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최대 위기 선관위 복마전

소쿠리, 해킹, 특채까지 ‘터질 게 터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으로 여겨진다. 민의를 모아 대표자를 뽑는 행위는 민주시민의 기본 권리이면서 의무다. 투표로 당락이 갈리는 선거 특성상 심판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 선거관리위원회에 독립성을 부여하고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기대하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 선관위 내부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선거와 국민투표를 관리하고 정당과 정치자금에 관한 사무처리를 담당한다. 국회, 정부, 법원, 헌법재판소와 같은 지위를 갖는 독립된 합의제 헌법기관이기도 하다. 제3공화국 제5차 개정헌법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및 ‘각급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근거를 두고 1963년 1월21일 선거관리위원회를 창설해 오늘에 이르렀다. 

무너진
공정성

선관위는 올해 목표와 중점 과제로 ▲국민에게 신뢰받는 공정한 선거 관리 ▲민주정치 발전을 위한 기반 공고화 ▲미래지향적 선거관리 역량 강화를 내세웠다. 또 헌법상 독립기관인 점과 중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헌법과 법률로 임기와 신분을 보장해 외부의 간섭과 영향을 배제하면서 직무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선관위가 ‘중립성과 공정성 보장’을 일종의 방패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관위 내부서 드러난 의혹을 감추기 위한 도구로 내세우고 있다는 것.

방어에 급급한 선관위의 태도에 국민 여론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가장 공정해야 할 기관서 도덕성에 금이 가는 사안이 전 방위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도 없다는 의견까지 나온다.


최근 선관위는 간부의 자녀 특혜채용 의혹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선관위 내부 전수조사 중 박찬진 전 사무총장과 송봉섭 전 사무차장, 신우용 제주 상임위원 등 기존에 확인된 사례 외에 추가로 의심 사례가 나왔다. 5급 이상 직원 전수조사 중 4‧5급 직원 자녀의 경력 채용 사례가 추가로 5건 이상 확인된 것.

현재까지 확인된 사례만 최소 11명이다. 

노태악 선관위원장은 지난달 30일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선관위를 둘러싼 논란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마치 퍼즐이 맞춰지듯 그동안 석연치 않았던 조각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

전수조사 끝나지도 않았는데
최소 11명 이상 의혹 불거져

특히 자녀 특혜 채용 의혹과 맞물려 선거 기간 중 휴직 인원이 크게 늘어난 점도 알려졌다. 

대통령선거와 전국지방선거가 겹쳤던 지난해 선관위 직원 가운데 200여명이 휴직했다. 과거 10년 상황으로 비교했을 때 2번째로 많은 수치다. 선관위 휴직자 수는 선거가 있는 해에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선관위 직원이 선거를 고의로 기피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실이 선관위로부터 받은 ‘2013~2022년 연도별 휴직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선관위 휴직자 수는 190명이었다. 이 중 육아휴직자는 109명이었다. 가장 많은 휴직자가 발생했던 때는 2021년으로 총 193명이 쉬었다. 그해에는 전국 12개구서 재보궐선거가 열렸다. 지방선거가 치러졌던 2014년에는 138명(육아휴직 120명), 대선이 있던 2017년에는 137명(육아휴직 112명)이 휴직했다. 


그동안 선관위 내부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휴직자가 지나치게 늘어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선거가 없는 해에는 상대적으로 업무 강도가 낮기 때문에 휴직을 미루다가 선거를 앞두고 업무 강도가 높아지면 휴직을 신청한다는 것이다.

선관위 공무원 규칙에 따르면 육아휴직은 분할 사용이 가능하다. 이때 임용권자는 시간선택제임기제공무원 및 한시임기제공무원을 채용할 수 있다.

선관위는 휴직자의 빈자리를 정규직으로 채웠다. 이른바 ‘아빠 찬스’ 의혹을 받고 있는 간부가 자신의 자녀를 경력 채용 형태로 해당 자리에 넣었다는 것이다. 선관위의 오랜 관행과 특혜 채용 의혹이 맞물려 있는 셈이다. 선관위의 도덕적 해이가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아직도
배짱을?

국민 여론은 최악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메트릭스가 <연합뉴스> <연합뉴스TV>의 공동 의뢰로 지난 3~4일 전국 18세 남녀 1000명을 상대로 선관위에 대한 인식을 물었다. 그 결과 노 위원장 거취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의 73.3%가 ‘이번 사안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답했다. ‘물러날 필요가 없다’는 응답은 14.1%에 그쳤다.

노 위원장에 대한 사퇴 여론은 정치 성향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지지자라고 밝힌 응답자 72%, 국민의힘 지지자 79.6%가 노 위원장이 사퇴해야 한다고 답했다. 보수‧진보‧중도층 모두 70% 이상이 노 위원장이 물러나야 한다고 응답했다(무선 전화면접 100%,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

여기에 선관위가 감사원 감사를 두고 ‘우왕좌왕’하면서 기름을 붓는 모양새다.

선관위는 지난 2일 자녀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해 감사원의 직무감찰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최종 입장을 정했다. 선관위원 전원의 일치된 의견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국가기관 간 견제와 균형으로 선관위가 직무감찰을 받지 않았던 것이 헌법적 관행이고 이에 따라 직무감찰에 응하기 어렵다는 것이 위원들의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선관위는 헌법 제97조서 감사원의 감사 범위에 선관위가 빠져 있고 국가공무원법 17조에 ‘인사 사무 감사를 선관위 사무총장이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는 이유를 들었다. 반면 감사원은 감사원법에 감사 제외 대상으로 국회, 법원, 헌법재판소를 정해뒀지만 선관위는 포함되지 않아 직무감찰이 가능하다고 맞섰다.  

선관위는 국회의 국정조사와 국민권익위원회 조사, 수사기관의 수사에는 성실히 임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감사원 감사에는 거부 의사를 명확히 한 것이다. 하지만 국민 여론이 악화되고 언론 보도를 통해 추가 의혹이 거듭 불거지자 감사원의 강경한 입장에 균열이 가고 있다. 

10명 중 7명
노태악 사퇴

국민의힘 측도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5일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감사원 감사 수용과 선관위원 전원 사퇴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데 이어 두 번째 항의 방문도 진행했다. 지난 8일에는 국민의힘 장예찬 청년최고위원과 중앙청년위원회도 항의 방문했다.


선관위는 감사원 감사와 별개로 선관위원 전원 사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내년 4월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를 10개월 앞두고 선관위원이 동반 사퇴하는 것은 조직 혼란을 야기한다는 기류가 강한 것으로 파악됐다. 

민주당의 입장과 일맥상통하는 지점이다. 민주당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은 기자회견서 “총선을 10개월 앞둔 상황서 집권여당이 시도 때도 없이 선관위를 찾아가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선관위 중립성을 훼손하는 정략적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을 앞세운 정부여당의 선관위 장악 시도를 당장 멈추라”고 요구하며 “선관위에 대한 조사는 권한이 없는 감사원서 할 것이 아니라 국회서 국정조사로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엄격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조용히 넘어갔던 선관위 관련 논란이 이제야 불붙듯 터지고 있다는 의견이 있다. 이 과정서 감사원과의 전쟁이 또 한 번 재현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선관위는 지난해 대선 사전투표서 불거진 ‘소쿠리 투표’ 논란 때도 감사원의 직무감찰을 거부한 바 있다. 

소쿠리 투표 사건은 지난 대선서 코로나19 확진자의 투표용지를 소쿠리 등에 보관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불거졌다. 당시 선관위원장인 노정희 전 위원장은 사건이 일어난 지 40여일 만인 지난해 4월에야 사퇴 의사를 밝혀 ‘뒷북 사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감사원과 또 다시 힘겨루기
최악의 국민 여론에 밀릴 듯


선관위는 감사원 감사 대신 자체 특별감사를 실시해 책임자를 문책했다. 지난해 11월 선관위는 ‘제20대 대선 사전투표관리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 결과 사전투표 관리 부실의 원인으로 ▲폭증하는 코로나19 격리자 등 투표 수요 예측 부실 ▲종전 임시기표소 투표 방식에 안주한 정책 판단 오류 ▲내부 의사결정 과정의 비합리성 ▲관계기관 협업 미흡 ▲인사·감사 기능의 구조적 제약 등이 꼽혔다. 

선관위는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전 선거정책실장, 전 선거국장, 선거1과장의 징계 의결을 요구했다. 징계위원회는 각 인사에게 정직 3개월, 정직 2개월, 불문경고 등을 의결했다. 현재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을 받고 있는 박찬진 전 사무총장(대선 당시 사무차장)은 엄중경고 처분을 받았다.

지난달에는 북한에 의한 해킹 의혹까지 불거졌다. 60년 선관위 역사에서 가장 큰 위기에 직면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다. 선관위는 북한의 해킹 공격을 받고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국가정보원의 보안점검 권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한 해에만 약 4만건의 사이버 공격을 받았다는 것. 

선관위는 국정원의 보안점검 권고에 “통보받은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가 자녀 특혜 채용과 맞물려 여론이 악화되자 받아들이기로 한 상태다. 국민의힘 장동혁 의원실이 선관위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선관위는 지난해만 3만9896건의 사이버 공격을 받았다. 올해 4월까지도 9759건으로 1만여건에 이른다. 

선관위는 사이버 공격 피해 현황에 대해 “해당 사항이 없어 자료를 제출하지 못한다”면서 “사이버 공격 시도 발생 시 사이버 보안시스템을 운영해 즉시 차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회 행안위 여당 간사인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은 선관위가 북한의 사이버 공격 시도 7건 중 6건은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인 선관위가 국정원 등의 보안 컨설팅을 받을 경우 정치적 중립성에 관한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지난달 23일 한발 물러서 국정원·한국인터넷진흥원과 3자 합동으로 보안 컨설팅을 수행하겠다고 나선 상태다. 

총선 앞두고
대폭 물갈이?

선관위는 사면초가 상태다. 감사원은 물론 국회·수사기관 등이 전방위서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 여론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여론의 비판 수위가 높아지면 선관위를 비호 중인 민주당 역시 주춤할 수밖에 없다. 선관위가 내세우는 ‘중립 방패’의 위력이 약해지고 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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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