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말고’ 위험한 이태원 음모론

156명 떠난 자리 카더라만 들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이태원 참사의 국가 애도 기간이 끝났다. 국민적인 애도 물결이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무분별한 음모론 제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문제는 이 음모론이 애도 현장에도 공공연히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무분별한 추측과 의심은 ‘애도’로 치환될 수 없다. 유가족을 향한 2차 가해가 우려되는 상황. <일요시사>는 직접 애도 현장을 찾아 음모론자들의 면면을 살폈다.

단순한 호기심도 때로는 무례한 법이다. 그곳에 누군가의 불행이 엮여 있다면 더욱 그렇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직후부터 지금까지, 음모론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누군가는 ‘진상규명’이라는 미명 아래 ‘아니면 말고’식 음모론을 던졌다.

막 퍼지는 
유언비어

참사 소식이 빠르게 번져나가는 과정에서 마약 유통설·가스 누출설 등이 제기됐다. 현장에서 사람들이 쓰러진 이유가 마약이나 가스에 중독됐기 때문이라는 주장이었다. 경찰은 처음부터 “압사사고로 추정된다. 화재‧마약‧가스누출 등과 관련된 특이사항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못 박았지만, SNS 등지에선 여전히 각종 낭설이 난무했다. 

참사 직후 한 SNS에는 “단순한 압사사고가 아니다. 한 술집에서 난 화재로 가스가 누출돼 사람들이 기절한 것”이라거나 “건물 자재가 무너지면서 거기에 사람들이 깔린 것” 등의 뜬소문이 돌았다. “이태원에 방문했더니 계란 썩는 가스 냄새가 났다. 황화수소 누출이 추정된다”는 등 목격담을 빙자한 허위사실도 유포됐다. 

특히 사고를 촉발한 ‘가해자’를 특정하려는 시도가 줄을 이었다. 토끼 머리띠 등 어떤 인상착의를 가진 이가 군중을 밀면서 참사가 시작됐다는 목격담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온라인 일각에선 “각시탈을 쓴 사람들이 참사 발생 전 아보카도 기름을 뿌리고 다녔다”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김동욱 경찰청 특수수사본부 대변인은 지난 7일 기자간담회에서 “CCTV상 아보카도 오일이 아니라 짐빔(미국 위스키의 일종)으로 확인했고, 사진 촬영 위치로 보아 일단 혐의점이 없어 보인다”며 “소환조사를 통해 최종 혐의 여부를 확인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관련 의혹이 해소되긴 커녕 외려 “경찰이 진상을 덮으려 한다”는 새 음모론이 추가됐다.

이때까지 온라인상에만 존재했던 음모론자는 지난달 31일부터 현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부터 참사 추모 공간이 본격적으로 설치되면서다. 음모론은 대부분 ‘유튜버’를 매개로 추모 공간에 발을 들였다. 분향소를 찾은 유튜버가 라이브 방송을 켜고, 이를 통해 음모론을 전파하는 방식이었다.

국가 애도 기간 중 운영된 분향소 중 가장 큰 규모로 마련됐던 서울광장 분향소에도 어김없이 음모론이 등장했다. <일요시사>는 분향소가 열린 첫날(지난달 31일)부터 다음 날까지 분향소 인근을 살폈다. 분향소 정면에는 추모하는 시민들을 촬영하는 방송 카메라가 가득했다. 

사고 원인부터 책임 주체까지…판치는 루머 
온라인서 시작돼 현장으로…유튜버가 매개

한 남성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핸드폰을 들었다. 그러고선 끊임없이 말을 이어갔다. 참사 희생자에 대한 추모는 잠시뿐, 이윽고 현 정부에 대한 비난에 근거 없는 사실들을 섞어가며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나가다 이를 들은 시민들은 따가운 눈총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쏟아냈다.

점심시간을 틈타 헌화하러 분향소에 방문했다는 A씨는 <일요시사>에 “정말 진절머리 난다”며 말문을 열었다. A씨는 “자기 시청자 수, 조회 수 늘리려고 참사 피해자를 이용하는 짓이다. 뒤에서 해도 욕먹을 짓을 대놓고 나와서 하니 기가 찬다”며 “저러라고 만들어 둔 곳이 아니다. 곳곳에 유족들도 있는 것 같던데 그분들이 들으면 무슨 생각을 하시겠나”고 안타까워했다. 


A씨 말대로 이 남성의 몇 걸음 뒤에는 유가족으로 추정되는 이가 있었다. 그는 소복에 팻말을 든 채로 무릎을 꿇었다. 팻말에는 ‘아들아 미안하다’라고 적혀 있었다.

참사 원인과 책임을 놓고 정치권 공방이 가열되면서, 이에 얽힌 음모론도 가중됐다. 여권 지지자들 사이에선 참사 당일 있었던 정권 퇴진 시위가 사고를 촉발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당초 용산 대통령실 앞에 집결했던 시위대는 사고 현장에서 600m가량 떨어진 녹사평역까지 이동했고, 오후 9시30분에 해산했다.

이때 해산한 시위대 중 일부가 이태원으로 가서 군중을 밀었고, 이로 인해 참사가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당일 시위를 주도한 노조의 조합원 2명이 이태원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음모론에 불이 붙었다. 하지만 이 역시 낭설에 불과하다.

직접 가서 
들어보니…

야권을 중심으로는 이른바 ‘경찰 인력 급감설’이 유포됐다. 과거 핼러윈 때는 늘 800명이 넘는 경찰 인력이 투입돼 현장을 통제했지만, 올해는 유독 인원 배치가 적었다는 의혹이다. 의혹과 덩달아 정부 책임론이 일파만파 퍼졌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과 달랐다. 서울경찰청이 지난달 30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투입된 경찰 인력은 137명이다. 과거 5개년(▲2017년 90명 ▲2018년 37명 ▲2019년 39명 ▲2020년 38명 ▲지난해 85명)에 비해 많은 수치다. 마약 단속에 나선 사복경찰 50명을 빼도 지난해와 비슷한 수치인데다, 과거 투입 인원도 800명과는 동떨어져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음모론의 주제도 자연스럽게 변화했다. 음모론자들은 사고 원인에 대한 주장이 무산되자 사고 책임에 관한 음모론을 퍼트렸다. 일각에서는 이와 동시에 이태원 상권에 관한 의심을 곁들였고, 경찰 수사 결과에 불복할 움직임까지 예고하고 나섰다.

국가 공식 애도 기간은 지난 5일 종료됐다. 이날 오전에는 새로운 음모론이 돌았다. 이태원에 위치한 클럽과 라운지 바 등이 5일 자정이 넘어가길 기다렸다가 6일 새벽(0시1분)부터 영업을 재개한다는 주장이었다. 

<일요시사>는 이 의혹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5일 저녁 직접 이태원역을 찾았다. 의혹과는 달리 이태원은 조용했다. 여전히 엄숙하고 무거운 추모 분위기가 이어졌다. 대로변의 몇몇 식당을 제외한 점포 대부분은 문을 열지 않았다.

이른바 ‘야간 개장’을 하려면 그날 저녁에는 영업 준비에 나서야 한다. 더군다나 이태원 상권은 이미 참사 다음 날부터 엿새간 휴무를 이어온 상황이었다. <일요시사>는 여러 차례 골목을 돌았지만, 인기척이 느껴지는 점포는 없었다. 자정을 넘어 새벽에도 마찬가지였다.

직관적으로 보기에도 야간 개장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태원 상권의 라운지 바는 대부분 1번 출구 인근, 즉 사고 현장 주변에 몰려있다. 5일에서 6일로 넘어가는 밤에도 경찰은 여전히 사고 현장을 통제하고 있었다. 출입구가 경찰 통제선으로 막혀있는 상황에서 영업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트라우마
2차 가해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추모 공간은 이날 이태원에서 유일하게 붐빈 곳이었다. 시민들은 늦은 시간에도 이곳을 찾아 참사 희생자를 애도했다. 지하철이 이미 끊기고, 국가 공식 애도 기간이 끝난 자정 이후로도 발길은 계속 이어졌다. 시민들은 묵념·헌화·메모 등 각자의 방식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하지만 이 사이에서도 음모론은 여전히 기승을 부렸다. 조용히 묵념하는 시민 뒤에서도 누군가는 ‘라이브 방송’을 켠 채 사실과 다른 의혹들을 꺼내들었다.

<일요시사>는 이날 밤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현장에서 ‘음모론자’ 여럿을 마주했다. <일요시사>는 이들에게 대화를 요청한 끝에 이 중 한 명과 어렵사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A씨는 참사 이후 이태원에 여러 번 방문했다고 했다. 자신이 직접 검증해본 결과, 경찰과 정부의 조사 결과 발표는 믿을 수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강조했다.

그는 “156명이라는 희생자가 나오기에는 저 골목이 너무 좁지 않냐. 직접 시뮬레이션을 해 보니, 시신이 산처럼 쌓여야 하더라. 그건 말이 안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단 저 골목뿐 아니라 옆쪽에서도 희생자가 나왔다는 정황이 있다. 그런데 정부와 경찰은 그런 이야긴 전혀 하지 않고 있다”며 “사건을 대충 처리하고 넘기려는 심산”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교묘하게 사실을 왜곡했다. 주장 곳곳에는 논리적 비약이 숨어있었다. 이 중 일부를 차근차근 반박했다. 예컨대 “희생자 상당수는 선 채로 사망해 공간이 부족했다는 지적은 타당하지 않다”와 같은 지적이었다.

이에 그는 “과학적 팩트는 아직 부족하지만…”이라고 말끝을 흐리며 “그러니까 기자들이 더 열심히 알아봐 달라는 것이다. 일개 시민이 조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되레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 불신으로 양산
입맛 따라 의혹 제기

A씨는 유가족에 대한 2차 가해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이번 유가족은 과거 참사 때에 비해 너무 조용한 것 같다”거나 “유가족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희생자 명단을 확보하고, 희생자가 제대로 집계됐는지 재확인이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방금 발언들은 2차 가해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을 끊어도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국민 알 권리를 위한 것인데, 무엇이 문제된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윽고 그는 “계속 취재하다 보면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거다. 두고 보면 알 것”이라는 말을 남긴 채, 자리를 떴다. 언뜻 보인 핸드폰 화면은 여전히 ‘방송 중’이었다.

6일 새벽, 비교적 한적해진 거리에 나타난 한 시민은 경찰을 향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경찰이 의도적으로 참사 현장을 방치한 결과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경찰에게 ‘개XX’ ‘양XX’ 등의 욕설을 계속 퍼부었다. 현장에 있던 경찰들은 고개를 떨군 채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음모론이 계속 등장하는 요인으로 ‘정신적 충격’과 ‘정부에 대한 불신’을 꼽았다.

한 사회학과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전화에서 “이번 참사는 SNS를 통해 참혹한 현장이 전 국민에게 생중계됐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큰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이가 많을 것”이라며 “이에 더해 사고를 예방하지도, 추가 피해를 잘 막지도 못한 정부의 모습을 보며 불신이 커졌을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음모론이 양산된다고 본다”고 짚었다. 

또한 복잡한 참사의 원인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인지적 오류’도 음모론 생산에 기여한다는 의견이다. 복잡한 연관관계 중 간단한 요인 하나만 꼽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면,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움직임이 관측된다는 것이다. 앞서 등장했던 ‘토끼 머리띠’ ‘각시탈’ 등이 대표적인 예시다.

원인 단순화
인지적 오류

음모론이 잠시나마 자취를 감춘 때, 그 빈자리를 채운 건 진심 어린 애도였다. 오전 5시를 살짝 넘긴 시각. 아직 첫 차도 움직이지 않을 때였지만 한 중년 여성이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찾았다. 그는 품에 있던 흰 국화 여러 송이를 모두 내려놓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자리를 지켰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여자라서 죽었다? 도 넘은 여성단체

일부 페미니스트가 이태원 참사를 ‘여성 학살 사건’으로 규정하고 규탄 시위를 예고했다가 유가족 반대로 취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국페미니즘연대는 지난 6일 SNS 계정을 통해 “이태원 시위는 주최 측이 유가족의 반대 요청을 받아 긴급하게 취소됐음을 알려드린다”고 전했다.

당초 이들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 중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많다는 점을 들어 규탄 시위를 계획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참사 희생자 중 여성은 101명, 남성은 55명이다. 

의료계는 이 같은 비율 차이가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은 여성이 호흡·공간 확보에 더 어려움을 겪으면서 발생한 걸로 추정한다.

성별 간 신체 특성 ‘차이’로 벌어진 결과에 여성 ‘차별’을 지적하는 페미니즘이 개입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논란 속에 여권 인사가 직접 비판에 나서기도 했다. 국민의힘 곽승용 부대변인은 SNS에 집회 주최 측을 겨냥해 연일 글을 올렸다. 

곽 부대변인은 지난 5일 “마치 이러한 참사가 벌어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본인들이 혐오했던 집단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기 위해 온갖 음모론과 비논리적 음해성 프레이밍을 내던진다”고 쓴 데 이어, 지난 6일에는 “156명의 사람이 명을 달리하고 157명의 사람이 부상당한 끔찍한 참사를 자신들의 혐오장사 불쏘시개로 활용하는 당신들의 반인륜적 세계관”이라고 맹폭했다.

한편 이번 시위 주최자의 신원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주최 측이 후원 모금을 위한 계좌번호를 공개하면서도 예금주명은 반익명(초성) 처리했기 때문이다.

또 이들은 시위 참석 자격을 ‘생물학적 여성’으로 제한하기도 했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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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 인수전’ 카카오 후유증

‘SM 인수전’ 카카오 후유증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입에 삼키기엔 너무 컸던 걸까?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카카오가 사법 리스크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하이브와의 전쟁서 이겼지만 ‘상처뿐인 승리’가 된 모양새다. 엔터계 공룡을 삼킨 공룡 기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불과 몇 년 만에 국민 기업서 밉상 기업으로 전락했다. ‘카카오톡’이 전 국민의 메신저가 될 때까지만 해도 카카오의 미래는 밝았다. 카카오톡의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배경으로 사업을 확장했던 초기에도 부정적인 여론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골목상권 침해, 쪼개기 상장 등의 문제가 터지면서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국민 기업 밉상 기업 카카오가 창립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해 2~3월 하이브와의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인수전 과정서 일어난 일이 사법 리스크로 되돌아오는 모양새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어울리는 결말이다. 승자의 저주는 경쟁에서는 이겼지만 그 과정서 과도한 비용을 사용해 후유증을 겪는 상황을 뜻한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는 지난 17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CA협의체 경영쇄신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 SM 인수 과정서 경쟁사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SM의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매수가인 12만원보다 높게 올릴 목적으로 시세를 조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김 위원장이 카카오가 지난해 2월 2400억원을 동원해 553차례에 걸쳐 SM 주식을 고가에 매수하는 데 관여했다고 보고 있다. 카카오는 사모펀드 운용사인 ‘원아시아파트너스’와 공모해 주가가 떨어지지 않도록 지난해 2월16~17일, 27일 원아시아파트너스가 1100억원을 먼저 투입하고 같은 달 28일 카카오가 뒤이어 1300억원을 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검찰은 원아시아파트너스 대표 지모씨를 시세조종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변호인단은 김 위원장이 SM 지분 매수 과정서 어떤 불법적 행위도 지시, 용인한 바 없으며 지분 매수는 정상적 장내 매수였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카카오 내부는 당혹스러운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영장을 청구한 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첫 구속영장을 발부했던 영장전담판사가 배정된 점 등에 긴장하는 분위기다. 하이브와 크게 벌인 ‘쩐의 전쟁’ 경영권 차지했지만 사법리스크↑ 김 위원장은 지난 9일, 20시간의 밤샘 조사에서 “SM 주식을 장내 매수하겠다는 안건을 보고받고 승인한 것은 맞지만 구체적인 매수 방식과 과정에 대해서는 보고받지 않아 몰랐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날 조사 이후 8일 만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위원장의 혐의를 입증할 인적·물적 증거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사모펀드를 통해 투자해서 우호 지분을 확보하라고 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카카오 임직원 간 메시지를 비롯해 김 위원장의 혐의를 뒷받침하는 관계자의 통화 녹취, 진술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와 하이브의 SM 인수전은 혈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치열했다. SM은 K팝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연예기획사로 H.O.T, 보아, 동방신기, 소녀시대, 샤이니, EXO, NCT, 에스파, 라이즈 등의 유명 보이·걸그룹을 배출한 ‘아이돌 명가’로 알려져 있다. 대형 연예기획사를 둘러싼 카카오와 하이브의 인수전은 K팝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SM 인수전의 시작은 이수만 SM 전 총괄 프로듀서의 지분 매각설서 시작됐다. 이 전 프로듀서는 SM의 설립자로 SM 소속 가수를 좋아하는 팬덤 사이에서는 ‘수만 아버지’로 불리는 등 일종의 개척자로 여겨지고 있다. 이 전 프로듀서가 지분을 매각한다는 소문이 돌았을 당시 카카오, 네이버 등이 매수자로 언급되곤 했다.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하 얼라인파트너스)이 SM 지배구조를 문제 삼으면서 인수전의 막이 올랐다. 특히 얼라인파트너스는 이 전 프로듀서 소유의 라이크기획이 SM과의 내부거래로 주주가치를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SM이 얼라인파트너스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내부 갈등이 촉발됐다. 급히 먹다 탈 났나? 이 과정서 이성수·탁영준 공동대표 등 현 SM 경영진이 얼라인파트너스, 카카오와 손을 잡았다. 이 전 프로듀서 측과 완벽한 대립각을 세운 현 SM 경영진은 ‘SM 3.0’을 발표하고 멀티 제작센터·레이블 체제로 전환을 발표했다. 이 전 대표 지우기에 나선 것이다. 여기에 SM 경영진이 지난해 2월7일 카카오가 신주와 전환사채(CB) 인수를 통해 지분 9.05%를 확보할 것이라고 공시했다. 이 전 프로듀서가 찾은 동앗줄은 하이브였다. 이 전 프로듀서는 SM의 공시 다음 날 법원에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기했다. 그리고 2월9일 자신이 보유한 SM 지분 18% 중 14.8%를 하이브에 매각하는 계약을 맺었다. 하이브는 SM 주식을 주당 12만원에 공개매수해 지분을 추가로 25%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SM 인수전이 카카오와 하이브의 대결로 압축됐다. SM 인수전은 한치 앞도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엎치락 뒤치락을 반복했다. 법원이 이 전 프로듀서가 제기한 가처분신청을 인용하면서 하이브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가 공개매수가 실패한 사실이 드러나자 카카오가 반격하는 식이다. 카카오와 카카오엔터는 지난해 3월7일부터 SM의 지분 35%를 주당 15만원에 공개매수하기 시작했다. 약 833만주에 달하는 주식으로 총 1조2500억원이 투입되는 어마어마한 물량이다. SM 인수전은 하이브가 카카오가 시작한 ‘쩐의 전쟁’서 한발 물러나면서 변곡점을 맞게 됐다. 쇄신 노력 ‘물거품’ 이후 카카오가 경영권을 갖고 하이브는 플랫폼 협력을 하는 방향으로 SM 인수전이 마무리됐다. 지난해 3월12일 하이브는 SM 인수 절차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하이브는 “카카오·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의 경쟁 구도로 인해 시장이 과열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고 판단했다”며 “이는 하이브의 주주가치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의사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카카오는 “SM의 가장 강력한 자산이자 원동력인 임직원, 아티스트, 팬덤을 존중하고자 자율적‧독립적 운영을 보장하고 현 경영진이 제시한 SM 3.0을 비롯한 미래 비전과 전략 방향을 중심으로 글로벌 성장에 속도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엔터계 ‘공룡’을 삼킨 또 다른 공룡 기업의 탄생이었다. 하지만 카카오가 SM을 인수하기 위해 벌인 ‘쩐의 전쟁’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하이브는 당시 SM 인수전서 발을 뺀 뒤 “비정상적 매입 행위가 발생했다”며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에 조사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SM 주가가 공개매수가인 12만원을 넘어 한때 13만원까지 급등한 점을 문제 삼았다.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비정상적으로 주식을 매입해 시세를 조종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금감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이하 특사경)은 지난해 10월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 대표와 카카오법인을 검찰에 넘겼다. 지난 11월에는 김범수 당시 전 카카오 이사회 의장과 홍은택 대표, 김성수·이진수 카카카오엔터테인먼트 각자 대표이사 등을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는 등 카카오 수사에 열을 올렸다. 시세조종 의혹 창업자에 칼끝 댔다 카카오뱅크 대주주 자격 잃을 수도 카카오는 말 그대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금감원이 카카오 경영진과 함께 카카오법인까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면서 카카오뱅크를 잃을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카카오 법인이 벌금 이상의 형을 받으면 카카오뱅크의 지분 27.17%를 보유한 카카오가 대주주 자격을 잃을 수도 있다. 금융당국은 6개월마다 대주주 적격성을 심사하는데 이때 대주주는 최근 5년간 금융간 금융관련법, 공정거래법, 조세범처벌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의 형사 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 SM 인수전 과정서 제기된 시세조종 의혹으로 카카오는 창업자 구속 가능성과 알짜배기 기업을 놓칠 가능성을 함께 안고 있는 셈이다. 카카오의 쇄신 노력에도 찬물이 끼얹어졌다. 카카오는 지난 3월 새 대표이사에 정신아 카카오벤처스 전 대표를 선임했고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카카오게임즈 등 계열사 대표도 바꿨다. 계열사 준법‧윤리경영을 지원하는 독립기구인 카카오 준법과신뢰위원회(준신위)도 쇄신에 속도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김 의장을 비롯한 카카오의 사법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쇄신작업은 물론 기업 전체 동력에 타격을 입게 됐다. 일각에서는 카카오가 그룹 덩치를 줄이기 위해 알짜배기만 남겨두고 일부 자회사를 매각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쪼개기 상장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만큼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서 어렵게 인수한 SM 역시 매각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카카오뱅크 등은 핵심 자산으로 분류된다. 몸집 줄여 해결될까? 문제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카카오는 SM 시세조종 의혹 외에도 문어발식 기업 인수, 계열사 확장 과정서의 잡음으로 수사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다. 서울남부지검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2020년 드라마 제작사 ‘바람픽쳐스’를 인수하는 과정서 김성수 당시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와 이준호 당시 투자전략부문장이 바람픽쳐스에 시세차익을 몰아줄 목적으로 비싸게 매입·증자했다는 의혹을 조사 중이다. 카카오의 운명이 연이은 사법 리스크에 잠식되는 모양새다. <jsjang@ilyosisa.co.kr>