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위기의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말하다

“늘 그랬던 정의당답게 반드시 일어설 겁니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정치권에서 노란색은 민주주의와 자유의 상징으로 통하는 색이다. 현재는 국회 제3당인 정의당을 대표하는 색이기도 하다. 그런 정의당이 위기에 내몰렸다. 현 정치권에서 정의당이 대표적인 진보정당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내년 총선에 정의당의 자리가 있겠냐는 가혹한 비판이 나온다.

몰락 위기에 몰린 정의당이 최근 반전을 꾀하려는 모양새다. 무슨 당 2중대라는 오명을 탈피하고, 정체성을 잃었다는 비판 속에서 옛 캐스팅보터로서의 존재감을 다시 찾기 위해 정의당만의 노선을 다시 걷는 중이다. 

“분명 우리 당은 부침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하는 사람을 위한 당으로서 정체성을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의당에 쭉 몸담아온 이정미 대표의 발언으로 그도 현재 정의당이 처한 현실을 잘 알고 있다. 4기 정의당 대표에 이어 7기 정의당 대표직을 수행 중인 그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정의당이 풀어야할 숙제가 산적해 있는 탓이다. <일요시사>가 이 대표에게 정의당의 새 노선, 총선 대비, 비전과 목표 등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정의당의 10년을 되돌아본다면?

▲대한민국의 소위 다수 소선거구제라고 하는 정치제도 안에서 제3의 정당이 필요하다는 국민의 용기가 있어 지금까지 정의당이 존재했다. 수많은 제3정당이 탄생했고, 멸망해갔는데 결국 끝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정당이다. 정의당의 위치와 위상을 확보해왔다는 점이 가장 의미가 있다.

선거 시기에 일정한 인물들이 등장해 제3정당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려 했다가 실패하고 없어지는 과정이 많았다. 정의당 입장에서는 성공의 과정도 있었고, 실패의 과정도 분명 있었다. 여전히 대한민국에 제3정당의 필요성에 부합되는 길을 찾아가기 위해 굳건히 살아남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아쉬웠던 점은?

▲제3정당이 어떤 위상을 차지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집권 가능성까지 열어주기 위한 정의당의 세력이 더 확장됐어야 한다. 전체적인 풀도 더 커졌어야 했는데, 당 안팎으로 여러 가지 부침이 있으면서 정의당에 투자해서 투자한 만큼의 승수가 나온다고 하는 확신을 아직까지 국민에게 안겨드리지 못했던 점이다. 

-국민에게 확신이나 믿음을 좀 받지 못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국민 입장에서 볼 때 다음에 저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인물이 더 많이 만들어졌어야 한다. 그 인물을 계속 키워내지 못했던 게 아쉽다. 특히 지금 정의당이 직면해있는 한계 중 하나가 재선 국회의원을 더 이상 만들어내고 있지 못한 문제다.

노회찬, 심상정으로 대변되는 정의당이 다음에는 어떤 인물이 재선 국회의원 도전에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정의당의 다음을 끌어갈 수 있는 리더십으로 자리 잡게 만들어가는 연결성을 계속 가져가지 못했던 것도 굉장히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다. 

-시대가 굉장히 빠르게 변한 탓도 있어 보인다

▲굉장히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진보정당이 그 시대의 변화를 선도해나갈 수 있도록 대중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대안들을 좀 더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들이 약화됐다는 그런 비판을 많이 받는다. 특히 불평등 시대, 기후위기 시대 같은 시대적 위기감들은 우리가 많이 이야기해왔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대중에게 제시하는 부분이 부족했다.


“집권 가능성 세력 확장 아쉬워”
“입장 일관되게 포인트 쌓았어야”

제3의 정당이라면 거대 양당과는 다른 정의당만의 분명한 정치적 입장을 일관되게 보여주면서 우리 포인트를 쌓아갔어야 한다. 지금껏 쌓아온 포인트가 무너지는 일이 반복됐다. 결국 정의당도 기성 정당화됐다는 지적을 많이 하신다. 

-거대 양당에 비해 정의당은 당의 힘만으로 버티긴 힘들어 보인다

▲부자들은 망해도 3년은 먹고 산다. 거대 당들은 이런저런 실수도 있고, 부침도 있다. 실망감을 많이 안겨드려도 당의 힘으로 버텨냈다. 그러나 정의당은 당적 기반이 아직도 취약하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정의당이 안정감을 가진 정치세력을 가졌다고 인정받기 전이다. 이런 탓에 부침이 자주 있다. 당 내부의 체질이 많이 허약해진 점도 굉장히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그런 의미에서 정의당이 다시 태어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만큼은 다른 기류가 느껴진다. 일각에서는 당명도 바꾼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결국 재창당이라고 하는 것은 두 가지 방식 중에 하나다. 당 대 당 통합을 통해 다른 정당으로 거듭나거나, 기존의 정의당이 가지고 있던 부분을 완전히 다 탈바꿈 하는 부분이다.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다 열어놓고 재창당 추진 과정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목표는 내년 총선을 통해 정의당이 정당다운 위상과 국민이 요구하는 당다운 효능감을 안겨드릴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인정받는 과정을 만드는 것이다. 

-정의당을 상징하는 색깔은 노란색이다

▲우리가 어떤 세력과 더 크게 손을 잡을지, 이런 것들 속에서 당명과 당의 색이라는 부분도 어떤 세력과 함께 공유하는 가치 속에서 결정이 돼야 한다.

-노선이 바뀐 것도 지지를 잃게 된 이유 중 하나 아닌가?

▲정의당이 지난 2, 3년간 많은 어려움을 겪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정의당이 가장 주력했고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건 결국 일하는 사람을 대변하는 입법 투쟁 과정이 있어서다. 예를 들어 중대재해처벌법도 정의당이 한 달 넘는 단식을 통해 얻어냈다.

이번 노란봉투법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과정에서도 정의당이 85일간 천막 농성을 하면서 전 당원이 집중해서 싸웠다. 그런 점에서 우리 당이 일하는 사람을 대변하는 정당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잃었다는 비판에는 동의할 수 없다. 

-페미니즘 노선 등이 패착이라는 지적도 있다


▲노동의 영역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불합리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지금 시대를 우리는 복합 위기 시대라고들 이야기한다. 하나의 문제만을 해결해 이 사회의 불합리성, 불평등함이 해결되기는 어려운 시대다. 중소상공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답을 내놔야 하는 역할은 정의당에 있다.

“당다운 효능감 안겨 다시 재건”
“앞으로 캐스팅보트 역할할 것”

또 여성들이 겪는 차별과 불평등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 기존 양당들로만은 노동권, 여성, 장애인, 중·소상공인들이 목소리를 대변해오지 못했다. 정의당은 우리 사회에서 차별받고 부당한 대접을 받은 사람의 목소리를 내는 당이다. 이런 목소리들을 정의당이 집약해서 제대로 실행해나가려 한다. 

-과거 민주당 2중대라는 별명이 있었다. 최근에는 정의당만의 노선을 확립하겠다고 하면서 깐깐해졌다를 평가를 받는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이번이 두 번째 당 대표다. 정의당 4기 당 대표 때도 잘하는 건 잘한다. 못하는 건 못한다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목표였다.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입법 활동이라고 하면 누구라도 함께 손을 잡고 연합할 수 있는 게 정치다. 정치라는 게 극단적인 이해관계자들이 단순히 싸움만 하는 게 아니다.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치인들이 갈등을 조정하고 타협점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단순히 정당 간의 어떤 연대와 연합이라고 하는 것은 정치 안에서 상수로 존재한다. 그러나 거대 양당이 극단적인 대결 정치를 벌이다 보니 정의당의 어떤 입장과 태도가 민주당과 가까우면 민주당 2중대로, 국민의힘에 가까우면 국민의힘의 2중대로 불린다. 이런 프레임으로 정의당을 규정해왔다.


-이번에는 어떻게 다른가?

▲이번 7기에서 당 대표가 되면서 나는 그런 프레임을 거부하는 중이다. 어느 당에 가깝냐고 정의당을 평가하는 것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들이 법원에 가서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걸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거부할 수 있다는 지점을 국민이 어떻게 바라볼까 하는 자체적인 판단에서 결정한 사안이다.

우리가 2중대가 되지 않기 위해 굳이 이런 선택을 했다는 건 더더욱 아니다. 정의당의 존재 이유가 남의 눈치나 보려고 있는 것도 전혀 아니다. 더 이상 이런 평가를 받고 싶지 않다. 

-바뀔 정의당이 내세우는 비전과 목표는 무엇인가?

▲국민의 눈높이서 모든 정치 현안에 대한 명확한 판단을 내리겠다. 이게 1차 목표다. 노동자를 말하면 예전에는 소위 ‘나인 투 식스’라는 말처럼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을 주로 떠올린다. 또 그 사람들이 만드는 어떤 노동조합도 생각하기 쉽다. 지금은 노동의 영역이 너무 다변화돼버렸다. 일하는 장소, 시간, 자신의 업무를 지시하는 형태도 너무나 달라졌다.

“국힘 과반 의석 반드시 저지”
“윤, 노조 기능 모르고 혐오”

이런 점 때문에 기존 노통 형태 영역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정작 노동법의 보호를 받고 있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대다수 노동자의 삶의 현실에 우리가 다시 접근해가야 한다. 지난해 우리 국민이 제일 많이 검색했던 키워드가 기후위기다. 기후위기에 대한 명확한 대책을 지금부터 내야 한다.

출산율도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나라 출산율은 0.78명이라는 충격적인 숫자가 집계됐다. 인구절벽에 대한 문제와 기술변화에 따른 인간의 미래에 대해 한 걸음 앞서 정의당이 사회 비전을 제시하려고 한다. 

-내년 총선은 어떻게 대비할 예정인가?

▲정의당이 그동안 굉장히 취약해져 있는 지역 기반을 다시 다지는 일이 중요하다. 정의당이 열심히 뛰고 있는 지역이라고 하는 근거지를 다시 잘 세워나갈 예정이다. 다음 총선에서는 적어도 제3당다운 위상을 세우고, 의석을 확보하겠다. 지금 국회가 19대서 21대로 가면서 더 상황이 나빠지고 있는 형국이다. 잘못 나아가는 정치를 바로잡기 위한 사명감을 정의당은 가지고 있다. 

-중대선거구제에 대한 정의당의 입장은?

▲결국 선거제도라고 하는 것은 각 당의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그 틀 안에서 합의를 이룰 수 있는 안이라고 한다면 공통분모를 최대한 찾기 위해 노력하겠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평가는?

▲의회에서 민주당이 절대 다수 의석을 가지고 있긴 하다. 그렇지만 현재 윤정부가 너무 견제받지 않고, 폭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견이다. 거대 양당인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뭘 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서로 못하게만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입법 권한을 국회 다수 의석이 거부하면 그대로 끝이다. 또 국회 다수 의석이 결정한 일을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상황으로 계속 되돌이표가 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정의당이 국민의힘 과반 의석은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윤 대통령의 폭주에 브레이크를 걸 기회가 사라진다. 이런 점에서 정의당이 선명한 자기 색깔을 가지고 국회 내에 합리적인 조정을 이룰 수 있도록 다시 캐스팅보트가 되는 게 중요한 과제다. 

-노란봉투법에 대해 윤정부에서 반대 목소리를 낸다

▲윤 대통령이 노동조합의 기능에 대해 잘 모르고 심지어 혐오한다는 생각이 든다. 헌법정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거다. 대한민국 헌법 33조가 왜 있는지 살펴봤으면 좋겠다. 밥줄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사용자다.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적어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헌법정신을 율사 출신답게 이해줬으면 한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하청 비정규직 노동 형태가 상당히 많이 나타났다. 기존 노동관계법은 변화된 노동 현실을 제대로 잘 반영하지 못한다. 노란봉투법은 시대 추세에 맞게 노동법도 변화시키자는 게 취지다.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법으로 인해 보호받아야 할 시민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지금의 노동법은 하청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그 권리를 잘 부여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개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노조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바꾸고 법률이 갖는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기를 바란다. 

-당 대표로서 앞으로의 목표는?

▲정의당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려 한다. 양당만을 가지고는 우리 사회에서 정치가 보호해야 할 사람들 입장을 다 대변할 수 없다. 반드시 우뚝 일어서겠다. 

<ckcjfd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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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 인수전’ 카카오 후유증

‘SM 인수전’ 카카오 후유증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입에 삼키기엔 너무 컸던 걸까?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카카오가 사법 리스크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하이브와의 전쟁서 이겼지만 ‘상처뿐인 승리’가 된 모양새다. 엔터계 공룡을 삼킨 공룡 기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불과 몇 년 만에 국민 기업서 밉상 기업으로 전락했다. ‘카카오톡’이 전 국민의 메신저가 될 때까지만 해도 카카오의 미래는 밝았다. 카카오톡의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배경으로 사업을 확장했던 초기에도 부정적인 여론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골목상권 침해, 쪼개기 상장 등의 문제가 터지면서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국민 기업 밉상 기업 카카오가 창립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해 2~3월 하이브와의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인수전 과정서 일어난 일이 사법 리스크로 되돌아오는 모양새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어울리는 결말이다. 승자의 저주는 경쟁에서는 이겼지만 그 과정서 과도한 비용을 사용해 후유증을 겪는 상황을 뜻한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는 지난 17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CA협의체 경영쇄신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 SM 인수 과정서 경쟁사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SM의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매수가인 12만원보다 높게 올릴 목적으로 시세를 조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김 위원장이 카카오가 지난해 2월 2400억원을 동원해 553차례에 걸쳐 SM 주식을 고가에 매수하는 데 관여했다고 보고 있다. 카카오는 사모펀드 운용사인 ‘원아시아파트너스’와 공모해 주가가 떨어지지 않도록 지난해 2월16~17일, 27일 원아시아파트너스가 1100억원을 먼저 투입하고 같은 달 28일 카카오가 뒤이어 1300억원을 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검찰은 원아시아파트너스 대표 지모씨를 시세조종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변호인단은 김 위원장이 SM 지분 매수 과정서 어떤 불법적 행위도 지시, 용인한 바 없으며 지분 매수는 정상적 장내 매수였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카카오 내부는 당혹스러운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영장을 청구한 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첫 구속영장을 발부했던 영장전담판사가 배정된 점 등에 긴장하는 분위기다. 하이브와 크게 벌인 ‘쩐의 전쟁’ 경영권 차지했지만 사법리스크↑ 김 위원장은 지난 9일, 20시간의 밤샘 조사에서 “SM 주식을 장내 매수하겠다는 안건을 보고받고 승인한 것은 맞지만 구체적인 매수 방식과 과정에 대해서는 보고받지 않아 몰랐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날 조사 이후 8일 만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위원장의 혐의를 입증할 인적·물적 증거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사모펀드를 통해 투자해서 우호 지분을 확보하라고 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카카오 임직원 간 메시지를 비롯해 김 위원장의 혐의를 뒷받침하는 관계자의 통화 녹취, 진술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와 하이브의 SM 인수전은 혈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치열했다. SM은 K팝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연예기획사로 H.O.T, 보아, 동방신기, 소녀시대, 샤이니, EXO, NCT, 에스파, 라이즈 등의 유명 보이·걸그룹을 배출한 ‘아이돌 명가’로 알려져 있다. 대형 연예기획사를 둘러싼 카카오와 하이브의 인수전은 K팝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SM 인수전의 시작은 이수만 SM 전 총괄 프로듀서의 지분 매각설서 시작됐다. 이 전 프로듀서는 SM의 설립자로 SM 소속 가수를 좋아하는 팬덤 사이에서는 ‘수만 아버지’로 불리는 등 일종의 개척자로 여겨지고 있다. 이 전 프로듀서가 지분을 매각한다는 소문이 돌았을 당시 카카오, 네이버 등이 매수자로 언급되곤 했다.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하 얼라인파트너스)이 SM 지배구조를 문제 삼으면서 인수전의 막이 올랐다. 특히 얼라인파트너스는 이 전 프로듀서 소유의 라이크기획이 SM과의 내부거래로 주주가치를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SM이 얼라인파트너스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내부 갈등이 촉발됐다. 급히 먹다 탈 났나? 이 과정서 이성수·탁영준 공동대표 등 현 SM 경영진이 얼라인파트너스, 카카오와 손을 잡았다. 이 전 프로듀서 측과 완벽한 대립각을 세운 현 SM 경영진은 ‘SM 3.0’을 발표하고 멀티 제작센터·레이블 체제로 전환을 발표했다. 이 전 대표 지우기에 나선 것이다. 여기에 SM 경영진이 지난해 2월7일 카카오가 신주와 전환사채(CB) 인수를 통해 지분 9.05%를 확보할 것이라고 공시했다. 이 전 프로듀서가 찾은 동앗줄은 하이브였다. 이 전 프로듀서는 SM의 공시 다음 날 법원에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기했다. 그리고 2월9일 자신이 보유한 SM 지분 18% 중 14.8%를 하이브에 매각하는 계약을 맺었다. 하이브는 SM 주식을 주당 12만원에 공개매수해 지분을 추가로 25%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SM 인수전이 카카오와 하이브의 대결로 압축됐다. SM 인수전은 한치 앞도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엎치락 뒤치락을 반복했다. 법원이 이 전 프로듀서가 제기한 가처분신청을 인용하면서 하이브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가 공개매수가 실패한 사실이 드러나자 카카오가 반격하는 식이다. 카카오와 카카오엔터는 지난해 3월7일부터 SM의 지분 35%를 주당 15만원에 공개매수하기 시작했다. 약 833만주에 달하는 주식으로 총 1조2500억원이 투입되는 어마어마한 물량이다. SM 인수전은 하이브가 카카오가 시작한 ‘쩐의 전쟁’서 한발 물러나면서 변곡점을 맞게 됐다. 쇄신 노력 ‘물거품’ 이후 카카오가 경영권을 갖고 하이브는 플랫폼 협력을 하는 방향으로 SM 인수전이 마무리됐다. 지난해 3월12일 하이브는 SM 인수 절차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하이브는 “카카오·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의 경쟁 구도로 인해 시장이 과열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고 판단했다”며 “이는 하이브의 주주가치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의사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카카오는 “SM의 가장 강력한 자산이자 원동력인 임직원, 아티스트, 팬덤을 존중하고자 자율적‧독립적 운영을 보장하고 현 경영진이 제시한 SM 3.0을 비롯한 미래 비전과 전략 방향을 중심으로 글로벌 성장에 속도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엔터계 ‘공룡’을 삼킨 또 다른 공룡 기업의 탄생이었다. 하지만 카카오가 SM을 인수하기 위해 벌인 ‘쩐의 전쟁’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하이브는 당시 SM 인수전서 발을 뺀 뒤 “비정상적 매입 행위가 발생했다”며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에 조사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SM 주가가 공개매수가인 12만원을 넘어 한때 13만원까지 급등한 점을 문제 삼았다.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비정상적으로 주식을 매입해 시세를 조종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금감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이하 특사경)은 지난해 10월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 대표와 카카오법인을 검찰에 넘겼다. 지난 11월에는 김범수 당시 전 카카오 이사회 의장과 홍은택 대표, 김성수·이진수 카카카오엔터테인먼트 각자 대표이사 등을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는 등 카카오 수사에 열을 올렸다. 시세조종 의혹 창업자에 칼끝 댔다 카카오뱅크 대주주 자격 잃을 수도 카카오는 말 그대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금감원이 카카오 경영진과 함께 카카오법인까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면서 카카오뱅크를 잃을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카카오 법인이 벌금 이상의 형을 받으면 카카오뱅크의 지분 27.17%를 보유한 카카오가 대주주 자격을 잃을 수도 있다. 금융당국은 6개월마다 대주주 적격성을 심사하는데 이때 대주주는 최근 5년간 금융간 금융관련법, 공정거래법, 조세범처벌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의 형사 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 SM 인수전 과정서 제기된 시세조종 의혹으로 카카오는 창업자 구속 가능성과 알짜배기 기업을 놓칠 가능성을 함께 안고 있는 셈이다. 카카오의 쇄신 노력에도 찬물이 끼얹어졌다. 카카오는 지난 3월 새 대표이사에 정신아 카카오벤처스 전 대표를 선임했고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카카오게임즈 등 계열사 대표도 바꿨다. 계열사 준법‧윤리경영을 지원하는 독립기구인 카카오 준법과신뢰위원회(준신위)도 쇄신에 속도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김 의장을 비롯한 카카오의 사법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쇄신작업은 물론 기업 전체 동력에 타격을 입게 됐다. 일각에서는 카카오가 그룹 덩치를 줄이기 위해 알짜배기만 남겨두고 일부 자회사를 매각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쪼개기 상장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만큼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서 어렵게 인수한 SM 역시 매각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카카오뱅크 등은 핵심 자산으로 분류된다. 몸집 줄여 해결될까? 문제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카카오는 SM 시세조종 의혹 외에도 문어발식 기업 인수, 계열사 확장 과정서의 잡음으로 수사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다. 서울남부지검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2020년 드라마 제작사 ‘바람픽쳐스’를 인수하는 과정서 김성수 당시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와 이준호 당시 투자전략부문장이 바람픽쳐스에 시세차익을 몰아줄 목적으로 비싸게 매입·증자했다는 의혹을 조사 중이다. 카카오의 운명이 연이은 사법 리스크에 잠식되는 모양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