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친노·친문 들쑤신 야인 이인규 전 중수부장 노림수

14년 만에…정치적 입김 들어갔나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3주기를 약 두 달 앞두고, 노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수부장이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비리 혐의가 모두 사실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책임을 검찰이 아닌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돌렸다. 이 전 부장은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폭로에 나선 것이라 밝혔지만, 일각에서는 그의 행보를 정치적 맥락과 연결 짓는다.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수부장의 폭로 후폭풍이 거세다. 이 전 부장은 이달 공개한 자신의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누가 노무현을 죽였나>서 당시 노 전 대통령과 가족의 수뢰 혐의를 자세히 언급했다. 이 전 부장은 대검찰청 중수부장 재직 당시, 해당 혐의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가족 비리
사실이었다”

이 전 부장은 책에서 “권양숙 여사가 고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피아제 남녀 시계 세트 2개(시가 2억550만원)를 받은 사실은 다툼이 없고, 재임 중이었던 2006년 9월 노 전 대통령에게 뇌물로 전달됐음이 상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2007년 6월29일 권 여사가 노 전 대통령과 공모해 청와대서 정상문 당시 총무비서관을 통해 박 회장에게 100만달러, 그해 9월22일 추가로 40만달러를 받은 사실도 인정된다”면서 자금 용처는 아들 노건호씨의 미국 주택 구입이라고 지목했다.

2008년 2월22일 건호씨와 조카사위 연철호씨가 박 회장에게 500만달러를 받고 사업명목으로 사용한 것 역시 “다툼이 없다”고 적었다.


정 전 비서관이 특수활동비 12억5000만원을 횡령한 사건은 “노 전 대통령이 공모한 범죄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짚었다. 정 전 비서관 본인이 ‘단독 범행’이라고 밝힌 것과는 반대되는 주장이다. 

이 전 부장 설명에 따르면 당시 검찰은 이 같은 혐의로 노 전 대통령을 기소해 유죄를 받아낼 충분한 물적 증거를 확보했다. 그런데 기소 전 노 전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사건이 ‘공소권 없음’ 처리됐다는 것이다.

또 그는 노 전 대통령의 극단적 선택 책임을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돌렸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변호인이었던 문 전 대통령이 제대로 변호사 업무를 수행했다면, 노 전 대통령이 그렇게 큰 심리적 압박에 내몰리지 않았을 것이란 취지의 발언이었다.

노 전 대통령 검찰 수사 진두지휘
서거 13주기 앞두고 회고록 출간

그러면서 이 전 부장은 문 전 대통령이 발언을 뒤집고 검찰을 악마화해 대통령이 됐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문 전 대통령을 겨냥해 “노무현의 주검 위에 거짓의 제단을 만들어 대통령이 됐다”고 적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서 비롯된 검찰의 ‘가해자’ 프레임을 희석할 의도로 풀이된다. 이 전 부장은 지난 19일, 한 매체와의 통화에서 “책은 고소도 각오하고 사실을 밝히기 위해 쓴 것”이라며 “인터넷상에 떠도는 각종 허위 사실과 억측을 바로잡으려 한 것뿐”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이 전 부장의 발언에선 검찰 조직에 대한 각별한 인식과 자신의 검사 생활에 대한 자부심이 엿보인다.


이 전 부장은 1958년 1월22일 경기도 용인 출생으로 경동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 법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 14기를 수료했다. 

이 전 부장은 1985년부터 검사의 길을 걸었다. 초임지는 서울지방검찰청이었다. 그가 처음 두각을 드러낸 시기는 1990년 칠성파 두목 이강환 사건을 수사할 때였다. 당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수사 유공 표창을 받았다.

그 뒤에는 ‘특수통’으로서 검찰 요직을 두루 지냈다. 수사 역량 역시 인정받았다. 이 전 부장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찰연구관 등을 거쳐 1992년 미국 코넬대학교 로스쿨(LLM 과정)에서 유학했다. 워싱턴 주미 대사관 법무협력관으로 근무하던 1998년 6월에는 한미 범죄인인도조약 체결에 기여했다.

귀국한 후에는 법무부 검찰국 검찰4과장, 검찰2과장을 역임했다. 이때 2000년 12월 한미 SOFA 형사재판권 분야 개정 협상, 2001년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입법 등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거 떠민
수사 총책

최고 요직 중 하나로 꼽히는 검찰1과장 재임 이후에는 서울지검 형사9부장과 초대 금융조사부장을 지냈다. 금융조사부장 당시 SK 분식회계 사건 등 기업 수사에서 성과를 보이며 ‘재계의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중앙수사부 불법 대선자금 수사 기업수사팀장 시절에는 대기업의 불법 대선자금 제공 사실을 밝혀내 주목받았다.

노무현정부 때도 계속 승승장구했다. 2006년 서울지검 3차장검사로서 황우석 가짜줄기세포사건과 윤상림·김홍수 법조비리사건 등을 수사했다. 그는 당시 수사 공로를 인정받아 2006년 12월 노 전 대통령에게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이듬해 2007년 검사장으로 승진한 이 전 부장은 대검 기획조정부장을 거쳐 2009년 1월 중앙수사부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약 반년간 ‘박연차 게이트’ 사건을 수사했다. 회고록에 담긴 내용 중 대부분이 이 사건과 이에 얽힌 노 전 대통령에 관한 내용이다.

이 전 부장은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한 직후 수사를 마무리하고 검찰을 떠났다.

이 전 부장은 노 전 대통령과 주변인들의 구체적인 진술 내용도 공개했다. 그는 회고록에 “노 전 대통령이 중수부장실 면담에서 ‘이 부장, 시계는 뺍시다. 쪽팔리잖아’라고 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라 당황해 ‘수사 협조를 부탁드리겠습니다’라는 말만 했다”고 적었다. 

이 전 부장 주장에 따르면 당시 면담에는 노 전 대통령을 비롯해 홍만표 당시 대검 수사기획관과 변호인인 문 전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 등 5명이 참석했다.

또 검찰 조사 당시 박 전 회장이 “시계 전달 후인 2007년 봄, 노 전 대통령 부부와 청와대 만찬을 했고 노 전 대통령이 마치 시계를 찬 것처럼 왼손을 들고 ‘박 회장! 시계가 번쩍거리고 광채가 난다. 좋은 시계다’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반면 노 전 대통령은 검찰조사에서 똑같은 시계 사진을 보고 ‘본 적이 없어 모르겠다’고 진술했고, 동석한 문 전 대통령 역시 ‘시계가 이렇게 생겼군요’라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논두렁 시계
과연 진실은?

노무현재단과 민주당은 거세게 반발했다. 책 속에 등장했던 전해철 의원은 책에 대해 “무도한 거짓 주장을 좌시할 수 없다”며 “이인규 검사는 당시 거만하고 교만한 태도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재단은 “고인과 유가족을 향한 2차 가해”라며 “책 내용은 확정된 사실이 아닌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사실관계에 대한 반박도 이어졌다. 재단은 이 전 부장 회고록 발간 뒤 입장문을 내고 ‘피아제 시계 의혹’을 해명했다. 재단은 입장문에서 “박 전 회장이 회갑 선물로 친척에게 맡겼고, 친척이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권 여사에게 전달했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야 시계 존재를 알고 폐기했다”고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 부부의 노건호씨 주택자금 수뢰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재단은 “권 여사가 타향살이하는 자녀들의 재정적 어려움을 해결해달라고 정상문 전 비서관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정 전 비서관이 박 회장에게 100만달러를 빌린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노 전 대통령은 몰랐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 부장은 재단과 민주당 측의 날 선 반응과 관련해 “저는 그분들이 그런 말씀을 할 수는 있다고 이해한다”며 “나라고 이런 걸 왜 쓰고 싶었겠는가. 조용히 살면 제일 좋다”며 “그렇지만 역사와 국민 앞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누군가는 얘기를 해야 되지 않겠나”라고 털어놨다.


그는 “제가 거짓말한 것이라면 법정에서 수사 기록을 공개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검사가 작성한 것도 안 믿는다면 뭘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 전 부장은 중수부 수사 당시 기록해둔 보고용 메모를 참조해 회고록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그는 “영구보존된 기록은 훨씬 더 구체적이고 적나라하다”며 “책으로 성에 안 차면 수사 기록을 공개하는 길밖에 없다”고 전했다. 

“혐의 사실, 입증 가능했다” 주장
노재단·민주당 “2차 가해” 반발

이 전 부장은 수사 이후 와전된 일화가 있다며 이를 바로잡으려 했다. 그는 “조사 시 우병우 과장의 (노 전 대통령을 향한)호칭은 일관되게 ‘대통령님’이었고 예우를 다했다”며 “인터넷에 우 과장이 ‘당신은 뇌물수수 혐의 피의자’라는 모욕적인 말을 했다는 출처 불명의 이야기가 돌아다니고 있다”고 말을 꺼냈다. 

당시 노 전 대통령 수사팀에는 이 전 부장 외에도 우병우, 홍만표 등의 검사가 속해 있었다. 이 중 우병우 전 중수1과장은 훗날 박근혜정부의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발탁됐으나, 탄핵 정국 중 제기된 여러 의혹으로 강도 높은 수사를 받았다. 이때 우 과장의 노 전 대통령 수사 이력이 다시 회자되면서 이 같은 일화가 퍼졌다.

이 전 부장은 “문 전 대통령도 그런 발언이 없었다고 확인했는데 민주당 고민정 의원이 지난해 2월 라디오서 또 같은 내용의 허위 발언을 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온라인상에서 ‘대검에 도착하는 노 전 대통령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는 검사들’이라는 제목이 붙은 사진 은 “거짓 사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언제 어디서 찍은 사진인지 알 수 없으나 소환 당일 사진은 확실히 아니다”며 “왜 거짓 사진을 유포해 검찰을 악마화하는지 그 이유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또 ‘논두렁 시계’ 보도 논란에 대해 “검찰이 허위 사실로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프레임으로 국민을 속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검찰은 ‘논두렁 시계’ 보도에 개입한 사실이 없다”며 “‘논두렁에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 마치 금품을 받지 않은 근거인 양 교묘하게 논리를 조작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해당 보도의 발원지로 국정원을 지목했다. 당시 국정원의 수장은 원세훈 원장이었다. 하지만 원 전 원장 역시 국정원 개입설을 전면 부인하면서, 진실이 끝내 밝혀지지 않는 모양새다.

뒤늦은 결단
숨은 의도는?

정가에선 이 전 부장의 이 같은 행보를 두고 “정치 입문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다. 반 민주당적 발언과 과거 행보, 특수통 검사 출신의 이력 등이 현 정권과 여러모로 부합한다는 것이다. 다만 당사자는 일단 선을 긋는 모양새다. 그는 지난 20일 한 매체와의 통화에서 “일각에서는 국회의원 출마를 위해 책을 출간했다고 하는데 분명히 말씀드린다. 정치할 생각이 없다”며 “공직도 다시 맡을 생각이 없으며 제의가 온다고 하더라도 거절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더 글로리’ 박연진 같다” 이인규 폭로에 발끈한 유시민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 20일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북스>에 출연해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수부장이 공개한 회고록을 강하게 비판했다.

유 전 이사장은 “비평해야 할 정도로 가치가 있는 책은 아니다”라면서도 “형식은 회고록이지만, 내용은 정치 팸플릿이다. 529페이지 가운데 70페이지를 제외하면 전체가 다 노 전 대통령과 직간접적인 이야기로 꽉 채워져 있다”고 평했다.

이어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는 제목은 형식상 붙여 놓은 것이고 부제가 진짜 제목이다.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나는 노무현을 안 죽였다’ 그게 부제”라고 주장했다. 

유 전 이사장은 “(이 전 부장이)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는 얘기를 일관되게 한다. 노무현을 죽인 건 누구냐고 물으면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비롯한 진보 언론과 문재인 변호사가 죽게 했다. 이런 내용”이라고 꼬집었다.

발언 중 이 전 부장을 학교 폭력을 비판하는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등장인물에 빗대기도 했다.

그는 “박연진(작중 가해자)이 ‘걔 맞을 만해서 맞은 거야. 내가 죽인 게 아니고 평소에 걔랑 친하게 지내던 애들이 등 돌리고, 걔를 도와줘야 할 엄마가 모른 척하고 해서 걔가 죽은 거야’라고 말하는 거랑 비슷하다”며 “자신이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면 억울하지 않을 텐데 내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몹시 억울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또 “(이 전 부장이)부당하게 빼앗긴 나의 글로리를 되찾으려는 의지를 가졌으리라 본다”며 “이제 검사 왕국이 됐지 않나. 검사 왕국의 완성을 향해 가고 있지 않나. 지금이야말로 나는 도도한 대세, 역사의 흐름에 동참할 때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겠나”라고 짚었다.

유 전 이사장은 재단의 향후 법적 대응 계획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책 내용 대부분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다툴만한 가치조차 없다. 형사 고소를 하게 되면 윤석열·한동훈 검찰에 사건을 줘야 하기 때문에 고소는 없을 것”이라며 “이인규씨가 권력을 휘둘렀고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글로리를 지키기 위해 그런 방식으로 마감하셨다. 노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자신의 길을 간 것이고, 이인규씨는 자기 인생을 산 것”이라고 말했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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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가족의 당원 게시판 연루 의혹 가능성을 사실로 확정 짓고 있다. 같은 당 장동혁 대표도 한 전 대표 축출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한 전 대표는 점점 광야로 내몰리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2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실상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축출 의지를 드러냈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었으나 ‘걸림돌’이라고 호칭했다. “제거돼야 통합 가능” 장 대표는 이날 “당내 통합에 걸림돌이 있다면 제거돼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표는 개인적 감정에 따라 움직이거나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당원과의 관계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인 어떤 걸림돌은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연대·통합을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민의힘의 주요 화제 중 하나는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됐다”는 당원 게시판 의혹이다. “한 전 대표 가족들의 명의를 이용한 아이디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비난 글을 다수 작성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무감사위는 이날 “비난 글을 작성한 문제 계정들은 한 전 대표 가족 5인의 명의와 같고, 전체 87.6%는 2개의 IP로 작성된 여론조작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 보도 후 연루자들의 탈당·대규모 게시글 삭제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도 별도의 자료를 발표했다. 그는 “해당 IP를 사용한 계정 10개 중 4개는 같은 휴대전화 뒷번호·같은 선거구(서울 강남병)을 공유한다”며 “동명이인이 이 모든 조건을 우연히 공유할 확률은 사실상 0%고, 탈당 시점도 4일 이내로 집중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제는 당 대표 본인·가족 명의 계정을 이용해 다수 당원이 지지하는 것처럼 위장한 것”이라며, “당심을 왜곡한 후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해서 일반 여론까지 움직이려 했다면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한 범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을 드루킹 사건과 비교했던 사람은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이다. 장 부원장은 지난달 15일 임명된 후 장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24년 11월 이 사건을 일컬어 ‘온가족 드루킹’ 혹은 ‘한가족 드루킹’ 등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 전 대표를 비난했다. 장에 한은 당내 통합 걸림돌 취급 “게시글,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 한 전 대표와 가족을 강하게 비판한 장 부원장이 사용하는 표현을 위원장 발표 자료에 담은 것을 봐선, 이날 당무감사위의 발표는 “국민의힘에서 한 전 대표를 확실하게 내보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무감사위에 따르면, 한 전 대표에게 소명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전 대표는 방송 출연으로써 하루 격차를 두고 상반된 의견을 냈다. 그는 지난달 30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당시엔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게시물이 당원 게시판을 뒤덮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 가족이 익명 보장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판적 사설·칼럼을 올렸단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가족이 게시물을 올렸다”고 처음 인정하면서도 “저는 글을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족 명의로 게시물을 올리는 게 비난받을 일이라면 가족이 아닌 저를 비난하라고 말하고 싶다”면서도 “제가 제 이름으로 글을 쓴 게 있는 것처럼 발표한 것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한 전 대표는 다음 날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위원장이 ‘동명이인 한동훈’ 게시물을 제 가족 게시물인 것처럼 조작해서 발표했다”면서 이 위원장에 대한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이어 “게시물 작성 시기는 제가 정치를 시작하기 전·최근 등 무관한 것을 대표 사례라고 조작해 발표했는데, 저는 당원 게시판에 아예 가입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장 대표는 지난 7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진행된 ‘이기는 변화’ 기자회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자행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장 대표는 이날 “12·3 비상계엄은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으로써, 국민께 큰 혼란·불편을 끼쳤고, 당원께 큰 상처가 됐다”며 “국정 운영의 한 축이었던 여당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고,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 국민의힘이 부족했으니, 잘못·책임은 국민의힘 안에서 찾겠다”면서 “국민의힘은 오직 국민 눈높이에서 새롭게 시작하겠으니, 과거의 일은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역사의 평가에 맡겨놓고,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명 개정 추진 의사도 밝혔다. 장 대표의 이날 기자회견을 놓고,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하는 강경 보수 유튜버 고성국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에 출연한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입당 원서를 직접 전달하는 형식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가 국민의힘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끌어들여 세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이어 “고씨를 입당시킨 것과 장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대국민 사과는 모순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고씨는 평소 한 전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이날 김 최고위원도 고씨의 입당 원서 작성을 지켜보면서 “혹시 당원 게시판에 글 올리시면 들통난다”는 등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거를 타선 없는 국힘?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은 지난 6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 세력을 축출하고, 완전히 윤 어게인 세력의 당으로 만들어 훨씬 더 극우화된 정당으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미 고씨와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입당했고, 윤 전 대통령 변호인 김계리 변호사도 곧 입당 심사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의힘은 거를 타선이 없는 정당이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내보낼 것”이라는 예측은 “한 전 대표에겐 뚜렷한 정치적 기반이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핵심 기반은 팬클럽 ‘위드후니’다. 위드후니는 40대 이상 여성 중심으로 구성돼있고, 활동하는 노년 여성도 다수다. 하지만 선거는 결국 지역 기반으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가장 큰 정치적 약점으로는 지역 기반이 없다는 것이 주로 거론된다. 한 전 대표의 정치 기반에 대해선 ‘중도층·수도권 화이트칼라 계층에서 일정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가 지난 4일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1일부터 이틀 동안 만 18세 이상 중도 성향을 지닌 전국 18세 이상 남녀 5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15%는 보수 진영을 이끌면 가장 두려운 상대로 한 전 대표를 지목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가 중도층을 국민의힘으로 유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그 객관적 지표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을 지휘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108석만 겨우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묶어 ‘이조심판론’을 주장하면서 “야당이 2/3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일각에선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을 잡아야 하는데, 왜 안 하느냐”며 비판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서울 전체 48석 중 11석을 차지했고, 인천·경기 60석 중 6석만을 차지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 전 대표가 수도권·중도층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총선 결과”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중도층 영향력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일각에서 주장했던 ‘장·한·석(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성립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 이유도 한 전 대표였다. 장 대표는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대한 표현에 특별히 문제 삼지 않겠다”면서도 “당내 인사와 어떻게 정치를 풀어가느냐는 문제에 왜 연대란 이름을 붙이는 건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당내 인사’도 한 전 대표를 뜻한다. 따라서 장 대표의 지난 2일 발언한 “당내 통합 걸림돌을 제거해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에서 ‘걸림돌’이 한 대표라면, ‘통합’ 범위엔 개혁신당과의 연대가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지난달부터 통일교 특검법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장 대표도 “자강을 논하는 단계에서 연대를 논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면서도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개혁신당은 이준석 대표가 국민의힘 소속이었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때문에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후 탈당해 창당됐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당시 과정에서 쌓인 앙금을 잊지 않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자멸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축출한 후 강경 보수 세력을 당내 세력화해 ‘자강’을 이룬 후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한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6월 대선에서 ▲서울 41.55% ▲경기 37.95% ▲인천 38.44% 등을 득표했다. 약 12% 이상의 부족분을 중도층으로부터 얻어와야 한단 사실을 모를 가능성은 낮다. 당시 이 대표는 ▲서울 9.67% ▲경기 8.84% ▲인천 8.74% 등 득표했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개혁보수·중도 제3지대에 두텁게 포진해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개혁신당이 확보한 8~9%의 지지가 필요하다. 중도층의 지지를 얻는 게 확실한지 아직 선거에서 검증되지 않은 한 전 대표와 달리 이 대표는 대통령선거에서 거둔 실적이 뚜렷하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 최대 아킬레스건인 중도·수도권 공략을 개혁신당과 이 대표의 힘을 빌려 해결하겠다”고 생각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수도권 영향력 의문…이준석으로 대체? 지방선거 앞두고 신당 창당 가능할지 의문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중징계하거나 한 전 대표가 탈당하면, 한 전 대표의 운신 폭은 매우 좁아질 수도 있다. 정치의 중심은 국회라서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야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는 6월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방선거’다. 함께 진행되는 재보궐선거는 현시점에선 ▲인천 계양을 ▲충남 아산을 ▲경기 평택을 ▲전북 군산·김제·부안갑 등 4곳이 확정됐다.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의 지역구도 가능성이 있지만, 후보로 확정된 의원만 사퇴해 재보선을 치른다. 그 외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이 진행 중이라서 재보선을 치를 가능성이 있는 지역구로는 3곳이 거론된다. 이 정도 규모의 선거에서의 선전을 바라보고 창당하는 것은 모험에 가까우며, 동력이 얼마나 될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들이 모두 한 전 대표의 정치 행보에 무조건 동참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지역 구도가 특히 큰 힘을 발휘하는 한국 선거에서 각각 호남·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둔 민주당·국민의힘과 달리 한 전 대표는 독자적인 지역 기반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그와 비슷한 이 대표도 젊은 유권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데다 민주당·국민의힘에서도 모두 후보를 공천한 경기 화성을에서 3자 구도를 만들어 승리했다. 특히 지방선거·재보선은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은 만큼 보수성이 강하며 그만큼 바람을 일으키기도 어렵다.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설 가능성이 크지만, 신당 창당은 동사·벼랑 끝에 서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한 전 대표의 절정은 12·3 비상계엄 사태였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계파 소속 의원들과 함께 국회에 진입해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이 숙청을 시도하던 반대파 중 1명이 됐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절정은 여기서 끝이었다. “한 전 대표가 가족 관리에 실패했다”는 취지의 당원 게시판 의혹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 한 전 대표를 서서히 옥죄고 있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이후 한 전 대표는 비상할 수 있었다. 그는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총리·여당 당정 협력 담화’ 형식의 일명 ‘한덕수·한동훈 체제’ 성립을 시도했다. 한덕수·한동훈 체제는 각계각층의 강한 비난 때문에 실제로 성립되진 못했다. 이후 한 전 대표는 친한계 일원이란 평가를 받는 진종오 의원을 포함한 최고위원 4명이 전원 사퇴해 지도부가 붕괴하는 상황을 겪었다. 한때 핵심 측근이었던 장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로서 한 전 대표 퇴출을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현 상황으로 이어진 한 전 대표 최대의 패착은 2024년 12월11일 장 의원이 입을 굳게 다물고 당 대표실을 나갈 때, 문을 잡고 미소 지었던 순간이다. 폭발까지 도화선은? 폭발이 일어날 때 트리거는 하나다. 하지만 폭탄까지 가는 도화선은 여러개일 수도 있다. 트리거가 터져 폭발이 일어나면, 폭발까지 가는 도화선도 모두 다 터진다. 장 대표는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선을 앞두고 그 트리거를 만지고 있다. 트리거가 당겨지면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선다. 한 전 대표는 과연 광야에 서게 될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