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⑩일단 당선되면 맘대로 욕심대로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2.11.29 17:13:54
  • 호수 14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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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흥, 전직 대통령들이 가장 문제야. 권력을 독점한 채 옛 왕조시대보다 더 제멋대로 굴잖아. 아마 옥황상제님보다 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게 한국 대통령일 거야. 더군다나 옥황상제님은 하지 않는 깡패 조폭 같은 짓도 마음만 먹으면 은근슬쩍 자행해 버리곤 미소 지을 수 있는 괴상스러운 옥좌야. 

무소불위

아, 국민들이여! 무지한 인간들아!… 좌파든 우파든 일단 대통령에 당선되면 자기 파당의 이익을 위해 노력·봉사하지 않을 수 없어. 나보다 더 잘 알면서 왜 모르는 척만 하구 그래? 우파든 좌파든 국민 뜻을 빙자하면서 지들 멋대로 70, 80% 이상 선뜻 가져가 버리니까. 우리네 불쌍한 국민들은 그들의 똥찌끄러기나 빨아 먹어야 하는 거지.”

그는 상대방의 대꾸를 기다리는지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독백을 늘어놓았다. 

“그럼 어찌 해야 할까? 우선 낡아빠질 대로 빠진 헌법을 오늘날에 맞게 고쳐야 해. 헌법은 영원하겠지만 낡은 헌 법[法]은 현실에 맞게 고치는 게 순리야. 그런데 우리는 2020년대에 살고 있으면서, 헌법은 군사독재 시대인 1980년대 말에 대충 날조 개정한 과도기적 사꾸라 틀 아래 억눌리고 있다잖아.


흥, 국회의원 개새끼 나리들의 양복은 최고급 울트라 맞춤식이라 아무리 똥배가 튀어나온 뚱보라도 제 맘대로 늘어나건만…. 나 같은 일반 보통 국민들은 낡아빠지고 좁아터진 1980년 독재표 헌 잠바 속에 갇혀 끙끙거리는 상태인걸.

우리 국민들이 직접 나서서 이 시대에 알맞은 우리 옷을 만들어 입어야 해! 옛 옷 속엔 바늘이나 칼날 그리구 가위도 들어 있어. 뭔가를 위해 슬쩍 남겨둔 거겠지. 흐흘, 실수라기보다 속셈…

깡패나 조폭보다 더 비열한 정치꾼 모리배 년놈들! 국민들은 바늘 끝에 찔리고 칼에 토막나고 가위 날에 매일매일 삶이 생째로 잘리는데도, 그들은 껄껄 웃어대며 자기네의 이익을 챙기는 데 혈안이 돼 있어. 흥, 그들은 세월호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참사를 인재가 아니라 자연재해라고 우기지만 저 참새 녀석마저 깔깔 웃겠구만.

아니, 인간이 신을 이기고 있는 판국인데 뭔 자연재해니 자연의 보복이니 뭐니 지껄여댈 필요가 있냐, 응? 참 개같은 인간들이라니깐! 인간들의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을 위한 사실 왜곡은 이미 도를 확 넘어 하늘까지 죄다 더럽혀져 버렸어.

그래서 역설적으로 외로워진 인간들은 영웅호걸 따위 좀 꽤나 특출하면서 독재적인 위인을 인신이니 신인이니 추앙하다가 결국엔 진짜 신처럼 만들어 버리는 거지. 아니할 말로 저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각종 신들, 기독교의 예수, 일본의 천황 등도 인간이 인간에게 신성을 투여한 게 아니냔 말야.

흠, 한국으로 오면 훨씬 저급스러워지지. 원래는 고급스러웠는데, 온갖 세월 동안 외세에 시달리다보니… 지금은 맥아더 이하 미군 사령관들과 박정희 전두환 김대중 노무현 이승만 등이 각종 당파에 따라 거의 뭐 신과 비스무리하게 대접받는 실정이랄까.

무당 집을 한번 둘러보면 알 수 있어. 진짜 신의 입장에서 보면 가관이겠지. 대체 왜 좌빨이니 우빨이니, 개미 똥구멍 빠는 진딧물 같은 좀비 인간이 많을까? 차라리 좌측 이빨로 오징어 무침을 씹고 우측 이빨로 두부조림을 꼭꼭 씹는다면 풍부한 영양분을 섭취해 건강에 좋을 텐데…


왼쪽 이빨과 오른쪽 이빨이 짝을 불신하며 서로 잘났네 싸우다가 혀를 물어 뜯고 편식한 결과 우리 몸 전체가 건강을 잃은 채 골골거리고 있지 않냔 말야. 윗니 아랫니가 서로 이해하는 건 당연지사고… 건강이란 상하 좌우의 뇌, 눈, 귀, 코, 손발, 음양, 남녀 합궁, 천지 자연의 도리…

흥, 난 잘 몰라. 다만 이건 좀 짐작이 돼. 자기쪽 편에 의치[義齒]를 해 넣으면 입 안이 어찌 되든 상대를 막 씹어 뱉을 수 있거든. 진실과 허위의 혓바닥까지도…

옛 왕조시대보다 더 제멋대로
옥살이 전직 대통령도 우상화

흠, 조선 왕조가 끝난 이후 여러 명의 대통령이 나왔지만 대부분 불행했지. 지금도 감옥 속에 전직 각하가 갇혀 있잖아. 왜 이유를 몰라? 과욕. 국민들이 그들에게 떠넘겼지 뭘. 민주주의 선거라는 미명하에… 자기 욕망을 스스로 컨트롤하지 못해 권리와 권력을 살쾡이 거머리들에게 맡겨 놓은 채 자유방임하는 거지 뭘.

설령 아무리 악독한 놈이라 하더라도 일단 선거에 의해 뽑혀 대통령 옥좌에 오르면 화장술사(메이크업 전문가)들과 마인드 마스터들이 붙어 깜짝 놀랄 만큼 선량하고 멋진 캐릭터를 만들어내지. 겉보기엔 성현 군자 같지만 속은 야수와 강도 심보가 더 날뛰게 된단 말야. 흥, 가면을 쓴 채 한순간 만인지상 무소불위의 권력을 그 허연 손아귀에 장악하게 되잖아, 응?

그렇잖아요, 국민 여러분! 일단 그런 다음엔 최소한 대한민국 땅에선 신마저 고유의 진리와 진실과 자연의 순수한 빛을 펼칠 수가 없어. 왜냐? 대통령과 그의 하수인들이 5년간 신보다 더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며 국민의 삶과 삼천리 ‘금수[禽獸]강산’을 제맘대로 변조 개작할 수 있으니까. 국민의 이름으로…

에잇 씨팔! 나 같은 놈이 뭘 알겠어. 하지만 대통령이란 이름부터 좀 바뀌면 좋겠어. 흐흐, 대통령, 흐흐흐… 그건 국민이 지은 이름이 아니야. 지들이 멋대로 지어 붙인 것일 뿐…

흠, 우리가 북한의 수령이란 명칭을 도둑놈 두목 같다고 비웃지만 뭐 피장파장이야. 같은 피를 나눈 놈들이 뭐 크게 다르겠어. 이 쪼그만 땅에 뭘 그리 다스릴 게 있답시고 대(大) 자를 붙이고 지랄이야. 그냥 통령이라고만 해도 될 텐데…

야, 개새끼들아! 너희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미국도 그저 한 구역 책임자라는 의미의 프레지던트라는 단어를 쓰는데, 너희 허위 인간들은 책임은 무시하고 국민 유권자의 가슴속에 맺힌 홍시만 따서 홀랑 삼키곤 얌얌 짭짭 더 입맛을 다시잖아. 응?” 

피에로씨는 달아오른 얼굴의 열기를 좀 배출하듯 콧방귀를 몇 번 뀐 후 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 입속에 넣고 굴리며 사설을 이었다. 나는 그가 혹시 미치지 않았는지 은근히 걱정스러웠다.

“아무튼, 대통령 선거든 국회의원 뽑기든… 일단 당선된 놈은 너무 잘난 척 지랄치고 낙선한 자는 허접스러워져 버려. 웃기는 얘기야. 사실상 득표율은 몇 프로 차이나지도 않으면서… 그럼 낙선자를 찍은 유권자는 뭐가 되냔 말야.

하긴 당선된 후엔 대개 안하무인 번지레한 낯짝으로 찍어 준 사람을 무시하고 제 욕망 채우기에 급급하니까. 후훗… 사꾸라 민주주의는 말만 그럴듯할 뿐 사실상에 있어서는 정통 독재보다 못하고, 전통적인 왕조 시대의 시스템보다 더 후진 게 아닐까?


흠, 여보시우, 내가 횡설수설한다고 넘겨짚진 마슈. 난 그놈들보다 멀쩡하니까… 음, 그럼 이제 애초의 본론으로 돌아가쥬. 죽은 자와 과거의 죄악을 용서해야 하느냐, 혹은 어떤 식으로든 처벌하는 게 더 좋으냐? 

특히 일반인이 아닌 전직 대통령 국회의원 나리 같은 스스로 위대하다고 망상 착각하는 분들… 화장술과 가면을 벗기면 우리보다 훨씬 더 저열할 수도 있는 가짜 인간… 그럼 대체 누가 그 화장술과 가면을 쓰게 해주었는가?

바로 나, 그리고 국민 여러분이 아닌가 쫌 궁금하우. 히힛…

전직 대통령의 죄를 사면해주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미 벗겨져 사라진 왕관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가진 고집통들일 거야. 죽은 왕들의 머리에 씌워졌던 왕관과 미신 종교의 후광을 사실보다 더 중요시하는 거겠지. 정치와 종교는 바른 길을 벗어나는 순간 다 미쳐버리니까 말야. 

광인에게 정언은 통하지 않지. 죽은 대통령을 우상화하고 감옥에 갇힌 전직 대통령을 추종해 그 똥구멍이라도 빨아 주려는 이른바 ‘똥빨’들의 심리 심보는 과연 무엇일까? 흥, 적어도 내가 볼 때는… 그들이 퍽 너그러워서라기보다 오히려 자기들의 죄악과 과오 때문이 아닐까 싶어.

즉, 그 영웅들의 죄를 통해 자신의 악을 대속하고, 대리만족하려는 거지. 자기들이 만든 영웅에게 영광과 함께 죄악을 덮어씌워 버리곤 외면하는 비겁자들… 자기가 직접 투우장에 나서기보다 관중석에서 구경하는 게 더 재미있을라나.” 


비겁자

피에로 씨는 중얼거림을 멈추자 옆을 슬쩍 바라보았다. 청중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려는 듯.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는 허허 웃으며 절룩절룩 계단을 걸어 내렸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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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