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두 가지 시선’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

기대보다 걱정 앞선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던 포르투갈전. 아직도 그 여운을 느끼고 있는 국민이 많다. 또 다른 드라마를 만들어갈 한국 축구의 새 사령탑 선발이 초미의 관심사였던 이유다. 그런데 적어도 당장은 물음표 투성이다. 선수가 아닌 ‘감독’ 위르겐 클린스만을 택했던 팀이 웃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주사위는 던져졌다. 클린스만은 전임자를 향한 그리움을 지우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증명하라는 과제를 받아들었다. 

대한축구협회(이하 축협)는 대표팀의 새 사령탑으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했다고 지난달 27일 밝혔다. 계약기간은 이달부터 2026년 열리는 북중미월드컵까지 총 3년5개월이다. 연봉은 양측의 합의에 따라 밝히지 않기로 했지만, 전임자 파울루 벤투 전 감독을 넘어서는 수준(18억원 이상)으로 전해진다. 감독을 보좌할 코치진 명단 등은 조만간 클린스만 감독과 축협이 논의해 확정한다. 

전술능력
의문부호

계약 후 클린스만 감독은 축협에 보내온 인사말을 통해 “한국 대표팀의 감독이 돼 매우 기쁘고 영광스럽다”는 뜻을 전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인사말에서 “한국 대표팀이 오랜 기간에 걸쳐 끊임없이 발전하며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거스 히딩크 감독을 비롯해 전임 파울루 벤투 감독에 이르기까지 역대 한국대표팀을 지휘한 훌륭한 감독들의 뒤를 잇게 된 것을 영예롭게 생각한다. 다가오는 아시안컵과 2026년 월드컵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취임 각오를 밝혔다.

마이클 뮐러 축협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은 이튿날인 28일, 서울 종로구 소재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클린스만 감독 선임 배경을 설명했다. 뮐러 위원장은 “전체적인 과정을 통해 5명의 후보군을 추렸다. 우선순위를 두고 협상을 시작했는데, 클린스만이 첫 협상 대상이었고, 최종적으로 선임하게 됐다”고 말했다. 


뮐러 위원장은 클린스만 감독이 한국과 한국 축구에 대한 좋은 인상을 느끼고 있다는 점, 협상에 긍정적인 자세로 임했다는 점 등을 역설했다.

뮐러 위원장은 “(클린스만 감독은)한국에 살고 싶어 하고 한국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독일 해설가로 한국을 방문했고, 2017년에는 20세 이하(U-20) 월드컵에 출전한 아들을 보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고 전했다.

이어 클린스만 감독이 1994년 미국월드컵 조별리그 경기(3-2 독일 승)서 한국을 상대로 득점한 것을 언급하면서 “당시 치열한 접전 속에서 한국의 ‘파이팅 정신’과 투지에 감명받았다고 얘기했다”고 강조했다.

이때 위원장은 “클린스만 감독이 독일 대표팀을 이끌던 2004년 한국과의 평가전서 지고 한국 감독을 하기로 결심한 것 같다”고 농담하기도 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역대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 중 개인 명성이 가장 높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선수 시절 ‘전차 군단’ 독일의 간판 공격수로 맹활약했다. 수많은 독일 축구 ‘레전드’ 사이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힐 수준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는 독일 국가대표로 108경기에 출전해 47골을 터뜨렸고, 특히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는 3골을 넣으며 독일(당시 서독)의 대회 우승을 견인했다. 이어 1994년 미국, 1998년 프랑스월드컵까지 독일이 유럽지역 3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금자탑을 쌓는 데 일조했다.

1996년 독일이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정상에 오를 때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아울러 바이에른 뮌헨·슈투트가르트(분데스리가), 토트넘(EPL), 인터 밀란·삼프도리아(세리에A), AS 모나코(리그앙) 등 유럽 최상위권 리그 명문 팀에서 클럽 생활을 이어가며 통산 620경기 284골을 기록했다.

신임 사령탑 선임…3년5개월 계약 
벤투 이어 9번째 외국인 감독으로

선수 은퇴 직후에는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04년 클린스만 감독은 당시 ‘녹슨 전차’라는 혹평을 받던 독일 대표팀을 맡아 ‘체질 개선’을 단행했다. 그 결과 독일은 2006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3위에 올랐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간 클린스만 감독은 2008년 친정팀 바이에른 뮌헨 감독을 맡으며 약 2년 만에 복귀했다. 하지만 팀이 부진을 거듭한 끝에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경질됐다. 다시 2년간 공백기를 가진 그는 2011년 7월 미국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다.

그는 미국의 2013년 북중미카리브축구연맹(CONCACAF) 골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선 독일·포르투갈·가나와 함께 ‘죽음의 조’에 속했음에도 16강 진출에 성공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8 러시아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연패를 거듭하다 또다시 불명예 퇴진했다. 이후 부임한 헤르타 BSC에서는 약 두 달 만에 물러나는 수모를 겪었다. 

클린스만 감독의 첫 등장이 연착륙으로 평가받기는 어렵다. 우선 선발 과정부터 잡음이 나왔다. 뮐러 위원장은 클린스만 감독 선임 과정에서 다른 한국인 위원들과 소통이 부족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질문이 여럿 나왔다.

이와 관련해 뮐러 위원장은 “어제 광화문에서 2차 회의를 진행했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위원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고, 충분히 내용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슈틸리케
따라가나

이어 “후보군을 선정하고 접촉하고 선임하는 과정은 축구협회의 정책적인 사안으로 민감한 부분이 많아 (위원들에게 사전에) 양해를 구했다. 이에 대한 (위원들의) 동의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클린스만 감독 선임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축구팬 사이에선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이 재소환됐다. 두 감독이 국적부터 지도 스타일 등 여러 공통점을 갖고 있어서다. 클린스만 감독 역시 슈틸리케 감독처럼 한국 축구의 실패 사례로 남게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

우선 두 감독은 모두 독일 출신이다. 나이는 10살 차이여서 전성기가 겹치진 않지만, 선수 시절 출중한 기량으로 빅클럽과 국가대표팀 주전으로 활약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슈틸리케는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레알 마드리드 CF 등에서 뛰었다. 


하지만 이들의 화려한 선수 시절 경력과는 달리, 감독으로서의 역량에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슈틸리케 감독은 유럽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축구 변방을 전전했고, 클린스만 감독은 일부 호성적을 거뒀음에도 평가가 엇갈린다. 특히 클럽 감독을 맡을 때마다 시즌 도중 경질, 조기 사퇴 등을 거듭한 이력이 있다.

물론 이들이 매번 실패만 반복한 감독은 아니다. 슈틸리케 감독의 한국 대표팀 2015 호주 아시안컵 결승 진출, 클린스만 감독의 2006 독일월드컵 3위 기록 등은 당시 해당 국가 내부 여론에서 ‘명장’으로 인정받은 성과다.

다만 이 성과가 온전히 이들이 해낸 몫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들은 모두 ‘감독으로서의 전술 세부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는데, 성과를 보였을 때만큼은 이를 메워줄 유능한 수석코치의 보좌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당시 거둔 성과가 사실은 이들이 아닌, 수석코치의 몫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

전설적인 선수 맞는데…
감독 역량에 의문 가득
각종 기행에 구설수까지

실제로 해당 수석코치들은 이들이 물러난 뒤 감독 자리를 이어받아 더 큰 성과를 냈다. 슈틸리케 감독은 당시 신태용 전 대표팀 감독을, 클린스만 감독은 요하힘 뢰브 전 감독을 수석코치로 거느리고 있었다. 둘 모두 각 나라에서 탁월한 전술가로 꼽히는 지도자다.


신 전 감독은 슈틸리케 감독 경질 이후 급하게 소방수 역할을 도맡아 2018년 러시아월드컵을 치렀다. 이 과정에서 일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당시 세계랭킹 1위인 독일을 2:0으로 잡아내는 이변을 연출해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에 월드컵이 끝난 뒤엔 4-2-3-1 포메이션만 고집했던 전임 감독들과 달리 4-4-2·3-5-2 등 다양한 전술 도입을 고려했다는 점, 신인 김민재를 발굴해 정상급 선수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해줬다는 점 등이 재평가되기도 했다. 

뢰브 전 감독은 약 15년간 독일 축구대표팀을 맡아 이들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대표적인 성과가 2014년 브라질월드컵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당시 준결승전에서 개최국 브라질을 전술적으로 완벽히 압도하며 7:1 승리를 거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외에도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준우승 1회·3위 2회, 2017 러시아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등의 성과를 남겼다. 그는 2014 발롱도르 올해의 남자팀 감독상을 수상하며 명실상부 당대 최고의 감독으로 인정받았다.

이런 탓에 국내 축구 팬 사이에선 클린스만 감독에 관한 회의론이 벌써 제기되고 있다. 감독 역량 자체에 대한 의문에 클린스만 감독이 각종 기행으로 구설에 올랐던 과거 사례가 얹어지면서 ‘클린스만호’의 성공 가능성 자체가 의심받고 있는 것. 

독일 매체 <11프로인데>는 지난달 24일 ‘세계 축구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프로젝트! 한국 축구 팬들이 위르겐 클린스만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클린스만 감독의 기행을 열거했다. 

매체는 먼저 “팬들은 페이스북 앱을 빠르게 설치하는 게 좋다. 훈련 계획, 67분(후반 22분)에 이뤄지는 선수 교체, 구단과의 결별 등 새로운 감독이 무엇을 하든 페이스북에서 먼저 알아낼 수 있다”고 꼬집었다.

데뷔전
어떨까?

클린스만 감독은 헤르타 BSC에서 사임을 발표할 때 개인 SNS을 통해 사임을 발표해 구설에 올랐다. 이 발표가 구단과 일절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진 돌출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이어 “클린스만 감독이 데뷔전에서 휴대폰을 꺼내 경기장을 촬영해도 놀라지 마라”고 덧붙였다. 이는 클린스만 감독이 헤르타 시절 사진촬영을 하느라 ‘아디다스’ 로고가 새겨진 휴대폰 케이스를 내보인 사건을 언급한 것이다. 당시 헤르타는 아디다스의 경쟁 기업인 나이키에게 유니폼 후원을 받고 있었다.

또 “클린스만 감독은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 대신 열심히 일하는 보조 코치를 미리 보내는 데 세계 챔피언이 될 수 있으니 그를 주시하라”고 조언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2006년 독일월드컵 때 다른 코칭스태프에게 선수 점검이나 대표팀 스케줄 조정을 상당 부분 떠넘기면서 자질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때 수석코치로 근무하다 지휘봉을 넘겨받은 이가 바로 뢰브 전 감독이었다.

이외에도 “클린스만은 헬기를 타고 훈련장에 가는 걸 좋아하기에 헬기장을 설치하라” “클린스만 감독은 자신의 일을 매우 진지하게 생각하기에 선수들에 대한 평가를 일기에 작성한다” 등 비꼬는 주장도 이어졌다. 클린스만 감독이 헤르타 시절 자신의 일기에 소속팀 선수에 대한 비난을 적었다가 들통난 바 있었기 때문이다.

또 미국으로 이주한 클린스만 감독은 과거 독일서 감독 생활을 하면서도 미국 생활을 고집해 ‘재택 감독’ 논란을 자초했다. 심지어 자국서 열린 월드컵 워크숍에도 참석하지 않아 독일 내에서 거센 비난 여론에 시달리기도 했다.

클린스만 감독이 차기 감독 후보군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 여론 역시 이 문제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클린스만 감독이 몇 년 전에도 한국행을 추진하다 국내 거주 여부에서 이견을 보이며 협상이 결렬된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면서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전임자’ 벤투 전 감독은 파주 국가대표 트레이닝 센터와 가까운 경기 고양시에 재임기간 내내 머물렀다.

일단 이번에는 계약 내용에 ‘국내 거주’가 포함되면서 관련 문제는 일단락된 모양새다. 다만 클린스만 감독의 충동·독선적인 과거 태도를 고려했을 때,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부정적인 여론 
경기로 뒤집나

클린스만 감독의 데뷔전은 오는 24일 울산 문수축구장에서 열리는 평가전이다. 이날 대표팀은 남미의 강호로 평가받는 콜롬비아와 맞붙는다. 관건은 ‘실전감각’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2020년 2월 헤르타 BSC 지휘봉을 내려놓은 이후로 3년간 야인으로 지냈다. 그가 한국 축구가 외국인 감독에게 원하는 ‘최신 트렌드에 맞는 선진 축구’를 전파할 수 있을지, 곧바로 지도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쉽게 확신할 수 없는 이유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술 지시 없었다” 클린스만 폭로한 독일 레전드

축구 팬들 사이에서 역대 최고의 ‘축구 지능’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필립 람.

‘독일 레전드’인 그가 자신의 자서전에서 클린스만 감독을 비판한 구절이 클린스만 감독의 한국 축구 사령탑 부임에 발맞춰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람은 2021년 출간한 자신의 자서전에서 “클린스만의 전술 지시는 없었다. 선수들의 체력만 단련했을 뿐”이라며 “결국 선수들이 경기 전 따로 모여 어떻게 경기를 해야 할지 토론했다”고 폭로했다. 

람은 2004년부터 독일 대표팀 명단에 꾸준히 이름을 올렸을 뿐만 아니라 FC 바이에른 뮌헨의 ‘원클럽맨’이다.

클린스만 감독과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독일 대표팀에서, 2008년부터 2009년 사이에는 바이에른 뮌헨에서 함께했다.

대표팀 감독과 클럽팀 감독으로서의 클린스만을 모두 겪어본 셈이다.

더군다나 람은 현역 시절 좌우 풀백과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을 종횡무진하며 활약했고, 감독 임기응변에 따라 때로는 공격수로도 출전하는 등 최상급의 전술 소화력을 보여주며 많은 찬사를 받은 선수다.

“클린스만은 전술이 없었다”는 람의 비판이 한국 축구 팬들에게 더욱 뼈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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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찰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한때 정부의 ‘칼’ 역할을 맡아 위세를 떨쳤던 검찰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면서 우리나라는 또 한 번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됐다. 검찰청이 완전히 폐지되기까지 유예기간은 1년. 검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봤다. 검찰은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그 쓰임새가 달라졌다. 개혁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고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적도 있다. 칼로 쓰이면서 동시에 고쳐야 할 기관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정부도 검찰의 존재 자체를 지우진 못했다. 견제 기관을 만들어 권한을 축소한 적은 있지만 ‘폐지’를 가시화한 적은 없었다는 뜻이다. 대통령 의지 당이 화답? 지난달 26일 검찰청을 폐지하고 기획재정부를 분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 따라 검찰청은 설립 78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검찰청 업무 중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 기소는 공소청이 맡는다.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장관, 공소청은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정해졌다. 검찰청 폐지와 중수청·공소청 설치에는 1년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지난달 30일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검찰청 폐지는 내년 10월로 정해졌다. 내년 10월1일에 법률안이 공포되고 이튿날인 10월2일 중수청·공소청이 설치되는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방향으로 검찰개혁을 본격화한 데 이어 이재명정부에서 검찰 폐지를 결정하면서 진보 정부의 숙원이 이뤄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정부 출범 직후부터 검찰청을 폐지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검찰의 수사‧기소 업무를 분리하고 수사권 등은 신설 기관으로 이관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취임한 이후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 선거 전부터 “추석 전 처리”를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검찰이 되도 않는 것을 기소해 무죄를 받고 나면 면책하려고 항소하고, 상고하면서 국민한테 고통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형사소송법에 ‘10명의 범인을 놓쳐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혹시 무죄거나 무혐의일 수 있으면 기소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검찰이) 마음에 안 들면 기소해서 고통을 주고 자기 편이면 죄가 명확한데도 봐주면서 기준이 다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1심이 무죄라고 했는데 (검찰이) 무조건 항소해서 유죄로 바뀌면 타당한가”라며 “검찰이 1심에서 무죄 난 사건을 항소해서 유죄로 바뀔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라고 물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내년 10월 폐지 확정돼 정 장관이 ‘5% 정도’라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95%는 무죄를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서 항소심으로 생고생한다는 말”이라며 “나중엔 무죄는 났는데 집안이 망했다, 이거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 아닌가”라고 했다. 또 “국가가 왜 이리 국민한테 잔인한가”라며 “인류 수천년 역사에서 경험으로 정한 역사가 있다. 의심스러우면 피고인 이익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검찰청 폐지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검찰개혁을 숙원으로 여겼던 여권에선 일제히 ‘환영’의 뜻을 보였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일방 독주’라고 비판했다. 실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퇴장하면서 민주당 주도로 표결이 진행됐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본회의 의결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 대통령님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노무현 대통령님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정권의 칼, 검찰은 이제 사라졌다”며 “역사적인 날이다. 검찰청이 78년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과 함께 기자간담회를 진행한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78년이라는 세월 사이 우린 여러 번에 걸친 개혁의 후퇴, 개혁의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며 “이제는 그 길을 다시 가지 않겠다고 하는 개혁 의지가 제대로 발현된 정부조직법”이라고 개정안을 평가했다.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이재명정권이 끝내 검찰청을 없앴다. 이는 간판을 바꾼 문제가 아니라 국민을 지켜주던 마지막 사법 안전망을 무너뜨린 폭거”라며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건 사회적 약자”라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그러면서 “그 공백은 가장 약한 곳에서부터 드러난다. 아동 학대, 장애인 대상 범죄, 노인 학대 사건은 피해자가 말문을 열기 어렵고 증거는 금세 사라진다”며 “예전에는 빠진 단서를 보완하고 잘못된 수사를 되돌릴 두 번째 기회가 있었지만 이제 그 문이 닫혔다”고 비판했다. 검사들은 집단 반발 하루아침에 조직이 사라지게 된 검찰 내부는 참담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노 대행은 지난달 29일 검찰 구성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78년간 국민과 함께해 온 검찰이 충분한 논의나 대비 없이 폐지되는 현실에 총장 직무대행으로서 매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어 “헌법상 명시된 검찰을 법률로 폐지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역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들도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명백한 위헌”이라면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헌법은 89조에서 검찰총장 임명에 대해, 또한 제12조와 제16조에서는 검사의 영장 청구권에 대해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며 “이런 규정은 헌법의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정부의 준사법기관인 검찰청을 둔다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므로 이를 폐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설명했다. 검사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을 통해 발동한 특검에 파견된 검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3대 특검팀에는 110명의 검사와 99명의 검찰 수사관이 파견돼있다. 김건희 특검팀에는 40명, 내란 특검팀과 채 상병 특검팀에는 각각 56명, 14명의 검사가 근무하고 있다. 김건희 특검팀과 내란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 수를 보면 웬만한 일선 검찰청 검사 정원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김건희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들이 “검찰청으로 복귀하겠다”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국무회의 의결에 대한 집단 반발로 해석된다. 위헌 주장 헌재 가나 검사들은 지난달 30일 민중기 특검에게 입장문을 제출했다. 입장문에는 정부여당의 검찰개혁 핵심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 ‘검찰의 직접 수사 금지’인데 특검에 검사들이 남는 건 모순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권이나 시민사회 단체 등에서는 ‘자업자득’이라는 의견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검찰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칼을 휘두르면서 현재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권력의 방향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검찰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줄 수 없다는 의지가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실제 진보 정부에서는 오랜 시간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시도해 왔다. 본격화된 것은 문정부 때부터지만, 그 시발점은 김대중·노무현정부 때라고 봐야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 등 검찰개혁의 핵심 방안들은 다 그 시기에 나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검찰개혁은 실패했다. 검찰의 반발이 대단했고 당시 정치권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들의 위세도 엄청났다. 실질적인 검찰개혁이 이뤄진 건 문정부 들어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검찰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고 국민 여론도 정부에 힘을 더했다. 문정부에서 검찰은 ‘적폐 청산’의 칼로 기능하면서 동시에 개혁 대상으로 지목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졌고 공수처가 출범했다. 문제는 검찰개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부 출혈이 상당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정부에서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이후 한직으로 좌천돼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연이어 영전시켰다. 진보 정부의 숙원 노·문 거쳐 결말 이는 향후 문정부를 뒤흔들었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갈등, 윤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당선 등의 불씨가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구기도 했다. 조 전 장관의 뒤를 이어 취임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윤 전 대통령과 정면으로 출동했다. ‘추·윤 대전’이라는 표현이 1년 내내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검찰개혁은 흐지부지됐다. 법안이 급하게 처리되면서 ‘누더기’라는 지적이 잇따랐고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공수처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등을 두고 기관끼리 갈등을 빚는 일도 일어났다. 경찰에 수사가 몰리면서 재판이 지연되는 일도 벌어졌다. 문정부의 검찰개혁을 ‘반쪽짜리’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후 이정부는 아예 검찰청을 없애겠다는 뜻을 품고 임기를 시작했다. 대선후보 때는 물론 윤석열정부 시기 내내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던 이 대통령은 검찰에 대판 비판적인 시각을 줄곧 드러낸 바 있다. 그리고 이 대통령의 뜻은 민주당을 거쳐 법안을 통해 실현됐다. 물론 과제는 산적해 있다. 당장 보완수사권 문제를 두고 이견이 있고 중수청과 공소청을 어떻게 운영할지 세밀하게 구상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보완 수사권을 존치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검사가 경찰의 기록만 갖고 기소 여부를 판단하면 부실 기소, 불기소 남발 등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주장의 배경이다. 또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개혁을 진행했지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기관이 비대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일각에서는 이름만 다른 ‘검찰’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이 정권의 칼로 기능했던 것처럼 다른 이름의 ‘칼’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걱정이다. 산적한 과제 후폭풍 남아 검찰은 꽤 오랜 시간 외줄 위에 서 있던 상황이다. 이정부가 그 줄을 끊으면서 검찰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검찰에 대한 경고는 늘 있었고 전조도 뚜렷했다. 이제 후속조치를 두고 정치권은 물론 사회가 시끄러워질 전망이다. 검찰 해체가 가져올 후폭풍은 국민에게 언제쯤 닿을 것인가.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