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친노·친문 들쑤신 야인 이인규 전 중수부장 노림수

14년 만에…정치적 입김 들어갔나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3주기를 약 두 달 앞두고, 노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수부장이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비리 혐의가 모두 사실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책임을 검찰이 아닌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돌렸다. 이 전 부장은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폭로에 나선 것이라 밝혔지만, 일각에서는 그의 행보를 정치적 맥락과 연결 짓는다.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수부장의 폭로 후폭풍이 거세다. 이 전 부장은 이달 공개한 자신의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누가 노무현을 죽였나>서 당시 노 전 대통령과 가족의 수뢰 혐의를 자세히 언급했다. 이 전 부장은 대검찰청 중수부장 재직 당시, 해당 혐의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가족 비리
사실이었다”

이 전 부장은 책에서 “권양숙 여사가 고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피아제 남녀 시계 세트 2개(시가 2억550만원)를 받은 사실은 다툼이 없고, 재임 중이었던 2006년 9월 노 전 대통령에게 뇌물로 전달됐음이 상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2007년 6월29일 권 여사가 노 전 대통령과 공모해 청와대서 정상문 당시 총무비서관을 통해 박 회장에게 100만달러, 그해 9월22일 추가로 40만달러를 받은 사실도 인정된다”면서 자금 용처는 아들 노건호씨의 미국 주택 구입이라고 지목했다.

2008년 2월22일 건호씨와 조카사위 연철호씨가 박 회장에게 500만달러를 받고 사업명목으로 사용한 것 역시 “다툼이 없다”고 적었다.


정 전 비서관이 특수활동비 12억5000만원을 횡령한 사건은 “노 전 대통령이 공모한 범죄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짚었다. 정 전 비서관 본인이 ‘단독 범행’이라고 밝힌 것과는 반대되는 주장이다. 

이 전 부장 설명에 따르면 당시 검찰은 이 같은 혐의로 노 전 대통령을 기소해 유죄를 받아낼 충분한 물적 증거를 확보했다. 그런데 기소 전 노 전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사건이 ‘공소권 없음’ 처리됐다는 것이다.

또 그는 노 전 대통령의 극단적 선택 책임을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돌렸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변호인이었던 문 전 대통령이 제대로 변호사 업무를 수행했다면, 노 전 대통령이 그렇게 큰 심리적 압박에 내몰리지 않았을 것이란 취지의 발언이었다.

노 전 대통령 검찰 수사 진두지휘
서거 13주기 앞두고 회고록 출간

그러면서 이 전 부장은 문 전 대통령이 발언을 뒤집고 검찰을 악마화해 대통령이 됐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문 전 대통령을 겨냥해 “노무현의 주검 위에 거짓의 제단을 만들어 대통령이 됐다”고 적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서 비롯된 검찰의 ‘가해자’ 프레임을 희석할 의도로 풀이된다. 이 전 부장은 지난 19일, 한 매체와의 통화에서 “책은 고소도 각오하고 사실을 밝히기 위해 쓴 것”이라며 “인터넷상에 떠도는 각종 허위 사실과 억측을 바로잡으려 한 것뿐”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이 전 부장의 발언에선 검찰 조직에 대한 각별한 인식과 자신의 검사 생활에 대한 자부심이 엿보인다.


이 전 부장은 1958년 1월22일 경기도 용인 출생으로 경동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 법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 14기를 수료했다. 

이 전 부장은 1985년부터 검사의 길을 걸었다. 초임지는 서울지방검찰청이었다. 그가 처음 두각을 드러낸 시기는 1990년 칠성파 두목 이강환 사건을 수사할 때였다. 당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수사 유공 표창을 받았다.

그 뒤에는 ‘특수통’으로서 검찰 요직을 두루 지냈다. 수사 역량 역시 인정받았다. 이 전 부장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찰연구관 등을 거쳐 1992년 미국 코넬대학교 로스쿨(LLM 과정)에서 유학했다. 워싱턴 주미 대사관 법무협력관으로 근무하던 1998년 6월에는 한미 범죄인인도조약 체결에 기여했다.

귀국한 후에는 법무부 검찰국 검찰4과장, 검찰2과장을 역임했다. 이때 2000년 12월 한미 SOFA 형사재판권 분야 개정 협상, 2001년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입법 등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거 떠민
수사 총책

최고 요직 중 하나로 꼽히는 검찰1과장 재임 이후에는 서울지검 형사9부장과 초대 금융조사부장을 지냈다. 금융조사부장 당시 SK 분식회계 사건 등 기업 수사에서 성과를 보이며 ‘재계의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중앙수사부 불법 대선자금 수사 기업수사팀장 시절에는 대기업의 불법 대선자금 제공 사실을 밝혀내 주목받았다.

노무현정부 때도 계속 승승장구했다. 2006년 서울지검 3차장검사로서 황우석 가짜줄기세포사건과 윤상림·김홍수 법조비리사건 등을 수사했다. 그는 당시 수사 공로를 인정받아 2006년 12월 노 전 대통령에게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이듬해 2007년 검사장으로 승진한 이 전 부장은 대검 기획조정부장을 거쳐 2009년 1월 중앙수사부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약 반년간 ‘박연차 게이트’ 사건을 수사했다. 회고록에 담긴 내용 중 대부분이 이 사건과 이에 얽힌 노 전 대통령에 관한 내용이다.

이 전 부장은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한 직후 수사를 마무리하고 검찰을 떠났다.

이 전 부장은 노 전 대통령과 주변인들의 구체적인 진술 내용도 공개했다. 그는 회고록에 “노 전 대통령이 중수부장실 면담에서 ‘이 부장, 시계는 뺍시다. 쪽팔리잖아’라고 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라 당황해 ‘수사 협조를 부탁드리겠습니다’라는 말만 했다”고 적었다. 

이 전 부장 주장에 따르면 당시 면담에는 노 전 대통령을 비롯해 홍만표 당시 대검 수사기획관과 변호인인 문 전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 등 5명이 참석했다.

또 검찰 조사 당시 박 전 회장이 “시계 전달 후인 2007년 봄, 노 전 대통령 부부와 청와대 만찬을 했고 노 전 대통령이 마치 시계를 찬 것처럼 왼손을 들고 ‘박 회장! 시계가 번쩍거리고 광채가 난다. 좋은 시계다’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반면 노 전 대통령은 검찰조사에서 똑같은 시계 사진을 보고 ‘본 적이 없어 모르겠다’고 진술했고, 동석한 문 전 대통령 역시 ‘시계가 이렇게 생겼군요’라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논두렁 시계
과연 진실은?

노무현재단과 민주당은 거세게 반발했다. 책 속에 등장했던 전해철 의원은 책에 대해 “무도한 거짓 주장을 좌시할 수 없다”며 “이인규 검사는 당시 거만하고 교만한 태도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재단은 “고인과 유가족을 향한 2차 가해”라며 “책 내용은 확정된 사실이 아닌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사실관계에 대한 반박도 이어졌다. 재단은 이 전 부장 회고록 발간 뒤 입장문을 내고 ‘피아제 시계 의혹’을 해명했다. 재단은 입장문에서 “박 전 회장이 회갑 선물로 친척에게 맡겼고, 친척이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권 여사에게 전달했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야 시계 존재를 알고 폐기했다”고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 부부의 노건호씨 주택자금 수뢰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재단은 “권 여사가 타향살이하는 자녀들의 재정적 어려움을 해결해달라고 정상문 전 비서관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정 전 비서관이 박 회장에게 100만달러를 빌린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노 전 대통령은 몰랐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 부장은 재단과 민주당 측의 날 선 반응과 관련해 “저는 그분들이 그런 말씀을 할 수는 있다고 이해한다”며 “나라고 이런 걸 왜 쓰고 싶었겠는가. 조용히 살면 제일 좋다”며 “그렇지만 역사와 국민 앞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누군가는 얘기를 해야 되지 않겠나”라고 털어놨다.


그는 “제가 거짓말한 것이라면 법정에서 수사 기록을 공개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검사가 작성한 것도 안 믿는다면 뭘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 전 부장은 중수부 수사 당시 기록해둔 보고용 메모를 참조해 회고록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그는 “영구보존된 기록은 훨씬 더 구체적이고 적나라하다”며 “책으로 성에 안 차면 수사 기록을 공개하는 길밖에 없다”고 전했다. 

“혐의 사실, 입증 가능했다” 주장
노재단·민주당 “2차 가해” 반발

이 전 부장은 수사 이후 와전된 일화가 있다며 이를 바로잡으려 했다. 그는 “조사 시 우병우 과장의 (노 전 대통령을 향한)호칭은 일관되게 ‘대통령님’이었고 예우를 다했다”며 “인터넷에 우 과장이 ‘당신은 뇌물수수 혐의 피의자’라는 모욕적인 말을 했다는 출처 불명의 이야기가 돌아다니고 있다”고 말을 꺼냈다. 

당시 노 전 대통령 수사팀에는 이 전 부장 외에도 우병우, 홍만표 등의 검사가 속해 있었다. 이 중 우병우 전 중수1과장은 훗날 박근혜정부의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발탁됐으나, 탄핵 정국 중 제기된 여러 의혹으로 강도 높은 수사를 받았다. 이때 우 과장의 노 전 대통령 수사 이력이 다시 회자되면서 이 같은 일화가 퍼졌다.

이 전 부장은 “문 전 대통령도 그런 발언이 없었다고 확인했는데 민주당 고민정 의원이 지난해 2월 라디오서 또 같은 내용의 허위 발언을 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온라인상에서 ‘대검에 도착하는 노 전 대통령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는 검사들’이라는 제목이 붙은 사진 은 “거짓 사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언제 어디서 찍은 사진인지 알 수 없으나 소환 당일 사진은 확실히 아니다”며 “왜 거짓 사진을 유포해 검찰을 악마화하는지 그 이유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또 ‘논두렁 시계’ 보도 논란에 대해 “검찰이 허위 사실로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프레임으로 국민을 속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검찰은 ‘논두렁 시계’ 보도에 개입한 사실이 없다”며 “‘논두렁에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 마치 금품을 받지 않은 근거인 양 교묘하게 논리를 조작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해당 보도의 발원지로 국정원을 지목했다. 당시 국정원의 수장은 원세훈 원장이었다. 하지만 원 전 원장 역시 국정원 개입설을 전면 부인하면서, 진실이 끝내 밝혀지지 않는 모양새다.

뒤늦은 결단
숨은 의도는?

정가에선 이 전 부장의 이 같은 행보를 두고 “정치 입문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다. 반 민주당적 발언과 과거 행보, 특수통 검사 출신의 이력 등이 현 정권과 여러모로 부합한다는 것이다. 다만 당사자는 일단 선을 긋는 모양새다. 그는 지난 20일 한 매체와의 통화에서 “일각에서는 국회의원 출마를 위해 책을 출간했다고 하는데 분명히 말씀드린다. 정치할 생각이 없다”며 “공직도 다시 맡을 생각이 없으며 제의가 온다고 하더라도 거절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더 글로리’ 박연진 같다” 이인규 폭로에 발끈한 유시민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 20일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북스>에 출연해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수부장이 공개한 회고록을 강하게 비판했다.

유 전 이사장은 “비평해야 할 정도로 가치가 있는 책은 아니다”라면서도 “형식은 회고록이지만, 내용은 정치 팸플릿이다. 529페이지 가운데 70페이지를 제외하면 전체가 다 노 전 대통령과 직간접적인 이야기로 꽉 채워져 있다”고 평했다.

이어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는 제목은 형식상 붙여 놓은 것이고 부제가 진짜 제목이다.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나는 노무현을 안 죽였다’ 그게 부제”라고 주장했다. 

유 전 이사장은 “(이 전 부장이)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는 얘기를 일관되게 한다. 노무현을 죽인 건 누구냐고 물으면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비롯한 진보 언론과 문재인 변호사가 죽게 했다. 이런 내용”이라고 꼬집었다.

발언 중 이 전 부장을 학교 폭력을 비판하는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등장인물에 빗대기도 했다.

그는 “박연진(작중 가해자)이 ‘걔 맞을 만해서 맞은 거야. 내가 죽인 게 아니고 평소에 걔랑 친하게 지내던 애들이 등 돌리고, 걔를 도와줘야 할 엄마가 모른 척하고 해서 걔가 죽은 거야’라고 말하는 거랑 비슷하다”며 “자신이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면 억울하지 않을 텐데 내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몹시 억울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또 “(이 전 부장이)부당하게 빼앗긴 나의 글로리를 되찾으려는 의지를 가졌으리라 본다”며 “이제 검사 왕국이 됐지 않나. 검사 왕국의 완성을 향해 가고 있지 않나. 지금이야말로 나는 도도한 대세, 역사의 흐름에 동참할 때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겠나”라고 짚었다.

유 전 이사장은 재단의 향후 법적 대응 계획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책 내용 대부분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다툴만한 가치조차 없다. 형사 고소를 하게 되면 윤석열·한동훈 검찰에 사건을 줘야 하기 때문에 고소는 없을 것”이라며 “이인규씨가 권력을 휘둘렀고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글로리를 지키기 위해 그런 방식으로 마감하셨다. 노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자신의 길을 간 것이고, 이인규씨는 자기 인생을 산 것”이라고 말했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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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