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 사태’ 일으킨 주범들 막전막후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SG증권발 폭락 사태의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된 라덕연 H 투자자문 대표는 혐의를 일부 부인하는 동시에 “진짜 배후는 따로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라 대표는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이 시세차익으로 부당이득을 취했다고 주장하고, 김 회장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둘 사이의 진실공방은 법정 다툼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코스피 상장사 5곳과 코스닥 상장사 3곳. 지난달 말, 도합 8종목의 주가가 나흘새 최대 76% 폭락했다. 대규모 매물이 쏟아져 나온 해외 증권사의 이름을 딴, 이른바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 발 폭락 사태’다. 

주가 폭락
배후 누구?

폭락 사태에 관여한 주요 인물들과 이들의 과거 행적이 점차 드러나면서 피해자 수와 피해 규모 추산치가 계속 불어났다. 수년간 주가 상승을 주도한 인물은 라덕연 H 투자자문사 대표로 알려졌다. 라 대표는 한때 직원 50명을 동원해 투자자 모집과 주식 매집에 나섰다고 밝혔다.

일당이 굴리는 자금 규모가 8000억원 이상이라는 증언에 이어 최대 2조원에 달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라 대표는 한 매체와의 대화에서 “투자자 1000여명에게 투자금을 받아 1조원 이상을, 레버리지(빚)를 포함해 2조원이 넘는 주식을 거래했다”고 직접 털어놨다. 

라 대표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이번 폭락 사태로 인한 투자 피해 금액은 최소 수천억원에서 최대 조단위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해당 8종목의 시가 총액은 고점 대비 8조2000억원 이상이 증발했다.


그는 지난달 말 “모든 계획은 내가 다 짠 것”이라고 공공연히 밝혔다. 주식 거래량이 적은 종목 10개가량을 고르고, 조금씩 꾸준히 사들이는 방식으로 투자 계획을 세웠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라 대표는 “일부 계좌를 내가 맡아 매매한 건 사실”이라며 “인가를 받지 않고 남의 계좌를 운영해준 건 잘못한 부분”이라고 시인했다. 현행법상 무허가 업체가 ‘투자 일임’에 나서는 것은 불법이다. 여기서 투자 일임이란 계좌 개설, 종목 선정, 매매 등을 모두 대행하는 투자 방식을 의미한다. 

사태 ‘주동자’격인 라 대표가 혐의 상당 부분을 인정함에 따라 진상 파악에 나선 금융·사정당국도 덩달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서울남부지검과 금융위원회가 꾸린 합동수사팀은 지난달 27일 주가조작 세력으로 의심되는 H 투자자문사를 압수수색했다. 지난 1일에는 라 대표를 비롯한 6명을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했다. 

다만, 라 대표는 주요 혐의 중 하나인 ‘통정매매’ 사실은 부인했다. 시세조종을 위해 짜고 치는 거래를 한 적 없다는 주장이다. 

라 대표는 8개 종목 모두 가치 투자를 위해 매수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다우데이타는 매해 1조원을 넘나드는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있지만 시가총액은 6000억원에 불과하다. 다른 기업 역시 부동산 등 자산 재평가가 필요해 투자를 시작했다”면서 “우리는 ‘바이 앤 홀드’ 전략으로 계속 사모았다”고 했다.

‘라 vs 김’ 진흙탕 속 폭탄 돌리기
누가 거짓말 하나…법정 싸움 비화

라 대표는 자신 역시 이번 사태로 수백억원의 손실을 떠안았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주가 폭락의 주범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는 여러 매체를 통해 ‘배후설’을 띄웠다. “일련의 (주가) 하락으로 수익이 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범인”이라는 것이다.


폭락 직전 주식을 대량 매도해 수익을 본 인물은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 김영민 서울가스 회장 등이 있다. 

김익래 회장은 지난달 20일 시간외매매로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다우데이타 140만주를 주당 4만3245원에 시간외매매 방식으로 처분해 605억원어치를 현금화했다. 이날은 폭락 나흘 전이자 2거래일 이전이다. 김영민 회장은 이보다 빠른 17일 시간외매매 방식으로 주당 45만5950원에 10만주를 매도했다. 현금화한 금액은 456억원에 달한다.

특히 라 대표는 김익래 회장을 향한 저격을 이어갔다. 라 대표는 “주가 하락으로 이익을 본 사람은 김익래 회장 외에는 아무도 없다”며 “김익래 회장이 불장난하다가 산 하나를 태워 먹은 꼴”이라고 공개 비난했다.

또 주가 상승 기간 공매도가 꾸준히 이뤄진 점도 불법성이 의심된다고 했다. 그는 “다우데이타의 경우 지난해 12월부터 700억원이 넘는 공매도 행렬이 이어졌다. 수사당국은 공매도에 필요한 증거금이 확보된 상태였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익래 회장은 지난 3일 블록딜 거래명세서를 공개하며 무차입 공매도를 진행한 사실이 없음을 입증했다.  

라 대표는 김익래 회장에 대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금융·사정당국 등에 진정서를 넣어 손해배상을 받을 계획이다. 그는 “김익래 회장이 승계 목적으로 (증여세를 낮추기 위해)다우데이타 주식을 대량 매도해서 주가 폭락을 유발했다”며 “이달 안에 자본시장법상 시장 교란 혐의로 김익래 회장을 민형사 고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장 교란
진실게임

김익래 회장과 키움증권 측 또한 라 대표를 고소하면서 양측의 소송전이 시작됐다.

김 회장과 키움증권은 지난 2일 라 대표를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로 서울경찰청에 고소했다고 밝혔다. 고소인 김익래 회장과 키움증권은 고소장에 “해당 주식 매도는 관련 법령에 따라 적법하게 진행됐고, 관련 공시도 모두 이행했다”고 적었다.

이어 “(고소인이) 주가조작세력과 연계된 사실은 전혀 없고 피고소인 라덕연도 어떠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라덕연은 자신의 책임을 희석하기 위해 마치 김익래 회장이 위법행위를 한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며 “나아가 모종의 세력과 연계해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위 주식의 가격을 폭락시켰다는 것은 그룹 총수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전혀 근거 없는 모함”이라고 반박했다.

김익래 회장이 키움증권을 동원해 주가를 움직였다는 주장에 관해선 불가능한 일이라고 못 박았다.


이들은 “해당 주식 가격을 하락시키기 위해 키움증권이 인위적으로 반대매매를 실행했다는 취지의 라덕연 발언은 실시간으로 자동 실행되는 CFD(차액결제거래) 반대매매의 구조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고, 악의적 의도를 가지고 교묘하게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며 “키움증권이 주가조작을 하거나 주가조작 세력과 연계됐다는 허위 사실을 유포함으로써 회사의 명예를 훼손하고 신용을 심각하게 실추시켰다”고 주장했다.

키움증권 측은 이후로도 이번 사태에 관한 근거 없는 허위 사실 유포와 모함이 이어지면 엄정하게 대응할 계획이라고 공지했다.

양측 주장이 확연히 엇갈리는 상황이지만, 정확한 사실관계가 밝혀지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양측 모두 주장의 신빙성에 흠집을 낼만한 과거 행적을 지적받았다.

라 대표는 과거 거짓 이력을 내세워 투자자를 끌어모았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라 대표는 2019년 3월 ‘돈으로 돈을 버는 자산주’라는 주제로 투자 세미나를 열었다. 그는 강사 소개에서 자신이 동국대 정보관리학과(현 경영정보학과)를 졸업해 국민대 대학원 경영정보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고 밝혔다. 

수상한
과거 이력

또 주요 경력으로 ‘전 안철수연구소 근무’ ‘<한국경제TV> 패널’을 내세웠다. 하지만 안랩 측은 자체 시스템에 라 대표의 근무 이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한국경제TV> 역시 “라 대표는 6∼7년 전 1∼2회 투자 패널로 나왔을 뿐”이라고 밝혔다. 라 대표가 투자 세미나에서 자신을 ‘주식·선물·옵션 증권방송 경력 10년’이라고 소개한 것과는 배치되는 대목이다.


김익래 회장은 과거 수상한 주식거래 흐름이 재조명되면서 의심을 받고 있다. 지난 1일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김익래 회장은 지난해 6월23일부터 9월26일까지 총 스물한 차례에 걸쳐 다우데이타 주식 3만4855주를 집중 매집했다. 2008년 4월22일 이후 약 14년 만에 다우데이타 주식 매입에 나선 것이다.

이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 다우데이타 주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부터 2월 사이 주가가 4배가량 급등한 것이다. 1만원 초반 선을 유지하던 주가는 한 번 5만원 선을 넘긴 이후로 5만원 안팎을 오갔다. 그러던 중 이번 사태가 닥치면서 주가는 1만원 중반대까지 내려앉았다.

의문이 남는 것은 김익래 회장의 주식 매입 시점과 그 배경이다. 주가 상승 직전까지 주식을 집중 매집하던 김익래 회장은 정작 주가가 확연한 상승세를 타는 와중에는 주식을 사지 않았다. 그리고 고점이 끝나는 정확한 시점에 대규모 처분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시세 차익을 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익래 회장이 지난해 주식 매입에 나선 이유는 추측하기 어렵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뚜렷한 동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너 일가의 통상적인 매입 사유인 경영권 방어와 시세차익 기대 모두 해당 사항이 없었다. 매입 직전 김익래 회장은 자신 명의로 지분 26.57%을 소유한 상태였다.

둘 다 석연찮은데…과거 행보 논란 
금융·사정당국 즉각 진상조사 착수

오너 일가의 지분을 합치면 67.05%로, 지배구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별다른 위협을 느낄만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게 금융업계 중론이다. 

지난해 이전까지 다우데이타 주가는 몇 년 동안 1만원대에서 횡보했다. 급히 긁어모을 정도로 시세차익이 기대되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경영지표도 악화된 시점이었다. 지난해 6월 말 나온 다우데이타 반기보고서를 보면 당시 영업이익은 4157억원이다. 이는 전년 동기 기록한 6983억원 대비 40.5% 급감한 수준이다.

결국 김익래 회장 측은 금융당국의 집중 점검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 2일 국회 정무위원회 비공개 간담회서 SG증권발 폭락 사태에 대한 현안 보고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금감원의 CFD 관련된 주요 증권사들에 대한 검사 방침 또한 보고됐다. 관련 검사 대상에는 ▲개인 전문투자자 여건 및 규정 준수 ▲고객 주문 정보의 이용 ▲내부 임직원의 연루 여부 등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금감원이 첫 검사 대상으로 키움증권을 선택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김익래 회장의 주식거래 배경을 살피기 위해서다. 금감원은 검사 과정서 임직원의 CFD 거래 관련 연루 여부를 따져볼 방침이다. 김익래 회장이 사전정보를 알고 매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김익래 회장이 키움증권 등기이사인 것과 연결될 수 있는지도 따져볼 예정이다.

검찰은 이번 사태서 관련 기업의 대주주들이 개입됐는지도 확인해보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김익래 회장뿐만 아니라 관련 기업의 대주주들이 소환조사를 받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막대한 
시세차익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던 김익래 회장은 지난 4일 저녁, 돌연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기자회견서 “높은 도덕적 책임이 요구되는 기업인으로서 한 그룹의 회장으로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점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수사기관의 조사에 적극 협조할 의지를 밝혔다. 그러면서 키움증권 이사회 의장직서 사퇴하고, 다우데이타 주식 매각대금은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도 전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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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