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베트남 축구 영웅 박항서

베트남 뒤집고 돌아온 ‘쌀딩크’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스포츠 감독이란 잘해야 본전인 자리다. 여간해선 박수받으며 떠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박항서 감독은 달랐다. 베트남 국민은 지난 5년간 ‘마법’을 선보인 그의 마지막을 뜨거운 환호로 배웅했다. ‘백수’ 감독과 축구 변방국이 함께 일궈낸 기적은 우리 국민들마저 놀라게 했다. 일명 ‘쌀딩크’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축구계에선 인간적인 리더십과 발상의 전환 전술을 꼽는다.

비록 완벽한 마무리는 아니었지만, 모두의 박수를 받았다. ‘쌀딩크’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과의 동행에 종지부를 찍었다. 박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 대표팀은 지난 16일, 태국 빠툼타니 탐마삿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년 아세안축구연맹(AFF) 축구선수권대회(미쓰비시컵) 결승 2차전에서 0-1로 패했다.

2018년 이후 4년 만에 우승컵 탈환을 노리던 베트남은 대회 최다 우승국인 태국에 가로막혔다. 앞서 박항서호는 베트남에서 열린 1차전에서 2-2로 비겼다. 이들은 결국 합계 점수 2-3으로 밀리며 대회를 준우승으로 마무리했다. 

5년의 매직
뜨거운 안녕

임기가 이달 말까지인 박 감독은 이 대회를 마지막으로 지휘봉을 내려놨다. 준우승에 그치긴 했지만, 박 감독의 지도력은 이미 동남아 축구계에서 널리 인정받은 지 오래다. 이는 이번 대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승에서 마주친 ‘적장’도 극찬을 마다하지 않았다.

태국 축구 대표팀의 누안판 람삼 단장은 박 감독에 관해 “그를 정말 존경한다. 박 감독은 베트남 축구를 바꿔놨다. 나아가 동남아시아 축구의 판도에 변화를 일으켰다”며 칭찬했다. 이어 “현재 세계 랭킹도 베트남이 96위, 태국이 111위로 차이가 있다. 베트남 선수들의 해외 진출도 활발해졌다”며 박 감독을 추켜세웠다.

박 감독은 이날 경기 종료 후 베트남 사령탑으로 참여하는 마지막 공식 기자회견에 임했다. 박 감독은 “이제 나는 더는 베트남 감독은 아니지만, 베트남과 베트남 U23 대표팀을 열렬히 응원하는 팬이 될 것”이라며 “서로 좋은 추억을 영원히 간직했으면 좋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마지막 경기 후 여전히 실망과 아쉬움이 있다. 나와 팀이 무엇이 부족했는지 알고 싶기도 하다”면서도 “하지만 지금은 선수들과 이별해야 한다는 슬픔을 위로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싶다”고 전했다.

박 감독의 삶은 두 번의 우연으로 크게 뒤바뀌었다. 박 감독이 축구계에 발을 들인 것도, 베트남으로 향한 것도 모두 그가 쉽사리 예상했던 길은 아니었다.

박 감독은 1957년 10월 경남 산청군에서 태어났다. 경찰 간부 출신 아버지는 직무 중 부상을 입었던 국가유공자였다. 어머니는 지역 명문 진주여고를 나왔다. 이들은 고향에서 약방을 운영했고, 그 덕에 박 감독은 큰 경제적 어려움 없이 유년시절을 보냈다. 

축구를 굉장히 늦게 시작 편에 속했던 그는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장래희망이 군인이었다. 그는 부모의 높은 교육열에 서울로 상경했다. 하지만 당초 목표였던 배재고 입학시험에 낙방했다. 대신 경신고로 향한 박 감독은 배재고 낙방에 좌절하던 중 훈련하는 축구부원들을 목격했다.

알고 보니 당대 최고의 축구선수로 불리던 차범근이 경신고 축구부 출신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박 감독은 비록 늦깎이일지라도 축구부원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키 166㎝에 깡마른 체격, 전무한 경력 등이 걸림돌이었다. 경신고 축구부가 마땅한 강점이 없어 보이던 박 감독을 받아줄 리 만무했다.

어떻게든 축구를 하고 싶었던 박 감독은 인맥을 활용한 ‘낙하산’ 작전까지 불사했다. 그는 당시 경신고 축구부 감독과 절친했던 친척에게 부탁해 기어코 축구부에 들어갔다. 하지만 축구 무경력자가 출전 기회를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늦깎이 축구선수·짧은 선수 생활…특이한 이력
베트남 지휘봉 잡고 대반전 일궈 국민 영웅 등극

당시 박 감독은 반년간 벤치 신세를 면치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운동부에 들며 학사관리가 미흡해진 탓에 1년 유급까지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박 감독은 종일 축구공을 가지고 훈련하며 실력을 빠르게 키워나갔다. 어느새 탄탄한 기량을 갖춘 미드필더가 된 그는 1976년 전국 청룡기 축구대회에서 결승 골을 넣었다. 이 골로 경신고는 우승컵을 들었다. 한양대 진학 이듬해인 1978년에는 아시아 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에서 청소년 대표팀 주장을 맡아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박 감독은 한양대를 졸업하고 1981년 실업팀 제일은행 축구단에 입단했다. 실업 선수로 데뷔한 직후 곧바로 육군 축구단에 입대해 군 복무까지 마쳤다.

전역한 박 감독은 1984년 럭키금성 황소에 창단 멤버로 입단해 프로 무대에 섰다. 현역 시절 등번호는 12번이었다. 그는 1985년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끄는 동시에 리그 베스트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이듬해에는 팀 주장으로 선임돼 팀의 리그 준우승에 기여했다. 

하지만 그는 1988년 시즌이 끝난 후 돌연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호적상의 나이 29세, 실제론 31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였다. 결국 실업팀, 군 복무 기간을 뺀 박 감독의 선수 생활은 단 4년에 불과했다.

박 감독이 성인 대표팀으로 뛴 경기는 선수생활을 통틀어 1경기뿐이다. 그는 1981년 3월 한일 정기전에서 전반 17분 교체 투입돼 73분간 뛰었다.

대신 박 감독은 이른 나이에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은퇴 후 친정 팀인 LG 치타스(전 럭키금성 황소)의 트레이너로 선임돼 1996년까지 활동했다. 이후에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코치로 합류해 2000년 시즌 시작 전까지 직을 수행했다.

국가대표 코치진에도 수차례 발탁됐다. 1994년에는 미국 월드컵 국가대표팀 트레이너로 활동하며 김호 감독을 보좌했으며, 2000년 허정무 감독의 사퇴 뒤, 후임 감독을 보좌할 수석코치로 내정되기도 했다. 그해 박 감독은 12월20일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한일 정기전에서 감독대행 자격으로 경기를 지휘했다.

2002년엔 히딩크호의 수석코치로 부임했다. 한일월드컵 대표팀에서 감독과 선수들 간의 가교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감독은 4강 진출의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체육훈장 맹호장을 수여받았다.

그가 남긴
대기록들

월드컵 이후 2002 부산아시안게임 대표팀을 맡아 처음으로 감독직에 부임한다. 하지만 월드컵 4강 주역들을 일부 대동하고도 동메달에 그치자, 비판 여론이 빗발쳤다. 물론 일각에선 월드컵 준비에 너무 치중했던 나머지 아시안게임이 졸속으로 준비된 점, 전적만 놓고 보면 9전 7승 1무 1패(승부차기)였던 점 등을 감안하면 비판이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박 감독은 결국 해임됐다.

그는 K리그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포항 스틸러스 코치를 거쳐 전남 드래곤즈 기술고문을 맡았다. 사실 박 감독은 당초 전남 감독직을 제안받았으나, 허 감독이 대표팀 수석코치를 그만두고 전남 감독으로 급히 부임하는 바람에. 사실상 명예직 수준이었던 기술고문 자리로 밀려났다.

그가 첫 프로 팀 감독을 맡은 곳은 고향을 연고지로 한 경남FC였다. 이후 전남 드래곤즈, 상주상무, 창원시청축구단 등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지도자 세대교체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17년, 팀을 나온 박 감독은 자신의 감독 생활도 사실상 끝난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던 중 아내가 동남아 진출을 제안하며 에이전트와 직접 연결해줬다고 한다. 

며칠 후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제의가 왔다. 박 감독은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잘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가졌다. 하지만 이 선택은 결과적으로 박 감독의 삶과 베트남의 축구 역사를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신의 한 수’가 됐다.

박 감독은 베트남 축구 A대표팀과 23세 이하(U-23) 대표팀 지휘봉을 동시에 잡으며 전권을 부여받았다. 박 감독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30위권에 있던 베트남 축구를 100위권 이내로 진입시키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박 감독의 지도를 받은 베트남은 2018년 초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이라는 돌풍을 일으키며 주목받았다. 이어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역사상 최초로 4강 진출에 성공했다. 2019년에는 동남아시안게임(SEA)에서 60년 만에 베트남에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2020년 5월에는 자국에서 열린 SEA에서 2연속 우승에 성공했다.

아울러 A 대표팀도 눈에 띄는 성과를 여럿 남겼다. 2018년 AFF컵 대회에서 우승에 성공했다. 2019 AFC 아시안컵에서는 8강 진출에 성공했고, 지난해에는 베트남 최초로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을 이뤄냈다. 더 나아가 중국을 제압하며 최종예선 첫 승을 기록했다.

파파 리더십
동행 마무리

박 감독은 베트남에서 영웅 대접을 받는다. 베트남 정부는 박 감독에게 훈장을 3개 수여했다. 베트남 국민은 박 감독 재계약·연봉 인상 운동을 벌였다. 박 감독은 국민적인 인기가 날로 높아지면서 여러 광고에 출연했고, 그를 주제로 한 책과 다큐멘터리 영화도 개봉했다. 

이에 박 감독 한 명으로 양국 관계가 진전되는 듯한 기현상까지 벌어졌다. 우리 정부는 이 공로를 인정해 지난달 초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국가주석 방한으로 마련된 국빈만찬에서 박 감독에게 수교훈장 흥인장을 수여했다. 

박 감독의 성공 배경에는 냉철한 현실 인식에 따른 실리 추구형 전략이 깔려 있다. 박 감독은 부임 직후 베트남 선수단의 근본적인 약점으로 기술과 전술 이해도 부족을 꼽았다. 심지어 지금도 박 감독의 전술을 완전히 이해하고 움직이는 선수가 많아 보이지 않는다는 게 축구계의 평가다. 

박 감독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소 독특한 포메이션을 구축했다. 우선 그동안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이 사용하던 4백 전술을 버리고 3-4-3 전술을 채택했다. 박 감독은 최후방 3백의 좌우를 일반적인 3백의 중앙수비수 2명 대신, 팀에서 가장 볼 간수를 잘하는 미드필더 선수들로 기용했다. 

비록 3백이지만 좌우 사이드백이 마치 측면수비수처럼 빌드업에 가담하게 한 것이다. 대신 미드필더 4명 중 중앙의 2명은 왕성한 체력과 속도를 앞세워 유사시 중앙수비수 역할을 병행하도록 했다. 사실상 중앙수비수와 중앙미드필더들의 자리를 바꾼 것이다.

베트남은 이 역발상을 통해 전술 이해도가 떨어지는 와중에도 질서 있는 공격·수비 전개가 가능해졌다.

냉철한 현실 인식, 실리축구 전략
따뜻한 리더십으로 선수단 이끌어

사실 이것이 완벽한 전술은 아니다. 상대의 최전방 공격수가 중앙 수비수들을 강하게 압박하면 빈틈을 노리고 들어오는 상대 2선 공격수들의 공격에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감독은 베트남 대표팀의 경쟁상대로 꼽히는 국가 사이에선 큰 위협이 되는 공격수가 많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는 그대로 적중했다.

박 감독은 ‘파파 리더십’으로 유명하다. 그는 부임 후 베트남 문화를 존중하고 선수들을 자식처럼 대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2018년 12월 스즈키컵 당시, 결승 1차전을 위해 말레이시아로 이동하던 중 비행기에서 부상 선수에게 자신의 비즈니스석을 양보한 미담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또 스즈키컵에서 우승한 선수들이 기자회견 중인 박 감독에게 물을 뿌리며 깡충깡충 뛴 적이 있었다.

이때 박 감독은 싫은 내색 없이 선수들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선수들의 얼굴을 쓰다듬고, 어깨를 토닥였다. 박 감독과 선수단 사이의 끈끈한 유대감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비록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박 감독은 선수단과 소통하기 위해 먼저 다가서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는 대회마다 직접 의무실을 찾아가 부상 중인 선수들을 직접 위로했고, 경기에 출장하지 못한 선수들에겐 따로 양해를 구했다.

박 감독은 아직 다음 행선지를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국내 감독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박 감독이 직접 선을 그었다.

그는 지난 17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전에도 베트남과 한국에선 감독을 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씀드렸다”며 “한국에는 저보다 훌륭한 후배, 동료가 많다. 한국에서 현장 지도자로서 할 역할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가 성격상 한 가지 일을 하면서 다른 생각을 못 한다”며 “소속사 대표가 제 미래에 대해 몇 가지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저도 생각해봐야 한다. 가족들과도 상의해야 할 부분이다.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하는 게 저에게 적합한지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분명한 건 제가 축구를 가장 잘할 수 있으므로 축구계에 종사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박 감독은 행정가로 일할 생각도 전혀 없다고 못 박았다. 그는 “국내에서 협회나 연맹에 들어갈 생각은 없다. 행정적인 건 제 능력이 안 된다. 기술적인 부분에서 제안이 온다면 고려하겠지만, 협회나 연맹에 갈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다만 한국과 베트남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제안이 온다면 충분히 관심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은
어디로?

당장 다음 월드컵부터 종전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본선 참가국이 늘어났다. 아시아 국가의 본선 진출 자리가 늘어나면서, 이를 노리는 중국과 중앙아시아, 중동 국가들이 박 감독을 영입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박 감독 역시 아직 사령탑 자격으로 월드컵에 나서본 적이 없는 만큼, 이는 동기 부여를 명확하게 주는 제안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박 감독은 “이번 카타르월드컵 개최국 카타르를 보면서 월드컵에서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다”며 “부족하지만, 저를 불러준다면 한 번 생각은 해볼 것이다. 하지만 저를 불러주는 팀이 있겠느냐”고 웃었다.


<jeongun15@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공수처·특검, 대북송금 수사 막전막후

공수처·특검, 대북송금 수사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쌍방울 대북송금을 두고 수사기관이 대거 투입됐다. 2차 종합특별검사팀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수사팀을 꾸리고 ‘조작 기소’ 혐의를 받는 검사들을 겨눴다. 법조계에서는 두 기관이 대북송금 진상규명을 이끌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수사 전문성 논란에 이어 인력난에 허덕이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점에서다. 검찰을 향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다. 쌍방울 대북송금과 대장동·위례 신도시 개발 비리 사건을 ‘조작 기소’라고 규정하면서 복수의 기관이 수사에 착수했다. 2차 종합특별검사팀(특별검사 권창영)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사정도 녹록지 않다. 고질적 인력난이 걸림돌이다. 수사에 착수했다고 해도 사건의 전모를 밝혀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인 이유다. 이례적 수사 착수 서울고등검찰청 인권침해점검 태스크포스(TF)는 2022~2024년 대장동 사건을 수사해 이재명 대통령을 기소했던 서울중앙지검 2기 수사팀 검사 9명을 감찰 중이다. 앞서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 7일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 기소 의혹 진상규명 국정조사’ 국회 기관보고에서 “지난해 9~12월 감찰 요청이 접수됐다”며 “별건 수사로 피의자를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회유, 정영학 녹취록을 조작한 내용 등”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9·11월 법무부에 엄희준, 강백신 등 대장동 사건 담당 검사들에 대한 감찰을 요청했다. 이들은 민간사업자들 진술을 근거로 2023년 민주당 대표였던 이 대통령을 대장동·위례 사건 공범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은 자신 몫 배당 이익이 “이재명 거니까 떼어먹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고, 남욱 변호사도 “천화동인 1호는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본인 지분이 포함된 것으로 이해했다”고 증언했다. 민주당은 이후 조작 기소 의혹을 거론하고 나섰다. 대장동 피의자들의 주장도 뒤집히기 시작했다. 남 변호사는 재판에서 “검사들한테 ‘배 가르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협박당했다고 주장했다. 정영학 회계사는 자신과 남 변호사 대화가 녹음된 녹취록에서 “위례신도시도 너 결정한 대로 해줄 테니까” 중 위례신도시를 검찰이 “윗 어르신”으로 왜곡해 이 대통령 또는 민주당 정진상 전 정무조정실장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이 주장을 X(옛 트위터)에 공유해 “황당한 증거 조작”이라고 반박했다. 쌍방울 조작 기소 의혹의 핵심은 북한 공작원 리호남이 필리핀에 없었음에도 그가 “필리핀에 있었다”는 진술을 기반으로 수사가 진행됐다는 것이다. 민주당 측에선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필리핀에서 리호남을 만나 이 대통령 방북 비용 일부인 70만달러(약 10억원)를 건넸다는 법정 진술이 사실이었는지 추궁 중이다. 만일 김 전 회장이 사실이라며 진술을 유지하면 민주당 측에선 위증이라며 국회증언감정법 위반 혐의로 고발할 가능성이 있다. 이종석 국가정보원은 지난 3일 국정조사에서 “리호남이 필리핀 아닌 제3국에 체류한 증거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민주당 중심 국조 후 수사기관 대거 투입 검찰→대통령실 연결고리 증거 확보 의문 박상용 인천지검 부부장검사도 고발당할 처지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박 검사가 지난해 9~10월 국정감사에서 연어 술파티가 없었다는 등 취지로 증언한 것을 위증으로 보고 고발을 의결했다. 법사위에서 정 장관은 박 검사의 연어 술파티 의혹 감찰은 시효가 도래하는 5월17일 전 “후속 조치를 가능한 신속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박 검사가 전날 국민의힘이 개최한 ‘민주당 공소 취소 진상규명 청문회’에 참석한 것도 정치 중립 의무 위반으로 보고 감찰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종합특검팀도 조작 기소 의혹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당초 종합특검팀은 지난해 3대 특검(내란·김건희·순직해병)이 끝내지 못한 잔여 사건을 마무리하겠다며 출범했다. 인력난에 골머리를 앓고 있음에도 수사 역량을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조작 기소 의혹에 투입했다. 종합특검팀은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관련 윤석열 대통령실의 개입 시도를 확인했다”며 관련 사건을 서울고검TF에서 이첩받았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종합특검팀은 파견검사 1명, 특별수사관 2명, 파견경찰관 약간명으로 구성된 ‘국정 농단 의심 사건 전담수사팀’을 꾸렸다. 윤석열정부 대통령실이 당시 수사 과정에 개입을 시도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하지만 대통령실과의 연결고리를 입증할 수 있을지가 이번 수사의 관건으로 꼽힌다. 이번 수사는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자체보다는 수사 과정에서의 절차적 위법성과 권한 남용 여부가 핵심 쟁점이다. 국가정보원의 객관적 자료가 대북송금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누락됐거나 국정원에 파견된 검찰 인사들이 대북송금 수사를 대통령실에 보고한 정황들이 사실인지 규명하는 데 수사력이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중복수사 논란도 수사권에 대한 논란도 현재진행형이다. 종합특검법상 수사 대상에는 ‘윤석열과 김건희가 본인 또는 타인의 사건 관련 수사 상황을 보고받고, 수사 및 공소 제기 절차 관련 적법절차를 위반한 사건’이 포함돼있어 종합특검팀은 이를 근거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해당 기준을 두고 대통령실이 보고받았을 모든 사건이 수사대상이 될 수 있어 ‘남용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은 박 검사가 핵심 증인들을 회유했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연어 술파티’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측과 형량 거래로 이 대통령이 대북송금의 주범이란 진술을 끌어냈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공수처도 박 검사를 직권남용, 그리고 민주당이 통과시킨 법왜곡죄로 수사 중이다. 법왜곡죄는 지난달 시행되기 전 행위에 소급 적용할 수 없다. 하지만 공수처는 사건을 지난달 26일 수사3부에 배당했다. 다만 공수처는 법왜곡 혐의를 ‘단독’으로 수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행 공수처법상 수사 대상으로 명시된 형법 제122조부터 제133조까지의 죄에 법왜곡죄(형법 123조의2)도 포함되지만, 수사 범위에 대한 판례와 적용 기준이 없어 추후 영장 청구나 재판 과정에서 수사권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다. 특히 종합특검팀과의 중복 수사 문제 등도 일부 불가피한 상황이다. 수사 이후의 ‘공소 유지’ 단계 역시 공수처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힌다. 공수처가 독자적으로 수사를 마무리하더라도 재판에서 공소를 유지하려면 결국 검찰의 협조가 필요하다. 향후 수사 주체가 바뀔 가능성도 있다. 종합특검팀이 사건 이첩을 요구할 경우 공수처가 이를 넘길 수 있다. 공정성 논란 종합특검팀은 수사 초기부터 흔들렸다. 권영빈 특검보가 이 전 부지사와 방용철 전 쌍방울그룹 부회장을 변호한 경력으로 이해충돌 논란이 일었다. 박 검사는 최근 <한국일보>에 “조사 과정에서 방 전 부회장이 ‘사실 권 변호사와 진술을 짰는데, 거짓말하는 것이 힘들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말 그대로 ‘진술 세미나’를 했다는 것”이라면서 “질문이 구체적으로 이뤄지고 피의자의 말과 배치되는 물증이 있다 보니 허위로 답변하기가 힘들어졌던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분석했다. 권 특검보는 2012~2014년 이 전 부지사가 저축은행 등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건 1·2심 변호를 맡았다. 이 사건은 ‘금품을 받았을 것으로 의심되긴 하나 객관적 물증이 없다’며 무죄로 확정됐다. 이후 이 전 부지사와 친분을 쌓은 권 특검보는 2022년 방 전 부회장이 이 전 부지사에게 쌍방울 법인카드 등 뇌물을 준 혐의 사건 변호를 맡았다. 방 전 부회장은 최근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이 전 부지사가 소개해 줬다”고 말했다. 수사 초기 “법인카드 등은 이 전 부지사의 측근에게 준 것”이라고 했다가, 김 전 회장이 국내 압송된 후 “이 전 부지사에게 줬다”고 말을 바꿨다. 재판에선 법인카드가 사용된 병원에서 발견된 이 전 부지사 진료 내역이 공개되기도 했다. 그는 이후 재판부 질의에 “검찰 조사 발언을 후회한다”면서 “변호사 사무실에서 권 변호사를 소개받고, ‘어떻게 줬냐’ 의논한 것에 맞춰 (검찰) 조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착수는 했는데…인력난에 골머리 수사 권한 정리 안 돼 공방 불가피 종합특검팀은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었다. 종합특검팀은 입장문에서 “권 특검보가 상담이 끝난 후 (사무실)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방 전 부회장과 이 전 부지사가) 진술을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법정에서 쪽지를 주고받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종합특검팀은 지난 16일 언론 공지를 통해 “기존 사건 담당 특검보인 권 특검보가 과거 이화영, 방용철을 변호한 것은 이 사건과 무관하다”면서도 “향후 수사 과정에서 제기될 수 있는 공정성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라며 담당자를 김치헌 특검보로 전격 교체했다. 종합특검팀은 법무부에 검사 3명 추가 파견을 요청했으나 일주일이 지나도록 배치받지 못했다. 이 가운데 한 명은 파견 절차가 진행되다가 최근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종합특검팀에 배치된 검사는 정원 15명 중 12명으로 인력 공백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대북송금 사건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 추가 인력이 필요하지만 파견이 늦어지면서 수사 준비 단계부터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검사 파견이 지연되는 배경으로는 사건의 민감성이 거론된다. 3대 특검팀과 상설특검팀에 투입된 검사들이 50명을 넘는 상황에서 전반적인 인력 부족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재경지검 한 부장검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대체로 안 가려고 한다. 지금 수도권 검찰청은 사건 적체로 한 사람이 수백개의 사건을 처리해야 할 정도로 사람이 없다. 수도권 외 지청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며 “더군다나 같은 집단 사람을 겨누는 게 어디 쉬운 일이냐. 워낙 민감한 사안이다 보니 파견을 꺼리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이 없다 실제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기준 전국 검찰청 장기 미제 사건은 12만1563건으로 집계됐다. ▲2022년 5만1825건 ▲2023년 5만7327건 ▲2024년 6만4546건 ▲2025년 9만6256건이던 미제 사건이 올해 들어 12만건을 넘어섰다. 불과 1년여 만에 약 2배 늘어난 셈이다. 지역별로 보면 지난 2월 기준 수원지검의 미제 사건은 2만1398건으로 가장 많았다. 의정부지검은 1만410건, 부산지검은 1만229건, 인천지검은 9764건, 대구지검은 9402건이었다. 종합특검팀은 인력 보강이 이뤄질 때까지 서울고검으로부터 넘겨받은 자료를 중심으로 기초 검토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