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 ‘생활동반자법’ 찬반 논란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5.15 09:57:10
  • 호수 14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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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동성혼 합법화법이라고?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시대의 흐름이다” VS “악법이다” 등 최근 생활동반자법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악법을 주장하는 쪽은 생활동반자법이 ‘동성혼 합법화’를 촉진할 것을 우려한다. 시대 흐름이라는 쪽은 이미 전통적 가족이 해체된 만큼, 해당 법안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26일,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10명의 동료 의원들과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했다. 이날 발의된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성년이 된 두 사람이 생활을 공유하며 돌보고 부양하는 관계를 ‘생활동반자관계’로 규정한다. 이 법은 일상 가사, 돌봄, 복지, 장례 등 생애 전 과정서 가족의 권리를 보장한다.

“외롭지 
않도록”

이 법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14년으로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이다.

이날 용 의원은 생활동반자법을 재발의하며 “국가에 의해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보장받고 각종 사회제도의 혜택과 보호를 받을 수 있다면, 국민은 더 자율적이고 적극적으로 가족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모든 국민의 ‘외롭지 않을 권리’ ‘누구든 원하는 사람과 가족을 이룰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회가 큰 걸음을 떼어 나아갈 때”라고 설명했다.


생활동반자법의 주요 내용은 ▲생활동반자관계 성립‧해소하고, 효력과 그에 관한 등록·증명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 ▲생활동반자관계 증명에 관한 사무는 대법원이 관장하고, 사무 처리 권한은 가정법원장에게, 생활동반자관계 증명서 발급사무 처리에 관한 권한은 시‧읍‧면의 장에게 위임하도록 함 ▲성년이 된 사람은 당사자 간 합의에 따라 생활 동반자 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혼인 중이거나 생활동반자관계 중인 사람은 다른 생활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지 못함이 들어가 있다.

또 ▲생활동반자관계 효력은 생활동반자관계 당사자 주소지 또는 등록기준지를 관할하는 가정법원 또는 가정법원지원에 당사자 쌍방이 연서한 서면으로 신고함 ▲생활동반자관계 당사자 쌍방이 해소에 합의하거나 일방이 해소를 원하는 경우, 생활동반자관계 당사자가 사망한 경우, 생활동반자관계 당사자가 다른 사람과 혼인한 경우나 생활동반자관계 당사자 간 혼인이 성립한 경우는 생활동반자관계를 해소할 수 있도록 함 ▲생활동반자관계를 해소한 당사자 간에 재산분할청구권을 인정하고, 생활동반자관계가 해소된 경우 해소에 정당한 이유가 없을 때에는 생활동반자관계를 해소한 당사자 일방은 과실 있는 다른 일방에 대해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외에도 ▲생활동반자관계 당사자는 동거 및 부양·협조의 의무, 일상가사대리권, 가사로 인한 채무의 연대책임, 친양자 입양 및 공동 입양 등 혼인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함 ▲생활동반자관계 증명서 교부 청구, 인터넷 또는 무인 증명서 발급기에 의한 생활동반자관계 증명서 발급 및 생활 동반자 관계 증명서 기록사항 중 일부 사항을 증명하는 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도록 함 ▲생활동반자관계 당사자에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서비스, 출산휴가, 인적공제, 가정폭력방지 등 제도서 혈연‧혼인에 의한 가족과 동등한 권리와 의무 부여 등 9가지로 정리된다.

누구든 원하는 사람과 살도록
찬성 51% vs 반대 49% 팽팽

2014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시작한 것은 동거가족의 법적 권리를 재정비를 위해서다. 

진 의원은 “동거가족 구성원들이 기존의 가족관계와 마찬가지로 법률적 보호를 받도록 법안을 제정할 것”이라며 “생활동반자법의 입법 취지는 누구나 ‘삶을 함께 살아갈 특별한 한 사람’을 가질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당시 생활동반자법은 보수·종교단체의 거센 반대로 무산됐다.


지난 대선서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결혼하지 않아도 주거 및 경제생활을 함께하면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시민동반자법’을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지난 2월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서 “생활동반자제도 도입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때”라고 밝혔다.

생활동반자법이 9년 만에 다시 화두에 올랐지만, 갑론을박은 여전하다. 토마토그룹 여론조사 애플리케이션 서치통이 국민 4349명(남녀 무관)을 대상으로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온라인 여론조사를 진행한 결과, 생활동반자법 도입 찬성은 51.4%, 반대는 48.6%였다. 

찬성 이유로 ‘결혼 비용 절감 등 실용성’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25.8%로 가장 많았으며 ‘개인의 권리 보장’ 24.0%, ‘비혼‧독거 문제 등 시대 변화 반영’이라는 답변은 12.0%였다.

반대하는 이유는 ‘동성혼 합법화법 우회 법안’ 응답이 25.8%, 제도 악용 가능성 22.3%, 가족관계 혼란 등 사회적 문제 야기 14.4% 순이었다.

전통적 개념
치열한 쟁점

이번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생활동반자법의 가장 큰 반대 이유는 ‘동성혼을 합법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동성애동성혼반대국민연합(동반연), 복음법률가회 등 기독교계와 시민단체들이 생활동반자법을 반대하고 있다. 이들 500여 단체는 지난 4일 “비혼 동거와 동성 결합을 합법화하려는 생활동반자법안 발의를 규탄하며 당장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며 성명서를 냈다.

이날 이들은 생활동반자법이 결혼에 따르는 책임감을 회피하고 성인의 욕구만 앞세워 아동복리를 현저히 반하는 법이라고 비판했다.

단체는 “9년 전, 국회서 유사한 법안이 발의에 필요한 10명을 채우지 못해 무산됐다. 왜냐하면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S)과 유사한 생활동반자법은 비혼 동거와 동성 간 결합을 합법화함으로써 헌법상 양성 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제도에 정면으로 도전해 국민 정서에도 반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혼외 출생자 비율은 급증시키고 혼인율은 급감시켜 자녀 복리를 현저히 저해하는 악법이다. PACS는 프랑스서조차 비판이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용 의원이 이런 법안을 발의하는 것은 의문스럽다”고 꼬집었다.

이어 “가족의 범위를 확대한 서구는 공통적으로 혼인율 급감, 출생자 중 혼외 출생률 급증(프랑스 출생아 중 혼외 출생 비율 63.5%)이라는 가족 해체 현상을 겪고 있다. 동거 관계는 평균 18개월 정도 지속된다”며 “그 결과 혼외자들은 혼인 중 출생자보다 육체·정신적 학대, 우울증, 학교 중퇴를 경험할 가능성이 4배나 높고, 기증에 의해 출생한 자녀는 생물학적 부 또는 모와 단절된 관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들은 “생활동반자법은 배우자에게 허용되는 주택청약, 건강보험료 지급 의무 면제 등 사회복지 혜택을 동거 파트너에게도 제공하는 인센티브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부칙 2조19항은 주거기본법상 ‘신혼부부’에 생활 동반자 관계를 포함하는데, 이로 인해 결혼을 원하지 않아 동거를 선택한 커플도 신혼부부에게 제공되는 주택 특별공급 혜택을 누리는 모순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동성 결합도
부부 관계로?

또 “이를 악용해 신혼부부 특공을 노리고 동성 룸메이트끼리 허위로 ‘생활 동반자 관계’를 맺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며 생활동반자법이 주택정책을 악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우리나라는 현재 법률혼 외에 사실혼이라는 개념으로 사실상 혼인 관계를 유지하는 남녀에 대해 법률혼 가정에 준하는 보호를 하고 있다. 생활동반자법안에서 규정하는 재산분할청구권이나 결별 시 손해배상 청구권은 모두 사실혼 제도로 보호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생활동반자법안에서는 민법상 부부에게만 인정되는 의무인 동거 및 부양·협조 의무, 일상가사대리권, 가사로 인한 채무 연대책임, 친양자 입양 및 공동 입양 등 혼인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데, 이는 생활동반자법안이 사실혼으로도 인정될 수 없는 동성 결합까지 부부관계를 확장하는 목적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반대 의견이 거세지만 찬성 의견도 만만치 않다. 찬성론자들은 어차피 전통적 개념의 가족 형태는 해체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여기서 말하는 ‘전통적인 개념’은 혼인신고를 한 무보와 자녀가 같이 사는 가족을 말한다.

우리나라 법 체계는 부모와 자녀가 같이 사는 경우를 ‘정상 가족’으로 규정하고 이를 장려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혼자 사는 1인 가구와 애인·친구와 같이 사는 비친족 가구를 합하면 전체 가구의 40%에 육박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부가 새로운 형태의 가구와 가족 구성원들을 ‘규범 밖 가구’로만 규정하고 이를 국가제도의 울타리로 보호하지 않으니, 40%의 구성원 구성원은 계속 차별받고 있다.

가장 큰 차별은 주거·돌봄·출산·양육 등 대부분의 권리와 의무가 혈연과 혼인으로 맺어진 가족관계를 기준으로 형성돼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미 가족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는 현실에 발맞춰 여러 사회적 관계를 차별 없이 인정하고 사회보장제도를 안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출생률 반등을 위한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택 청약, 아동 인권 등 큰 문제
"저출생 문제 해결될 수 있는 요지”

법적 가족의 개념을 넓혀야 한다는 요구는 수년간 이어졌다. 민법 779조는 가족을 ‘혼인과 혈연으로 이뤄진 관계’로 정의한다. 이런 정의서 ▲한부모 ▲비혼 동거 ▲동성 부부 ▲주거 공동체 등 가족 범위 밖에 있는 관계는 사회보장 등 공공 서비스 보호서 배제된다.

수술과 같은 의료적 위급 상황서 가족의 범위에 속하지 않는 보호자는 역할이 제한된다. 또, 친밀한 관계여도 사망 이후 ‘장례 주관자’가 될 수 없고, 입양아에 대한 차별적 시선으로 인해 입양을 고민하게 되는 경우 등 문제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14년 진 의원 비서관으로 재직하면서 생활동반자법 마련을 주도했던 황두영 작가는 “우리 사회의 외로움이 보편적인 만큼 생활동반자법도 보편적일 것이다. 당신이 지금 외롭다면, 어쩌면 생활동반자법이 필요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황 작가는 책 <외롭지 않을 권리>(시사IN북)의 저자다. 이 책은 생활동반자법의 해설서로 불리며 생활동반자법에 대해 이성 배우자‧혈족 중심의 전통적인 ‘가족’ 외에도 다양한 관계를 제도권 안으로 포섭해 권리를 보장한다는 취지인 것을 설명한다.

황 작가는 <주간경향> 인터뷰서 “입법 영역서 일했던 사람으로서 추상적인 상상을 구체적인 법안을 통해 현실로 만드는 게 중요했다. 여러 사람이 ‘씹고 뜯을’ 수 있는 논쟁의 기준을 던져야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썼다”고 밝혔다.

이어 “혼인과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만 보호할 가치가 있다는 ‘가족제도’의 대전제가 여기저기서 균열이 나고 있다. 보수 세력은 생활동반자법 제정에 반대하지만, 생활동반자법이야말로 원초적인 보수의 가치를 담은 정책”라며 “가족끼리 책임지고 가족 안에서 안정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건 원초적인 보수적 가치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거창할 수 있지만 지난 20~30년간 신자유주의 기조가 유지되면서 사람들을 흩트려놨다. 노동시장의 변화에 따라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삶으로 가족이 붕괴됐다. 즉, 생활동반자법은 가족과 같이 살고, 장기적 삶의 전망을 꿈꾸는 데 토양이 된다. 급진적인 정책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원초적인 보수
가치 담은 정책”

동성애에 대해선 “혐오 세력 때문에 생활동반자법을 두고 사회가 오랜 기간 고민하고 주저했다. 이 법이 동성애에 국한된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용 의원은 지난 9일에도 국회 소통관서 기자회견을 열고 “21대 국회 임기가 종료되기 1년 전인 지금, 반드시 완수해야 할 개혁 입법 과제를 신속처리안건으로 정하자”며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촉구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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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