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 사태’ 일으킨 주범들 막전막후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SG증권발 폭락 사태의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된 라덕연 H 투자자문 대표는 혐의를 일부 부인하는 동시에 “진짜 배후는 따로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라 대표는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이 시세차익으로 부당이득을 취했다고 주장하고, 김 회장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둘 사이의 진실공방은 법정 다툼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코스피 상장사 5곳과 코스닥 상장사 3곳. 지난달 말, 도합 8종목의 주가가 나흘새 최대 76% 폭락했다. 대규모 매물이 쏟아져 나온 해외 증권사의 이름을 딴, 이른바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 발 폭락 사태’다. 

주가 폭락
배후 누구?

폭락 사태에 관여한 주요 인물들과 이들의 과거 행적이 점차 드러나면서 피해자 수와 피해 규모 추산치가 계속 불어났다. 수년간 주가 상승을 주도한 인물은 라덕연 H 투자자문사 대표로 알려졌다. 라 대표는 한때 직원 50명을 동원해 투자자 모집과 주식 매집에 나섰다고 밝혔다.

일당이 굴리는 자금 규모가 8000억원 이상이라는 증언에 이어 최대 2조원에 달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라 대표는 한 매체와의 대화에서 “투자자 1000여명에게 투자금을 받아 1조원 이상을, 레버리지(빚)를 포함해 2조원이 넘는 주식을 거래했다”고 직접 털어놨다. 

라 대표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이번 폭락 사태로 인한 투자 피해 금액은 최소 수천억원에서 최대 조단위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해당 8종목의 시가 총액은 고점 대비 8조2000억원 이상이 증발했다.


그는 지난달 말 “모든 계획은 내가 다 짠 것”이라고 공공연히 밝혔다. 주식 거래량이 적은 종목 10개가량을 고르고, 조금씩 꾸준히 사들이는 방식으로 투자 계획을 세웠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라 대표는 “일부 계좌를 내가 맡아 매매한 건 사실”이라며 “인가를 받지 않고 남의 계좌를 운영해준 건 잘못한 부분”이라고 시인했다. 현행법상 무허가 업체가 ‘투자 일임’에 나서는 것은 불법이다. 여기서 투자 일임이란 계좌 개설, 종목 선정, 매매 등을 모두 대행하는 투자 방식을 의미한다. 

사태 ‘주동자’격인 라 대표가 혐의 상당 부분을 인정함에 따라 진상 파악에 나선 금융·사정당국도 덩달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서울남부지검과 금융위원회가 꾸린 합동수사팀은 지난달 27일 주가조작 세력으로 의심되는 H 투자자문사를 압수수색했다. 지난 1일에는 라 대표를 비롯한 6명을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했다. 

다만, 라 대표는 주요 혐의 중 하나인 ‘통정매매’ 사실은 부인했다. 시세조종을 위해 짜고 치는 거래를 한 적 없다는 주장이다. 

라 대표는 8개 종목 모두 가치 투자를 위해 매수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다우데이타는 매해 1조원을 넘나드는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있지만 시가총액은 6000억원에 불과하다. 다른 기업 역시 부동산 등 자산 재평가가 필요해 투자를 시작했다”면서 “우리는 ‘바이 앤 홀드’ 전략으로 계속 사모았다”고 했다.

‘라 vs 김’ 진흙탕 속 폭탄 돌리기
누가 거짓말 하나…법정 싸움 비화

라 대표는 자신 역시 이번 사태로 수백억원의 손실을 떠안았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주가 폭락의 주범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는 여러 매체를 통해 ‘배후설’을 띄웠다. “일련의 (주가) 하락으로 수익이 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범인”이라는 것이다.


폭락 직전 주식을 대량 매도해 수익을 본 인물은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 김영민 서울가스 회장 등이 있다. 

김익래 회장은 지난달 20일 시간외매매로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다우데이타 140만주를 주당 4만3245원에 시간외매매 방식으로 처분해 605억원어치를 현금화했다. 이날은 폭락 나흘 전이자 2거래일 이전이다. 김영민 회장은 이보다 빠른 17일 시간외매매 방식으로 주당 45만5950원에 10만주를 매도했다. 현금화한 금액은 456억원에 달한다.

특히 라 대표는 김익래 회장을 향한 저격을 이어갔다. 라 대표는 “주가 하락으로 이익을 본 사람은 김익래 회장 외에는 아무도 없다”며 “김익래 회장이 불장난하다가 산 하나를 태워 먹은 꼴”이라고 공개 비난했다.

또 주가 상승 기간 공매도가 꾸준히 이뤄진 점도 불법성이 의심된다고 했다. 그는 “다우데이타의 경우 지난해 12월부터 700억원이 넘는 공매도 행렬이 이어졌다. 수사당국은 공매도에 필요한 증거금이 확보된 상태였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익래 회장은 지난 3일 블록딜 거래명세서를 공개하며 무차입 공매도를 진행한 사실이 없음을 입증했다.  

라 대표는 김익래 회장에 대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금융·사정당국 등에 진정서를 넣어 손해배상을 받을 계획이다. 그는 “김익래 회장이 승계 목적으로 (증여세를 낮추기 위해)다우데이타 주식을 대량 매도해서 주가 폭락을 유발했다”며 “이달 안에 자본시장법상 시장 교란 혐의로 김익래 회장을 민형사 고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장 교란
진실게임

김익래 회장과 키움증권 측 또한 라 대표를 고소하면서 양측의 소송전이 시작됐다.

김 회장과 키움증권은 지난 2일 라 대표를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로 서울경찰청에 고소했다고 밝혔다. 고소인 김익래 회장과 키움증권은 고소장에 “해당 주식 매도는 관련 법령에 따라 적법하게 진행됐고, 관련 공시도 모두 이행했다”고 적었다.

이어 “(고소인이) 주가조작세력과 연계된 사실은 전혀 없고 피고소인 라덕연도 어떠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라덕연은 자신의 책임을 희석하기 위해 마치 김익래 회장이 위법행위를 한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며 “나아가 모종의 세력과 연계해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위 주식의 가격을 폭락시켰다는 것은 그룹 총수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전혀 근거 없는 모함”이라고 반박했다.

김익래 회장이 키움증권을 동원해 주가를 움직였다는 주장에 관해선 불가능한 일이라고 못 박았다.


이들은 “해당 주식 가격을 하락시키기 위해 키움증권이 인위적으로 반대매매를 실행했다는 취지의 라덕연 발언은 실시간으로 자동 실행되는 CFD(차액결제거래) 반대매매의 구조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고, 악의적 의도를 가지고 교묘하게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며 “키움증권이 주가조작을 하거나 주가조작 세력과 연계됐다는 허위 사실을 유포함으로써 회사의 명예를 훼손하고 신용을 심각하게 실추시켰다”고 주장했다.

키움증권 측은 이후로도 이번 사태에 관한 근거 없는 허위 사실 유포와 모함이 이어지면 엄정하게 대응할 계획이라고 공지했다.

양측 주장이 확연히 엇갈리는 상황이지만, 정확한 사실관계가 밝혀지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양측 모두 주장의 신빙성에 흠집을 낼만한 과거 행적을 지적받았다.

라 대표는 과거 거짓 이력을 내세워 투자자를 끌어모았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라 대표는 2019년 3월 ‘돈으로 돈을 버는 자산주’라는 주제로 투자 세미나를 열었다. 그는 강사 소개에서 자신이 동국대 정보관리학과(현 경영정보학과)를 졸업해 국민대 대학원 경영정보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고 밝혔다. 

수상한
과거 이력

또 주요 경력으로 ‘전 안철수연구소 근무’ ‘<한국경제TV> 패널’을 내세웠다. 하지만 안랩 측은 자체 시스템에 라 대표의 근무 이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한국경제TV> 역시 “라 대표는 6∼7년 전 1∼2회 투자 패널로 나왔을 뿐”이라고 밝혔다. 라 대표가 투자 세미나에서 자신을 ‘주식·선물·옵션 증권방송 경력 10년’이라고 소개한 것과는 배치되는 대목이다.


김익래 회장은 과거 수상한 주식거래 흐름이 재조명되면서 의심을 받고 있다. 지난 1일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김익래 회장은 지난해 6월23일부터 9월26일까지 총 스물한 차례에 걸쳐 다우데이타 주식 3만4855주를 집중 매집했다. 2008년 4월22일 이후 약 14년 만에 다우데이타 주식 매입에 나선 것이다.

이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 다우데이타 주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부터 2월 사이 주가가 4배가량 급등한 것이다. 1만원 초반 선을 유지하던 주가는 한 번 5만원 선을 넘긴 이후로 5만원 안팎을 오갔다. 그러던 중 이번 사태가 닥치면서 주가는 1만원 중반대까지 내려앉았다.

의문이 남는 것은 김익래 회장의 주식 매입 시점과 그 배경이다. 주가 상승 직전까지 주식을 집중 매집하던 김익래 회장은 정작 주가가 확연한 상승세를 타는 와중에는 주식을 사지 않았다. 그리고 고점이 끝나는 정확한 시점에 대규모 처분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시세 차익을 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익래 회장이 지난해 주식 매입에 나선 이유는 추측하기 어렵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뚜렷한 동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너 일가의 통상적인 매입 사유인 경영권 방어와 시세차익 기대 모두 해당 사항이 없었다. 매입 직전 김익래 회장은 자신 명의로 지분 26.57%을 소유한 상태였다.

둘 다 석연찮은데…과거 행보 논란 
금융·사정당국 즉각 진상조사 착수

오너 일가의 지분을 합치면 67.05%로, 지배구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별다른 위협을 느낄만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게 금융업계 중론이다. 

지난해 이전까지 다우데이타 주가는 몇 년 동안 1만원대에서 횡보했다. 급히 긁어모을 정도로 시세차익이 기대되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경영지표도 악화된 시점이었다. 지난해 6월 말 나온 다우데이타 반기보고서를 보면 당시 영업이익은 4157억원이다. 이는 전년 동기 기록한 6983억원 대비 40.5% 급감한 수준이다.

결국 김익래 회장 측은 금융당국의 집중 점검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 2일 국회 정무위원회 비공개 간담회서 SG증권발 폭락 사태에 대한 현안 보고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금감원의 CFD 관련된 주요 증권사들에 대한 검사 방침 또한 보고됐다. 관련 검사 대상에는 ▲개인 전문투자자 여건 및 규정 준수 ▲고객 주문 정보의 이용 ▲내부 임직원의 연루 여부 등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금감원이 첫 검사 대상으로 키움증권을 선택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김익래 회장의 주식거래 배경을 살피기 위해서다. 금감원은 검사 과정서 임직원의 CFD 거래 관련 연루 여부를 따져볼 방침이다. 김익래 회장이 사전정보를 알고 매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김익래 회장이 키움증권 등기이사인 것과 연결될 수 있는지도 따져볼 예정이다.

검찰은 이번 사태서 관련 기업의 대주주들이 개입됐는지도 확인해보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김익래 회장뿐만 아니라 관련 기업의 대주주들이 소환조사를 받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막대한 
시세차익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던 김익래 회장은 지난 4일 저녁, 돌연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기자회견서 “높은 도덕적 책임이 요구되는 기업인으로서 한 그룹의 회장으로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점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수사기관의 조사에 적극 협조할 의지를 밝혔다. 그러면서 키움증권 이사회 의장직서 사퇴하고, 다우데이타 주식 매각대금은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도 전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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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위태하다. 끝나지 않는 내부 총질에 “이럴 바엔 해산하라”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은 만감이 교차한다.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자니 보수 결집이, 그대로 놔두자니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어게인(Again)’과 전한길씨의 싸움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내란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내란 수괴와 45명의 적 국민의힘 해산 요구는 지난 6·3 조기 대선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서부지검 폭동 사태와 헤어 나오지 못한 탄핵의 강 등 내란 사태가 지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정당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 전 당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에 동조하며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키운 씻을 수 없는 큰 책임이 있다”며 제명을 촉구했다. 윤 전 대통령을 수호한 45명의 의원을 ‘인간 방패’라고 꼬집으며 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호명한 45명은 국민의힘 ▲강대식 ▲강명구 ▲강민국 ▲강선영 ▲강승규 ▲구자근 ▲권영진 ▲김기현 ▲김민전 ▲김석기 ▲김선교 ▲김승수 ▲김위상 ▲김은혜 ▲김장겸 ▲김정재 ▲김종양 ▲나경원 ▲박대출 ▲박성민 ▲박성훈 ▲박준태 ▲박충권 ▲서일준 ▲서천호 ▲송언석 ▲엄태영 ▲유상범 ▲윤상현 ▲이달희 ▲이상휘 ▲이만희 ▲이인선 ▲이종욱 ▲이철규 ▲임이자 ▲임종득 ▲장동혁 ▲조배숙 ▲조은희 ▲조지연 ▲정동만 ▲정점식 ▲최수진 ▲최은석 의원이며 이들이 내란 정당의 주축이라고 봤다. 대선후보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새벽을 틈타 ‘후보 바꿔치기’를 시도하던 때에는 보수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당원이 뽑은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전 국무총리던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를 입당시켜 당의 대선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밤사이 일어난 촌극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니들이 저지른 후보 강제 교체 사건은 직무 강요죄로 반민주 행위고 정당해산 사유도 될 수 있다”며 “기소되면 정계(에서) 강제 퇴출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고 윤통(윤석열 전 대통령)과 합작해 그런 짓을 했나”라며 “그 짓에 가담한 니들과 한덕수 추대 그룹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국민의힘 복당 등에 대해 질문하자 “해산될 정당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해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체된 사례를 예로 들며 해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4년 12월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추종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며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바 있다. 정당해산의 주요 원인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었이다. 알면서 잡은 썩은 동아줄…속내 복잡 남은 건 ‘내란 정당해산’ 심판대뿐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에 대해 “통진당의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 세력인 RO(지하 혁명 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실행되지 않은 예비 음모 혐의와 내란 선동만으로 통진당이 해산됐는데, 내란을 실행한 자를 옹호한 국민의힘의 죄는 통진당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했을 뿐더러 극우 단체와 함께 저항권 행사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의원이던 당시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최전방에서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는 당 대표 직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체는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건에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라는 요건이 추가돼 해산심판 주체가 ‘국회’를 포함하게 된다. 당시 정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의결을 통해 정당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면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국민의힘 정당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파면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친윤(친 윤석열)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전히 계엄과 내란에 대해서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 대표가 정당해산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정당해산을 하려면 12·3 내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적어도 1심 판결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뼈아픈 공포탄?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민주당발 정당해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풍파를 겪었던 보수가 재건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근 전 정부와 국민의힘을 옥죄는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자 정당해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통일교와 자당 간의 연결고리를 좇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국민의힘과 특정 종교를 억지로 결부시켜 정당해산의 빌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정치 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 대변인 역시 “여당 대표가 정당해산을 입에 올리자 (특검이) 곧장 달려든 모습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행동대장’ ‘'친위부대’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동안 “우리도 자칫 통합진보당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법 계엄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헌정사 최악의 법치 유린”이라며 “그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이 대표가 된다면, 그 즉시 우리 당은 ‘내란 정당’으로 낙인 찍히고 해산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은 10번 100번도 해산해야 한다지만 막상 야당에 칼을 겨누자니 여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특검이 국민의힘을 포위하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 흩어졌던 보수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돼 단체 농성에 나서는 등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해산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통합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화는커녕 당 대표끼리 악수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해산 청구를 했다가는 여당이 의석수로 야당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란 분석이다. 서로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 구조도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어도 국민의힘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한 국민은 이들을 야당이 아닌 내란 세력의 현재 진행형으로 볼 것”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 정치는 반사이익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정당해산으로 국민의힘이 사라진다면 과연 민주당에 득이겠느냐”라고 의아해했다. 뿔뿔이 흩어질까 이어 “지금 민주당의 모든 정책, 개혁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원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내란 세력이 사라지면 민주당의 날카로움이 돋보이지 않는, 오히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보다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야당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정당해산이 말로만 그쳐도 문제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강성 당원들은 시원하게 개혁을 외치고 날카롭게 국민의힘을 찌른 정 대표를 당의 수장으로 세웠다. 정당해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 대표가 막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실책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떠안게 된다. 국민의힘 스스로 분열의 길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친윤·친한(친 한동훈),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으로 단단하게 굳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이 자진해서 해체하는 방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기회로 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결과로 당이 쪼개져 자진 해산한다면 민주당은 정당 해체 심판을 청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지지율 역풍과 보수 결집 등의 고민도 해결된다. 장동혁 당시 대표 후보가 정당해산 프레임을 같은 편에 덧씌우면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조경태 후보를 겨냥한 듯 “소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당론을 어기고 급기야 탄핵까지 찬성했던 분들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민주당 대표)와 짬짜미해서 당을 해산시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를 하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핵에 찬성한 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강력한 한 수를 던진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분당이나 정당해산을 피하려면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하라”고 지적했다. 상처만 남은 전대 이대로 알아서 해산?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윤석열 재입당 공약과 전한길의 선동 사태는 친길(친 전한길)파와 반길(반 전한길)파의 분당 예고편 같다. 진정 분당과 정당해산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전한길과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하길 권고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내부 총질은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토론회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반탄파(탄핵 반대)’인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파(탄핵 찬성)’인 안철수·조경태 후보 간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기도 전 스스로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 2차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와 조 후보는 비상계엄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될 만큼의 불법성이 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받아들이지만 그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후보는 “강성 지지층인 윤 어게인을 의식한 발언”이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윤주주의’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 단골 주제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화두에 올랐다. 장 후보는 내년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만일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 대표와 전씨 중 누구를 택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분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며 전씨를 택했다. 반면 조 후보는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게 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 공천할 후보로 전씨를 선택한 것”이라며 “전씨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분이고 그분이야말로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마지막까지 비판했다. 당 대표 선출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만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치열한 계파 싸움이 예고되면서 당의 앞날이 불안정하다는 평이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특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당해산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든지 정당해산이라는 카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쪽도 진퇴양난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정당해산에 대해 가능성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빈말이라도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당 간판만 갈아 치워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먹히는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지지고 볶다 자진 해산하나, 민주당 손에 이끌려 강제 해산하나 불명예스럽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것’으로 뭉친 국힘 서로를 거칠게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명부를 놓고 결집했다. 김건희 특검팀이 ‘2022년 통일교 입당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하나로 뭉쳐 이를 저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과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조를 편성해 24시간 중앙당사에서 비상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 특검팀은 국민의힘과 절충점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특검팀의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