씨는 피고소인들이 했던 말과 행동이 전부 거짓이라고 깨달았다. 당시에는 정치인으로써 지지했기 때문에 지원했지만 이제라도 돈을 돌려 받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C씨의 계좌로 입금된 돈이 1년 넘었으니 되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A씨의 주장에 따르면 B 부위원장은 “돈이 없다. 지진 피해금 받을 돈이 있는데 돈이 나오면 갚겠다”며 감감 무소식 중이다. 

시간이 지나도 돈을 갚지 않자, B 부위원장과 C씨를 고소했는데 이후로 B 부위원장은 연락이 닿질 않았다. ‘돈을 반드시 돌려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A씨는 지난해 7월, 민주당 경북도당 사무실에 사정을 이야기했다.

이후 500만원이 송금됐고, 현재 관련 수사가 진행 중이다. A씨의 이야기대로라면 B 부위원장이 자신의 활동을 위해 평범한 사업을 하는 일반 당원을 기망해 재물을 교부받았기 때문에 사기죄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일요시사>는 돈을 입금받은 C씨에게도 상황을 물었다. 그는 자신의 계좌에 돈이 입금된 점은 시인했으나 B 부위원장이 관련돼있다는 점에 대해선 강력 부인했다. C씨는 “계좌에 돈이 들어온 것은 맞다”면서도 “B 부위원장은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오히려 A씨가 공장 부지를 샀다고 먼저 땅을 보여줬다”고 반박했다. 


식품회사를 운영 중이던 C씨 주장에 따르면 오히려 A씨가 “도와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C씨는 패스 업 기준의 공장을 설립하기 위해 여러 곳을 둘러보고, 전문가를 찾아다녔다. 설계 도면 역시 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원(HACCP) 기준에 맞는 설계 방식을 알아내 경제진흥원서도 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도록 기준을 충족시키려 노력했다. 

지속적으로
돈 요구?

그는 A씨의 고소에 대해 꼬집기도 했다. A씨가 B 부위원장을 상당히 지지하는 인물로 기억하고 있는 데다 오히려 늘 도우려고 했다는 것이다. C씨는 “A씨가 오히려 B 부위원장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B 부위원장이 경북도당위원장에 나가야 하는데, 돈이 없다고 하니 자신이 빌려주겠다며 나서서 말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미용실도 운영하고 있었다. 당시 미용실 임대 보증금 2000만원을 갖고 있는데, 미용실이 나가면 돈이 준비되니 자신이 빌려주겠다며 발 벗고 나섰다는 것이다. 

C씨에 따르면 이후 A씨는 차용증도 요구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자신이 “차용증을 써야 하지 않겠냐”고 해 차용증을 작성했다고 단호히 말했다. 또 앞서 500만원도 빌렸던 이력이 있어 해당 비용까지 2500만원을 한꺼번에 적어 차용증을 썼다고 주장했다. 

당시 작성했던 차용증의 변제기간은 1년으로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노력도 했다. 노력을 기울였으나 자신 역시 상황이 어려워져 갚지 못했다고도 했다. 어느 덧 돈을 못 갚은 지 만 3년째인데, 변제 시기보다 2년이 지났다. 


다만 그는 실제 A씨가 갚아야 한다고 주장한 액수와 다르다는 입장이다. 즉, 4000만원을 빌린 적이 없고, 차용증에 명시된 2000만원만 갚으면 된다는 것이다. 앞서 500만원은 이미 갚았기 때문이다. 

A씨가 C씨에게 입금했다는 돈 역시 단순히 빌린 게 아니라 공장을 위해 자신이 활동하며 받은 활동비라고 했다. 당시 C씨는 “그냥은 못 다닌다. 기름값, 공장과 관련된 당사자들과 전문가들을 만나 자문을 구하고, 인사 등을 한 경비”라고 못 박았다. 한마디로 빌린 게 아니라 시장조사를 위해 받았던 돈이라는 셈이다. 

B 부위원장 “당사자 아니고 내용 몰라”
C씨 “사실 아냐, 오히려 먼저 주려 해”

그는 “A씨가 먼저 ‘경비로 얼마를 주면 되겠느냐’고 물었고 최소 150만원이 필요하다는 말에 200만원씩 몇 달을 줬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A씨와 C씨가 차용증을 작성한 것은 2500만원과 관련된 부분이다. 경비 명목으로 통장에 지급한 부분을 증거로 제시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그간 작성해온 파일과 창업 및 사업계획서를 증거로 내밀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파일에는 법인 소개와 건축시설 개요가 기록돼있다. 사업계획서 역시 위치, 목적, 기대 효과 등 꽤 구체적이었다. 총 10페이지로 이뤄져있으며 자금 조달 계획, 세부 투자 계획 등도 함께 명시돼있다. 

C씨는 오히려 A씨가 실수한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출 70%를 받으려면 자기자본 30%가 필요했던 상황으로 자본 지출을 많이 갖추긴 했었다. 업장 자산이 있어야 하고 수산협동조합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A씨의 실수 지점은 100만원으로도 법인을 만들 수 있다고 해서 적은 금액으로 법인을 만드는 바람에 출자 자산이 없어졌다는 주장이다. 

당시 서류만 넣으면 대출 집행이 이뤄진다고 안내받았는데, 결국 증명이 안 돼 자산가치로 편입할 수 없어 공장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C씨는 A씨가 일방적인 주장만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갚았던 500만원 역시 “경북도당 사람도 아닌데 경북도당에 제소하니 갚았다는 식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국회의원들과의 만남 역시 자신들은 강요한 적 없다고 해명했다. 소개시켜주긴 했지만 오히려 A씨가 만나게 해달라고 지속적으료 요청했기 때문에 만났을 뿐이라는 것. 그는 “경비를 마련하라는 지시도 없었고, 오히려 고급 어종 회를 썰어 박스에 넣어서 왔다”고 말했다. 

차용증 작성
진짜? 가짜?

이처럼 A씨와 C씨의 주장은 정면으로 대치되는 상황이다. A씨는 요구에 의해, C씨는 자발적이라는 게 쟁점이다. 

B 부위원장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4000만원이라는 금액에 관해선 잘 모른다. 사실이 아닌 부분이 많다. C씨와 관련된 일”이라며 “조사가 아직 안 끝났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다. 결론적으로 나는 당사자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보좌관 성추행’ 박완주 의원, 노래방서 무슨 일이…

보좌관 성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무소속 박완주 의원이 노래방서 피해자에 신체접촉을 하는 등 추행한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공소장에 따르면 박 의원은 2021년 12월9일 보좌관 A씨, 비서 B씨와 함께 서울 영등포구의 한 음식점서 저녁식사를 한 뒤 노래주점으로 이동했다.

같은 날 오후 10시경 박 의원은 노래주점서 B씨를 잠시 나가도록 하고 피해자 A씨와 단둘이 대화하다 신체접촉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놀란 A씨는 박 의원의 정강이를 걷어차며 강하게 거부했지만 박 의원은 여러 차례 성적인 발언을 하며 성관계를 요구한 것으로 공소장에 적시됐다.

이후 박 의원은 A씨가 회식을 마친 후 귀가하려 하자 함께 차에 타라며 강권했고, A씨는 마지 못해 박 의원이 거주하는 오피스텔 지하 주차장까지 함께 이동했다.

차에서 먼저 내린 박 의원은 A씨의 손목을 붙잡으며 “올라가서 한 잔 더 하자”고 말했고, A씨가 거절하자 또다시 강제로 신체를 접촉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A씨는 지난해 4월22일 민주당 젠더폭력신고상담센터에 성추행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

A씨의 신고 사실을 인지한 박 의원은 A씨를 면직시키기 위해 제3자를 동원해 위조된 사직서를 국회 사무처에 제출한 혐의를 받는다.

이어 A씨는 지난해 5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강제추행, 직권남용, 허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박 의원을 고소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5월12일 의원 총회를 열고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박 의원을 제명했다.

검찰은 지난달 4일 박 의원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박 의원에 대한 첫 재판은 오는 9일 열린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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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