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반대로’ 김기현-이준석 엇갈린 행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달라도 너무 다르다. 현직 당 대표는 집토끼 잡기에 몰두해 있고, 전직 당 대표는 빈틈을 파고들고 있다. 빈틈을 메우기 위해 손을 보태기도, 내밀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다른 활로로 해결책 마련을 위해 전전긍긍하지만 그럴수록 실점만 거듭 중이다. 과연 정부여당은 차기 총선을 1년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민심을 되찾을 수 있을까?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들이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와 천하람 순천갑 당협위원장 사이를 갈라놓으려 했다. 당 지도부서 천 위원장에게 자꾸만 들어오라는 손짓을 해서다. 문제의 발단은 박수영 여의도연구원장이 천 위원장에게 “이 전 대표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발언으로 시작됐다. 

윤핵관
이간질

그러자 천 위원장은 “선의의 경쟁을 하면 했지만, 윤핵관의 이간질에 넘어가 싸구려 경쟁을 할 이유가 없다”며 이 전 대표와 협력자임을 더욱 공고히 했다.

당 지도부는 천 위원장에게 계속 구애를 보냈다. 청년 지지층은 바닥도 모른 채 추락 중이고, 연속적인 실책으로 보수당에 등 돌리고 있는 호남 민심을 다시 잡기 위한 해법으로 여겨서다. 청년과 호남, 두 가지를 동시에 보완할 수 있는 천 위원장을 포용해 지지율을 반등시키겠다는 구상이었다. 천 위원장은 이 같은 김 대표의 손을 과감히 뿌리쳤다. 

당의 일반적인 대세론에는 이 전 대표 세력과 함께 갈 수 없다는 기류가 흐른다. 함께 가기 힘든 반윤(반 윤석열)정서로 보는 시각이 강한 탓이다. 사실상 천 위원장, 허은아 의원 등과는 함께 갈 수 있음을 암시하면서도 그들의 중심 격인 이 전 대표와는 불가하다는 입장인 셈이다.


전당대회 기간 천 위원장은 ‘천하용인’에 소속돼 한 팀으로 뛰었다. 이 기간 동안 천 위원장도 상당히 많은 공격을 받았다. 배신자로 불렸던 것과는 대비될 만큼 현재 위상은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당장 국민의힘 지도부는 급할 수밖에 없다. 예상보다 심각한 수준으로 지지율이 폭락하고 있어서다. 청년을 위한 대책과 호남을 바라본 행보를 하려고는 하지만 어쩐지 순탄치 않다. 물 보내기 운동에 맞춰, 윤석열정부는 4대강 보로 가뭄을 극복하겠다는 방안을 내세웠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신기루 같은 이야기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여러 여파들로 인해 국민의힘은 위기가 점차 고조되는 모양새다. 위기는 김재원 수석최고위원의 잇따른 말실수 여파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광훈 목사 옹호, 제주 4·3사건 비하 논란 등 벌써 3번째 실책이다. 김 최고위원은 결국 침묵형을 받았고, 당분간 공개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문제는 지지를 철회한 층이 청년층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도층·수도권의 이탈도 가속화하고 있다.

국민의힘 지부의 지지율 추이를 살펴보면 김 대표 당선 직후 아주 잠시 반짝했을 뿐이다.

전통적 지지층 역시 부정 평가가 늘면서 위기감이 느껴진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당 지도부는 우향우 성격이 점점 짙어진다는 게 문제다. 집토끼마저 떠나갈까 노심초사 중인 탓이다.

손 내밀기도 애매한 상황
집토끼 결집도 위태위태?


게다가 김기현 당 대표는 제주 4·3사건 추념식장을 방문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민생’과 서울에 일정이 있다며 참석 불가 이유를 댔다. 그는 제주도 방문 대신 2030부산세계박람회(EXPO, 엑스포) 유치 분수령인 국제박람회기구 실사단을 맞이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실사단 방한 일정 지원에 만전을 기하라”는 지시를 충실히 따른 것.

김 대표의 판단으로는 엑스포의 경제적 효과 등이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의 연장선이라고 판단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제주도는 전당대회 기간 첫 합동연설 지역으로 김 대표가 제주 4·3 평화공원을 방문한 바 있던 만큼 더욱 비판 목소리가 나왔다. 이번 추념식에도 지도부 일부가 방문하기는 했지만 당 대표가 직접 왔어야 한다는 것.

특히 올해 추념식은 특별법 개정으로 희생자와 유족의 피해보상이 이뤄지는 등 명예회복과 실질적인 피해 해소 등의 의미가 담겼다. 정부여당 대표의 불참에 유가족들의 반발도 상당히 거셌다. 

사실 김 대표의 우클릭 행보는 예정돼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당심 100%로 진행되는 선거에서는 중도층을 잡기보다 집 토끼층을 잡으려 했다. 다른 당권 후보들보다도 보수 성향 유튜브에도 출연이 잦았다. 

당 대표 당선 때까지는 우클릭 전환이 성공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도부 구성이 시작되자, 우려하던 문제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최고위원들의 발언 줄실수 남발이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최고위원들이 한 명씩 돌아가면서 사고를 치냐는 비아냥도 나왔다. 

다음 빅 이벤트는 총선이다. 현실적으로 텃밭층 민심도 악화일로를 걷는 상황에서 총선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의 멘토로 불리는 신평 변호사마저 우려하는 마음을 드러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직접적인 우려는 윤 대통령을 향하고 있지만, 사실상 여당에도 보내는 메시지라고 읽힌다. 

신 변호사는 이번 전당대회 기간 김 대표의 후보 시절 후원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SNS에 “윤 대통령이 보수만 챙기고 있다”며 “이런 탓에 국민이 등을 돌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선거는 3:4:3 판으로 중도층의 마음을 누가 더 얻느냐의 싸움이다. 유권자의 다수가 거주하는 수도권 표심이 승패를 결정한다”고 꼬집었다.

대체재
천하람

사실상 자기 지지층을 향한 구애만 치중한다고 진단한 셈이다. 

실제로 다음 총선에서는 윤 대통령의 측근인 검사 출신이 대거 총선에 출마한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이럴 경우 총선 승리를 보장하기가 어렵다.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으로 최근 잠잠한 안철수 의원이 중도층을 공략할 인물로 떠오르는데 이마저도 쉽지는 않다. 안 의원이 중도층을 포섭할 수는 있을지라도, 당내에서의 반감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당에서 적으로 낙인찍혀 있는 인물이다. 안 의원이 직접 등판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중도층은 캐스팅 보트로 불린다. 이제껏 중도층이 지지를 보내 준 이유는 민주당에 대한 반감뿐 아니라,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구미를 당길 아이템들을 제시해온 덕이다.

지금은 확장성이 필요한 시기다. 중도층이 빠져나가면서 윤 대통령의 중도층 50% 지지율 선이 붕괴됐고, 이제는 20%대까지 내려앉았다. 여권 전체에 비상이 걸린 셈이다. 중도층은 통상 적극적인 투표 성향을 보이지 않는다. 이런 탓에 중도층을 선점해야 선거에서 유리한 국면을 가져갈 수 있다.

이제는 민주당이 국민의힘의 발목만을 잡는다는 말이 나와도 소용없어졌다. 단순 민주당 핑계만 대는 전략이 먹혀들지 않는다는 소리다. 국민의힘이 대선을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수도권과 중도층의 지지세가 컸기 때문이다.

충청권 역시 윤 대통령의 당선에 한몫을 차지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선심성으로 느껴지는 민심 챙기기보다는 민주당과 중도층의 관심을 끌만한 이슈를 선점해올 필요가 있어 보인다.

대선 기간보다 중도층 비율은 10%p 넘게 올랐다. 정치권에서는 국회 제1당은 국민의힘도, 민주당도 아니라는 말까지 나온다. 결국 제3지대가 탄생하는 빌미를 제공하는 형태다.


중도층 확보를 위해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공격하고는 있으나,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이유도 민주당의 지지층이 결집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실책으로 지지율 끌어올리기에 돌입하는 모양새다.

이대론
총선 필패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직접 등판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하나의 악재다. 민주당은 지지층 결집까지 다지고 있다.

이와 함께 이제는 이 대표가 법원을 출두해도, 사법 리스크가 지속적으로 터져도 지지율이 오르는 추세다. 더 이상 이 대표의 리스크를 하나의 표 뺏기 수단으로만 삼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 지점을 잘 안다는 듯 이 전 대표는 국민의힘 지도부와는 다른 형식으로 중도층 공략에 나섰다. 이 전 대표는 다시 한번 민심 투어에 나서고 있다. 이번 전당대회서 이 전 대표는 이준석계 후보를 지도부에 단 한 명도 입성시키지 못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 전 대표 효과가 예전만 못하다는 분석이 많았으나 대신 민심을 얻었다. 당시 전당대회 구도에서 천하용인을 지지세는 민심서 더욱 두드러졌던 바 있다. 천 위원장은 민심으로부터 선두권을 기록하며 존재감을 키웠다. 팀으로 움직인 점도 많은 이점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윤핵관 대 천하용인의 대결구도를 만들 수 있었던 덕이다. 실제 국민의힘을 지지했던 청년층이 지지율이 빠진 것과 전당대회서 천하용인을 지지했던 수치와 비슷했다. 

이 전 대표는 최근 지도부가 노리는 지역들의 빈틈을 노린다. 이른바 순진(순천-진주)한 계획을 세웠다. 10년 만에 열리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 참석해 언어 통역 봉사를 하고 경남 진주서도 교육봉사활동을 한다.

사실상 당 지도부와는 대비되는 행보를 보인다. 이 전 대표는 제주도에도 함께 방문했다는 점도 김 대표와 차별화된 전략이다. 

이, 중도 노리며 장외 정치
김, 해결책 마련 위해 고심

제주도 참석한 자리서 이 전 대표는 “지역의 아픔을 다루는 사안에 책임있는 여당으로서 언제나 진상규명과 회복에 앞장설 필요가 있다”며 김 전 대표를 정면으로 공격했다. 그는 “(지도부가) 기념식에 참석하는 건 기본이다. 전당대회 과정서 불미스러운 발언이 있었기 때문에 당 모든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려고 왔다”고 강조했다. 

천하용인은 지속적으로 민심의 문을 두드려왔는데 이는 차기 총선을 염두에 둔 행보로 보인다. 이들은 험지 등에서 자꾸만 존재감이 커져간다. 모두 국민의힘 취약 장소들이다. 민주당 강세가 두드러진 지역들을 계속 공격하면서 자신만의 세를 불려나가는 한편, 전국을 순회하면서 국민들을 만나고 있다. 

이전 징계 결정 직전 이 전 대표는 민심투어에 나서서 장외 여론전을 펼쳐왔다. 이때까지만해도 성공을 거두는 듯했으나 천하용인 역시 당내만을 공격하는 게 부담스러웠던 모양새다. 최근 천하용인의 주요 공격 지점도 민주당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지속적으로 공격하면서 중도층 끌어들이기에 안간힘이다. 이 부분은 청년 최고위원에 출마했던 이기인 경기도의회 의원이 담당한다.

이 의원은 팀 블로그인 고공행진에 이 대표와 고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1처장의 사진을 공개하면서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 역시 중도층 민심을 끌어오겠다는 심산으로 읽힌다. 단순히 정치적 공격이 아닌, 근거와 자료를 바탕으로 공격에 나섰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이 전 대표를 향한 조직적인 반감을 우려해 마냥 그를 향해 손을 내미는 것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한발 더 나아가 이준석계는 개혁 이미지를 한층 더 강화하려는 모습이 감지된다. 전당대회 당시에는 개혁 이미지가 오히려 당원에게 심판을 받았다.

이 같은 행보가 오히려 민심을 자극한 모양새다. 당내에서는 영향력이 줄었지만, 장외서 지지층을 끌어모으는 데 힘쓰고 있다.  

한 달 만에
시험대 올라

한 정치권 관계자는 “현재 국민의힘이 본래 지지층을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지금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총선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며 “외연확장에 신경써야 한다. 현 상황이 김 대표의 시험대”라고 덧붙였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갈 길 바쁜데… 하나씩 터지는 실책

국민의힘 지도부가 최고위원들의 잇따른 실책에 몸살을 앓고 있다.

김재원 수석최고위원의 실언 이후 이번에는 조수진 최고위원의 발언이 논란이다. 

조 최고위원은 민생119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법 개정안에 대한 여당의 대안을 묻자 “밥 한 공기를 다 비워야 한다”고 답변하면서 불거졌다.

해당 발언과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쓴소리가 터져나왔다.

같은 당 김기현 대표도 “대책이 될 것 같냐”며 우려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는 “1940년대 밥공기 크기로 가면 더 많은 밥을 남기고 더 많이 버려서 해결된다”고 비꼬았다.

민주당에도 공격거리를 제공했다.

박홍근 원내대표가 “황당무계한 발언이라 뭐라고 표현을 못 하겠다”고 지적하자, 조 최고위원은 “발언의 진의를 왜곡해 선전 선동을 벌이는 행동에 대해 유감”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과거 성남시장 시절 쌀 피자 만들기 캠페인을 펼친 일이 있다”고 설명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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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