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현실판 ‘더 글로리’ 표예림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4.24 10:09:11
  • 호수 14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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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폭 생존자입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나는 기억이 안 난다. 그때는 나도 어렸다. 철없을 때였지 않냐.” 표예림씨에게 초·중·고 12년간 학교폭력을 가한 가해자의 말이다. 철이 없으면 때려도 되는 걸까? 가해자는 끝까지 표씨에게 “모른다”고만 할 뿐 사과하지 않았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주인공 문동은(송혜교 역)은 고등학생 때 학교폭력을 가한 가해자 네 명에게 복수를 계획하고, 그 복수는 결국 성공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학교폭력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 자체도 힘들다.

학창 시절
전체가…

학교폭력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것은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를 알리는 일이다. 이 일의 주인공인 표예림씨 역시 피해 사실을 알리는 데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올해 28세인 표씨는 스스로를 ‘학교폭력 생존자’라고 지칭한다. 

그는 처음 SNS에 자신이 당한 학교폭력 고발 영상을 올리며 자신의 신상공개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한 이유가 뭘까? “대체 왜 나를 괴롭혔어?”라는 질문에 대한 학교폭력 가해자의 대답과 현재 학교폭력 피해를 받고 있거나 고소를 준비하는 사람을 위해 법 개정을 하고 싶어서다.

공부하거나 친구랑 노는 데 정신없어야 하는 학창 시절. 하지만 표씨는 달랐다. 가해자들을 피해 어디로 도망갈지, 어떻게 하면 학교에서 도망칠 수 있을지 고민하기 바빴다. 


이는 표씨가 지난달 10일 ‘12년간 당한 학교폭력에 관한 청원’이라는 제목의 국회 국민동의청원서에 상세히 올라와 있다. 표씨가 올린 국민동의청원서는 지난 19일 오전 5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 위원회 회부 기준 동의 수 100%를 달성한 뒤 종료됐다.

표씨는 경상남도의 한 지역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다. 현재 그는 학창 시절에 겪은 학교폭력 후유증으로 ▲대인관계 어려움 ▲불안 장애 ▲불면증 ▲우울증으로 정신과에서 1년 넘게 치료 중이다.

25세에는 담낭절제술을 받았고, 26세엔 맹장 절제술, 27세엔 대낭용종 제거술 등의 수술을 받았다. 또 지금까지도 원인 불명의 복통을 앓고 있다.

그가 용기를 낸 것도 드라마 <더 글로리> 덕분이다. 표씨는 “나와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 위해 청원을 신청했다. 학교폭력은 소아 성폭행과 같이 2차 가해가 두려워 스스로 말하기 어렵다. 또 피해를 당한 만큼 치유되는 데 시간이 걸려 즉각 신고도 힘들다. 난 12년 동안 학교폭력에 노출됐지만, 법이 정한 공소시효는 최대 10년”이라고 전했다.

표씨는 국민동의청원서에 학교폭력 신고의 어려움과 문제를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학교폭력을 당했는지도 밝혔다.

12년 학교폭력 피해 사실 알려
공소시효 늘리기 위한 목소리

표씨가 당한 괴롭힘은 ▲집단 따돌림 ▲폭행 ▲특수폭행 ▲상해 ▲특수상해 ▲모욕 ▲갈취 등이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표씨가 다녔던 초등학교 학급은 전원이 55명이었는데, 이 중 표씨가 지목한 가해자는 무려 30명에 달했다.


중학교 시절인 2009년부터 2012년 전원 96명 중 가해자는 47명, 여자고등학교를 다녔던 2012년부터 2015년에 학급 전원 84명 중 가해자가 43명이라고 지목했다. 이 중 직접적인 학교폭력 가해자는 17명이다. 나머지는 간접적인 가해자로 분류된다.

학교폭력을 당할 때 표씨는 ‘누가 이걸 해결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그냥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해 학생들에게 “나를 왜 괴롭히냐”고 물으면 “내성적이라서”라고 답했다. 괴롭히는 데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담임교사에게 피해 사실을 말해도 도움받지 못했다. 오히려 “너가 친구들하고 잘 못 어울리기 때문”이라는 반응만 돌아왔다. 

표씨는 국민동의청원서를 올리는 것 외에도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학교폭력의 공소시효 폐지를 건의합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13분46초 분량의 영상에는 표씨가 가해자 중 한 명으로 지목한 A씨와의 통화 녹취록이 담겼다.

“당한 것 
다 기억”

A씨는 “궁금한 건 물을 수 있지 않냐. 모든 방관자에게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고 진술자 모두의 익명성을 보장하겠다. 만약 어길 시 어떠한 민형사적 책임을 지겠다”는 각서의 내용을 읊었다. 이어 “이걸 안 지키면 네가 법적 책임을 받는 게 맞냐”고 물었다.

이에 표씨는 “아직 그 진술서를 적은 친구들은 아무한테도 얘기한 적 없다. 내 부모님이나 애인한테도 얘기 안 했다. 나는 익명성을 보장한 것이다. 피해를 보지 않았는데 내가 왜 그 책임을 져야 하느냐”고 답했다.

A씨는 계속 “안타까워서 그렇다. 너가 어떠한 민형사상 법적 책임을 져도 괜찮은 거지?” “진술서의 익명성을 보장 못한 것 맞지?” 등의 질문으로 회유했다. 

이어 “너가 자꾸 다른 애들한테 연락한 것도 다 알고 있다. 드라마(<더 글로리>) 보고 선을 넘는다는 말이 너무 많다. 진짜로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고 했다. 표씨가 마지막으로 “그때 왜 때렸느냐”고 묻자, A씨는 “나도 모른다”고 말을 흐렸다.

표씨는 녹취 파일 재생이 종료된 후 “어떤가. 이게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모습이라고 생각되나”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어 “할 수 있는 건 청원밖에 없다. 세상이 바뀌어야 저 아이들이 진심으로 내게 미안하다고 얘기할 것이다. 부디 귀찮다고 넘기지 마시고 3분만 시간 내서 의견을 내달라”고 말했다.

표씨 동기들은 표씨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말에 힘을 실어줬다. MBC <실화탐사대>에 표씨 동기가 익명으로 출연해 “화장실에서 가해자들이 예림이의 머리채를 잡고 변기통에 머리를 집어넣는 장면을 봤다. 예림이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자 더 괴롭혔다. 단순히 친구끼리 치는 장난이 아닌 ‘폭력’이었다”고 증언했다.


본격적인 폭로 역시 표씨 동창생의 역할이었다. 유튜브 채널 ‘표예림동창생’에는 ‘학교폭력 가해자들의 신상을 공개합니다’라는 영상이 올라왔다.

여전히 
잘살아

이 영상에는 1명의 피해자와 4명의 가해자가 등장한다. 유튜버는 “예림이는 아직도 고통받으며 사는데 가해자는 잘 살고 있다. 나는 더 이상 예림이의 아픔을 무시할 수 없어 익명의 힘을 빌려 가해자에 대한 신상을 공개하려 한다”고 밝혔다.

먼저 가해자의 졸업사진이 공개됐다.

유튜버는 “이들은 예림이 어깨를 일부러 부딪치며 넘어뜨리고 옷에 더러운 냄새가 뱄다고 욕설과 폭행을 했다. 이들은 예림이를 폭행했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처벌 없이 잘 있다”며 “왕따를 주도했던 남○○은 현재 육군 군무원으로 근무 중이다. 친구, 동료와 놀러 다니며 행복하게 사는 중”이라고 폭로했다.

이어 “임○○ 역시 남자친구와 행복하게 잘살고 있다. 가해자 최○○은 이름을 개명해 새 삶을 살고 있다. 장○○은 현재 미용사로 근무 중이다. 12년 동안 한 사람을 괴롭힌 가해자는 여전히 잘살고 있다”며 영상이 끝난다. 


2분6초 분량인 짧은 영상의 조회수가 544만회(4월20일 기준)다. 영상을 올린 지 6일 만에 만든 기록이다. 댓글 반응도 뜨거웠다. “나는 외국인이다. 첫 소식을 BBC news서 읽었다. 예림씨 너무 고생했다” “동창생님 용기에 감사드린다. 나 또한 학교폭력 피해자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당했다. 가해자는 나한테 왕따를 시켰고 명예훼손 및 패륜적 농담까지 들었다”는 댓글이 남겨졌다.

이 중에는 가해자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 계속 지켜볼 거라는 댓글 반응도 있었다. 

가해자 신상이 밝혀지자,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 중 한 명이 근무하던 A 헤어숍서 가해자가 해고됐다. 표씨의 가해자라고 알려진 이들의 신상이 공개되자 프랜차이즈인 A 헤어숍이 빠르게 조치한 것이다.

해당 헤어숍은 누리꾼들로부터 별점 테러를 받으면서 이미지가 크게 실추됐다. 지난 19일 가해자의 직장으로 알려진 A 헤어숍에 따르면, 헤어숍은 지난 18일 가해자로 지목된 직원을 계약해지 조치했다.

가해자 실명·사진 공개 파문
“친구도, 담임도 모두 방관자”

A 헤어숍은 입장문을 통해 “사건을 인지하고 확인된 즉시 이번 학교폭력 가해자로 명명된 직원을 계약해지 조치했다. 추후 본사 차원에서 브랜드 이미지 손실에 대한 별도의 조치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 매장은 해당 직원으로 피해 보고 있는 다른 직원들과 매장에 대해 법적 자문하고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단연코 학교폭력 사실을 알았다면 채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력서와 자격증으로 면접을 보고 직원을 채용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가해자를 깊게 살펴보지 못한 점 후회하고 죄송하다”면서도 “하지만 무분별한 악플과 매장에 장난전화는 자제 부탁드린다. 우리는 학교폭력을 당한 뒤 감내한 피해자 표예림씨를 적극 지지한다. 앞으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적극 지지할 것을 표명한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여전히 가해자는 뻔뻔하다. 지난 19일 가해자 중 한 명이 표씨에게 연락을 취했다. 표씨는 먼저 가해자의 연락을 받기 전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DM)로 “너는 내게 할 말이 없니”라고 묻자, 가해자는 “미안하다”고 간단하게 답했다.

이어 표씨는 가해자에게 핸드폰 번호를 알려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으려 했다. 유튜브에 공개된 통화 녹음 내용에서 가해자는 “솔직히 네게 했던 짓이 다 기억은 안 나지만 조금 심했던 건 기억한다.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에 표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너를 포함해서 그 애들이 한 대씩 때린 그 한 대 때문에 난 아직까지 힘들다. 고통을 받았다”며 “난 세세하게 기억한다. 방과후 수업부터 중학교 3학년때까지. 너가 사람이니”라고 물었다. 

가해자는 “기억이 안 난다. 그때는 나도 어렸다. 철없을 때였지 않냐”며 발뺌했다. 그러자 표씨는 “철없고 어리고 미안하다 말하면 그렇게 행동해도 되나? 뺨치고, 머리치고, 다리 때리고 그렇게 해도 돼느냐?”고 묻자, 가해자는 “다리는 때린 적 없다”며 적반하장 태도를 보였다. 

가해자가 표씨에게 보인 태도는 사과가 아니다. 신상이 공개되도 가해자는 표씨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았다.

사과는?
"모른다”

지난 19일 표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제 청원은 이제 국회 위원회에 회부될 것이며, 이후 모든 과정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모든 분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 정말 저는 스스로도 너무 운이 좋고 세상엔 착한 분들이 이렇게 많다는 걸 느꼈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국민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전하려고 한다. 다시 한번 제 목소리를 들어 주시고 같이 연대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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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