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는 ‘성인 실종’의 민낯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5.08 14:31:52
  • 호수 1426호
  • 댓글 0개

법에 막히는 가족 찾기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모여 있어서 각종 행사가 많다. 그렇기에 더 외로운 사람들이 있다. 바로 가족을 잃은 사람이다. 이들이 가족을 찾기 위해 노력해도 부딪히는 것이 있다. 바로 ‘성인’이라는 점이다. 또 해외로 입양된 사람이 가족을 찾기 위해 한국에 오면 ‘개인정보’의 벽에 부딪힌다.

“사람을 찾습니다. 사례금 있습니다. 20대 남성(여성)을 찾고 있습니다.” 이처럼 실종 전단지에는 실종된 사람의 이름, 실종 일시, 실종 장소, 신체 특징, 실종 당시의 복장, 실종 경위 등이 자세히 적혀 있다. 보통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 수단으로, 자녀를 찾는 부모가 나눠주는 경우가 많다. SNS에도 ▲부모가 양육비를 주지 않는다 ▲그리운 사람을 찾는다 ▲사기꾼을 찾는다 등의 글이 종종 올라온다.  

연기처럼 
증발하다

반대의 상황도 목격된다. 해외로 입양된 경우다. 실종 아동이었던 김씨는 10살에 네덜란드로 입양됐다. 친가족이 누군지 궁금해 한국을 찾았다. 하지만 가족을 찾을 수 없었다.

김씨는 “내 이름은 Suzy Batteau다. 한국 이름은 ‘김숙희’다. 1975년이나 1977년 5월13일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나는 1983년 5월13일 오후 2시경 경남 진주시 ○○동 길가에서 경찰에 의해 발견됐으며, 뇌성마비로 다리 한쪽이 불편하지만 일상생활을 하는 데 불편한 것은 없다”고 밝혔다.

위 두 가지 상황은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바로 ‘찾고 있는 사람’이 성인이면 실종 이후 경찰에 신고해도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지난 2월3일 경찰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한 해에 무려 성인 6만명의 실종신고가 접수되고 있다. 신고 시 ▲18세 미만 아동 ▲지적·자폐성·정신장애인 ▲치매 환자는 즉각적으로 경찰 수사가 이뤄지지만, 성인일 경우는 사례별로 대응에 한계가 존재한다. 

이 같은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성인 실종자에 대한 적극적인 법적 조치를 가능하게 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해당 법안은 더불어민주당 임호선 의원이 지난해 12월9일 단순 가출인으로 관리됐던 실종 성인에 대한 개념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개인 위치정보 및 이동경로 정보 조회 등 수색을 위한 적극적인 법적 조치를 신속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실종 성인의 발견 및 보호에 관한 법률안’이다.

법안이 통과됐다고 하더라도 실종 성인이 범죄에 연루됐거나 자살 징후가 포착되지 않으면 위치정보 조회 등 수색을 위한 조치가 불가능하다.

사라지는 19세 이상 1년에 6만명
사회복지사 요청으로 극적 상봉도

연보에 따르면, 18세 이상 성인에 대한 실종신고인 가출인 신고 접수는 2019년 7만5432건, 2020년 6만7612건, 2021년 6만6259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미해제 건수는 2019년 492건, 2020년 645건, 2021년 931건으로 매년 상승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접수된 ‘실종아동 등’에 대한 신고 건수의 1.71배다. 18세 미만 아동, 지적‧자폐성‧정신 장애인, 치매환자를 찾는 실종신고 건수는 2019년 4만2390건, 2020년 3만8496건, 2021년 4만1122건으로 집계됐다.


경찰에 실종신고가 접수된 성인 가운데 매년 1000여명이 숨진 채 발견된다. 최근 5년간 사망한 가출인은 2018년 1773명, 2019년 1695명, 2020년 1710명, 2021년 1445명, 지난해 1200명으로 집계됐다. 이 통계의 가출인에는 가출, 실종, 극단적 선택 의심, 연락두절 등이 모두 포함됐다.

A씨는 ‘동생이 가출한 지 3개월이 다 되어간다’는 글을 온라인에 올려 실종신고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최근에 엄마가 돌아가셨고, 동생이 대기업에 취직한 후 잘다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계속 쉬었다. 실업급여를 받고 쉬던 중 동생이 화장품 다단계를 시작했고, 내가 당장 그만두라고 해서 싸웠다”고 운을 뗐다. 

이어 “동생과 함께 생활비를 내고 있었는데, 일을 그만둔 동생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나도, 동생도 생활비 때문에 제대로 돈을 써본 적 없는데, 동생은 대기업을 그만두고 더 힘들었을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 동생이 가출한 지 3개월이 됐다”고 말했다.

A씨는 “지금 동생의 카드 연체 금액이 700만원을 넘었다. 카드 담당자한테 전화해보니 본인이 전화하는 거 아니면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다고 하더라. 우리가 원래 알고 있던 핸드폰 번호가 맞는지 사정해서 물어봤더니, 핸드폰 번호가 바뀐 것 같다고 알려줬다”며 “동생은 자기가 잘못해서 가출했고, 이렇게 집에 피해를 주고 있다. 그런데 경찰 신고조차 하지 못한다”고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어른이
집 나가?

한편으로는 이런 방식으로라도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했지만, 경찰에 신고해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결론 내린 그는 흥신소를 이용해 동생을 찾아야 하는지 고민했다.

결국 동생의 빚을 갚고 있는 것은 A씨고 동생 카드를 연체해 정지시킬 경우, 극단적 선택을 할까 두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실종신고 이후 실종자가 숨진 채 발견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지난해 12월, 60대 택시기사인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며 아들이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아들은 경찰에 “아버지가 6일째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30분 전에 카톡을 했는데 다른 사람인 것 같다”고 신고했다.

당시 아버지를 찾은 것은 경찰이 아니었다. 그날 오전 11시22분 “경기도 파주시 B씨의 아파트 옷장 안에 죽은 사람이 있다”는 112 신고가 접수됐다. 신원 파악에 나선 경찰은 아파트서 숨진 채 발견된 사람이 실종신고된 택시기사인 것으로 확인했다.

실종신고된 70대 남성이 사망 처리됐다가 무려 47년 만에 가족을 찾은 경우도 있다. 정신질환을 앓던 그는 자신의 생년월일과 형제들의 이름, 졸업한 초등학교까지 기억하고 있었지만, 장기간 무연고자 신분으로 기도원과 사찰, 정신병원을 전전하며 살았다.

지난해 12월13일 대구지검에 따르면 충북의 한 지자체 사회복지과 담당자가 “70대 남성의 정확한 신원을 밝혀달라”며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대구지검에는 충북지역 검찰청에 없는 무적자의 호적 확인을 상시로 처리하는 ‘공익 대표 전담팀’이 있었다.

죽어서
만나다


70대 남성은 정신병원에 입원 중이었지만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하루빨리 요양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사회복지 담당자가 행정 전산망으로 여러 차례 지문을 조회해도 일치하는 인물이 없어, 환자 입원에 필요한 장기요양등급을 신청할 수 없었다.

해당 남성은 조현병을 앓고 있었고 말도 횡설수설했다. 전담팀은 경찰청 실종 수사팀과 함께 남성이 언급한 초등학교에 연락했고, 생활기록부의 존재를 확인했다. 학교 담당자의 도움으로 동창생들의 연락처를 확보한 전담팀은 그가 살던 마을까지 확인했고, 학교 소재 지역의 군청을 통해 마을 이장과 연락이 닿았다. 이 남성은 마을에 머물고 있던 그의 친척들과 통화하면서 마침내 가족을 찾았다.

전담팀에 따르면 70대 남성은 오래전부터 정신질환을 앓았고, 1975년 4월19일 27세에 집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아 실종신고됐다. 이후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되면서 1996년 법원서 실종 선고된 뒤 사망으로 처리됐다. 가족이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지만 여러 가지 요인으로 만나지 못한 것이다.

가장 힘든 경우는 한국서 해외로 입양간 뒤 다시 가족을 찾는 것이다. 이들은 가족을 찾기 위해 한국으로 오지만, 관계기관들의 비협조로 대부분 가족 찾기를 포기한다.

지난 3월, 46년 만에 한국을 찾은 C씨와 D씨는 아무런 소득도 없이 다시 유럽행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야 했다. 남매인 두 사람은 지난 1977년 유럽으로 입양됐다. 원래 가족을 찾기 위해 한국에 왔지만, 어떠한 정보도 찾을 수 없었다. 

“가족을 찾았다”는 연락은 출국 하루 전날에 날아들었다. 그것도 입양 기관이 아닌 경찰로부터 전화가 왔던 것이었고 그렇게 친형제와 상봉했다. 


가족 찾으러 한국 왔지만…
“개인정보라 알려줄 수 없다”

두 사람은 입양기관이 가족들을 만날 수 있도록 돕기는커녕 방해를 했다고 주장한다. C씨는 “해당 기관에 가족 정보를 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지만, 개인정보라 줄 수 없다며 아동권리보장원에 연락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아동권리보장원은 두 사람의 부모가 이미 사망했고, 형제들은 한국에 거주 중이라고 확인해줬다. 

한국 가족들이 이들을 찾지 않은 것도 아니다. C씨는 “오빠도 해당 기관에 전화번호와 주민등록번호를 남겨놓고 우리가 혹시 찾아오면 꼭 연락달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기관에선 어떤 연락도 하지 않았다. 만나지 못하게 방해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입양 관련 서류조차 정확하지 않았다. 1977년 입양 당시 유럽 입양기관서 받은 서류엔 부산서 태어난 고아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해당 기관서 받은 입양 관련 서류에는 다른 주소지가 적혀 있었고 부모 성명도 기재돼있었다. C씨는 “기관 담당자들은 당시에 자신들이 근무하지 않아서 모른다고 책임을 회피했다”고 주장했다.

가족을 찾는 일이 쉽진 않지만, 기적이 일어날 정도로 어려워서도 안 된다. 하지만 현실에선 성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실종 시 경찰 신고를 할 수 없다. 게다가 ‘개인정보’여서 가족을 찾을 수 있는 핵심적인 정보도 제공받기 어렵다. 

반론도 존재한다. 성인에게는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고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데 이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학부 교수는 “성인에게는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어 집을 떠날 수 있다. 사생활의 자유 역시 있는데 가족들이 원한다고 위치 추적 등을 사용하는 건 위헌 요소가 다분하다”고 밝혔다.

경찰이 강제 실종 여부를 판단해 선제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대안도 제시됐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성인 실종 사건의 데이터를 축적한 뒤 그 데이터 분석을 통해 강제실종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강제 실종이라고 판단될 경우 경찰이 보다 쉽게 위치정보를 파악하는 등 융통성을 부여해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산 넘어 산
부모 찾기

입양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해외 입양을 줄이고 국내 입양을 늘려야 한다. 윤석열정부는 국내 입양 활성화 기본계획을 2026년에 수립하기로 했다. 입양 시 육아휴직을 제공하는 등 휴가·휴직제도를 개선하는 내용도 담겼다. 또 모든 입양기록을 아동권리보장원으로 이관해 입양인의 뿌리 찾기도 지원하기로 했다.

<alsw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춘천 초등생 실종 피의자
횡성 여중생 유인도

강원도 춘천 소재의 한 초등학교 여학생을 꾀어 충북 충주까지 데리고 간 혐의로 구속 기소된 50대 남성이 지난해에도 비슷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3월12일 경찰에 따르면 실종아동법 위반 및 미성년자 유인‧감금 혐의를 받는 김모씨는 지난해 11월에도 비슷한 범행을 저질렀다. 

강원 횡성에 사는 중학생 A양에게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접근한 뒤 자신이 사는 충주로 유인한 것이다.

당시 경찰은 “막차 타고 집에 온다는 아이가 안 들어온다”는 가족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했고 김씨의 충주 거주지에서 A양을 찾아냈다.

경찰은 김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해 실종아동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사했지만 일부 혐의가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아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송치했다.

실종아동법에 따르면 누구든 정당한 사유 없이 실종 아동(18세 미만)을 경찰관서장에게 신고하지 않은 채 보호할 수 없다. 이를 어길 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김씨는 지난 2월10일 SNS로 춘천에 사는 초등생 A양에게 “맛있는 밥을 사주겠다” “잠을 재워주겠다”며 접근한 뒤 다음 날 자신의 거처인 충주 소태면 창고 건물로 데려갔다. 

A양은 지난 2월14일 밤 어머니에게 메신저를 통해 “충주에 있다”고 알렸고, 경찰이 통신영장을 발부받아 A양의 위치를 파악했다.

경찰은 당시 붙잡은 김씨를 지난 2월24일 구속해 검찰로 송치했다. <민>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브레이크 없는 민주당 막전막후

브레이크 없는 민주당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윤석열정부를 겨냥한 더불어민주당의 공격이 거침없다. “정치 보복은 없다”고 단언한 이재명 대통령이기에 국민의힘에서는 크게 반발했다. 민주당은 ‘정치 보복’이 아닌 ‘내란 종식’이라고 받아쳤다. 사분오열로 흩어진 국민의힘이지만, 대통령 취임 후 한 달도 되지 않은 이재명정부를 공격하는 때에는 손발이 척척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주도로 ‘채상병 특검법·내란 특검법·김건희 특검법’인 이른바 ‘3대 특검’이 가결됐다. 이후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이를 의결함으로써 수사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지난 3년 동안 이어진 가결-거부권 무한 굴레가 이 대통령 취임 후 속전속결로 해결됐다. 허니문 없이 본게임 돌입 3대 특검은 모두 윤석열정부를 겨냥하고 있다. 해당 법안들은 본회의서 재석 198명 중 찬성 194표, 반대 3표, 기권 1표로 가결됐다. 내란 특검법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인한 내란 외환 행위, 군사 반란, 내란 목적 선동을 수사한다. 김건희 특검법은 윤 전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비롯한 ▲삼부토건 주가조작 의혹 ▲명품 가방 및 금품수수 의혹 ▲공천 개입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등 국정 농단 의혹 등의 수사를 골자로 한다. 마지막으로 채상병 특검법은 2023년 7월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사망한 해병대원 채모 상병 사건 수사를 방해 및 은폐했다는 의혹을 규명하는 내용이다. 당시 수사 외압 과정에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 임 전 사단장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태 공범 이모씨와 골프 모임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사건의 마지막 퍼즐이 김건희씨로 지목됐다. 특히 채상병 특검은 전 정권에서 민주당 등 야당이 여러 차례 본회의에 올려 통과시켰지만 윤 전 대통령의 거부권에 막혀 번번이 무너졌다. 1년9개월 동안 제자리걸음이었던 특검법이 이재명정부에서 단번에 통과되자 본회의를 지켜보던 해병대 예비역 회원들이 일제히 자리서 일어나 거수경례하기도 했다. 지난 10일 3대 특검은 이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이날 오전 이 대통령은 이를 심의·의결한 뒤 자신의 SNS를 통해 “세 건의 특검법은 모두 윤정부가 거부권을 반복 행사하며 지연됐던 것”이라며 “멈춰있던 나라를 정상화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수순”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우원식 국회의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3개 특검법안에 대한 특별검사 임명 요청 서류에 결재했다”며 이 대통령에게 요청서를 보냈다고 밝혔다. 요청서를 받은 이 대통령이 특검 후보 추천을 공식 의뢰하면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서 특검 후보자를 각 1명씩 추천하게 된다. 속전속결 속 민주당 3특검법 모두 통과 반성 없는 국힘 ‘이 대통령 때리기’ 올인 내란 특검에 60명, 김건희 특검에 40명, 채상병 특검에 20명의 파견 검사가 투입되는 등 대규모 특검이 예고된 가운데, 민주당과 혁신당은 법조계 인사들 중 후보자를 물색해 빠른 시일 내 추천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정쟁에 함몰되는 대통령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기본원칙적 교훈과 경고를 드린다”며 곧바로 날을 세웠다. 앞서 민주당 단독으로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의결되고, ‘대통령 재판 중지법’까지 잇따라 추진되자 국민의힘은 “대선 다음 날 민생도, 외교·안보도 아닌 첫 입법 행위가 ‘사법부 장악법’이라는 사실은 충격을 넘어 경악스럽다”며 “괴물 독재 국가의 출발점”이라고 비판했다. 신임 대통령이 취임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여야가 사사건건 부딪치면서 협치는 사라지고 또다시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허니문 기간도 없이 곧바로 싸움이 번진 것은 여당이 의석 다수를 차지한 여대야소 정국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한국 역사를 돌이켜 보면 대선과 총선이 ‘심판론’처럼 작용하면서 여소야대와 여대야소 현상이 번갈아 나타났다. 대표적인 여대야소 예로 민주화 이후 치러진 13대 총선이 있다. 1990년 노태우정부 시기 당시 민주정의당과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이 뭉치는 이른바 ‘3당 합당’으로 200석이 넘는 초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이 탄생했다. 하지만 지역주의 고착화와 계파 갈등의 이유로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혔다. 초반부터 어깃장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지난 17대 총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쳐 과반이 넘는 152석을 얻었다.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121석에 그치면서 여대야소 정국이 펼쳐졌지만, 당시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이었던 만큼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10년 만에 정권을 교체했다. 대선이 치러진 직후에 열린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기세를 몰아 153석을 얻어 여대야소 정국을 이어갔다. 이후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꾼 뒤 2012년 4월 치러진 19대 총선에서 친박(친 박근혜)계가 당권을 장악해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같은 해 12월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면서 여대야소의 틀을 갖췄지만 여권 내 계파 갈등, 쟁점 법안 등으로 실질적으로는 여소야대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박정부가 레임덕에 접어들면서 새누리당은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고 결국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123석, 새누리당이 122석을 얻었다.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되고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뒤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180석을 얻어 여대야소 정국이었지만 코로나19 여파와 부동산, 집값 상승 등으로 5년 만에 정권을 고스란히 넘겨줬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심판론 성격으로 치러진 21대 총선에선 민주당이 180석을 얻으면서 그야말로 압승을 거뒀고 결국 3년 만에 여대야소 정국으로 돌아왔다. 이처럼 대한민국 정치 역사상 여당이 더 많은 의석수를 차지하는 건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유독 이번 정권에서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 진영이 이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부터 ‘의회 독주’를 넘어 ‘의회 독재’ 프레임을 씌우며 견제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5월 유세 현장에서 국민의힘은 “이번 대선은 자유민주주의 선진 대국으로 도약하느냐, 아니면 전체주의 1인 독재국가로 추락하느냐의 기로에 있다”며 ‘이재명 포비아’ 여론을 띄웠다. 이낙연 전 총리가 상임고문으로 있는 새미래민주당은 “이재명 독재 정권 탄생 저지가 필요하다”며 국민의힘과 국민통합공동정부 운영 및 제7공화국 개헌추진 협약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대선 하루 전날이던 지난 2일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회 독재를 이재명과 민주당이 시작하면서 베네수엘라 지옥문을 반쯤 열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베네수엘라의 비극이 남의 일이 아니다”라며 “한때 남미의 모범 국가였던 베네수엘라가 반미 포퓰리즘과 경제 파탄, 사법 장악과 독재의 길을 걸으며 국민의 삶이 무너지고 자유가 사라졌다”고 비판했다. “잊지 말자” 윤 심판론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 역시 “예전에 박정희 전 대통령도 독재한다고 말을 들었지만, 유신정우회를 만들어서 입법부를 장악하려고 했던 정도였다”며 “사법부를 장악하려 드는 것은 이재명 후보가 아마 가장 심할 것”이라고 말을 보탰다. 이 대통령 당선 이후 국민의힘은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과 대장동 재판이 사실상 중지된 것을 두고는 “정치 권력에 사법부가 무릎 꿇고 정치적 면죄부를 주면서 법 앞에 권력이 있다는 걸 선언한 것”이라며 “사법부는 이재명 괴물 독재 국가의 공범이 된다는 걸 기억하라”고 비난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자신의 SNS에 “유권무죄가 상식이 되어버린 세상, 권력이 있으면 면죄부를 받는 세상. 가히 ‘이재명 독재’ 세상이 도래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독재 프레임을 주장해 온 국민의힘에 국민 40%가 힘을 실어준 데에는 지난 3년간 민주당이 보여준 ‘협치 없는 정치’ 때문이라는 반박이 나온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지금까지 봐온 이재명이란 사람은 당 대표 때의 정치 스타일도 그렇고 업무 방식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강하게 밀어붙이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며 “지금 민주당에서 누가 감히 이 대표를 견제하겠나. 국회의장도 민주당 출신이다. 제어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당연히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선 이후에도 국민의힘은 반성은커녕 당권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집안싸움이 한창인 와중에도 민주당의 법안 처리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로 의회 독재라고 비판하니, 국민의 피로감도 덩달아 높아지는 형국이다. ‘민주당의 의회 독재가 우려되나’라는 질문에 여당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국민의 선택을 독재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윤 전 대통령은 민주당의 행태를 알리기 위해서라며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탄핵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민주당에 힘을 ‘몰빵’해준 것은 다름 아닌 국민이며, 야당이 된 국민의힘은 원색적인 비난을 멈추고 여당 견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회 독재? 윤 심판은 국민의 뜻” 여대야소 처음 아닌데…야 맹공 민주당 양부남 의원 역시 대선 전 토론 프로그램 <국민맞수>를 통해 “의회 민주주의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서 의회 민주주의로 당을 지도했을 뿐이고 앞으로 하려는 것도 민주주의”라고 설명했다. 양 의원은 “이낙연 전 총리나 바른미래당 손학규 전 대표 등 몇몇 사람이 의회 독재라는 주장을 하고 김문수 후보도 ‘방탄 괴물 독재 국가’를 운운한다”며 “이재명 (당시) 후보를 괴물 독재로 지칭하는 자체가 국민 의식 수준을 우습게 보는 것이고 정치 엘리트 기득권의 기만이자 오만이며 교만”이라고 직격했다. 이날 토론에 함께 출연한 국민의힘 홍석준 전 의원이 민주당의 예산 폭주, 행정부 장악 등을 예로 들자 “독재와 개혁을 혼동하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양 의원은 “민주당이 하려는 사법제도 개혁이라든지 기재부 개혁 등은 나름 합리성 이유가 있는 것”이라며 “이런 개혁을 독재로 호도하는 것은 정말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다. 국민 생각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도 이 주장에 힘을 실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우리나라 국민 성숙도를 봤을 때 의회를 장악했다고 독재 정치를 하다가는 그 정권도 혼이 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KBS <전격시사>에 출연해 ‘내란 극복’을 축소할 것을 주장하며 “내란 극복이라는 것을 너무 광범위하게 적용해서 하다가는 결국 보복이라는 말도 나올 수 있다. 국민과 대화, 특히 자기와 반대되는 측 사람과 대화를 활발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과거 여대야소 정국에서는 여당이 고삐를 꽉 쥐고 있었음에도 하루하루 순탄치 않았다. 지금처럼 의회 독재든, 계파 갈등이든 어떤 이유에서든 야당이 호시탐탐 무너뜨릴 기회를 노렸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대통령을 배출한 거대 여당이지만 계속해서 발목 잡힌다면 문재인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효능감 문제에 부딪힐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번엔 다르다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과거의 여대야소와 지금의 여대야소는 다르다”고 말했다. 최 평론가는 노태우정부 당시 3당 합당을 예로 들며 “과거에는 여대야소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경우가 있었지만 지금은 국민투표를 통해 민주당 계열에 표가 몰렸다. 그리고 민주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며 “윤석열이란 선장이 자격이 없으니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견제론이 나왔고, 그 결과 총선과 대선 모두 윤석열 심판론으로 치러졌다. 방향타를 국민이 만들어준 것”이라고 진단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 대통령 재판, 올스톱 일단 푼 사법 족쇄? 법원이 오는 18일로 예정됐던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파기환송심 사건에 대해 기일을 추후에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서울고법 형사7부는 이같이 밝히며 “헌법 제84조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헌법 제84조에 따라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을 진행 중인 재판에 적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다른 리스크였던 대장동 배임 사건 역시 재판부가 재판을 연기했다. 이로써 이 대통령의 다른 재판 역시 추후 지정될 가능성이 커 법조계에서는 사실상 임기 중 재판이 정지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법원은 대장동 배임 사건 재판부는 이 대통령과 함께 기소됐던 더불어민주당 정진상 전 정무조정실장에 대해서는 계속 재판을 진행할 방침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