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지도자와 죄 

  •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
  • 등록 2023.01.02 16:29:16
  • 호수 14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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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카타르월드컵에서 한국이 16강에 오를 수 있었던 데는 파울루 벤투 감독의 신의 한 수가 있었다는 일화가 있다. 조별리그 H조 2차전 가나와의 경기 때 이야기다. 한국이 2:3으로 지고 있던 후반 추가 시간이 종료되기 직전, 코너킥 찬스를 얻었는데 테일러 주심이 경기를 종료시켰다.

이에 한국 선수들이 강하게 항의했고, 특히 핵심 수비수인 김영권 선수가 거칠게 항의하는 상황에서 테일러 주심이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려 했다. 이때 벤투 감독이 갑자기 경기장에 전력질주로 뛰어들어 선수들보다 더 격렬하게 항의했다. 그리고 벤투 감독은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했다.

이를 두고 김진수 선수는 벤투 감독이 김영권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 더 거세게 항의하면서 스스로 레드카드를 받았다고 했다. 당시 김영권 선수는 이미 옐로카드를 받아 한 번 더 받을 경우 퇴장당해 다음 경기인 포르투갈전에 출전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만약 김영권 선수를 보호하려는 벤투 감독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는 포르투갈전에서 김영권 선수의 동점골을 볼 수 없었고 결국 한국이 16강에 오르는 기쁨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벤투 감독 한 명의 희생이 2022 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영광과 함께 전 국민을 기쁘게 했던 신의 한 수였다.

벤투 감독은 레드카드를 받은 다음날 기자회견에서도 “제가 좋지 않게 반응한 것 같다. 이런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으나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됐다”면서 테일러 주심의 레드카드를 겸허히 받아들였다. 역시 명감독다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조직이나 단체의 지도자는 법과 원칙을 지키면서 공동체의 유익을 꾀해야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특히 위기 상황에서는 공동체 유익의 대가로 지도자 개인이 스스로 법과 원칙을 어기면서 처벌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가 법과 원칙을 어기면 안 된다는 원칙에 갇혀버리면 그 지도자는 개인으로서는 떳떳할지 모르나 공동체 전체를 위기에서 구할 수는 없다. 또한 위기 상황에서 공동체를 구하기 위해 법과 원칙을 어긴 지도자가 공동체를 구했다는 핑계로 법과 원칙을 어긴 대가를 치르지 않으려고 한다면 이 역시 지도자로서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특히 국민이 뽑은 선출직 지도자라면 평소에는 법과 원칙을 지켜야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지도자 스스로가 죄를 짓고 감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공동체 전체를 살리기 위해 과감하게 정책을 수립하고 그 정책을 자신 있게 추진해야 한다. 

위기 상황을 이용해 지도자가 자신이나 측근의 이익을 위해 죄를 짓는다면 우리는 그 지도자를 욕하고 비난하지만, 공동체 유익을 위해 죄를 짓고 그 죗값을 당당하게 치를 각오가 돼있는 지도자라면 우리는 그 지도자를 영웅이라고 부른다.

가치관이 다르고 성이 다르고 연령이 다르고 출신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가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어찌 죄를 전혀 짓지 않고 공동체 전체를 살리는 유능한 지도자가 될 수 있겠는가? 작금의 한국은 국가 전체를 위해 스스로는 죄인이 될 줄도 아는 지도자가 필요한 때 같다.

만약 벤투 감독이 개인적으로 경기규칙을 어기지 않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면 한국이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16강에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벤투 감독이 레드카드를 인정하지 않고 계속 항의만 했다면 한국의 16강도 빛나지 못했을 것이다.

5160만명이 사는 대한민국 공동체 지도자인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을 개혁의 원년으로 삼고, 특히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담대한 개혁)이 인기 없는 일이지만 회피하지 않고 역사적 소명을 갖고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서 분명한 건 3대 개혁이 말로만 끝나지 않고 성공하려면 개혁의 특성상 지도자가 잘못된 기존의 틀을 깨야 하고 그 대가로 지도자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과 3대 개혁 관련 부처 장관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못했던 3대 개혁을 실천할 때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면서 법과 원칙, 그리고 공정을 최고의 가치로 삼되, 국가와 국민은 잘되고, 대통령과 장관 스스로는 죄인이 될 각오로, 그리고 그 대가로 감옥에 갈 각오로 개혁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윤정부가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안중근 의사가 대한민국 공동체를 위해 일본과 맞서 싸우는 투사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죄인이 되고, 죄에 대한 대가로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한 지도자가 됐던 것처럼 말이다. 

최근 수개월 동안 전 정부 장관 여러 명이 업무 과정에서 드러난 실책 때문에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있다. 그런데 만약 그들이 자신의 욕심이 아니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다가 실책했다면 당당하게 그 실책에 대한 처벌을 받으면 된다.

그래야 떳떳하다. 구차한 변명을 한다거나 현 정부에 협조성 발언이나 하고 처벌을 면하려 해서는 안 된다.

현 정부 장관도 전 정부 장관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는 것을 보고 차후 처벌이 염려돼 자신에게 주어진 미션을 떳떳하게 감당하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 대통령과 같이 감옥 갈 생각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해야 우리 국민은 현 정부에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도 그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다. 예수도 2000년 전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죄인(?)이 됐고 그 대가로 십자가에서 처형당했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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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풀어주느냐, 마느냐, 이재명 대통령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8·15 특별사면·복권 명단에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이름이 올라오면서다. 한때 아군이었던 조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용산의 선택에 달렸다. 조국혁신당은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계까지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일 이재명정부의 첫 특별사면을 준비하기 위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특별사면 명단에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급상승했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복권 건의 대상자를 검토하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오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설에 부채질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받았다. 조 전 대표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내년 12월15일이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출소 시기는 앞당겨질 수 있다.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기소 자체가 검찰의 무리한 시도였다고 보는 만큼 이번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이뤄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지난 대선 정국서 “조 전 대표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이재명 후보가)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크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곧 조 전 대표의 사면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 것이다. 조 전 대표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더1찍 다시 만날 조국’이라는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이 후보의 당선과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동일시했다. 이렇듯 혁신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등에서 일궈낸 업적을 청구서 삼아 은근한 눈치를 보냈고,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까지 목소리를 키우면서 이 대통령을 전방위로 둘러쌌다. 지난달 30일 친문계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조 전 대표와의 접견 사실을 알리며 “특유의 미소가 여전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긍정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자꾸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이어 “조국의 사면을 많은 이들이 바라는 이유는 검찰개혁을 요구했던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사면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 아닐까”라며 “야수의 시간과 같았던 지난 겨울 우리가 함께 외쳤던 검찰개혁이 틀리지 않았음을, 서로 생각은 달라도 통합과 연대라는 깃발 아래 모두가 함께 있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통합 일환? 이 결정만 남아 친문계에 문까지 팔 걷어붙여 친명(친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통합을 위한 측면에서 넓게 사면 복권에 관한 판단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면서도 “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통령께서 판단할 문제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용산 측에 조 전 대표의 사면 의견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은 우상호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우 수석은 “뜻을 전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김원기·임채정·정세균·문희상·박병석·김진표 등 민주당 출신인 전 국회의장도 가세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책임을 수용한 이들에 대한 절제된 관용”이라며 “대통령께서 국민 통합의 뜻을 담아 조 전 대표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극한 대립과 갈등의 시기를 겪어내며 상처 입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건네는 ‘공정한 매듭과 위로’의 손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방에서 사면 요청이 쇄도하자 대통령실은 막판 고심에 빠졌다. 앞서 지난 5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민생 관련 사면에 대해 일차적으로 검증 및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인 사면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 중”이라며“아직 최종적인 검토 내지는 결정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조 전 대표가 수감 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혁신당은 아직도 권한대행 체제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뽑을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뭐겠느냐”며 “이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조 전 대표가 사면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가 돌아와서 혁신당이 이전 같은 명성을 되찾길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궐위된 때에는 최고위원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로 선출된 최고위원이 남은 임기 동안 당대표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선민 권한대행이 내년 7월까지 조 전 대표의 임기를 대신해 자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당초 조 전 대표가 자신의 수감 생활을 예측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이러한 당헌·당규를 개정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8개월째 대행 체제 혁신당 “확신” 믿을 구석 있었나 내년 지방 선거를 위해서라도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사면이 필요하다. 구심점이 없고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만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지난 보궐선거만큼의 역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국정 초기부터 자녀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복역 중인 인사를 사면했다가는 ‘범죄자 프레임’에 함께 걸려들 수 있다. ‘조국 사태’에 거부감을 느낀 지지자들의 이탈도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다. 반면 사면 요청을 거절할 경우 오히려 조 전 장관의 정치력을 키우는 등 일종의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조 전 대표는 본인의 사면에 대해 큰 뜻을 밝히지 않아 오히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민주당에 있어 조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의 ‘변수’다. 지난 총선서 호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혁신당이기에 조 전 대표가 정치권에 돌아온다면 진보진영 텃밭을 둘러싼 두 정당 간의 경쟁과 그로 인한 잡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그의 행보를 예측하고 나섰다. ‘자유의 몸’이 될 경우 이른 시일 안에 전당대회를 치러 다시 한번 당대표직을 거머쥐고 내년 지방 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조 전 대표가 부산 시장 등으로 직접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보고 있다. 어디로 튈까 민주당은 최종 사면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별다르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7일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지만, 이날 조 전 대표의 사면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공은 이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단 한 사람의 정치 인생이 걸린 문제지만 그의 복권은 정치 진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여러 가지 변수와 상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최종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