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만난 노동운동의 한계

‘단결 투쟁’은 이제 옛말?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단결’ ‘투쟁’으로 대표되는 한국 노동운동사가 큰 변곡점을 맞았다. 바로 사회 주류로 발돋움하는 MZ세대와의 조우다. 기성세대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MZ세대의 성향이 강성 노조의 활동 전략마저 뒤흔들 것이란 전망이다. 노동계 안팎에선 최근 민주노총의 ‘총력투쟁’이 별 소득 없이 일단락된 원인 중 일부도 여기에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야말로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노동계의 수난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그렸던 ‘총파업 시나리오’는 시작도 전에 막을 내린 반면 정부의 반격은 멈출 기미가 없다. 아울러 노동계 안팎에서는 “더 이상 단일대오는 없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MZ세대를 필두로 노동계 분화가 본격화됐다는 의미다. 

노동계 
지각변동

민주노총이 총파업 첫 단추로 삼았던 화물연대는 집단 운송거부를 결행했다가 빈손으로 물러났다. 이들은 지난 9일 전 조합원 총투표를 거쳐 파업을 전격 철회했다. 지난달 24일 ‘안전운임제 품목 확대’를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한 지 16일 만이었다.

정부는 시종일관 법과 원칙을 내세웠다. 정부는 “불법 파업과는 타협할 수 없다”며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민주노총은 파업 막바지 물밑협상을 타진했지만, 정부의 ‘선복귀·후대화’ 기조를 깰 수는 없었다.

결국 우려했던 장기전은 없었다. 그 배경을 두고 다양한 분석이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국민 여론 악화 ▲내부 분화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언급된 두 요인의 중심에는 모두 MZ세대가 있다. MZ세대는 국민 여론에서도, 노동계 안에서도 이번 파업을 등졌다. 


우선 여론은 전반적으로 화물연대 파업에 부정적이었다. 지난 9일 공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화물연대가 우선 복귀한 뒤 협상해야 한다’는 응답이 71%에 달했다. 반면 ‘주장이 관철될 때까지 파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응답은 21%에 그쳤다.

어려운 경제 상황 속 파업이 물가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강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화물연대가 국민들 지지를 얻을 마땅한 명분을 찾지 못한 게 원인이라는 시각도 있다. 화물연대는 지난 6월에도 14일간 총파업을 벌인 바 있다. 화물연대가 한 해 두 번 이상 파업을 벌인 건 올해가 2003년 이후 처음이다. 

MZ세대 여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응답자 중 20대의 67%가, 30대의 72%가 우선 복귀 협상을 골랐다. 이는 노년층(60대 82%·70대 이상 84%)보다는 낮지만 기성세대(40대 59%·50대 69%)를 상회하는 수치다.

하지만 MZ세대가 노동운동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파업 대응에 관한 다른 항목에서 20대와 30대의 ‘잘하고 있다’ 응답 비율은 각각 17%, 19%에 불과했다. 이는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낮은 수치였다.

반면 ‘안전운임제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지속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응답은 52%와 57%에 달했다. 전체 응답자 평균(48%)을 가뿐히 넘긴 비율이다.

민주노총과 ‘궤 안 맞는’ 세대?
투쟁 일선서 이탈…새 노조 조직


결국 MZ세대는 파업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파업 강행에는 부정적 의견을 내비친 셈이다. 학계는 일견 모순적인 결과를 놓고 “MZ세대는 파업 여부보다도 투쟁 방식에 불만을 가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노동사회학 전공의 A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통계자료를 보면 MZ세대는 파업 명분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그럼에도 복귀를 원하는 여론이 높은 이유는 총파업 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MZ세대는 그 누구보다도 노동 이슈에 관심이 많은 세대다. 다만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세대 특성상 집단주의적 투쟁을 강조하는 민주노총 방식은 수용하기 꺼리는 것”이라며 “단순히 젊은 세대의 정치 성향 우경화를 파업 반대의 원인으로 꼽는 건 설득력 없는 갈라치기”라고 덧붙였다.

B 교수는 MZ세대식 사고가 이 같은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봤다. 그는 <일요시사>에 “MZ세대에게 맹목적인 지지란 없다. 같은 대상에게도 사안별로 지지 여부가 달라진다. 이게 기성세대와의 차이점”이라며 “이 때문에 명분에는 공감하면서도 파업을 지지하지 않는 입장이 더 명확히 드러난다. 같은 입장의 기성세대였다면 결국 지지·합류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MZ세대의 특징은 사회적으로 익히 알려진 대로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수평적인 소통을 추구한다. 필요성이 확실히 입증되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는 실용성과 합리성도 엿보인다. 이 같은 특징들은 기존 노조 문화와 여러 지점에서 충돌한다.

민주노총의 연대·총파업은 주된 투쟁 전략 중 하나다. 이들은 다른 사업장·산업의 이슈에도 함께 목소리를 내고,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왔다. ‘민주노총’이라는 단위 아래에서 서로를 ‘동지’로 여기는 인식도 강하다.

빈손 복귀
더 큰 위기?

하지만 MZ세대는 그렇지 않다. 이들은 다른 사업장·산업 이슈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 때문에 확실한 동기 부여 없이는 연대·총파업 참여율이 저조할 수밖에 없다. 일단 파업에 참여했더라도, 그 동력이 유지되지 않으면 중도 이탈하는 사례도 목격된다.

이번 화물연대 파업에서도 젊은 조합원 다수가 조기 이탈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토부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 직후 일부 화물 기사는 국토부에 먼저 연락해 “명령서를 빨리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이 중 상당수가 20~30대의 젊은 기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맥락에서 MZ세대는 기존 노조의 경직된 분위기를 기피한다. 조직 내 복잡한 조직관계와 강한 위계질서에 불만을 느끼는 젊은 조합원들이 많다는 것이다. 

주된 활동층인 기성세대와의 세대 차이·갈등도 불만의 한 축이다. MZ세대 조합원은 의견 개진·간부 선발 등에서 기성세대에 밀려 소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이와 관련된 문제 제기가 나왔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은 지난해 2월 ‘청년 조합원의 경험과 노동조합의 대응과제’ 보고서를 발표했다. 노동연구원 역시 보고서에서 청년층 조합원의 참여율이 저조한 이유로 ▲세대 차이 ▲노조의 빈약한 동기 부여 ▲투쟁 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 등을 꼽았다.


노동연구원은 특히 투쟁 방식에 대한 세대별 의견 차이에 관해 “면접 내용에 따르면 젊은 조합원일수록 예전과 달리 언론을 이용하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투쟁하는 온건한 전략을 선호한다”며 “(젊은 조합원 사이에서)‘사회 분위기가 변화하면서 노조가 과거와 같은 투쟁을 하면 큰일 날 수 있다’거나 ‘과격한 투쟁으로 문제가 생기면 아무도 책임져 줄 수 없다’는 인식이 있다”고 짚었다.

또 “MZ세대 조합원들이 집회 일변도를 벗어나 유튜브 활용 등 새로운 투쟁 방식을 제시해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불만이 많다”는 분석도 언급됐다.

쌓인 불만
떠나는 MZ

민주노총을 비롯한 기존 노조를 향한 불만은 MZ세대가 직접 새로운 노조를 조직하려는 시도로 귀결됐다. 이 중 일부는 민주노총 산하 노조의 ‘대안세력’으로 떠오르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올바른노조’가 대표적인 예다. 올바른노조는 지하철 1~8호선 및 9호선 일부 구간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의 제3노조다. 지난해 8월 결성됐으며, 조합원의 약 90%가 MZ세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교통공사의 제1노조는 민주노총 소속의 공사 노조다.

이들은 지난달 30일 서울교통공사 양대 노조가 6년 만에 총파업에 돌입하자 이를 ‘명분 없는 정치파업’으로 규정하며 불참했다. 그런데 교섭 기간 중 젊은 직원 상당수가 공사 노조에서 올바른노조로 옮겨왔다. 노사 교섭이 진행되던 한 달 사이 조합원 수가 1250여 명에서 1900여 명으로 52%가량 증가했다는 게 노조 측 설명이다. 


파업에 불참하고도 조합원이 급증한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와 관련해 송시영 올바른노조 위원장은 “공사 노조가 주도하는 불합리한 정치투쟁에 염증을 느낀다며 올바른노조로 넘어오는 직원이 많다”고 설명했다.

올바른노조는 독자적인 활동 방향을 구축했다. 이들은 ▲상급단체 없는 직원만을 위한 노동조합 ▲합리적인 조합비 ▲다양한 소통 채널과 빠른 피드백 ▲수평적 문화 구축 등을 내세우고 있다. 

때로는 공사 노조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한다. 2018년 서울교통공사가 무기계약직 노동자 1300명의 정규직 전환을 두고 갈등을 빚은 문제는 올바른노조의 설립 계기가 됐다.

송 위원장은 “당시 정규직 전환에 주도적으로 나선 것이 공사 노조다. 정규직 증가로 기존 직원의 피해는 없다고 했는데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충분한 소통 없이 이뤄진 불공정한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답답했다. 앞으로 직장생활을 오래 이어가야 하는 젊은 직원 중심으로 새로운 노조를 결성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강성 대신 온건 교섭 선호 성향 
정부 압박 커지면 복귀할 수도 

실제로 2019년 감사원은 ‘비정규직의 채용 및 정규직 전환 등 관리실태’ 감사보고서에서 “서울교통공사가 관련 법령에 따른 능력 실증 절차 없이 2018년 3월 무기계약직 1285명 전원을 일반직으로 신규 채용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감사원 감사로 이 중 192명이 기존 재직자의 친인척으로 드러나 논란이 인 바 있다.

다만 ‘MZ노조’가 마주한 현실은 그리 녹록지만은 않다. 단체교섭권 확보, 기존 노조와의 관계 설정 등 난제가 산적했다. 

2011년 개정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라 사업장별로 복수 노조를 설립할 길이 열린 건 맞지만, 단체교섭권을 행사할 수 있는 노조는 여전히 1곳으로 제한된다. ‘기존 노조 소속 근로자와 근로 조건 등이 크게 다른 경우’에는 노동위원회에 교섭 단위 분리를 신청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이 있긴 해도 제대로 인정되지 않는 실정이다.

기존 노조의 견제도 견뎌야 한다. 코레일네트웍스 일반직 노동조합은 지난해 4월 기존 노조와 별개로 단체교섭권을 획득했다. 이 노조 역시 조합원 90% 이상이 MZ세대 직원이다. 

그런데 지난해 7월 민주노총 전국철도노동조합이 서울행정법원에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코레일네트웍스 일반직 노조 교섭단위 분리결정을 취소하기 위해서였다.

일반직 노조 측에서는 “노조에 의한 노동3권 침해”라며 “복수 노조 시대에 다른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회사와 교섭창구를 독점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당시 법원은 일반직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제3부는 지난 6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철도노조가 항소하지 않으면서 판결은 확정됐다. 

노동현장 속 MZ세대 비율이 점차 늘어나는 만큼 ‘노동계 대격변’은 앞으로 더욱 활발히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 가지 변수는 남아 있다. 정부의 노동정책에 따라 MZ세대의 노동운동 방향이 변화할 여지는 상존한다. 

독자 활동
과제 산적

현 정부는 강도 높은 노동개혁과 함께 반(反)노조 의사를 분명히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우리 경제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2차례의 업무개시명령이 발동된 후에야 이 파업이 끝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파업기간 중 발생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사태가 일단락됐다고 해서 과정 중에 있었던 각종 불법·폭력행위에 대해 그냥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후 정부의 노조 압박강도가 임계점을 넘어가면, MZ세대의 강성 투쟁 합류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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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