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㊸굶어 죽기 싫어 결심한 탈북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3.08.01 08:45:00
  • 호수 14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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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수령을 섬기는 당 간부와 보위부원 등등 권력층과 상류층 외엔 누구나 어려운 시기였다. 

수령과 당 간부들은 ‘조금만 참고 견디면 곧 쌀밥에 고깃국을 먹여 준다!’라고 큰소리쳤으나, 세월이 흐를수록 상황은 더욱 참혹해지기만 했다.

몇 년째 재해를 입은 시골은 살기가 말이 아니었다. 해마다 농사가 되지 않는데다가 국가에서는 양식도 주지 않으니 굶주린 사람들의 신음 소리가 들리곤 했다. 

비상경계령

“옥희네 식구들이 다 굶어 죽었다누마.”


“양강도에선 사람 잡아먹는 사람들이 있다던데......”

“뭐라구요? 뜬소문이겠지러.”

“돼지고기인 줄 알고 사먹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맛나는 게 사람고기라고 수군거린다던걸.”

믿기 어려운 흉흉한 소문이 떠돌았다. 첫 순정에 달뜨던 열일곱 소녀 때라면 무서움에 진저리쳤겠지만, 살아나가야 할 현실이 막막하여 한숨만 포옥 쉴 뿐이었다.

서로 좋아해 사귀던 성원 씨는 군대에 들어간 지 10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고, 가난한 농민 출신이라 어디 먼 오지에라도 배치돼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무 소식도 없었다.

나는 중국으로 가서 무슨 살길을 찾아낼 요량으로 고심하다가 부모님과 의논했다. 엄마는 처음엔 깜짝 놀랐으나, 고국에서 굶어 죽느니 차라리 이국땅에 가서 목숨을 부지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는지 무언의 승낙을 했다.

장마당에서 만난 어떤 아줌마가 돈을 얼마쯤 내면 압록강 너머 중국 땅에 넘겨주겠다고 말했다. 하루 생각해 볼 여유를 달라고 한 나는 집에 돌아와 마지막으로 심사숙고했다.


내 마음이 이미 중국으로 넘어가 있어서 그런지, 아무래도 헐벗은 고향 땅에 남아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 땅에서 이리저리 다니다 굶어 죽기보다 마침내 그 아줌마 말대로 하기로 결심했다. 

다음날 아줌마를 찾아 합의를 본 나는 겨우 마련한 돈을 주고 압록강변으로 나갔다. 살길을 찾아 강을 넘다가 세찬 물살에 떠밀려 죽은 이들도 있고, 북한군의 총에 맞아 죽은 이도 많았다.

사방은 어두웠다. 영하 30도의 추위였다. 새벽 5시는 지났지만 겨울철이라 아직도 날이 밝자면 두어 시간은 더 걸려야 했다. 난 제정신이 아니었다.

만일 보위부와 국경경비대의 눈에 걸려 비상경계령을 내리면 중국에 넘어가지도 못하고 체포된다. 죽더라도 도강하는 길밖엔 없었다. 조심조심 국경에 접근하여 한참 주위를 살핀 뒤 높은 강둑을 뛰어내려 얼음 위를 달렸다.

서른 걸음쯤 떨어진 곳에 총을 쥔 군인이 경계하고 있었다. 여름철엔 물결이 숨겨 주기라도 하련만 이젠 발각되면 죽음이었다. 미끄러운 얼음판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뛰느라 몇 번이나 나자빠져 온몸이 욱신거렸다.

점점 죽음 자체도 잊은 채 그저 악마에게 뒤쫒기 듯 내처 달렸다. 

마침내 중국 땅에 들어섰다. 그 아줌마가 소개한 사람은 강변을 지키는 웬 국경경비대 군관과 수군거리더니 한참 걸어 강둑으로 올라섰다.

보위부·국경경비대에 걸려 체포
중국 공안 공조해 탈출 어려워져

거기엔 보초 서는 경비병도 없고 강물이 얕게 흐르는 여울목이었다. 중국 쪽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안내인은 자기가 봐줄 테니 안심하고 넘어가라고 말했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허겁지겁 강을 건너 바삐 산 밑에 붙은 중국 도로로 올라섰다. 찢어진 옷과 북한산 짚세기를 신고 얼굴마저 피멍이 진 꼴로 거리를 돌아다니면 중국 공안에 잡힐 수 있기에 우선 산으로 올랐다.

산중턱에 올라 내려다보니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고향 땅이 한눈에 바라보였다.

온 가족이 함께 지옥의 땅 북한을 탈출하려던 것이 혼자 몸으로 그 어떤 약속마저 남기지 못한 채 상처 입은 몸으로 이국의 눈 덮인 산중에 던져지고 만 것이다.


두고 온 부모 형제를 다시 만날 기약도 없이 떠나려니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울고만 있을 때가 아니었다. 국경을 넘어 중국에 왔다고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북한 보위부 요원들이 탈북자 색출을 위하여 국경 근처의 중국에 늘 와 있고, 중국 공안이 공조하여 설치는 상황에서 한시 국경을 벗어나야만 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하얀 눈을 입에 넣어 녹여서는 삼키며 산속을 가로질러 걸었다. 낮에는 해를, 밤에는 별을 보며 서북쪽으로 쉼 없이 나아갔다.

추운 날씨여서 밤에는 걸음을 멈추면 얼어 죽을 수 있기에, 한낮에만 햇볕이 비치는 산속의 나무 밑에서 잠시 자곤 했다. 바람에 쌓인 눈구덩이가 키를 넘는 곳에 빠졌다가 간신히 나오기도 했고 내리막길에 굴러떨어지기도 했다.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얼어 죽고, 굶어 죽고, 매 맞아 상당수가 슬픈 혼백이 된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나도 그들이 간 길을 따라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힘이 진하여 쓰러지기 전에는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밤엔 산에서 내려와 좁은 도로를 따라 걸었다. 먼 곳에서 차 불빛이 보이면 근처에 몸을 숨겼다가 다시 걸었다. 두 개의 고개를 굽이돌아 사흘째 되는 날 저녁에 심심산골 어느 작은 마을로 들어섰다.


난데없이 한 남자가 길 옆의 나무 뒤에서 뛰어나왔다. 그 남자에게 어떤 마을 이름을 대며 알려달라고 부탁하니,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빙글 웃으며 나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갔다. 

흉흉한 소문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초가집, 그 집은 농사로 힘들게 사는 이 마을에서 가장 곤란한 집이었다. 앞뒤로는 길이 보이지 않는 높디높은 산이었고 며칠에 한 번씩 황사 바람이 집을 흔들 정도로 불어대는 지역이었다.

집이란 어찌나 더러운지 아무리 치워도 치운 티가 나지 않고 아무리 닦아도 닦은 티가 나지 않았다. 더구나 나보다 스무 살이나 더 늙은 남자를 남편으로 모시고 살아야 할 일이 더 기가 막혔다.

그제야 나는 소개한 그 아줌마에게 속아 팔려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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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