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더기’ 중대재해처벌법 1년의 기록

걸리고 걸려도…효과는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지난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 1주년을 맞았다. 현장은 악평 일색이다. 기업이건 노동자건 모두 법의 실효성을 지적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속에는 여야 기싸움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린 흔적이 가득하다. 선명성을 잃은 법은 누구 하나 제대로 구하지 못했다. 이 가운데 정부는 대대적인 법안 개편을 천명했다.

지난 14일, 경기 화성시의 한 물류센터 신축 공사장에서 철근 구조물이 무너져 노동자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다쳤다. 조립한 틀비계(이동형 발판·계단)를 이동식 크레인으로 옮기다 틀비계와 철근 더미가 부딪히면서 사고가 났다. 신호 업무를 보던 박모씨가 길이 40m의 철근 더미에 깔려 숨졌다.

낙제점
성적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도 어느덧 1년째지만, 산업 현장 속 사고는 여전히 끊이질 않는다. 종종 이미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대상으로 지목된 기업의 또 다른 현장에서 비슷한 사고가 재현되는 사례도 발견된다. 지난 14일 사고가 발생한 장소는 요진건설산업이 시공을 맡은 공사장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요진건설산업은 지난해 2월8일 경기 성남의 한 건설공사 현장에서 노동자 2명의 추락사고를 방지하지 못했던 전력이 있다. 당시 사건 역시 공사금액이 50억원 이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다.

당시 요진건설산업은 ‘제1호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건설사’라는 오명을 썼다. 이로부터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때 또 다른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4일 사고 직후부터 진상조사를 진행 중이다. 산업안전보건법·중대재해처벌법 등의 위반 여부 역시 살펴본다는 방침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사망사고가 두 차례나 발생한 만큼, 강도 높은 조사가 이어질 전망이다.

요진건설산업은 업력이 47년에 달하는 중견건설업체다. 시공 능력 역시 70위권에 위치해 있다. 이로 미뤄봤을 때 사고 원인을 시공사의 영세함, 기술 부족 등으로 일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반응이다. 더구나 50인 미만의 영세 사업장은 내년부터 법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

일각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의 현장 사고 발생 억제 효과가 전무하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건설현장 등 중대재해 주요 발생 산업재해 관련 지표는 법안 시행 전후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3분기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483건이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의 492건 대비 1.83% 감소하는 데 그친 수치다. 사망자는 510명으로 전년 502명보다 오히려 증가했다.

이와 관련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늘어나는 역설적 현상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사건의 처벌이 늦어지는 점 역시 문제다. 시행 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처벌 수위가 확정된 관련 사건이 없다. 

시행 1년째인데…산업재해사고는 ‘그대로’ 
부실 입법 탓에 모호한 조항…실효성 논란


이달 중순을 기준으로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로 판단한 사고는 200건이 넘는다. 이 중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사건은 33건이며, 검찰은 11건에 연관된 22명을 기소한 상황이다. 법원은 아직 선고를 내리지 않았다. 

중대재해 발생 1호 사건으로 알려진 삼표산업 채석장 붕괴 사고나 최초 기소 사건인 두성산업 집단 독성 감염사건 등은 지난해 초 발생했음에도 여전히 결론이 나지 않았다. 삼표산업 사건은 수사대상이 기업 오너까지 확대되면서 아직 기소조차 이뤄지지 않았고, 두성산업 사건 재판은 위헌법률심판을 진행 중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시행 이전부터 법 자체가 너무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구체적인 법 적용 실태를 파악하려면 시행 초반 처벌 사례를 이정표 삼아야 한다는 게 중론이었다. 반면 처벌 수위는 과잉처벌 논란이 일 정도로 높은 편이다.

현행법상 중대 재해에 책임이 있는 사업주는 징역 1~10년, 벌금 10억원 이하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결국 상당한 처벌 수위를 가진 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현장에서는 지켜야 할 법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도 알지 못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노동계와 기업들은 삼표산업·두성산업 사건 처벌 결과가 가늠자가 돼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답보 상태가 지속되면서 현장은 점차 혼란에 빠지는 모양새다. 기업들과 노동계는 각기 반대쪽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의 한계를 비판하고 있음에도 “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는 입을 모은다.

기업들은 “불명확한 법이 불필요한 규제만 늘린다”는 입장이다. 노동계는 “처벌수위 강화가 핵심인데 사건 처리(조사·수사·재판) 과정이 지나치게 길어 법 시행이 유명무실하다”는 주장이다. 

조악한
완성도

현장의 볼멘소리가 거세지는 가운데 가늠자의 등장 시점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위헌성 때문이다. 현재 두성산업 사건에서 진행 중인 위헌법률심판 결과에 따라 중대재해처벌법을 전제로 한 모든 재판이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법원이 두성산업 측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받아들일 경우, 관련 재판은 모두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올 때까지 중단된다.

설령 법원이 이를 기각한다고 해도, 결국 중대재해처벌법은 헌법재판소로 향할 것으로 보인다. 두성산업이 기각 시 헌법재판소에 직접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낮은 실효성과 모호한 규정을 담아 시행된 것은 입법 과정에서의 정치권 갈등 탓이다. 찬반 공방이 이어지면서 자행된 ‘누더기 입법’이 법안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떨어트렸다.


중대재해처벌법 입법 논의가 본격화된 시기는 2020년 말이다.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의힘은 법안 심의 자체를 거부했다. 과반 의석을 보유한 더불어민주당은 법안을 단독 통과시킬 수 있었음에도 소극적으로 임하는 모습을 보여 산재 사망사고 유족들의 분노를 샀다. 

입법 논의는 수차례 공전을 거치다 해를 넘겨서야 진전을 보였다. 하지만 겨우 통과된 법안은 이미 원안에서 크게 후퇴·수정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법안에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한해 3년의 유예기간을 준다’는 내용이 담겼다. ‘5인 미만 사업장 법 적용 제외’ 등의 여야 합의 내용도 그대로 들어갔다.

아울러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 부과’ 조항은 징역 하한선이 당초 정부안보다도 낮아졌다. 벌금 하한선은 아예 사라졌다. 노동계가 “처벌의 실효성이 크게 떨어졌다”고 반발한 배경이다.

개편 시사
노조 폭발?

또 정치권은 정작 심도 있는 논의가 요구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소홀했다. 이를 테면 법 제4조(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는 사업주 처벌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조항으로 꼽히는데도 그 모호성을 해결하지 못한 채 통과되면서 여론의 공분을 샀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사업주들은 각 호에 명시된 조치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기업들은 추상적인 내용만 가득한 해당 조항에서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세울 수 없었다. 이에 이들은 법 준수보다도 형사처벌을 최대한 면하는 것을 목적으로 관련 예산을 편성·집행하기 시작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둘러싼 각종 논란이 지속되면서 출범 이전부터 관련 제도 개선을 시사했던 정부의 움직임에 점차 탄력이 붙는 형국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전이던 지난해 4월 “경영 의지를 위축시키는 강한 메시지를 주는 법”이라며 “(하위 대통령령을) 촘촘하게 합리적으로 설계해 기업 경영에 큰 걱정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 출범 직후에는 구체적인 개정 로드맵도 밝혔다. 우선 정부 시행령부터 손본 뒤, 2024년 총선을 기점으로 법률안 개정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이는 여소야대 정국에서 법 개정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국회 동의가 필요 없는 시행령 개정으로 급한 불을 끈 뒤, 정부 입장을 반영한 법률 개정안을 추후 제출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시행령 개정 논의는 올해 상반기 안에 윤곽이 드러날 예정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1일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TF’를 발족했다. 이들은 오는 6월까지 중대재해처벌법 개편방안을 논의한다.

노사, 정반대 해결책 제시…정부는 기업 편? 
총력 투쟁 결의한 노동계, 폭발 뇌관 될 수도

노동계와 기업이 법안의 개선 방향을 서로 정반대로 제시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기업 요구에 맞춘 법 개정을 시사하고 있다. 김남균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정책과 사무관은 지난 18일 열린 관련 포럼에 참여해 정부가 구상한 법 개편 방향을 제시했다. 

김 사무관에 따르면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 수위를 낮추는 대신 기업의 자율예방 체계 형성을 지원할 계획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2026년까지 ‘자기규율’ 단계에 진입하는 것이다. 안전수칙을 ‘지켜야 해서’ 준수하는 것이 아닌, ‘지키고 싶기 때문에’ 준수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관건은 노동계의 반발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노총은 중대재해처벌법 완화를 한 목소리로 반대해왔다. 민주노총에 비해 온건하고 사회적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한국노총조차도 정부의 중대재해처벌법 ‘손질’ 예고에는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더군다나 현재 한국노총 지도부는 정부의 노동개혁 추진을 비판하며 대립각을 세워왔다. 한국노총은 지난 대선 당시 김동명 위원장 체제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당시 후보)와 정책 협약을 맺고 이 후보 지지 의사를 밝혔다. 

김 위원장은 지난 17일 연임에 성공했다. 김 위원장의 임기가 3년 더 늘어나면서 정부가 계획한 중대재해처벌법 개편 시기가 모두 김 위원장 임기 안에 들어오게 됐다. 김 위원장은 “정부의 노동개악에 맞서 한국노총을 ‘상시적 투쟁기구’로 즉각 개편하겠다”는 핵심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양측의 갈등 봉합이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예견되는 가운데, 정부의 본격적인 중대재해처벌법 개편 시도가 시작되면 갈등이 더욱 격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선거 유세 중 “윤석열정권의 노동탄압, 노동 말살 폭주가 거세지고 있다. 탄압에는 강한 투쟁으로, 억압에는 더 큰 저항으로 투쟁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해결은
언제쯤…

한국노총은 일단 사회적 대화에 참여한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정부의 독단이 지나칠 경우 참여를 철회하겠다는 전제를 깔아둔 상태다. 이대로라면 양측이 법률 개정안 위에서 진퇴를 거듭할 공산이 크다. 이때 ‘누더기 입법’이 재현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순탄치 않은 길 위에서 첫돌을 맞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앞날이 더욱 비관적으로 보이는 이유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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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