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U20 월드컵 ‘4강 신화’ 김은중과 아이들

‘골짜기 세대’ 건너 ‘황금 세대’로

[일요시사 취재1팀] 옥지훈 기자 = 김은중호는 첫 항해부터 순탄치 않았다. 이강인 같은 스타 선수 부재와 무명 선수가 주를 이뤘던 데다, 실전경험이 부족한 선수가 절반 이상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도네시아서 열리기로 한 대회가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로 개최지가 변경되면서 시차 적응이 필요했다. 그러나 ‘선수비 후역습’ 전략을 통해 세계 강호들을 제압했다. 이는 강한 조직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전략이다. 김은중호는 열악한 환경서도 ‘실리 축구’로 빛났다. 김은중호는 대회 끝이 아닌 한국 축구의 시작을 알렸다.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한국대표팀이 두 대회 연속 4강 진출이라는 성적표를 안고 귀국했다. 출국 전 무관심 속에서 출국한 김은중호는 수많은 환대 속에 금의환향했다.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다는 기쁨도 잠시, 김은중은 “대회는 끝이 났지만 선수들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국가대표까지 성장해 한국 축구의 미래를 이끌어가길 바란다”고 제자들에 조언과 격려를 전했다.

U20 월드컵
세계가 깜짝

김은중은 1998년 아시아축구연맹(AFC) U19 축구선수권대회를 시작으로 태극마크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이동국과 투톱 공격수 체재로 공격진을 이끌어 한국에 대회 2연패와 통산 9회 우승을 선사했다. 국내에서는 이들을 한국 축구 르네상스를 이룬 주축으로 평가하며 이듬해 나이지리아서 열린 1999년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당시 방송3사(KBS·MBC·SBS)는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국내 독점 중계방송권을 두고 앞다퉜다. 국내 언론은 ‘멕시코 4강 신화’를 다시 이뤄낼 것이라며 김은중이 소속된 대표팀에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한국은 멕시코서 열린 1983년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U20 월드컵 전신)서 처음으로 4강에 진출한 경험을 두고 16년 만에 최상의 전력을 가졌다고 평가받았지만 세계의 벽을 체감하며 지난 대회에 이어 2연속 16강 진출 실패라는 성적을 내는 데 그쳤다.

반면 ‘영원한 숙적’ 일본은 같은 대회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기록하면서 국내 분위기는 더 참담했다.

김은중은 이후 세계 무대와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국내 리그에서는 대전 시티즌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로 군림했지만, 왼쪽 눈 실명 상태라는 꼬리표로 국가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했다.

김은중은 중학교 시절 공에 맞아 왼쪽 눈이 실명됐다. 그럼에도 그는 축구선수에게는 큰 결함이 될 수도 있는 장애를 극복해 K리그 통산 444경기 123골을 터뜨렸다. 통산 A 매치 기록은 15경기 출전 5골이다. 

김은중은 이후 2014년 은퇴를 선언하고 지도자로서 제2의 전성기를 시작했다. 대전 시티즌 플레잉 코치와 벨기에리그 AFC튀비즈서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김학범 전 23세 이하(U23) 한국대표팀 감독을 보좌하며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코치를 맡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금메달, AFC U23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김은중은 코치 생활을 끝으로 2021년 12월 U20 대표팀 첫 사령탑 자리에 올랐다.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코로나 시기와 겹치면서 대표팀 운영에 차질이 생겼고, 이렇다 할 평가전도 치를 수 없었다. 대표팀 소집에도, 국내 유능한 선수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실전 경험 부족한 김은중호
‘실리 축구’로 똘똘 뭉쳤다

1년 동안 K리그 2군과 대학팀을 중심으로 어린 선수를 발굴했다. 이외에도 ‘유럽파’ 이현주(바이에른 뮌헨), 아시안컵 팀 최다 득점인 성진영(고려대)이 U23 월드컵 대표팀 기대주였으나, 부상으로 낙마해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김은중은 지도자로서 첫 무대에 섰다. 지난 3월 우즈베키스탄서 열린 2023 AFC U20 아시안컵이다. 한국은 U20 아시안컵 최다 우승 국가다. 김은중호는 같은 해에 있을 U20 월드컵 본선 티켓과 11년 만의 우승을 노렸다.

4강에 진출해 월드컵 본선 티켓을 확보한 김은중호는 준결승전서 만난 우즈베키스탄과 연장 접전 끝에 승부차기서 패했다. 경기 내용이 다소 실망스러웠다. 120분 동안 유효 슈팅 2개를 기록하며 분전했고, 우즈베키스탄의 홈어드벤티지가 있었지만 경기력이 기대 이하였다. 

당시 FIFA 랭킹 25위인 한국과 77위인 우즈베키스탄은 20세 이하 대표팀 상대 전적서 6전 5승1무로 한국이 앞섰다. 대회 우승자는 개최국인 우즈베키스탄이 차지했다. 한국은 일본과 함께 공동 3위를 기록했다.

김은중호는 U20 월드컵 무대를 앞두고 직전 대회 준우승과 아시안컵 준결승서 보여준 경기력 열세로 부담감을 안았다. 월드컵 무대 두 달을 남긴 시점이었다.  

이번 U20 월드컵은 인도네시아에 열릴 예정이었다. 아시안컵이 끝난 후 김 감독은 현지 답사를 통해 인도네시아 기후 환경을 고려한 훈련 계획을 준비했다. 그러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당초 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던 인도네시아가 지난 3월 말 개최권을 박탈당한 것이다.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의 강성 이슬람 단체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탄압한다는 이유로 이스라엘 선수단 입국을 반대했다. 한 이슬람 단체는 이스라엘 선수단이 입국하면 납치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에 FIFA는 선수단 보호 차원서 인도네시아의 개최권을 박탈하고 대체 개최국으로 아르헨티나를 선정했다.

대회 한 달을 앞둔 시점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르헨티나로 플랜을 변경해야 했다. 갑작스러운 개최 준비에 아르헨티나 숙박시설과 훈련시설 수요가 높아졌다. 김은중은 아르헨티나와 시차 차이가 나지 않는 브라질로 향했다. 

태극마크 
압박감
 

김 감독은 기존 계획보다 일찍 출국해 브라질 상파울루에 캠프를 차리고 선수단 컨디션 조절에 나섰다. 김은중호는 최종 엔트리 21명을 발표한 이후 파주 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 소집한 다음 날 출국했다.

개최지 변경에 대해 김은중은 “브라질서 보낼 열흘간 시간이 중요하다. 좋은 컨디션으로 대회에 임할 수 있게 준비하겠다”며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팀들도 같은 상황이다. 누가 더 빨리 좋은 컨디션을 만드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0일간 상파울루 전지훈련을 마친 김은중호는 결전의 땅 아르헨티나 멘도사에 입성했다. 이어 첫 조별리그 1차전인 강호 프랑스를 2-1로 승리했다. FIFA 주관 대회 사상 처음이었다. 프랑스를 상대로 U20 대표팀 역대 전적은 1승3무4패로 열세였다. 이후 멘도사서 열린 조별리그 3경기를 마친 김은중호는 2승1무를 기록하며 조별리그 무패로 16강 진출에 달성했다. 

16강전서 만난 에콰도르는 2019년 전 대회에 이어 2연속 토너먼트 대결 상대였다. 김은중호에는 제일 해볼만한 팀으로 평가됐다. 16강전 격전지는 산티아고 델 에스테로였다. 에콰도르는 조별리그를 같은 지역서 치러 이동이 없는 반면 멘도사서 이동해야 하는 김은중호 피로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김은중호는 화끈한 공격쇼를 펼쳤다. 이번에도 승자는 한국 대표팀이었다. 결과는 3-2로 펠레 스코어 끝에 명경기를 펼쳤다.

나이지리아와 겨룬 8강전에서는 김은중호 특유의 실리 축구를 선보였다. 볼 점유율은 압도적으로 밀렸다. 전체 슈팅 4번 중 단 1번의 유효슈팅이 골망을 갈랐고 결과는 1-0 승리로 4강 진출에 성공했다. 

김은중호는 늘 훈련을 시작할 때 “원 팀(One team)”을 외친다. ‘원팀’으로 뭉친 강한 조직력이 실리 축구의 핵심이다. 이번 대회 전체 8골 중 세트피스만 4골을 기록할 정도였다. 선수들은 “감독님이 우릴 믿고 우리도 감독님을 믿어서 이뤄낸 성과”라고 입을 모았다.

개성 강한 어린 선수들을 한 데 모을 수 있었던 건 김은중 리더십 덕분이었다. 묵묵하고 말수가 적은 성격으로 알려진 김은중은 젊은 선수들과 주고 받는 소통 능력이 강점이다. 코치로 지낸 지난 9년간 U23 대표팀과 각국 유망주가 모이는 벨기에 리그에서 젊은 선수들과 지내면서 소통 능력을 키웠다.

U23 대표팀을 함께 이끈 김학범 감독도 젊은 선수들과 소통능력을 최고로 꼽았다.

김학범 감독은 “김은중 감독은 화내거나 소리지르지 않고 자신이 준비하고 계획한 것을 명확하게 전달한다”며 “개성이 강한 어린 선수들에게 최고의 지도자”라며 극찬했다. 김은중은 만 44세다. 최근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선수에게는 젊은 감독이 대세라는 말을 실감하게 했다.

이번 대회 선수들은 직전 대회와 비교했을 때 눈에 띄는 선수가 없었다. 실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어린 선수들이 막 프로리그에 입성하면서 프로무대 출전 기회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순탄치 않았던
1년6개월 여정
 

김은중호는 앞서 골짜기 세대라고 불렸다. 골짜기 세대는 주변 세대와 비교해서 스타 선수나 실력이 떨어진다는 뜻을 담은 단어로 황금 세대와 반대말이다.

2017년 한국서 열린 U20 월드컵에서는 당시 스페인 명문 FC바르셀로나B서 뛰며 초특급 유망주로 평가받던 이승우와 백승호가 대표팀에 승선했다. 이후 2019년 폴란드서 열린 대회에서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서 뛰던 이강인이 주목받으면서 기대감을 높였다. 이강인은 U20 월드컵 준우승과 골든볼을 수상했다. 

김은중호는 비교적 주목받는 선수가 없어 무관심 속에서 대회를 준비했는데 김 감독은 이 분위기를 잘 이용했다. 선수들이 처져 있거나 심리적으로 불안해하면 먼저 다가가 기운을 북돋았다. 조별리그 1차전인 프랑스전 당시 오심으로 논란이 일었던 패널티킥(PK) 때도 선수들과 코치진이 흔들릴 때 김은중은 오히려 중심을 잡고 경기에 집중했다.

강한 조직력이 골짜기 세대서 황금 세대로 탈바꿈했다. 김은중의 리더십과 선수들의 끈끈한 팀워크가 2연속 대회 4강 진출을 이뤄내며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어린 선수들은 대회 도중 부상으로 떠난 박승호(인천 유나이티드)를 위해 각종 토너먼트에 나서기 전 기념촬영서 박승호의 유니폼 18번을 들어 올렸다.

1년6개월간 동거동락한 선수단 21명은 늘 하나로 뭉쳐 있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무명서 스타로 발돋움한 대표적인 선수는 미드필더 이승원(강원FC)이다. 그는 이전까지 연령별 대표팀에 뽑힌 적이 없었다. 김은중은 당시 단국대 소속이던 이승원을 첫 소집에 올린 후 꾸준히 기용했다. 김은중이 주목한 이승원의 강점은 기본기가 탄탄하고 넓은 시야와 패스 능력을 꼽았다.

이승원은 첫 대표팀 승선 이후부터 주장으로 임명됐다. 이승원은 평소 사려 깊은 성격과 묵묵한 스타일로 선수들을 도왔다. 과묵한 리더십은 스승인 김 감독을 빼닮았다. 

스타 없어도 세계 4위
“끝 아닌 이제 시작”

이승원은 한국 남자 선수 중 FIFA 주관대회서 가장 많은 공격포인트를 올린 선수가 됐다. 3골4도움으로 7개 공격포인트를 올렸다. 직전 대회 이강인이 기록한 2골4도움인 6개 공격포인트를 넘어섰다. 그는 7개 공격포인트 기록으로 대회서 세 번째로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주는 브론즈볼을 받았다.

그는 8강전까지 4도움을 기록했는데, 모두 약속된 세트피스 상황서 올렸다. 

이승원은 이강인에 대해 “감히 얘기할 수 없지만 많이 보고 배우고 있는 선수”라며 “좋은 기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따라가겠다”고 존경심을 나타냈다. 이어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걱정과 우려가 컸는데 팬들의 열띤 응원 덕에 4강 진출이라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며 “결과 외에도 많은 걸 얻었다. 소속팀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 더 발전하겠다”고 다짐했다.

미드필더 배준호(대전 하나 시티즌)는 빼어난 개인기와 침착한 마무리로 에이스 등번호 10번의 탄생을 알렸다. 대회 중간 해외 외신들도 배준호에 대한 칭찬이 끊이질 않았다.

프랑스 리그2 소쇼에 속한 스카우터 알렉시스 버지니우스는 “배준호는 이번 대회서 나를 가장 놀라게 한 선수 중 하나”라며 “배준호는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진리를 깨우친 것 같았다”고 극찬했다. 외신 기자 에마뉘엘 트루머가 선정한 ‘2023 U20 월드컵이 끝난 후에도 발달 과정을 유심히 지켜봐야 할 선수 20인’에 꼽힌 한국 선수는 배준호가 유일하다. 트루머는 프랑스 리그1 중계방송사 카날 플뤼의 기자다.

이번 대회 이탈리아를 결승까지 이끈 카르미네 눈치아타 감독은 한국과 치른 경기서 2-1로 승리 후 이례적으로 상대 선수인 배준호를 칭찬했다. 눈치아타 감독은 “한국의 10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는 매우 훌륭한 선수”라며 높은 평가를 내렸다.

대표팀 귀국길에 공항을 찾은 대전 팬들은 배준호에게 팀을 떠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그는 “유럽 이적설에 대해서는 더 높은 곳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아직 결정된 건 없다”며 “난 현재 소속팀이 좋고 대전을 찾아주시는 팬들도 좋다. 항상 응원해주시는 팬들에게 감사하다”고 전했다.

이영준(김천 상무)도 이번 대회서 주목할만한 활약상을 펼쳤다. 공격수인 박승호가 부상으로 이탈한 후 홀로 공격진 선봉장에 섰다. 7경기 중 3~4위전인 이스라엘전을 제외하고 풀타임으로 출전한 이유다. 무려 630분을 뛰며 투혼을 보여줬다.

그는 전 경기를 뛰며 2골1도움을 기록했다. 그는 김은중호 출범 이후 가장 많은 득점인 20경기 10골을 기록했다. 192cm, 87kg의 큰 체구를 가진 그는 연계 플레이와 뛰어난 드리블 돌파 능력이 강점이다. 이른바 ‘육각형 공격수’의 등장이다.

박승호는 김은중호 귀국길에 목발을 짚고 마중했다. 박승호는 당시 동료들을 기다리며 “우선 애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가장 앞섰다”며 “애들이 충분히 잘해줬기 때문에 4위라는 좋은 성적을 가지고 온 것 같다”고 전했다. 

강한 조직
강호 제패
 

박승호의 합류로 완전체가 된 선수단은 귀국 후 사진촬영과 공식행사를 진행했다. 이영준은 “승호가 온두라스전서 동점골을 넣어 상황이 좋게 흘러갔다”며 “서운하기보다 오히려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며 우정을 과시했다.

김은중은 이번 대회를 끝으로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는 4강 진출에 성공한 뒤 기자회견서 “조별리그서 광탈(광속 탈락)할 거란 얘기가 어린 선수들 귀에 들어가는 게 가장 마음 아팠다”며 눈물을 보였다. 김은중호는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냈다. 그는 “월드컵서 본인들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낸 것에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이 선수들이 감독으로서 첫 제자인데 1년6개월간 성장한 모습을 보니 뿌듯하다”고 말했다.

<ojh34522@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학의 교수 수준은 강의의 질과 비례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재 양성, 특히 초등학생을 가르칠 선생님을 배출하는 ‘교대’라면 그 본질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진주교육대학교(이하 진주교대)에서 2020년 시작된 교수 채용 논란이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32년 공립사범학교로 시작해 100여년 동안 초등교육 발전에 힘을 보태 온 학교로서는 불명예스러운 논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진주교대가 마치 ‘제3자’인 것처럼 멀찍이서 논란을 지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첫 단추 잘못 끼웠나 2020년 10월 진주교대는 미술교육과, 수학교육과 등에 각 1명씩 총 4명의 교수를 채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2021년 1학기 임용을 목표로 같은 해 11월부터 채용 절차가 시작됐다.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일반 요건과 함께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자격 요건이 붙었다. 전형은 ▲자격 심사 ▲전공 적부 및 전공 심사 ▲경력 심사 ▲면접 심사(심화 과정) ▲면접 심사(최종) 등으로 이뤄졌다. 논란은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과정에서 불거졌다. 진주교대는 채용 계획에서 미술교육과 전공 분야를 ‘도자공예 또는 미술교육(도자공예)’으로 정했다. 도자공예 교수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어 그 후임자를 뽑기 위한 채용이었다. 문제는 미술교육과에 최종 합격한 A 교수가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A 교수는 진주교대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학사)했고, 석사 학위는 초등미술 교육(진주교대), 박사학위는 디자인학(광주대) 전공으로 받았다. 미술교육과 채용에 지원하려면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즉, 도자 관련 전공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가 자격 요건에 못 미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A 교수의 전공 적부 논란은 면접 심사 과정에서 언급됐다. 면접에 들어간 한 심사위원이 A 교수의 전공이 채용 분야와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면접 심사(5배수) 대상자 명단’ 자료에 따르면 A 교수를 제외한 4명의 지원자는 학사, 석사, 박사 과정 등에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한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미술교육과 B 교수는 “전공 적부와 관련해 다시 심사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재심사가 이뤄지긴 했다”며 “그런데 첫 번째 전공 적부 전형에 참여했던 위원들이 재심사를 담당했다. 결과가 바뀔 리가 있겠나”라고 한탄했다. A 교수는 2021년 2월 최종 임용됐다. A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쓴 <프리미티비즘의 조형 표현 요소 및 특성을 통한 현대 도자 작품 연구> 논문이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광주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은 A 교수의 학위 논문이다. 2020년 6월경 논문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진주교대 교수 채용공고가 뜨기 3~4개월 전이다. 채용 과정에서 전공 적부 논란 임용 이후 추가 문제 제기됐다 2021년 3월, B 교수는 A 교수의 연구 부정행위(표절)를 광주대에 제보했다. A 교수가 해당 논문으로 광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검증도 광주대에서 진행해야 했다. 교육부 훈령 제449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8조(연구부정행위 검증 절차)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를 검증하려면 예비조사와 본조사, 판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를 총괄하는 게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위한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대한 심의, 의결 권한을 갖는다. 또 예비조사와 본조사에서 나온 결과를 승인한다. 제보를 받은 광주대는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했다. 황당한 지점은 광주대에서 A 교수의 논문을 두고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수차례 반복했다는 사실이다. B 교수가 마지막에 나온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결과를 두고 민사소송을 제기한 시점은 2024년 8월로, 처음 제보했던 2021년 3월 이후 무려 3년5개월이나 걸렸다. 그나마도 표절 여부는 여전히 판명 나지 않았다.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25조(판정)에 따르면 예비조사 착수 이후 판정까지의 모든 조사는 6개월 이내에 종료해야 한다고 돼있다. 물론 이 기간 안에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연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광주대의 경우는 ‘절차상 하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제보자나 피조사자 양측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재조사하는 일이 반복됐다. 2021년 8월 광주대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에 대해 만장일치로 표절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 교수에게 의견 진술권을 부여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 다시 말해 A 교수가 자신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반론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결국 모든 조사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2022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재구성됐는데 5월 예비조사와 8월 본조사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 논문의 총 1234개 문장 중 425개(34.4%)가 표절로 의심되며 ▲특정인의 논문을 몇 페이지에 걸쳐 연속적으로 사용했고 ▲독창적인 부분을 적시해 달라는 요청에 피조사자가 답변을 회피하며 적극적 방어를 하지 않아 비교 대조표를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점 등을 근거로 표절로 판정했다. 거듭된 하자 조사만 4번 반면 본조사위원회는 “이 사건 논문은 ‘작품 논문’이라는 특성상 다른 분야와 같은 기준으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작품 논문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논문의 핵심 부분인 작품 그 자체에는 독창성이 인정되므로 논문 자체를 표절이라고 판정할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조사에서도 또다시 ‘하자’가 발견되면서 판정이 무효로 돌아갔다. B 교수는 피조사자인 A 교수가 심사위원 제척 여부를 이유로 외부위원 명단을 요청했고 실제 공개된 점, 제보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지 않은 점 등의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본조사위원회 보고서에 각 당사자의 진술 요지와 조사 결과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데도 이 부분을 빠뜨리면서 실체상 하자도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법원에 본조사위원회 판정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 건은 피고(광주대 측)가 “원고 측 이의를 받아들이고 기존 본조사 판정을 무효화하고 다시 본조사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약속하고 B 교수가 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2023년 세 번째로 소집된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을 표절로 판정했다. 의견서에는 ▲전체 1200여개 문장 중 출처 표시 없이 인용된 문장이 360여개로 과도하게 많은 점 ▲저자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지 않은 점 ▲논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4장과 결론에서도 타인의 학술 논문과 내용이 유사하거나 출처 표시가 없는 문장이 다수인 점 등이 근거로 기재됐다. 하지만 이 결과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구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면 무효화됐다. ‘광주대학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설치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학장, 교무처장 및 산학협력단장은 당연직으로 하고 교무처장이 위원장이 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일부 준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시 해를 넘겨 2024년 6월 예비조사위원회는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놨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이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했고, A교수가 KCI 논문 유사도 검사에서 1%의 유사도를 보인 결과서를 제출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저작위원회 “유사성 인정” 또 A 교수가 인용 표시를 하지 않은 부분이 타인의 아이디어나 창작물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른 저자의 논문 역시 다른 논문이나 저서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정한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서 승인했다는 점이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본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결론을 확정했다. 3년5개월여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판정 승인이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최종 결론이 난 셈이다. 첫 채용 공고 시기로 따지면 4년 가까이 이어진 논란은 B 교수의 반발로 법정에 가게 됐다. B 교수는 2024년 7월 광주대가 자신의 이의 신청을 기각하자 같은 해 8월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학교법인 호심학원을 상대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판정 무효확인 등’의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승인한 부분과 본조사위원회가 불필요하다고 한 부분을 무효로 판단해 달라는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도 절차상 하자가 언급됐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충분한 혐의를 인지했을 경우에 예비조사를 생략할 수 있고, 피조사자가 연구 부정행위 사실을 모두 인정할 경우 본조사를 생략하고 바로 판정을 내릴 수 있다”며 “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 결과를 확정해 판정할 근거가 없다. 본조사 결과만 승인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A 교수 논문에 대한 표절 여부도 제대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표절 판정이 엇갈린 만큼 저작권법,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및 한국연구재단이 제시하는 인용 방법 및 논문 표절 기준 등에 따라 A 교수의 논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B 교수는 A 교수의 논문을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감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저작권법 제112조에 따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법원이 B 교수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저작권위원회는 A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12편의 논문을 비교, 감정했다. 반복된 조사 엇갈린 판정 결국 법정 공방으로 번져 <일요시사>가 입수한 감정 결과서에 따르면 A 교수의 논문은 총 12편의 비교 대상 논문 중 총 11편에 대해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을 상당 부분 복제하고 있다며 저작권법상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또 ‘단순히 학술적 아이디어나 이론적 사실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선행 저작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관점과 예술적 주관에 따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문장 구조, 단어 선택, 서술 방식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외국 문헌을 연구자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요약하거나 번역한 문장의 경우에도 원저작자의 창작적 개성이 반영돼 저작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A 교수의 논문은 이를 무단으로 복제해 논문에 활용했다’ 등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B 교수는 “저작권법 위반 여부는 표절보다 그 인정 범위가 좁다. 논문의 독창성을 저작권으로 인정해 그 부분을 침해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결론은 A 교수가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의 독창성을 인용 없이 가져다 썼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호심학원 관계자는 “소송 중인 사안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을 해왔다. 문제는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오는 동안 손 놓고 있는 진주교대의 태도다. A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는 진주교대의 교수 채용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채용 공고에서 지원 자격으로 박사학위 소지자가 명시됐던 만큼 논문 표절 여부는 이번 논란의 중요한 요소다. 표절로 판명되면 학위 자체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어 A 교수가 진주교대 교수 채용에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주교대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광주대와 B 교수 간의 소송 결과가 나오고 그에 따라 광주대가 조치한 뒤에야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진주교대 교무처 관계자는 “(학교가) 손 놓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법률 검토 등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B 교수는 “학교는 학생들의 수업권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저 누가 학교에 책임을 물을까 봐 전전긍긍할 뿐이다. 학교 측에서 했다는 법률 검토도 현재 손 놓고 있는 학교의 행보가 나중에 직무유기로 문제가 될까 알아본 것이라고 한다. 교대는 학생들이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을 신청해야 하는 구조라 교수에게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학생들만 뒷전 됐다 그러면서 “광주대와의 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A 교수가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공무원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직위해제’ 조치를 하지 않나.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교사를 길러내는 대학이다. 학교가 그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편, A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