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학교 선수만’ 아이스하키 국대 선발 의혹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4.10 13:05:51
  • 호수 1422호
  • 댓글 4개

“감독님 맘대로…규정 어겼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청소년 학생 운동선수는 자신의 모든 시간을 운동에 전념한다. 졸업 때부터는 대학 진학과 실업팀으로 나뉘는데, 아이스하키는 국내 실업팀이 한군데뿐이다. 이런 이유로 학생들은 아이스하키 명문 대학 진학에 목숨을 건다. 이때 필수 코스가 U18 국제대회 진출인데, 선수 선발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피해를 주장하는 학부모는 단체로 대한아이스하키협회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아이스하키는 빙상 위에서 스틱을 가지고 고무로 만든 원판인 퍽을 골대에 넣는 경기다. 1970~1980년대에는 ‘빙구’라고 불렀다. 현재도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 사이의 정기전인 연고전에서는 빙구라고 부른다.

아이스하키 국내 팀은 숫자가 적다. IMF 외환위기 이후 팀들이 점차 줄어들면서 위기를 겪었고, 대학팀들 위주로 리그가 진행되면서 축소됐다. 애당초 대학팀 자체도 많지 않았다. 아이스하키부가 있는 팀은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한양대학교 ▲경희대학교 ▲광운대학교까지 총 5개교다.

대학 입시
대회 진출

고교 아이스하키부는 모두 서울에 있다. 총 5개교로 ▲경기고등학교 ▲경복고등학교 ▲경성고등학교 ▲중동고등학교 ▲광성고등학교 등이다. 중학교는 올해 광성중 아이스하키부가 해체되면서 경희중, 중동중 등 총 6개교가 됐다. 

아이스하키 선수 지망생들은 대부분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아이스하키센터에서 수업을 듣고 같은 학교로 진학한다. 이런 상황이니 학생이나 학부모 모두 전반적인 아이스하키 실력을 파악하고 있다.


청소년 아이스하키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명문대 진학이다. 이를 위해서 입시 요강에 해당하는 대회를 진출하고, 이를 위한 합숙 훈련은 기본이다. 지난해 KUSF 대학 아이스하키 U-리그 팀 기록을 보면, 연세대학교가 1순위로 7승1패를 기록했다. 그 뒤로 고려대학교 5승3패, 광운대학교가 0승이다.

이뿐 아니라 역대 경기를 통틀어 연세대학교가 좋은 성적을 내고 있어, 학부모와 학생은 연세대학교 진학을 목표로 훈련에 전념한다. 그러나 문제는 연세대학교 특기자 인재 운동 전형으로 입학하려면 특정 대회를 나간 이력이 있어야 한다.

바로 ‘국제대회 U18’이다. 연세대학교 입학처는 아이스하키 운동 전형 지원자에게 ‘대한체육회서 발급하지 않는 국제대회(U18) 경기 실적 및 수상내역 자료는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공식 홈페이지서 직접 출력해 제출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연세대학교에 아이스하키 특기자 전형으로 입학하려면 선행돼야 하는 일이 U18에 출전하는 것이다. 해당 대회 기록은 상관없다.

여기서 말하는 U18은 18세 이하 선수들로 이뤄진 유소년 국제경기대회를 말하며, 운동 경기별로 개최되는 대회다.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은 슬로베니아 블레드서 2023 IIHF U18 세계선수권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명문대 진학 필수 코스 ‘U18’
감독 고교 학생이 50%나 선발

국내 청소년 선수가 U18에 선발되기 위해선 대한아이스하키협회서 개최하는 U18 대표 선발 트라이아웃(선수 선발 테스트이자 입단 테스트)에 참여해 선발돼야 한다. 올해 경기 방식은 3피리어드, 20분씩 주어졌다.


트라이아웃 일정은 지난달 6일 선발 내용을 공지했고, 지원 자격은 대한민국 남성으로, 2005년 1월1일부터 2006년 12월31일 출생한 자다. 여기서 선정되면 청소년 국가대표 선수 자격으로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트라이아웃은 지난달 16일부터 19일까지 있었다. U18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 23명의 명단은 지난달 21일 발표와 동시에, 학부모들이 트라이아웃 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선수 선발 과정에 객관성이 빠졌다는 것이다.

실제 트라이아웃 결과에는 한 고등학교 학생이 50%나 포함돼있었고, 해당 고교 감독이 감독으로 선임돼있었다.

이런 문제 외 학부모들이 지적하는 U18 트라이아웃의 문제점이 있다. 여기서도 가장 큰 문제는 선수 선발을 하는 감독 선임 건이다. 기본적으로 청소년 국가대표 감독 선발은 대한체육협회 규정을 따른다.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 및 운영 규정 제4조(국가대표 지도자 및 트레이너의 선발 절차)에는 ‘회원종목단체 경기력향상위원회는 국가대표 지도자 선발 일정 등 세부사항을 정해 국가대표 후보자 평가일 1개월 이전에 공고하며, 국가대표 지도자 후보자를 평가하고 그 결과를 심의해 이사회에 추천한다’며 ‘회원종목단체 이사회는 추천받은 후보자 중 국가대표 지도자를 선발해 체육회 승인을 받아 확정한다. 단, 긴급한 사유가 있는 경우 체육회와 사전협의 후 공고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이번 감독 선발은 이 같은 과정이 모두 사라졌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는 지난달 17일 공고문을 올려 ‘2023 U18 남자 국가대표 감독 선임 결과’를 발표했다. 1개월 전 있어야 하는 공고도, 이사회 추천 및 체육회 승인 과정 자체도 사라진 것이다. 

주먹구구
선발 과정

감독 선발 외 문제도 있다. U18 감독은 선수 선발 권한이 있다. 그리고 이번 트라이아웃에는 U18 감독, 골리 코치, 국가대표 감독, 경기력향상위원이 선발위원으로 트라이아웃 채점을 했다. 이런 과정에 감독이나 코치는 현직 고등학교 교사이거나, 개인레슨 학생이 있으면 위법이다.

이는 경기력향상위원회 규정 제11조에도 적시돼있다. 규정에는 ‘위원은 본인 또는 본인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거나 공정을 기할 수 없는 뚜렷한 사유가 있는 경우 위원회의 심의·의결에 참여할 수 없다’고 명시한다. 대표 선발에 있어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올해 U18 감독은 현직 고등학교 교사고, U18에 선발된 학생 중 50%가 해당 감독이 재임 중인 학교의 학생 선수다.

코치 역시 마찬가지다. 국가대표 감독 역시 재직하기 전 학생 선수를 레슨한 경력이 있다. 그 학생이 이번 U18에 선발된 선수에도 포함된다.

또 국가대표 선수라고 하더라도 미성년자다. 어린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지도자는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아이스하키인의 품위를 손상한 사람을 제외한다. 학생 선수를 외국에서 통솔하는 데 지도자의 도덕성은 필수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 사항도 제외됐다. U18 코치 중 한 명은 지난해 한 중학교 아이스하키부 골리 코치로 재직했는데 ▲근무하는 학교 학생에게 보수를 받고 개인지도를 진행하고 ▲학교 정규 연습 시간에 음주 상태로 학생 지도한 사유로 사직한 경력이 있다.

위 사항만 해도 이번 U18 선수 선발에 문제점으로 지적되기 충분하지만, 문제점은 트라이아웃에도 계속된다.

아이스하키는 종목 특성상 실력이 갑자기 성장하는 경우가 없고, 복합적인 기술 점수가 요구되기 때문에 선수 선발이 까다롭다. 그래서 요구되는 것이 선수의 대회 전체 포인트다. 트라이아웃 당일 점수와 대회 전체 포인트 점수를 합산해서 선수 선발의 객관성을 높인다.

이번에도? 
매년 구설수

하지만 이번 트라이아웃 결과에는 전체 포인트 점수가 합산되지 않았다. 우선 선발 시험 자체는 블라인드였다. 그러나 선발된 선수 중 골리(골키퍼)는 지난해 풀타임 대회에 참가해 성적이 좋은 선수나, 2021년에 베스트골리상을 받은 학생이 선발되지 않고 탈락했다. 반대로 합격한 골리는 U18 코치에게 개인레슨을 받은 선수다.

트라이아웃 경기 중 부상을 입은 학생도 선발됐다. 한 선수는 트라이아웃 첫 경기에서 무릎에 부상을 입어 그 이후 경기를 참가만 했다. 이런 경우 선수의 실력이 월등해도 U18에서 기량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에 U18 선수 선발에 제외되는 게 맞지만 선발됐고, 대회 포인트 점수가 낮은 선수가 높은 선수를 제치고 출전한 케이스도 있다.


다만 고려하는 점은 있다. U18은 대학 입시에 큰 영향을 주고, 학생 선수는 1살 차이로 실력 차이가 확연하게 난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U18 선수는 대부분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선발된다. 2021년과 지난해 선발된 학생 선수는 대부분 고등학교 3학년생이었다.

반면 이번 선수 선발은 달랐다. 총 7명의 선수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지난해 트라이아웃 점수 결과가 높았지만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이유로 선수 선발이 안 된 학생이 이번에도 출전을 하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학부모들은 트라이아웃 결과를 납득할 수 없었다. 트라이아웃이 코로나19가 심각한 상황을 제외하곤 모두 공개로 선발전이 진행됐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다른 모든 종목 경기 트라이아웃은 관중들의 참여도 가능했다.

학부모들은 대한아이스하키협회에 2023 남자 U18 아이스하키 트라이아웃 경기 영상 및 채점 기록지를 정보공개 청구했으나, 대한아이스하키협회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학부모 “객관적으로 봐도 선발 과정 주관적”
협회 “경기력 향상 위원회가 규정대로 선발”

이에 대해 학부모 A씨는 분개했다. A씨는 “협회는 감독 선발 규정도 어기고 트라이아웃때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함께 10년간 운동한 아이들이다. 누가 잘하고 못하는지 다 안다”며 “그런데 이번에 잘하는 애는 대거 떨어지고 못하는 애들이 붙었다. 특히 아들 친구 중 한 명은 ‘이미 붙을 거 알고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런 식으로 하면 아이스하키는 돈 많은 집 아이가 부정으로 쉽게 대학에 가는 통로가 될 것이다. 어차피 대회에 나가면 우승하지 못하니 돈 받고 보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대한아이스협회 입장은 다르다. 규정대로 선수를 뽑았다는 것이다.

대한아이스협회 관계자는 “협회는 선수 선발에 관여하지 않는다. 선수 선발은 경기력향상위원회가 한다. 그곳에서 절차대로 한 것이다. U18은 입시에 영향이 크다 보니, 매년 말이 많다”며 “좋은 방법을 모색 중에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본 것이다. U18 선수는 국가대표 선수가 아니라 대한체육회가 아닌 대한아이스하키 협회 규정을 따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다른 협회 관계자는 의견이 달랐다. 선수 선발 과정에 문제점이 있는지는 확인해봐야 하는 것이지만, U18 선수 선발의 객관성이 떨어졌고 U18 선수는 청소년 국가대표가 맞는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감독 선임은 공고를 내서 한다. 이 자리가 5명인데, 채점위원 중에서 개인레슨을 한 코치가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지침을 어긴 것”이라며 “또 공고를 안 하면 마음대로 뽑을 수 있는 것 아니냐. 과정 자체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아이스하키 선수 선발은 체격, 체력, 구력, 경기 시간, 스케이트 실력, 슈팅 등 다양하게 채점해야 한다. 이걸 지키지 않은 것은 대한체육회 규정을 어긴 것”이라며 “그러나 대한아이스하키협회 내규를 따지면서 문제가 없다고 한다. 이러면 학생들이 희생당한 격이다. 원래는 테스트 자체를 다양하게 한다. 고교 감독을 U18 감독으로 선임할 계획이었으면 더욱 다양한 테스트를 했어야 맞다”고 말했다.

떨어진
객관성

아이스하키 학교 관계자 역시 문제에 동의했다. 학교 관계자는 “골리로 떨어진 학생은 객관적으로 비교가 불가능한 학생이다. 그만큼 실력이 좋았다. 그런데 작년 16개 경기를 다 뛴 애들이 떨어지고 출전하지 않은 세 명이 뽑혔다. 여태까지 이런 식으로 U18 감독과 선수를 선발한 적은 없다. 문제가 있다고 해도 1~2명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에 뽑힌 선수 5명은 명확히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일요시사>는 대한아이스하키협회를 통해 경기력향상위원회 입장을 요청했으나, 연락이 오지 않았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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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채 상병 특검법)이 야당 주도로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7월19일 사건 발생 10여개월 만이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반발하며 퇴장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서 ‘이태원참사특별법’을 합의 처리된 뒤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제출하며 채 상병 특검법 상정을 요구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순직한 사건을 초동 조사하고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서 대통령실·국방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특검이 수사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경찰 이첩 개입 의혹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를 수용해 의사일정 변경동의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졌고, 재석 168명 전원 찬성표로 가결됐다. 표결에는 야당만 참여했고, 국민의힘은 반발해 사실상 표결에 불참했다. 민주당은 원래 본회의 안건에 없었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기 위해 의사일정 변경을 우선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은 이번 본회의에 합의되지 않은 법안이 올라가는 것 자체를 반대해 왔다. 당초 김진표 의장도 여야가 합의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양당 원내대표를 의장석으로 불러서 마지막으로 중재를 시도했지만 5분 뒤 김 의장은 여러 가지로 고려한 끝에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양당의 마지막 협상도 결렬됐고, 국민의힘에서는 유일하게 자리에 남았던 김웅 의원만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방청 중이었던 해병대 예비역연대 법률 자문, 김규현 변호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년의 해병대 예비역들도 연신 눈물을 흘렸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야당이 강행 처리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로텐더홀서 규탄대회를 열고 “그간 우리 당은 이태원참사특별법에 합의 처리하는 조건으로 의사일정에 동의했다. (민주당과 김 의장이)채 상병 특검법을 애초에 처리하겠다고 했으면 저희는 오늘 본회의 의사일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모처럼 이태원법 합의 처리를 통해 협치 분위기가 조성되고 의회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있는데 오늘 의사일정 변경까지 해서 채상병법을 처리하겠다는 것은 정치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채 상병 특검법 표결 시 본회의장을 퇴장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채 상병이 의사일정으로 상정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규탄대회 뒤 거부권 행사 건의와 관련한 질문에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볼 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국힘 퇴장 속 야당 전원 찬성 조각난 협치···대통령 또 거부?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 의사일정 변경안을 제출한 상태다. 이날 본회의는 이태원특별법 처리를 위해 여야 합의로 잡은 일정인 반면, 여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상황서 입법을 강행하기 위해 의사일정을 변경해 본회의 부의를 시도하겠다는 의도였다. 대통령실은 이날 야당의 강행 처리 예고를 예의주시하면서도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서 “민주당이 오늘 국회 본회의서 채 상병 특검법을 의사일정까지 바꿔가면서 일방 강행 처리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 표명은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실장은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서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며 “공수처와 경찰이 이미 본격 수사 중인 사건인데도 야당 측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특검을 강행하려고 하는 것은 진상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여권에선 채 상병 특검법 자체의 법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이미 수사 중인 사안에 특검을 도입하는 배경에 정쟁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바라봤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서 진행 중인 수사가 끝난 다음, 그 과정이나 결과를 토대로 특검 도입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야당이 특검을 당장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대통령실은 무엇보다 2021년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해병대수사단에 수사권이 없어졌기 때문에 야권이 주장하는 ‘수사외압’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해병대수사단이 기초 조사는 할 수 있겠지만, 관계자 수십명을 소환하고 연루자가 몇 명이고 하는 것은 법에 규정된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당시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의 ‘월권’ 가능성을 지적한 셈이다. “정치적 의도” 대통령실 발끈 또 과거 공수처 설치와 군사법원법 개정을 주도했던 민주당이 특검을 추진하는 모순을 거론하며, ‘참사의 정쟁화’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분위기다. 이날 정 실장은 “현재 공수처와 경찰서 철저한 수사를 진행 중이므로 수사 당국의 결과를 지켜보고 특검을 도입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공수처와 경찰이 우선 수사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특검 도입 등의 절차가 논의되고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공수처는 민주당이 패스트트랙까지 동원해 설치한 기구다. 당연히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는 것이 상식이고 정도”라며 “지금까지 13차례 특검이 도입됐지만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진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야당이 단독으로 주도한 이유도 있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과정서 윤 대통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수사를 왜곡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관련 정황은 이미 상당 부분 나왔다. 국방부는 사단장 등 고위 지휘관들의 혐의를 축소하려 했고, 경찰에 넘긴 수사기록도 매끄럽지 않은 과정을 통해 회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관계자들이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조율한 흔적도 엿보였다. 국민의힘은 특검법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서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공수처 수사가 1년 가까이 진척을 보이지 않으면서 야권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과거 대통령실이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조그마한 사고’라고 언급한 사건도 국민적 분노를 유발했다. 지난 3월22일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 매체와 인터뷰서 ‘조그마한 사고’로 표현하고 “전 지휘관이 법적인 문책을 받는 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실언한 바 있다. 더구나 공수처는 지난해 8월 고발장을 접수한 이후 인력 부족, 수사 의지 등을 핑계로 현재까지 ‘수사 진행 중’이라는 변명만 되풀이했다. 해병대를 비롯한 국민 여론도 특검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눈물 흘린 해병들 왜? 해병대예비역연대는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 채 상병 특검법 상정과 통과를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해병대를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은 이들은 이날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 모여 “채 상병 특검법 통과, 박정훈 대령 탄압 중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같은)이런 세력들이 우리나라의 집권여당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장은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이 나라의 안보를 생각하는 사람들인가. 국민의힘과 대통령은 민심을 외면하지 말고 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하길 바란다”고 외쳤다. 해병대예비역연대에 법률자문을 하고 있는 해병대 출신 김규현 변호사는 “(국민의힘은)처음엔 ‘독소 조항이 있다’고, 지금은 ‘공수처와 경찰이 수사 중이니 그 수사가 끝난 다음에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과거 특검 때에는 (앞서)경찰·검찰이 수사를 안 했는가”라고 되물었다. 사실상 가장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할 방법은 법정 수사 기간을 최대 3개월로 정해놓고 있는 특검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병대 측은 이날 “3개월이 지나면 우리 군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안보에 전념할 수 있고, 정치권도 채 상병 문제를 일단락하고 지금 산적한 안보, 민생 정책을 논의할 수 있게 된다”며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수사를 기다리며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채 상병 문제로 정쟁을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국민의힘은 오후 2시에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전원 참석해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집회를 마친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 45명은 채 상병 특검법의 상정·통과 여부를 보기 위해 곧장 국회 본회의장으로 이동했다. 앞서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민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후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지난달 3일 본회의 자동 부의 요건을 충족했다. 여야는 지난 1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처리에는 합의했지만, 채 상병 특검법과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안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통한 것이다. 1년 가까이 진척 없는 수사 역풍 뻔한데···용산 선택은? 특검법 통과에 대해 대통령실은 야당을 향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수세에 몰린 대통령실이 야당을 지적할수록 부정 여론만 키우는 분위기다. 더구나 대통령실은 스스로가 수사 대상이 되는 사안서 ‘협치’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으나, 이로 인해 역풍을 맞게 되는 형국이다. 당장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용산의 뜻을 따를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이 어렵사리 여당 의원들을 단속하더라도 다음 달에 시작하는 22대 국회에서는 궁지에 내몰릴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신중한 모습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거부권을 행사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며 “김진표 국회의장은 합의 정신을 존중하는 분”이라고 일축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여야 합의 없이 거대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법안들에 대해선 ‘과도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젊은 병사의 죽음’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인 데다 야권과 언론이 국가안보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 등 대통령실 연루 의혹을 잇달아 제기한 상황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당의 총선 참패 한 달여 만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다. 국회 재표결 시 여당 이탈표도 우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 회담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의 적극적인 수용을 요구한 데 대해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은 것도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공수처는 특검 출범 여부와 별개로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 외압 의혹’과 관련된 핵심 인물들을 불러 조사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방부가 채 상병 사건을 회수하고 재조사하는 과정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대통령실 등 ‘윗선’으로부터 외압이 있었는지 의혹을 풀어줄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환조사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수사는 진행 중 공수처 수사4부(부장검사 이대환)는 지난 2일 오전 9시25분쯤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날 공수처는 박 전 직무대리를 상대로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재조사한 후 혐의자를 축소해 경찰로 넘기는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 등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